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8일 70대 남성 조모 씨가 미리 준비한 인화물질에 불을 붙여 화재를 낸 전동차 내부. 그을음과 소화기 분말가루 등이 남았다.
“그런 경향이 분명 있다. 자신이 과거 어떤 사회적 지위에 있던 존재였는데, 예전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 만일 상대방으로부터 멸시를 당했다고 느끼면 ‘욱’ 하는 격정의 형태로 감정이 폭발하는 것이다. 노인에게선 그런 ‘표현적 동기’가 매우 강하다. 연령이 높을수록 표현적 동기가 강해져 ‘격정 살인’ ‘격정 방화’ 같은 극단적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그것이 외국의 노인 범죄와 다른 한국 노인 범죄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닐까 생각한다.”
6월 23일 강원 양구군에선 71세 남성 윤모 씨가 자신의 90대 누나 부부를 둔기로 끔찍하게 살해했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윤씨는 이날 3년 만에 양구군의 아버지 산소에 들러 인근에 사는 누나 부부를 만나 함께 술을 마시다 자형이 자신을 질책하는 말을 듣고는 범행을 저지른 것. 윤씨는 경찰조사에서 “술김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노인 범죄 상당수는 이처럼 충동적 행태를 띤다. 충동조절 장애란 본능적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거나 자기방어 기능이 약해져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장애를 말한다. 남에게 해를 끼칠 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자신이나 남에게 해로운 행위를 하는 것이다.
충동조절 능력 상실
▼ 어떤 유형의 노인 범죄가 특히 증가하나.
“내가 2007년 치안정책연구소 의뢰로 ‘노인 범죄의 특성과 대책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용역연구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당시 공식 통계에 의하면 강도, 살인, 성범죄(강간·성추행) 순이었다. 강도라는 범죄의 특성이 뭔가? 빠른 시간 안에 완력을 행사해 범죄 대상의 재물을 빼앗는 것이다. 노인 강도 범죄가 크게 는다는 건 곧 ‘요즘 노인’이 ‘과거 노인’과 다르다는 걸 뜻한다. 건강관리와 평균수명 연장으로 연령대로는 분명 노인인데, 신체적으론 장년층에 뒤질 바 없는 이가 크게 늘어난 게 현실이다. 내가 자주 가는 동네 단골 목욕탕에서만 봐도 그렇다. 노인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신체적 건강을 잘 유지하는 60~70대가 많다. ‘어부 살인’의 장본인 오씨만 봐도 ‘바다에 뜬 배’라는 자신만의 제한된 지배 공간에서 자신이 왕이나 다름없는 힘과 권력을 지녔음을 드러내려고 범행을 저질렀지 않나.”
물론 노인 범죄 급증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령화 사회에선 어디나 골칫거리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10여 년 전부터 ‘폭주노인(暴走老人)’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노인 범죄가 폭증했다.
▼ 노인에 의한 성범죄도 급증한다.
“성(性) 파트너를 둔 노인이 성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 일단 신체적 능력이 받쳐주고,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욕구도 강하기 때문이다. 성범죄를 지탄하면서도 한편으론 여성을 성적 도구로 물화(物化)하는 상반된 시각이 공존하는 사회 분위기도 이를 부추긴다. 이를테면, 각종 모터쇼나 홈쇼핑 채널 등에서 자동차 마케팅을 할 때 8등신 미인이 등장하는데, 왜 반드시 그래야 하나? 발기부전치료제 개발로 노인 성문화가 젊은층 못지않게 급속도로 변화한 것도 성범죄 발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상황에서 형성된 왜곡된 성의식과 성적 판타지가 노인들로 하여금 성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것이다. 노인 성범죄의 또 다른 문제는 어린이나 지적장애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주 대상으로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이런 사악한 범행을 막으려면 노인에 대한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교육과 전문적 상담을 수행할 수 있는 사회 인프라가 하루 속히 갖춰져야 한다.”
▼ 노인 범죄는 일단 발생했다 하면 다른 연령층의 범죄보다 대형인 경우가 적지 않다. 노인 범죄자의 심리적 특성은 어떤가.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수시로 바뀔 수 있지만, 노인의 경우 융통성이 없이 사고가 경직된 경우가 많다. 비록 그것이 그릇된 것이라 해도 자신이 굳건히 믿는 신념과 가치관에 반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당하게 되면 언제든 범죄를 실행하고 마는 경향이 있다. 설령 범죄의 결과를 예상해도 그렇게 한다. 실제로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사건 피의자 조씨만 해도 민사소송에서 패소한 불만을 세상에 알리려는 그릇된 생각이 범행 동기로 작용했고, 범행도 다분히 계획적이었다.”
노인 증가보다 빠른 범죄 속도
최근엔 노인 방화 범죄가 두드러진다.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방화사건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인 7월 7일엔 부산에서도 방화 기도가 있었다. 입원 치료를 받다 퇴원한 부산 부곡동의 요양병원에 찾아가 불을 지르려 한 67세 남성 김모 씨가 붙잡힌 것. 김씨는 고관절 수술을 받고 대체 처방한 약에 불만을 품고 병원을 찾아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 한 혐의다.
▼ 적지 않은 노인이 불만 표출용 방화 범죄를 일삼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노인 처지에선 다른 범죄에 비해 비교적 간단히 범행도구를 구할 수 있는 데다, 바로 불씨만 댕기면 실행할 수 있는 손쉬운 범행수법이다. 그럼에도 그 범죄행위에 따른 피해 규모와 사회적 파급력은 엄청나다. 방화범은 그걸 잘 안다. 그들은 또한 불길이 타오르는 걸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성향이 강하다. 일종의 사회적 테러인 셈이다. 무고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신의 분노를 풀기 위해 저지르는 ‘묻지마’식 보복성 증오 범죄에 대해선 유사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범죄자 연령을 떠나서 엄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