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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범’도 ‘확신범’도 비용·편익 계산부터

이혼의 정치학 <1부> 결심

  • 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우발범’도 ‘확신범’도 비용·편익 계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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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만큼 정치적인 게 없다

중장년 이혼을 단행하는 사람은 대개 확신범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장단점을 충분히 비교한 상태에서 이혼을 결정하는지는 의문이다. 혼자가 되고 난 뒤에야 단점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청춘이혼을 하는 사람은 더 그렇다. 이들은 대개 우발범이다. 나중에야 이혼의 단점을 깨닫고 후회한다.

기혼자들이 평소 이혼에 대해 어떻게 마음속으로 정리해놓고 사는지 모르겠다. 정리는 무슨? 닥치면 그때 고민하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무방비로 살다 정작 상황이 벌어지면 경황이 없어 정리할 여유를 찾지 못한다. 당연히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결혼생활 중에 이혼에 봉착했을 때만큼 정치적이 되는 순간도 별로 없다. 청혼할 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평생 전략을 모르던 사람도 이때는 전략을 고민한다. 우유부단한 사람조차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치를 가까이 하려니 모든 것이 어색하다. 결국 손절매로 대충 마무리하고 후회한다.

이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이어야 하고 또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이해득실을 잘 따져야 한다. 앞서 말한 이혼의 장단점 6가지 외에 사람마다 추가할 고유한 장단점을 더 검토해야 한다.



미성년 자녀의 스트레스

예컨대, 이혼의 장점으로 상대방으로부터 폭행을 더 이상 당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술주정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아도 된다거나, 외도를 더 이상 참아내지 않아도 된다거나 하는 것들을 추가할 수 있다.

단점으로 자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한다거나, 이혼자로서 남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거나, 배우자에게 재산을 많이 떼어주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을 추가할 수 있다. 이들 이혼의 장단점에 대해선 그 하나하나를 사려 깊게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녀가 입는 상처와 관련해, 일부 연구는 “부모의 이혼으로 미성년 자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암 선고를 당한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들

청춘이혼의 경우 더 소소한 이유,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추가될 수 있다.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잠버릇을 참기 어렵다거나 하는 따위다. 이것을 소소하다고 보는 까닭은 이렇다. 부부는 사랑 때문에 평생을 함께 사는 것이 아니고, 잠버릇이 나쁘면 각 방을 쓰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도 장단점 면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양육권을 갖지 못하는 쪽은 자녀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데 따른 상실감을 단점으로 생각할 것이다. 양육권을 갖는 쪽은 자녀로 인해 자유가 제한되는 점을 단점으로 여길 수 있다. 어떤 경우이건 이혼을 고민 중이라면, 정부 부처나 국책연구기관이 국가적 사업을 결정할 때 사업의 비용편익을 산정해 비교하듯이, 이혼의 비용편익 명세표를 만들어볼 필요가 있다.

명세표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편익과 비용을 적어나간다. 그다음에 각각에 점수를 부여한다. 10점 만점도 좋고 100점 만점이라도 상관없다. 점수는 내 맘대로 적으면 그만이다. 특정 항목에 가중치를 둬도 상관없다. 주관적으로, 직관적으로 생각해 적으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용과 편익의 총점을 낸 다음 어느 쪽 점수가 높은지 비교해보기 바란다.

이혼 과정상의 비용도 포함해야

편익의 총점이 높으면 이혼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져 있다는 의미다. 비용의 총점이 높으면 그래도 같이 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혼을 원한다면 이혼을 해야 할 이유, 곧 이혼의 편익을 더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반대라면 물론 비용을 더 찾아봐야 할 것이다.

이해득실을 따져본 결과 이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더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이혼 과정 자체가 주는 비용 부분이다.

이혼 과정에는 적지 않은 정신적·시간적 비용이 들어간다. 상대방이 순순히 합의이혼에 응해주면 비용이 많이 준다. 반면 소송으로 가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발생한다. 최종 판결까지 1~2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유명인들처럼 이전투구 양상이 밖으로 알려져 양쪽 모두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합의 못해” vs “갈 데까지 가자”

지루한 소송을 거치면서 몸도 마음도 지치고 정신도 피폐해진다. 상대방으로부터 재산을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면 소송 이후 실제 재산을 배분받기까지 다시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이혼 과정 자체가 주는 손실도 이혼의 비용 항목에 반드시 추가해 따져야 한다.

우리는 악랄한 배우자를 만나 살면서도 고생하고, 이혼할 때도 애를 먹는 이들을 가끔 본다. 이혼 과정이 두려워서 포기하고 사는 사람도 많다. 과정상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니까 이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참고 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고려는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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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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