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도전 사이에서

  • 배승희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입력2014-12-23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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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이 끝나고 또다시 대학입시전쟁 시즌이 다가온다. 새해 고3이 되는 학생들은 이제 새로운 세상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된다. 이번 수능이 쉬워 입시에 혼란을 겪는 학생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나도 고3 시절 수능이 쉬워 몇 문제 실수를 하다보니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가며 재수를 했지만, 이번에는 수능이 어렵게 나왔다. 그래서 받은 점수에 맞춰 당시 갈 수 있는 대학에 원서를 넣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과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법대. “민법은 곽서지” “아니야 요즘은 김형배야” 하는 동기들의 이야기에 어리둥절하며 새 학기 봄을 맞이한 기억이 난다.

    당시 법대 하면 무조건 ‘사법시험 합격’이 최우선이었다. 그때 나는 사법시험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몇 해 지나고 나서야 사법시험이란 것이 꽤나 어렵고 우리나라 최고의 시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친구들 중 몇몇은 사법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지금도 도전하고 있고, 진즉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한 친구도 있다. 또 로스쿨을 졸업하고 일반 회사원으로 일하는 친구,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해 변호사가 되지 못한 친구,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 등 다양한 길을 걸어간다.

    사실 나는 사법시험에 어떤 과목이 있는지도 몰랐다. 법대에 들어와서 거의 6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기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합격했다는 것이다.



    나는 사법시험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해외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 방학이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기 중에도 틈틈이 돈을 모아 동남아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이른바 날라리 법대생이었던 것이다.

    2004년 즈음 처음 태국을 여행했는데, 그 후 태국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서 매년 여름이면 거의 빠짐없이 태국에 놀러갔다(아직도 태국병에 걸려 한 해 한 번씩은 다녀온다). 태국 여행 중 많은 일이 있었는데 우연히 말레이시아에서 태국으로 여행 온 영국인(콸라룸푸르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다)을 만나 말레이시아의 이야기를 들으니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날라리 법대생의 도전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콸라룸푸르를 가보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 여기는 태국보다 잘살고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낮으며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고 해서 이곳이 천국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여기에서 ‘꼭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러나 마냥 여행객으로 살 수는 없는 터, 여행 경비로 마련한 돈은 떨어져가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귀국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친한 친구를 꼬드겨 서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300만 원씩을 투자해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원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당시 동남아로 어학연수를 가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필리핀의 경우도 영국을 가기 전에 잠시 들르는 정도로 동남아에서의 어학연수는 많이들 생각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직접 학원 현황을 알아본 결과 이미 한인 타운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민도 많고, 한국인 유학생도 많았다. 또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터라 영국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유학원 시장이 아예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어 학원과 숙박시설을 묶어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작은 사업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도전 사이에서

    수능을 계기로 고3 학생들은 새로운 삶의 선택 기로에 선다. 시도는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쌓여 자신이 생각했던 미래로 가는 것이다.

    홈페이지를 만들 줄 알았던 친구는 한국에서 사업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콸라룸푸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항에 내렸을 때 마땅히 우리가 갈 곳은 없었다. 단지 가진 것이 있다면 젊음과 인터넷,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는 배낭여행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가 싼 호텔을 찾아 짐을 풀고 준비를 한 후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25세(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휴학도 많이 해서 보통의 여학생과 달리 꽤나 오랜 기간 학교를 다녔다)였는데, ‘왜 해외까지 나가서 그런 일을 하느냐’ ‘회사에 취직이나 해라’ ‘시집이나 가라’는 주변의 걱정과 비난을 들었다.

    그래도 친구와 나는 “우리가 지금 아니면 해외에 가서 살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젊을 때 한번 가보자, 딱 1년만 있어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말레이시아에 가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냥,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친구는 빚이 늘었고, 나는 한국에 돌아왔으며 빚을 갚기 위해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철없는 그 시절의 그 경험은 이후 내 삶의 밑거름이 됐다. 무슨 일이든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갖는 습관을 들인 것도 어렵게나마 해외에서 살아보려고 한 경험 때문일 것이다.

    늦은 시작이란 없다

    경험의 시작은 생각이고, 그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경험이 된다. 그런데 어떠한 시도든 항상 두려움과 같이 온다. 그래서 아예 시작을 못하거나 새로운 경험 앞에서 주저하게 된다. 새로운 세상과의 접촉은 언제나 두려운 법이다. 그래도 그러한 시도가 모여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그 경험이 쌓여 내가 생각했던 미래로 가는 것이다.

    나도 이 경험 덕에 해외에서 살려면 한국에서 직장이 있어야 하고 돈을 좀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법시험 공부를 끈기 있게 할 수 있었다.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도전 사이에서
    배승희

    1982년생

    성균관대 법대 졸업, 2009년 사법시험 합격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채널A ‘신문이야기 돌직구쇼’ 패널

    저서 : ‘당신도 성범죄자가 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주변의 시선이나 사회적 위치 때문에 주저하거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 시도조차 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실패가 두려워서 하지 못한 경험이 많을 것이다. 그러한 경험조차 하지 못하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더 아쉬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어느 경우든 늦은 시작이란 없는 것 같다.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일단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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