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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심층취재> 공직자 재취업 실태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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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은 ‘슈퍼 갑’ 재취업 공직자는 ‘슈퍼 을’

6월 10일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왼쪽)가 당내 ‘관피아 방지 특위’ 위원장인 강기정 의원과 얘기를 나눈다.

2012년 6월부터 지난해 5월 말까지 퇴직 후 재취업한 경찰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손해보험사에 취업했다. 경남지방경찰청에 근무한 한 경찰관은 2012년 2월 퇴직한 뒤 7개월 만에 L손해보험 사고조사실장으로 취업했고, 전남지방경찰청 산하 모 경찰서 교통조사계장 출신 인사는 2011년 8월 퇴직 후 1년 4개월 뒤 H생명보험 보험범죄조사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교통사고 등 자동차보험 관련 분쟁에서 경찰의 조사 결과가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보험사들이 경찰 출신을 많이 영입한 것은 보험 분쟁에 대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공정거래위원회 출신의 경우 대형 로펌 또는 불공정 거래 등으로 공정위 규제를 많이 받는 민간 기업으로의 이직이 잦았다. 공정위에서 규제개혁법무담당관을 지낸 H씨는 지난해 2월 퇴임 한 달 뒤 국내 최대 K법률사무소에 전문위원으로 재취업했는데, 기업 규제에 대한 각종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K법률사무소와 공정위 업무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정위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 부단장을 맡았던 I씨는 지난해 1월 공정위를 퇴직하고 한 달여 뒤 국내 대표적인 제과업체와 편의점 업체에 동시에 비상근 자문역으로 재취업했다. 두 업체는 시장 지배적인 재벌 계열사들로 공정위가 추진하는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세청에서 세무서장을 지낸 J씨는 2012년 6월 말 퇴직 후 한 달 만에 S왕관 부사장으로 취업했다. S왕관은 각종 병마개를 제조하는 대기업 계열사로 주세법에 따른 주류용기 납세증명표지 등 국세청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의 한 지방국세청장을 지낸 K씨도 2011년 2월 퇴직 후 1년 6개월 만에 한 주류업체 감사로 재취업했다. K씨가 취업한 주류업체는 국세청으로부터 세제와 관련해 규제를 받는 국내 대표 기업이다. 퇴직 전 업무와 연관성이 큰 기업에 취업하려던 K씨는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 취업했다.

지난해 2월 말 국세청을 퇴직한 L씨는 퇴직 직후 O회계법인 자문위원으로 취업했다. 그런데 이 회계법인은 안전행정부가 고시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대상업체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L씨는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통과해 퇴직 다음 날 곧바로 취업했다.



참여연대는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 운영실태 보고서’에서 L씨의 재취업 사례와 관련, “안전행정부가 고시한 취업제한대상업체에 포함됐음에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부서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회생활’ 시작한다

퇴직한 공직자 가운데 다수가 부처 업무와 연관이 큰 민간 기업에 용이하게 재취업할 수 있는 것은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취업 제한업체 범위를 ‘소속 부서 업무’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 1항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 부서의 업무’로 취업제한 범위를 규정하고, 공직자윤리법 시행령 제32조는 업무 관련성 범위를 과장 이하 직원은 ‘해당 과의 업무’, 상위 직급자는 ‘직무상 지휘 감독 부서의 업무’로 한정했다. 그러나 공직자들의 재취업 사례를 살펴보면 이 같은 협소한 취업제한규정으로는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정책 수립은 물론 금융기관에 대한 관리 감독권을 가진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민간 금융사 고위직으로 재취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금융정보분석원에 근무한 M씨는 2012년 8월 퇴직 후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거쳐 I캐피탈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지낸 N씨는 퇴직 후 열흘 만에 H증권 사장으로 취업했다. 금융위 팀장을 지낸 O씨도 퇴직 후 석 달 만에 한 증권사 임원으로 취업했다.

금융권의 한 고위 임원은 “인·허가를 다투는 기업에서는 퇴직 공직자를 영입할 때 업무 연관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겠지만, 관리 감독을 받는 금융사들은 업무 연관성보다 (퇴직 공직자가 몸담았던) 조직 내 평판을 더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공직자를 모셔오는 이유가 당장 기업에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불이익을 피하려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퇴직 공직자 상당수가 업무 연관성이 큰 민간 기업에까지 재취업이 가능한 이유는 공직자윤리법이 이해충돌의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기 때문”이라며 “하루빨리 포괄적 업무 연관성까지 감안해 취업 제한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여전히 온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업무 연관성을 심사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후속 조치로 고위 공직자의 직무 관련성 기준을 ‘소속 부서’가 아닌 ‘소속 기관’으로 더 엄격하게 규정한 ‘공직자윤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7월 15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퇴직 관료들의 재취업 관행에 어느정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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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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