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건 작성자·감찰 배경 정보까지 세계일보에 유출
- ‘7인회’와 다른 ‘박지만-조응천 라인’ 정기회동 있었다
- “안봉근이 ‘박관천 내보내라’ 조응천에 요구”
- 靑 “안 비서관이 박 경정 인사조치 요구한 사실 없다”
이제 남은 일은 문서의 유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검찰도 여기에 수사 초점을 맞춘다. 정씨 관련 의혹으로 시작된 사건의 중심은 이미 박 회장 쪽으로 선회했다.
내부 문서 유출 사건을 감찰한 청와대는 최근 “조 전 비서관, 박 회장 측근, 언론사 간부, 검찰 직원, 청와대 전 행정관 등이 모인 ‘7인회’가 청와대 문건 유출에 간여했다”고 보고, 감찰 결과를 검찰에 전달했다.
검찰은 이번 문서 유출 사건이 2014년 2월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근무한 박관천 경정과 서울경찰청(서울청) 정보분실 직원 2명의 작품으로 사실상 결론 내렸다. 박 경정이 청와대에서 빼낸 문건을 최모, 한모 경위 2명이 임의로 복사해 그중 일부를 언론과 대기업 정보팀에 유출했다는 것이다. 한 경위는 박 경정이 빼내온 문서를 복사해 그중 일부를 최 경위에게 전달했다고 혐의를 시인했다. 그러나 문건 유출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최모 경위는 12월 13일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했다.
최 경위의 결백 주장을 떠나 청와대와 검찰의 판단이 사실과 다르다고 볼 만한 정황이 없지는 않다. 알려진 바와 같이, 세계일보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3차 공개다.
“문건에 없는 내용 유출”
비선 실세 의혹을 받은 정윤회 씨,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경정(왼쪽부터).
기자는 세계일보가 기사를 보도한 직후인 7월 중순 청와대 문서를 입수한 세계일보 조모 기자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조 기자는 문건만으로는 알 수 없는 문건의 작성자와 작성 배경, 관련자들의 주장과 상호관계까지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문서를 작성한 공직기강비서관실 관계자를 상대로 취재를 진행한 사실도 설명했다. 이 문건을 작성한 A씨도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작성한 문건이 어떻게 유출됐는지 모르겠다. 문건에는 작성자인 내 이름이 없다. ‘신동아’와 관련된 내용도 적혀 있지 않다. 그런데도 당시 세계일보 기자는 보도 직전 내게 전화를 걸어 문건 내용에 대해 취재를 시도했다. 난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당황스러웠다.”
이런 사실은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관계자가 임의로 문건을 복사해 빼내 기자에게 줬다는 검찰 주장에 의문을 갖게 한다. 박 경정 혹은 문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진 제3자가 취재에 적극 협조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씨는 “최 전 비서관 감찰 당시 박 경정의 도움을 받았다. 박 경정은 감찰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건을 언론에 유출한 것도 박 경정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세계일보와 대기업 등으로 빠져나간 문건의 양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사과상자 몇 개 분량이라는 말도 나온다. 2014년 5월 조 전 비서관이 주선해 세계일보 기자와 박지만 회장이 만난 후 회수된 문서는 총 128쪽 분량이다. 이것은 세계일보가 확보한 공직기강비서관실 문서의 일부로 추정된다. 조 전 비서관은 이렇게 확보한 문서를 최근 청와대를 사직한 오모 행정관을 통해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현직 청와대 인사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세계일보에 흘러들어간 문건은 복수의 공직기강비서실 직원이 작성한 것이었다. 세계일보가 4월 보도한 청와대 행정관의 비위와 관련된 여러 문건에는 최소 3명 이상의 감찰 직원이 참여했다. 앞서 설명한 최수규 전 비서관의 비위 의혹과 관련된 문서를 작성한 A씨는 검찰 수사관 출신 사무관이다.
