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미생(未生)’ 콘텐츠가 글로벌 대박 터뜨리려면?

  • 손영훈 |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changeworld@kt.com

    입력2014-12-23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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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바둑 기사 입단에 실패한 청년의 회사 적응 과정을 다룬 드라마 ‘미생’이 연일 인기 상종가다.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은 완성도 높은 원작을 플랫폼에 최적화해 재현한 것. ‘미생’은 글로벌 콘텐츠의 무한한 가능성을 증명했다.
    ‘미생(未生)’ 콘텐츠가 글로벌 대박 터뜨리려면?
    드라마 ‘미생’은 케이블방송 드라마임에도 본방송 평균 시청률 6%를 웃돌며 돌풍을 일으켰다. 재방송, VOD 재생까지 포함하면 태풍급이다. 가히 ‘국민 드라마’라고 할 만하다.

    20부작으로 편성된 ‘미생’ 광고는 6화 방영 당시 이미 완판됐고, 정식으로 진출하지 않은 아시아 시장에서도 화제를 일으키고 미국 리메이크판 제작 논의까지 진행되는 상황이다. 원작 만화 단행본도 방송 시작 일주일 만에 10만 부가 판매됐고 2014년 11월 한 달 동안만 100만 부가 추가 판매됐다.

    ‘미생’이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은 비결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한 원작의 뛰어난 완성도, 플랫폼에 최적화한 원작 재현 등이다. 웹툰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는 ‘미생’ 취재를 위해 3년을 투자했다. 작가는 직장 생활 경험이 없지만, 열정적인 취재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미생’에선 비현실적인 재벌, 승승장구하는 엘리트, 상투적인 러브라인, 꿈같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계약직, 워커홀릭, 워킹맘 등 이 사회 ‘을(乙)’의 생생한 현실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원작 최적화 플랫폼

    뛰어난 원작을 살린 건 적합한 플랫폼이다. 드라마와 웹툰은 엄연히 다른 특성을 가졌다. 웹툰은 드라마에 비해 독자에게 상상의 공간을 더 크게 제공하는 반면, 드라마는 웹툰에 비해 시각적 공간을 더 크게 제공한다.



    따라서 드라마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상력을 시각적인 부분으로 더 입체감 있게 승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스토리나 캐릭터를 원작에 가깝게 재현하는 것을 넘어 드라마라는 플랫폼에 최적화하도록 재현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도 고려해야 한다.

    ‘미생’은 배경이 되는 실제 종합상사의 느낌을 영상으로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 직장인의 외모, 복장, 말투, 전문용어, 소품 등 실제 종합상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보아도 리얼하다고 수긍할 수 있는 인물과 배경이 등장한다. 원작을 본 사람은 ‘원작의 캐릭터가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고,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도 스토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생’처럼 성공한 콘텐츠는 어떤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을까. ‘미생’은 단순하게 인기 웹툰을 드라마화한 성공사례로 볼 수도 있지만, 좀 더 자세하게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이하 OSMU)’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Trans-media Storytelling)’ ‘세계관’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요즘엔 한 가지 콘텐츠가 성공하면 단일 플랫폼에 머무는 경우가 거의 없다. OSMU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으로 출시하는 것을 말한다. ‘미생’의 경우 웹툰, 도서, 드라마, 모바일 영화, 캐릭터 상품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나왔다. ‘미생’ 웹툰의 내용을 그대로 드라마로 재현했듯 완전히 동일한 콘텐츠가 플랫폼만 바꿔 출시될 수도 있고, 같은 콘텐츠라도 본편, 속편, 전편 등으로 나뉘어 플랫폼별로 출시될 수도 있다.

    또한 전편과 속편을 다른 플랫폼으로 선보이는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이 있다. 미국의 미디어 학자 헨리 젠킨스가 제안한 개념으로, OSMU와 유사하지만 플랫폼별로 별개의 이야기가 진행되며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전체 이야기가 완성된다. OSMU보다 비교적 진화한 형식이라 볼 수 있다.

    ‘스파이더맨’의 세계관

    ‘미생’은 모바일 영화 ‘미생 프리퀼’을 통해 등장인물 6인의 과거를 다뤘다. 드라마 방영 중에도 웹툰 특별 5부작을 통해 극 중 주요 인물인 오과장의 대리 시절 등을 풀어냈다. 각각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웹툰, 모바일 영화, 웹툰 특별 5부작이라는 플랫폼이 모여서 ‘미생’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이 완성된다.

