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 개혁’ 首長에 전직 삼성맨 깜짝 발탁
- ‘기술의 삼성’ 일조하며 애니콜 신화 동참
- “고집과 추진력 남다르다”(삼성 전·현직 동료들)
- “공무원연금 개혁은 시대의 소명”
‘신동아’ 인터뷰는 취임 3주가 지난 12월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내 그의 집무실에서 칼퇴근 원칙을 깨고 이뤄졌다. 이 처장은 자신을 “공직 사회의 안영이(드라마 ‘미생’의 여주인공)”라고 소개했다.
“나는 공직 사회 ‘안영이’”
▼ 고(高)스펙이라서요?
“하하. 공무원 신입인데, 장그래 같이 뛰어난 식견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요새 ‘늘공’ ‘어공’이란 말이 있다죠? 저는 ‘나공’, ‘나도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안영이가 주변에서 도움 받으며 성장하잖아요. 저도 국민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늘공, 어공은 요즘 공무원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어다. 일반직 공무원은 ‘늘 공무원’이고, 외부에서 온 정무직과 별정직 공무원은 ‘어쩌다 공무원’이란 뜻.
▼ 기획조정관, 대변인, 비서실장에 모두 워킹맘이 임명됐습니다.
“그 세 사람이 모두 워킹맘이어서 화제가 됐다는 건, 여성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 여전히 진보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봐요. 인사에 젠더(gender)는 중요치 않아요. 누가 적임자냐, 그게 핵심이죠. 우리 부처는 여성 직원이 41%입니다. 곧 남녀 비율이 역전되고 ‘워킹대디’를 배려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몰라요.”
▼ 공직 인사는 청렴성,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적 위주의 인사를 해온 민간 전문가가 과연 적합하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청렴하지 않은 사람을 쓰진 않습니다. 삼성도 아주 엄격한 감사 제도를 갖고 있고요. 문제는 공공성입니다. 산간에 다섯 가구만 살 때 기업은 전기를 놓아주지 않아요. 반면 효율보다 공공이 우선인 정부는 놓아줍니다. 그렇다면 공직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는요? 효율이 우선돼야죠. 그래야 공무원 경쟁력이 높아져 대국민 부담이 줄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장은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 삼성코닝 인사과장, 삼성종합기술원 관리부장, 삼성SDS 인사지원실장,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 등을 지냈다.
▼ 공대생이 어쩌다 인사통이 됐나요.
“제가 사람을 좋아합니다. 첫 근무지가 삼성코닝이었는데, 공장 직원들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정도였어요. 그 때문에 사원 대표 비슷한 것에 선출됐어요. 또 제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책이나 신문 읽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두 가지가 엮여서 기술직에서 인사직으로 전환됐죠. 지금도 그 공장 분들과 모임을 하고 있어요. 채소장수, 공영주차장 징수원, 보일러공 등을 하시는데, 이분들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기자는 복수의 전·현직 삼성 동료에게서 이 처장의 삼성 시절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그가 “기술의 삼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이병철 당시 회장이 삼성종합기술원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삼성 내에서 연구조직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이근면 관리부장은 연구원에 대한 직제, 평가기준, 보상체계 등을 바꿔 연구에만 전념해도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쳤다고 한다. 이 ‘연구임원’ 제도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시작돼 삼성그룹 전체로 확산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임원 1200여 명 중 연구위원이나 전문위원으로 불리는 연구임원이 500여 명에 달한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그와 함께 관리부에 근무한 동료는 “1980년대 후반 이근면 부장은 전문직 단일호봉제를 제안했다”며 “너무 획기적이라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의미 있는 아이디어였다”고 회상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으로 삼성 해외공채 1호로 불리는 윤석열 R·D경영연구소 대표는 “이 처장은 시험분석실을 만들어 과장인 나를 실장으로 앉히더니 비싼 장비를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사람도 원하는 만큼 뽑아줬다”며 “그렇게 확보된 전문 인력과 장비는 훗날 반도체, IT, 가전 등 제품 개발에 필요한 최적의 소재를 빠르고 정확하게 개발하는 원천이 됐다”고 회고했다.
적재적소 아닌 적소적재
▼ 여느 인사 담당자와 다르게 직원들과 식사도 자주 하고, 연구원들이 무슨 연구를 하고 있나 꼼꼼하게 들여다봤다고도 하던데요.
“저는 인사란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니라 적소적재(適所適材)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을 앉혀야 해요. 이게 끝이 아니라, 미션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몇 부 능선까지 올랐는가, 보충해줘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직원들이 하는 일을 자세하게 지켜보며 끊임없이 관리해야지요.”
▼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인사도 전략인데, 이근면은 탁월한 전략과 추진력으로 애니콜 신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제가 1998년부터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을 했습니다. 당시 삼성 휴대전화는 세계시장에서 11위였는데, 이 전 부회장이 시동을 걸었죠. 그땐 휴대전화 연구원 숫자도 미미했습니다. 빠른 성장에 가장 필요한 것은 그 일을 해나갈 사람이죠. 성장에 지체함이 없도록 먼저 큰 옷을 입혀 몸이 자라게 하고, 다시 더 큰 옷을 입히고를 반복했어요. 외부 인력 수혈도 본격화했고….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을 이끈 12년 동안 획기적 발전을 이뤘지요.”