조 전 비서관이 재직하던 당시 공직기강비서관실에는 6~7명의 감찰 직원이 있었다. 경찰에서 파견된 박 경정 외에도 검찰 출신 사무관, 해양경찰청 출신 경정, 정치인 출신 인사, 국세청 출신 인사 등이다. 이들은 비서관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보고하는 체계로 움직였다.
“박 경정이 문건 회수 주도”
그렇다면 청와대 밖으로 문서를 유출한 박 경정은 어떻게 동료들이 작성한 문건을 손에 넣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직원들이 서로의 문건을 공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동료의 문건을 입수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 점에서 박 경정이 동료들이 작성한 문서를 입수한 경위 자체가 범죄행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사건 초기부터 줄곧 박 경정이 아닌 제3자에 의한 유출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5~6월 민정수석에게 올라간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조 전 비서관은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여러 번에 걸쳐 기자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문건 유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했는데, 12월 12일 보낸 문자메시지에서도 박 경정이 문건을 언론에 유출했다는 의혹에 강한 의문을 표시했다. 다음은 조 전 비서관과의 문답이다.
▼ 박 경정이 어떻게 다른 직원이 작성한 문건을 갖고 있었나.
“박 경정이 다른 직원 문건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박 경정이) 국회 답변을 전담했기에 다른 직원 소관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할 목적으로 받을 수 있다.”
▼ 검찰은 박 경정이 빼낸 문건을 서울청 정보분실 직원이 언론에 유출했다고 판단한다.
“유출 경위는 전혀 모른다. 문건이 어떻게 나갔는지 알았다면 처음부터 막았을 것이다. 박 경정은 문건 회수 작업을 주도했다. 만약 (본인이) 유출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 본다.”
▼ 언론에 유출된 문건은 모두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것인가.
“친인척 관련 비리를 미리 차단하기 위해 박 회장 내외에 접근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작성한) 동향보고 등 우리 방(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작성한 문건으로 안다.”
▼ 세계일보에 청와대 문건이 대량으로 유출된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됐나(조 전 비서관은 4월 12일경 청와대 문서 유출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를 떠났다. 그는 세계일보에 청와대 문서가 대량으로 유출된 사실을 5월경 확인했다고 여러 언론을 통해 밝혔다. 이후 문건 회수를 위해 세계일보 기자와 박 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5월 세계일보 기자가 ‘유출 문건을 대량 갖고 있고 유출 의도가 이상해 회수해줄 의사가 있다’고 연락해왔다. 그래서 세계일보 기자와 박지만 회장을 연결해줬다. 박 회장과 관련된 문서 사본을 제공하면서 청와대에 조사 요청을 하도록 했으나 박 회장은 묵살했다. 그래서 부득이 오모 행정관에게 부탁해 정호성 비서관에게 전달했으나 또 묵살됐다. 그래서 김영한 민정수석에게 취임 인사차 전화를 드리며 이 같은 사실을 알린 것이다.”
“비서실장이 ‘박관천 자르라’ 지시”
조응천 전 비서관은 2014년 1월 문제의 ‘정윤회 문건’을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했다. 그 직후 청와대는 문건의 작성 경위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문건 내용이 상당부분 허위라고 판단한 뒤 문건을 작성한 박관천 경정에 대한 인사조치 요구를 조 전 비서관에게 전달했다. 박 경정은 2월 청와대를 떠났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건을 보고한 뒤 조 비서관이 수석과 비서실장에게 강한 질책을 들었다. 당시 이런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다. 문건 작성 경위와 관련된 청와대 내부 조사 과정에 안 비서관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조 비서관에게 박 경정 인사조치를 직접 요구한 사람도 안 비서관이다.”
이 청와대 관계자의 증언은 “안봉근 비서관이 경찰 인사에 간여했다”는 조 전 비서관의 최근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조 전 비서관은 12월 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한 바 있다.
