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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배 기자의 풍수와 권력

최부잣집 ‘곡간 풍수’와 운조루 ‘물 풍수’

부자가 좋아하는 재물 명당

  • 안영배 | 동아일보 출판국 전략기획팀 기획위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최부잣집 ‘곡간 풍수’와 운조루 ‘물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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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살고 있는 터를 향해 물길이 휘감아 들어오는 형상이면 생기가 보호돼 재물이 쌓이고, 터에서 물길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그 물길을 따라 생기 또한 빠져나간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물길이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일 경우 터 앞에다 키 큰 나무를 심어 물길이 보이지 않도록 차단하기도 한다.

물에 대한 이 같은 풍수적 관념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부잣집들을 살펴보자. 먼저 재물 기운을 갖춘 생기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물을 이용한 풍수 조형물은 전남 구례의 ‘운조루(雲鳥樓)’(중요민속자료 제8호) 가옥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에 지어진 운조루는 지리산 서남단 지역에 위치하는데, 지리산 노고단에서 이어지는 형제봉(일명 삼태봉)이 주산(主山)을 이루고 넓게 펼쳐진 들 앞으로는 섬진강이 환포(環抱)하며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재물 명당 터로 일찌감치 명성을 누려왔다. 일각에선 운조루를 처음 지은 유이주(1726~1779)가 집 자리를 닦을 때 거북처럼 생긴 돌이 나왔다고 해서 금구몰니(金龜沒泥)형 재물 명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례 운조루의 풍수 비보

아무튼 호남의 대표적 부잣집 중 하나인 운조루의 주인은 베풂과 나눔의 미학을 실천해왔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운조루의 쌀독이다.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공간엔 나무로 만든 쌀독이 있는데, 쌀독 하단에 한 주먹만큼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고, 거기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다른 사람도 열 수 있다’는 의미로, 주변의 배고픈 사람들이 아무 때나 와서 쌀을 퍼가도록 하고 가을에 추수를 하면 다시 되돌려놓을 수 있도록 한 장치다. 게다가 쌀독이 있는 곳은 쌀을 가지러 온 여인네들이 안채의 주인집 여자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중문을 잠가놓는 세심한 배려까지 해놓았다.

이처럼 진정한 재물 명당은 터의 주인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에게도 넉넉한 기운을 베푸는 특징이 있다. 또 그래야만 재물의 명당 기운이 오래도록 유지된다. 부자나 귀족 가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그 가문의 영속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위인 것이다.



운조루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운조루엔 재물 기운을 누리려는 목적으로 조성한 풍수 비보(裨補) 장치가 여럿 있다. 풍수적 안목을 갖추고 바라보면 운조루 주인의 재치 넘치는 풍수 감각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먼저 운조루가 있는 오미동 마을의 뒷산인 병풍산에서 내려오는 지기(地氣)는 1000여 평에 달하는 운조루 터를 둥그렇게 감싸면서 커다란 재물 기운을 이룬다. 이러한 재물 기운이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운조루는 매우 교묘한 비보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운조루에 강하게 깔린 재물 기운이 공중으로 솟구쳐 올라 사라지지 않도록 일단 수십 칸에 이르는 집들이 처마가 다닥다닥 붙을 정도로 밀집돼 조성된 것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할 만큼 배치한 것은 집과 집 사이의 처마를 이용해 지기가 공중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또 집의 솟을대문 바로 앞으로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물이 흐르도록 인위적으로 꽤 깊은 도랑을 만들었다. 얼마 전 필자가 답사할 당시에도 도랑엔 물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이를 풍수에선 ‘계류수’라고 하는데, 정확히 운조루의 재물 기운은 이 계류수까지 뻗쳐 멈추는 형국이었다. 즉 물을 만나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계수즉지’의 풍수이론을 고려한 것이다.

그런데 운조루 주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류수가 흐르는 도랑 더 바깥쪽(남쪽)으로는 아예 연못(동서 45m× 남북 15m)을 조성했다. 연못 가운데엔 조그만 섬 형상을 만들고 소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어 아름다운 수경 공간을 연출했다. 언뜻 보면 관상용 공간으로 치부됨직한 이 연못엔 연출자의 풍수적 계산이 깔려 있다.

그 하나는 운조루의 뒷산, 즉 북쪽에서 뻗어 내려온 지기가 혹여 1차 경계선인 물 도랑을 넘어설 경우 2차 경계선인 남쪽의 연못에서만큼은 완벽히 차단하겠다는 계산이다. 다른 하나는 운조루의 안산이라 할 수 있는 오봉산 쪽에서 내려온 살기(殺氣)가 운조루를 향해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는 형국인데, 이를 연못의 물 기운을 이용해 막아주고자 한 것이다. 물을 이용한 비보 풍수로 운조루만큼 지혜롭게 사용한 경우는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들다.

현재 운조루는 과거의 재물 명당이라고 하기엔 다소 쇠락한 느낌이 든다. 운조루의 후손은 운조루를 출입하는 관광객의 관람요금으로 옛 명성을 잇는 듯하다. 사실 운조루의 재물 명당은 ‘돈’이 아니라 ‘곡식’의 기운이다. 전통 시대엔 곡식이 부의 원천이었기에 부자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화폐의 시대요, 금융의 시대이기에 곡식의 명당 기운으로는 옛날과 같은 부를 이루긴 힘겹다고 해석해야 할 것 같다.

최부잣집 곡간의 비밀

한편으로 지나친 재물 기운은 그 터에 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다. 특히 재물 기운에 직접적으로 노출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부분까지 감안해 터를 조성한 부잣집이 경주 교동의 최부잣집이다.

최부잣집은 원래 신라 요석공주가 살던 요석궁이 자리했던 터라고 전하는데, 사실이라면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신라의 대문장가 설총의 탄생지가 된다. 이 터를 풍수적으로 살펴보면 집 앞으로는 문천이라고 불리는 물길이 흘러 임수(臨水)의 모양새는 갖췄는데, 집 뒤를 받쳐주는 배산(背山)은 엉성하다. 뒤쪽이 야트막한 둔덕으로 거의 평지에 가깝다. 대체로 경주 시내가 다 이런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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