    ‘세계관(Weltanschauung)’이란 본래 철학용어로 세계 전체에 대한 일정한 견해를 뜻한다. 오늘날 콘텐츠에서의 세계관이란,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부여한 작품 내 세계의 설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가졌다. 스파이더맨은 주인공 피터 파커가 거미인간의 초능력을 얻게 되면서 숙적 그린고블린, 베놈, 옥토퍼스 등의 악당과 싸우는 메인 세계관을 가졌다. 그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스토리를 단순화한 것이 영화 ‘스파이더맨’ 시리즈이고, 주인공 출생의 비밀을 부각한 것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조력자와 악당 등 다양한 캐릭터를 내세운 것이 ‘얼티밋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은 작품별로 스토리는 다르지만 공통된 세계관이 존재한다.

    ‘미생(未生)’ 콘텐츠가 글로벌 대박 터뜨리려면?
    일단 어떤 작품의 세계관이 확립되면 캐릭터는 여러 미디어 플랫폼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를 통해 일차원적인 단일 콘텐츠의 한계를 벗어나 콘텐츠의 수명이 연장되고 다양한 계층의 콘텐츠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 아직은 ‘미생’만의 큰 세계관이 완전히 확립됐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향후 세계관이 정립되면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활용해 더욱 다양한 플랫폼과 스토리로 미생의 콘텐츠가 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자체 비즈니스 모델로도 많은 수입을 창출하지만,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수도 있다. 드라마 ‘미생’ 방영 후 원작 단행본은 더 큰 인기를 얻었다. 이른바 ‘미디어셀러’가 된 것. 미디어셀러는 TV, 영화 등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노출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된 도서를 뜻하는데 ‘TV셀러’ ‘스크린셀러’라고도 한다.

    웹툰 ‘미생’ 단행본은 2012년 9월 출간돼 드라마 방영 전까지 90만 부가 판매됐다. 그러다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일주일 만에 10만 부, 2014년 11월에는 100만 부가 추가 판매돼 누적 판매량 200만 부로 2014년 최고 베스트셀러가 됐다. 단행본뿐 아니라 드라마 방영 이후 ‘미생’ 유료 웹툰을 구독하는 독자도 늘었다.

    미디어셀러

    미디어셀러는 ‘미생’처럼 도서 자체가 드라마 원작 스토리인 경우도 있고 동화책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처럼 드라마의 소품으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도 있다. ‘에드워드…’는 2009년 국내 출간돼 5년간 1만 권이 팔렸는데,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이 자주 보는 책으로 등장한 후 두 달 동안에만 17만 권이 팔려 2014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가 됐다. 또 다른 사례로 ‘어벤져스2’가 있다. 국내 촬영이 시작된 2014년 3월 이후 보름 동안 원작 만화 판매량이 42% 증가했고 관련 완구의 판매량도 늘었다. 이 두 사례는 캐릭터 상품 판매나 PPL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생’의 캐릭터 상품도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판매에 발동이 걸렸다. GS25에 의하면 드라마가 첫 방영된 이후 약 한 달 동안 웹툰 ‘미생’의 캐릭터 상품 매출은 전년에 비해 68.9%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엘사, 안나 등 디즈니 겨울왕국 캐릭터 상품이 바비 인형을 제치고 ‘여자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 1위로 선정됐다. 모바일 게임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Rovio)는 캐릭터 라이선스 수익이 2012년 전체 매출의 45%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콘텐츠의 인기가 관련 캐릭터 상품의 매출 증가로 이어진 것은 콘텐츠 내 캐릭터가 상품의 사용자 경험(UI)에 투영돼 나온 결과라 할 수 있다.

    20부작 드라마 ‘미생’은 6화가 방영된 시점에서 이미 전회 광고를 완판했다. ‘미생’의 광고 중에는 실제 드라마 주인공이 출연하는 것도 있다. 드라마의 친근한 캐릭터가 광고 속에서도 유사한 연기를 하거나 이미 드라마에 PPL로 노출된 상품을 다시 광고하는 등 드라마와 광고의 경계가 자연스레 무너졌다. 드라마 주인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시청자 처지에선 광고부터 드라마 본편까지 ‘패키지 콘텐츠’로 인식될 수도 있다.