“작년(2013년) 10월 말인가 11월 초인가, 청와대에 들어올 예정인 경찰관 한 명에 대해 검증을 하다가 ‘부담(스럽다)’ 판정을 내렸다. 쓰지 않는 게 낫다는 말이다. 그랬더니 안봉근 비서관이 전화해서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은)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2부속실에서 왜 경찰 인사를 갖고 저러는지 이상했는데, 한 달 뒤쯤 민정수석실 소속 경찰관 10여 명을 한꺼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후임들이 다 단수로 찍어서 내려왔다. (명단은 민정)수석이 나한테 줬는데, 결국 제2부속실 아니겠나. 당시 경찰 인사는 2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조 전 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지난 1월 ‘정윤회 문건’을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했다. 보고 며칠 뒤 김 실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박관천을 자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12월 15일 CBS노컷뉴스).
안 비서관이 박관천 경정에 대한 인사조치를 직접 요구했다는 증언에 대해 청와대 측은 ‘신동아’에 “안 비서관은 감찰에 간여할 위치에 있지 않다. 조응천 비서관에게 박 경정에 대한 인사와 관련된 통보나 요구를 한 사실도 없다”고 알려왔다.
알려진 바와 같이 청와대는 4월 세계일보 보도 이후 문건 유출과 관련된 본격적인 감찰에 착수했다. 감찰을 맡은 곳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특감)이었다. 특감은 조사과정에서 박 경정이 청와대 문서를 유출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조 비서관에게도 알렸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끝까지 박 경정을 비호했다고 전한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청와대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은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면서 박 경정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끝까지 두둔했다. 조 전 비서관의 비호 때문에 박 경정을 징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 전 비서관은 문건 유출 사건을 조사한 특감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 특감 직원이 공직기강 문건을 절취해 유출했다고 의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정 특감은 처음부터 박 경정이 문서를 유출한 걸로 생각했던 것 같고, 내게는 관리 책임을 지게 하는 걸로 (방향을) 정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체부 인사 진짜 배후는?
앞서 소개한 청와대 관계자는 논란을 낳은 대통령의 문체부 국장·과장 경질 과정에 대해서도 주목할 만한 증언을 했다. 그는 “대통령이 유진룡 장관에게 직접 문체부 국장과 과장의 경질을 요구한 것은 이미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데 대통령에게 그 요구를 한 사람은 정윤회 씨가 아니라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 씨다. 평소 박 대통령과 자매처럼 지내는 최씨가 부탁한 것이다. 최씨는 3인방 등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과 바로 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반인이 대통령에게 특정 공무원에 대한 인사 조치를 요구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정윤회 문건’ 파동을 놓고 대립하는 두 세력의 역학관계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씨는 12월 2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체부 국·과장 인사 개입 의혹에 대해 “나는 모르는 사람들” 이라고 부인했다. “딸의 일이니 부인이 했을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거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직접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씨가 대통령에게 문체부 관계자의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는 증언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최순실 씨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다. 달리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당사자(최순실)가 직접 진술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께 묻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기자는 최씨의 반론을 듣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알아 봤지만 당사자와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된 취재 과정에서 조 전 비서관과 함께 일해 온 인사 B씨가 박지만 회장의 최측근 C씨를 정기적으로 만나온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C씨는 박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인물로 과거 육영재단 운영 등 박 회장과 관련된 각종 사업에 깊이 간여해온 인물이다. 이 모임은 청와대가 그동안 밝힌 7인 모임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참석자는 여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의 성격은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이 모임이 조 전 비서관, 박 회장의 의중이 담긴 것이라면 새로운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정윤회-3인방 vs 박지만-조응천’ 대립구도의 한 축이 될 수도 있기 때문.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이 모임에 대해 문자메시지를 통해 “B씨와 C씨가 서로 만나는 사이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B씨는 이 모임에 대해 “개인적인 모임이다. 조 전 비서관에게는 얘기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C씨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