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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인 시기 왜 한국군은 무력해지는가

대청해전 승리 질책한 이명박

  • 이정훈│편집위원 hoon@donga.com

결정적인 시기 왜 한국군은 무력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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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 질책하는 MB의 전화

합참에 처음 근무하게 된 그는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NLL이 수시로 뚫린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가 “왜 북한 함정의 NLL 월선(越線)을 보고만 있느냐”고 묻자, 해군 측은 이와 같은 설명에다 “남북관계의 경색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그는 후자에 집중해 “우리는 정치인이 아니니 ‘군인 짓’에 충실하자. 정치적인 것은 고려하지 말자”며 제대로 방어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2009년 10월 23일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정부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이어 11월 10일 대청해전이 일어났다. 제1연평해전은 우리가 대승한 전투이지만, 우리 쪽에서도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아덴만 여명작전도 성공작이지만, 인질로 잡혔던 석해균 선장 등이 총격을 받아 큰 부상을 입었다. 제2연평해전에서는 우리 고속정이 침몰하고 6명이 전사했다.

대청해전은 단 한 명의 부상자도 나오지 않은 완전 승리였다. 그런데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 세 작전에 대해서는 기념비까지 세우게 됐지만, 대청해전의 경우 아무것도 없다. 그 이유는 나흘 뒤인 11월 13일부터 언론이 보도하기 시작한 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남북비밀접촉설’에서 찾아야 한다. 그 무렵 이명박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던 이 요인의 말이다.



“승리에 대해 칭찬해주실 줄 알았는데, 대통령은 그 승리로 인해 3차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셨다. 화까지 낸 것은 아니지만,‘왜 그렇게 강하게 대응했느냐’며 매우 서운해했다. 말씀을 다 한 다음에도 미진한 감정이 남았는지, 계속 혀를 차며 전화를 끊지 않았다. 전화 통화라 직접 얼굴을 뵐 수는 없었지만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될 수 있음을 무척 안타까워하는 느낌이었다.”

국방의 목표와 정권의 목표가 정면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그때가 군 지휘관으로서는 가장 힘들다. 그는 ‘자기의 길’을 선택했다. 그해 말 작전사급 부대와 화상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지휘관들에게 “적은 반드시 보복한다. 적은 수상이 아닌 바다 밑으로 공격해올 가능성이 높으니 대비하라”라는 요지의 지시를 내렸다.

그에 대해 해군 관계자들은 “서해는 수심이 낮고 물이 탁해, 잠수함을 이용한 공격은 하기 어렵다. 서해에서 잠수함정은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북한은 남포 앞바다의 비파곶에 로미오와 상어급 등 공격 잠수함을 배치한 기지를 갖고 있다. 그는 그 사실을 거론하며 “서해에서 잠수함 작전이 어렵다면 왜 북한은 비파곶에 공격잠수함 기지를 운용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키리졸브 연습이 끝나는 2010년 3월 말 적의 잠수함 공격에 대한 대비를 잘 하는지 검열하겠다”는 말로 회의를 마쳤다.

wishful thinking에 빠진 대통령

그리고 운명의 2010년 3월 26일이 다가왔다. 그날 합참은 육군 교육사에서 국군 역사상 처음으로 3군 참모총장을 참석시킨 가운데 합동성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해·공군은 합동성 강화를 육군이 해·공군을 지휘하는 통합군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기에, 합동성의 ‘합’자만 들어도 경기(驚氣)를 일으킨다. 그런 회의를 열게 됐으니 많은 관심이 육군 교육사로 쏠렸다.

같은 날 합참에서는 적 잠수함 공격에 대한 대비 태세를 알아보기 위한 검열단의 예비회의가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백령도 서남방에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 즉시 ‘어뢰를 맞은 것 같다’와 ‘1977년 백령도 해역에 설치한 우리의 MK-6 육상조종 기뢰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양론이 나왔다. 다수 의견은 어뢰 쪽이었는데,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기뢰는 육상에 있는 조작반에서부터 도선(導線)이 연결돼 있어 조작반을 조작해야 폭발한다. 그런데 백령도 근해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 계속 불안을 호소했기에 그후 대부분을 회수했다. 위치가 바뀌어 찾지 못한 기뢰에 대해서는 조작반과 육상에 있는 도선을 제거하는 조치를 취했다. 조작반과 도선이 없으면 이 기뢰는 터질 수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은 반대로 기울었다. 이 요인의 말을 옮겨본다.

“대통령 처지에서 가장 리스크가 적은 것은 무엇이겠는가. 적 어뢰가 천안함을 격침했다고 하면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그로서는 큰 위기에 직면한다. 피로골절로 부러졌다고 하면, ‘같은 연수(年數)의 초계함이 작전 중인데 왜 천안함만 부러지는가’라는 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회수하지 못한 기뢰가 터졌다고 한다면 큰 부담을 받지 않을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가 대통령을, 국가를 책임진 사람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wishful thinking(소망적 사고)’ 쪽으로 유도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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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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