    PPL은 ‘Product Placement’의 약자로 홍보를 목적으로 미디어 속에 특정 상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광고 전략이다. PPL 시장은 2013년 기준 연 405억 원 규모인데 기존 PPL은 지나친 고가 제품이나 부자연스러운 노출로 빈축을 사곤 했다. PPL은 간접광고인 만큼, 드라마 스토리와 절묘하게 조화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을 때 효과가 크다. 그렇게 되면 PPL을 통한 광고수입은 물론 드라마 배경을 더욱 현실적으로 만드는 효과도 낼 수 있다. 특히 본방송, 재방송, VOD, 온라인 채널 등 멀티 채널이 확산되는 요즘 PPL은 콘텐츠와 광고가 하나로 묶였다는 점에서 기존 전통적 광고보다 활용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IPTV와 케이블TV 사업자가 2011년부터 2014년 6월까지 VOD로 벌어들인 총수익은 1조1464억 원에 달한다. ‘미생’은 VOD 서비스를 포털, IPTV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제공한다. 2014년 11월까지 누적 판매액이 15억 원에 달하는데, 일주일 매출만 3억 원으로 타 프로그램을 압도한다.

    ‘장그래 빌딩’ 여행상품?

    ‘미생’은 2014년 11월 21일까지 3개의 OST를 출시했다. 향후 드라마가 계속 방영되면서 추가로 음원이 공개될 예정이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의 OST가 각종 음원 차트를 석권하는 것은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겨울왕국’ OST ‘Let it go’는 영화만큼이나 큰 인기와 수익을 누리며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앞으로 ‘미생’의 음원이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음원 시장도 석권할지 주목된다.

    ‘미생’에 나오는 회사 건물은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다. 서울스퀘어는 이른바 ‘장그래 빌딩’으로 불리며 재조명 받는다. 서울스퀘어 측은 블로그에 ‘미생’의 촬영 협조에 대한 글을 올리고, 실제 촬영 장소 사진을 올린다. ‘미생’이 해외로 진출한다면 현지 팬들이 ‘장그래 빌딩’을 보러 한국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국내 여행사는 ‘장그래 빌딩’ 탐방을 포함한 여행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디즈니‘겨울왕국’의 모티프가 된 노르웨이는 관광청 홈페이지를 통해 ‘겨울왕국’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홍보한다.

    ‘미생(未生)’ 콘텐츠가 글로벌 대박 터뜨리려면?
    해외에 진출해 큰 인기를 누린 한류 콘텐츠는 여럿 있었지만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진출한 것이라기보다는 우연히 이뤄진 경우가 많았고 단발성에 그치곤 했다. 우리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성공하고 그와 연계되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치밀한 기획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진출해야 한다.

    대기업의 게임 하도급 제작을 하던 로비오는 52번째로 만든 게임 ‘앵그리버드’를 통해 세계적인 모바일 게임 제작사가 됐다. 미국 회사 넷플릭스는 2700만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 내역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에 1억 달러를 투자했다. 웹툰 ‘미생’도 작가가 취재에만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좋은 콘텐츠는 철저한 준비와 그만큼의 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최근 국내 드라마, 예능 분야에서도 일부 제작자가 기간, 환경, 인력에 과감히 투자해 좋은 작품을 만든다. 쪽대본, 졸속 캐스팅, 창의성 없는 모방으로는 절대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

    ‘미생(未生)’ 콘텐츠가 글로벌 대박 터뜨리려면?

    드라마 ‘미생’ 촬영 장소인 서울 중구 남대문로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는 요즘 ‘장그래 빌딩’으로 불리며 새삼 시선을 끈다.

    콘텐츠는 개성 있는 세계관 속에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통해 생명력을 연장해 더 폭넓은 소비자를 확보한다. 이는 콘텐츠의 세계적 추세다. 하지만 좋은 콘텐츠를 단순히 있는 그대로 복제해 플랫폼만 바꿔 출시한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드라마 ‘미생’이 웹툰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별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수 있다. 원천 콘텐츠를 바탕으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하되 플랫폼 이용자와 해당 플랫폼 시장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수반돼야 한다.

    단일 콘텐츠 제작 역량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도 결코 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콘텐츠 제작 역량만으로 멀티플랫포밍, 파생상품, 글로벌 진출 모두를 다루기엔 벅차다. 국내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전문 기획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2014년 11월 기준 전 세계 영화 흥행 순위를 보면, 세계적인 콘텐츠 제작사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를 원작으로 한 영화 4편(‘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이 10위 안에 들었다. 이 영화 4편이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들인 영화 수입만 29억3920만 달러(3조3000억 원)에 달한다. 아이들이나 소수 마니아층의 전유물로 여겼던 만화책의 슈퍼 히어로는 이제 연 3조 원의 수입을 창출하는 ‘황금알 낳는 거위(golden goose)’가 됐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 콘텐츠의 힘이다. ‘미생’을 포함한 국내 콘텐츠도 전 세계에서 통하는 글로벌 콘텐츠가 돼 이들 기업과 맞먹는 가치를 갖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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