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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강물처럼 흘러간 청춘의 도전과 낭만

막 내린 대학가요제 36년 결산

  •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

강물처럼 흘러간 청춘의 도전과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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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시대를 풍미하며 음악 문화의 한 축을 이루던 대학가요제가 사라진다.
  • 1990년대 들어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정체성과 진정성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폐지된 것. 대학가요제 36년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살폈다.
강물처럼 흘러간 청춘의 도전과 낭만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

50대 후반인 한 사업가는 말한다. “오늘날의 MBC를 MBC답게 만든 것은 대학가요제다. 모두 숨죽이던 군사정부 시절, MBC가 기획한 대학가요제는 신선한 충격과 도발 그 자체였다. 그러면서 MBC는 시대를 앞서가는 방송사라는 환상을 우리 세대에게 심어줬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대학가요제에 채무가 있는 사람들이고 MBC는 우리에게 빚진 방송사라고 생각한다.”

그는 MBC 대학가요제가 열린 그해 대학에 입학했다. 유서 깊은 ‘77학번’이다. 그의 주장은 “대학가요제를 폐지하면서 시청률과 트렌드 변화를 들먹이는 건 궁색하다. 방송사가 역사를 같이하며 자사를 먹여 살리고 키워준 고마운 프로그램 하나 못 지킨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MBC의 고충

대학가요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뜨거웠다. 엄연히 광고로 먹고사는 방송사 처지에서 투자한 제작비에 비해 광고와 시청률로 나타나는 실적이 저조할 경우 존속을 고집하기는 어렵다. 이런 고비용 저효율 상황은 1990년대 중반 뚜렷하게 나타났고 IMF 외환위기 한파를 거쳐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는 폐지설이 왕왕 불거져 나왔다.

MBC는 그래도 대학가요제라는 상징성 하나로 버텼다. 대학생 음악경연대회의 또 다른 산맥을 형성한 강변가요제가 2001년 22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 것과 비교하면 할 만큼은 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가요매니저와 일부 방송 관계자들은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방송사가 연례행사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해 마침내 잠정 중단 발표가 났고 2013년 대학가요제는 열리지 않았다. ‘폐지’라는 말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MBC가 폐지할 것으로 예단했다. 대학가요제 출신, 특히 수상자 출신 가수들과 출전을 준비해온 대학생들은 엄청나게 반발했다. 앞서 의견을 낸 사업가를 포함해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후반 학번의 일반인도 가세했다.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들은 대학가요제 폐지를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10월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013 대학가요제 포에버’라는 항의성 공연까지 열었다.

MBC는 한발 물러서 연말에 대학가요제의 부활을 약속하며 폐지 결정을 번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이건 무리라는 생각으로 끙끙 앓았을 것이다. 비용을 들여 방송국 아닌 바깥으로 나가 대학캠퍼스에서 오랫동안 행사를 강행해왔지만 2012년에는 상대적으로 조촐하게 일산 소재의 자사 방송센터에서 대학가요제를 개최했다.

결국 마지막이 된 이 행사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의 느낌은 “반드시 대학가요제를 살리겠다!”는 제작진의 넘치는 의욕이 무색하게도 ‘앞으로 어렵겠구나!’였다.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만 결국은 상업적, 경제적 논리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장구한 역사가 무서운 자본 논리에 패한 셈이라고 할까. MBC는 6월 말 공식적으로 대학가요제 폐지를 결정하면서 이 프로그램의 36년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간의 논란에 조금은 익숙해진 탓일까. 폐지가 결정된 후 언론과 대중은 “아쉽다!”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폐지설이 등장할 때마다 격해지던 반론의 수위가 확실히 낮아졌다. MBC는 “적절한 기회가 오면 새로운 트렌드와 참신한 형식의 가요제 기획을 모색하도록 하겠다”고 전했지만 수년간 가요제(오디션) 형식의 프로가 누린 열기가 식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속한 시기에 대학가요제가 부활할 것 같지는 않다. 몇몇 음악관계자는 가요제 형식이 설령 부활하더라도 대학생 중심의 프로그램이 기획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학가요제는 이제 끝!”이라고 단언한다.

프로그램이 끝나도 추억은 끝일 수 없다. 대학가요제가 음악계와 문화 전반에 남긴 36년의 궤적은 워낙 뚜렷하기에 대학가요제 세대라고 할 현재 40~50대(7080)의 기억에서 쉽사리 퇴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대학가요제가 쏟아낸 엄청난 히트곡과 더불어 젊은 시절을 보냈다.

우선 폭풍과도 같았던 1977년 1회 대학가요제의 대상 수상곡인 샌드페블스(서울대)의 ‘나 어떡해’를 잊을 수 없다. 젊음의 혈기와 아우성을 담은 이 노래는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움츠린 청춘 정서와 젊은이의 음악 록을 되살리면서 기성의 틀에 묶여 있던 음악계에 충격을 가했다.

7080 우상들과 주옥같은 명곡들

때마침 3형제 밴드인 ‘산울림’의 출현과 맞물리면서 록의 함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실제로 ‘나 어떡해’를 작곡한 인물이 산울림의 둘째인 김창훈이다. 샌드페블스를 기폭제로 무수한 록 밴드, 당시 표현으로 ‘그룹사운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왔다. 1회 대학가요제에서는 서울대 트리오의 ‘젊은 연인들’, 이스라엘 민요와 고려가요 청산별곡을 혼합한 이명우의 ‘가시리’도 널리 애창됐다.

배철수가 이끈 ‘활주로’(항공대)의 ‘탈춤’과 노사연(단국대)의 ‘돌고 돌아가는 길’이 수상한 1978년 2회 대학가요제에서는 입상조차 하지 못한 심민경의 ‘그때 그 사람’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록과 포크가 대세이던 시절 뜻밖에 트로트 곡을 들고 나와 수상자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음반 녹음의 기회를 잡았다. 그의 이름은 곧 심수봉으로 바뀌었다.

대상이 발표되는 순간 좋아 어쩔 줄 모르며 뛰어나온 김학래가 임철우(명지대)가 호흡을 맞춘 1979년 3회 대상 곡 ‘내가’, 가장 대학가요제 음악답다는 평가를 받은 이범용 한명훈(연세대)의 포크 록 ‘꿈의 대화’는 대학가요제가 배출한 걸작으로 꼽힌다. 오랫동안 라디오 리퀘스트를 받은 1982년 대상 곡 조정희(홍익공전)의 ‘참새와 허수아비’, 한 편의 시를 방불케 한 ‘높은음자리’(부산 동의대)의 1985년 대상 곡 ‘바다에 누워’, 이듬해 그랑프리를 수상한 유열(한국외대)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1988년 대상을 탄 밴드 무한궤도(서강대, 연대, 서울대)의 ‘그대에게’도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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