성별 구분 없는 ‘적소적재’ 인사 스타일은 그가 이영희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부사장을 로레알코리아에서 삼성으로 스카우트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2007년 이 부사장이 삼성으로 옮겨왔을 때, 삼성이 첨단 IT제품의 마케팅을 소비재 마케팅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는 점에서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이 부사장은 “이 처장은 앞으로는 휴대전화가 엔지니어링과 테크놀로지 중심에서 사람 중심의 마케팅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여러 번 찾아와 설득했다”며 “당시 정보통신총괄 임원 중 내가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그는 내가 나답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회고했다.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부사장을 마지막으로 2011년 삼성을 떠난 후 이 처장은 ‘청년 멘토’로 활동해왔다. 청년의 진로와 취업, 창업 등을 지원하는 비영리재단 ‘청년위함’을 만들었고, 아주대에서 강의를 하고 취업 관련 책도 썼다. 최근 출간된 ‘직립보행, 인턴에서 100% 취업 성공하기’에서 그는 직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예절에 대해 ‘깨알 조언’을 한다. ‘우체국, 은행, 주민센터 위치는 미리 알아둬라’ ‘상사와 함께 택시 탈 때는 먼저 타서 안쪽으로 들어가라’ 등이다.
이 처장과 삼성SDS에서 함께 근무했고 이 책을 공저한 조재천 인키움 대표는 “평소 직장 예절을 매우 강조하는 분”이라며 “그가 말하는 예절이란 상대를 안전하게 해주고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우리 회사가 있는 빌딩에 입주한 회사가 150개나 돼 서로 모르고 지내는데, 경비원들은 가끔 방문하는 이 처장에게는 꼭 거수경례를 한다”고도 했다.
지난 12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장·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 남의 회사 빌딩 경비원한테 인사받는 비법이 뭔가요.
“내가 먼저 인사하면 됩니다.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존중받을 수 없는 법이지요. 저는 선한 사람은 아니에요. 치열하게 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달아나간 사람입니다.”
정부가 ‘개방성과 전문성을 갖춘 공직사회로의 혁신’을 기치로 인사혁신처를 신설한 만큼, 이 처장은 앞으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어공’을 많이 발굴해야 한다. 인사혁신처는 그 시작으로 인사혁신처 내 10개 직위를 민간에 개방하면서 핵심 보직이라 할 인재정보기획관(국장급), 인재정보담당관(과장급), 취업심사과장을 포함시켰다. 인재정보기획관과 담당관은 공직 후보자를 발굴·조사·평가하며, 취업심사과장은 퇴직공직자의 재취업을 심사해 관피아 논란을 사전에 예방하는 자리다. 인사혁신처 관계자에 따르면 이 세 자리에 반드시 민간 전문가를 앉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 처장이라고 한다.
응시원서 접수 결과 이들 세 자리에 총 53명이 지원했고, 그중 민간 전문가가 46명이나 됐다. 최근 5년간 개방형 직위 공모 현황과 비교하면 경쟁률은 3배(5.8대 1에서 17.7대 1), 민간인 지원율은 20%P 이상(61%에서 86.8%) 오른 것이다.
▼ ‘이근면 효과’인가요?
“공직 사회가 혁신하길 원하는 국민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로 받아들입니다. 민간인이 공무원 인사 책임자가 된 것을 보고 많은 분이 이제 공직도 민간 전문가가 들어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춰나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고요.”
▼ 공무원연금은 이해당사자가 한둘이 아니고 이해관계도 복잡합니다.
“지금 안 하면 훗날 후손이 ‘당신들은 대체 뭘 했습니까’라고 물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시일반 고통을 분담하며 아프게 지나가야 하는 일이지요. 악역을 맡은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아니라면 어느 누군가가 이 순간에 해야 할 일이에요.”
▼ 추진력이 뛰어나지만, 그 때문에 주변에서 싫은 소리도 많이 듣는 편이라고 하던데요.
“옳다고 생각하면 설득합니다. 상하좌우 가리지 않아요. 반대하면 다시 설득하고요. 저를 막을 수 있는 건 조직의 명령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갑니다. 물론 정부 일은 이해당사자가 굉장히 많고, 저 혼자의 뜻만으로 안 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전 국민의 바람과 전 공무원의 마음이 잘 만나는 접점을 찾아야 무난한 혁신이 가능하겠지요. 그래서 기대와 응원,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공감이란 나부터 낮추는 것”
비선(秘線) 정국에 깜짝 발탁이다보니 그의 인사 배경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가 정부·여당과 맺은 인연이라고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한일자리추진단에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것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울 중동고 동창이란 점뿐이다. 박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고, 김 대표와는 취임 이후 국회 간담회 때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는 “정부에는 여러 분야 인적 자원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니, 거기서 보고 발탁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 앞으로 ‘낙하산’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지 말라는 법이 없습니다.
“저는 미래 대한민국을 위해 일합니다. 어릴 적에 필리핀 바나나와 도시락에 얹은 계란이 너무 먹고 싶었어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먹죠. 그런데 우리 손자들도 계속 먹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몽골 학생들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며 유학 오지만, 우리 후손이 몽골로 유학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이 처장은 삼성에서 패셔니스타로 통했다고 한다. 삼성SDS 시절에 그의 주도로 토요일 자율복장이 도입됐고, 종종 회사에 빨강 바지도 입고 나타났다고 한다. 취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주로 검정 뿔테 안경을 쓰던 그가 이날은 호피 무늬 안경을 쓰고 있었다.
▼ 안경테가 여러 개라면서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의와 강연을 했잖아요. 이들과 같이 호흡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의 하나로 안경테를 몇 개 마련해 복장이나 분위기에 따라 바꿔 쓰고 있어요. 공감은 내 높이로 사람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에요. 먼저 나를 낮추는 거죠. 이게 제 철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