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그녀가 요부라서? 아니, 말이 통해서!”

남자는 왜 바람을 피우나?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입력2014-12-19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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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의 영원한 미스터리, 남녀관계. 서로를 잘 안다고 믿기 쉽지만, 상대가 다른 별에서 온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많다.
    • 그래서 남녀의 사고와 감정의 간극이 빚어내는 행동은 때론 흥미롭고, 때론 당혹스럽다. ‘마음 경영’을 위한 그 내밀한 심리 엿보기.
    “그녀가 요부라서? 아니, 말이 통해서!”

    일러스트·김영민

    TV 드라마에선 바람피우는 남자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남자의 사정이 이해될 때가 있다. 남자가 외도 중에 괴로워 상담하러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때로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정도는 아니다. 부인이 모르면 마음 아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합리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남자는 상대 여자의 마음이 바뀌어 헤어지게 된 후 그것을 잊지 못하다 우울해져 병원을 찾는 경우가 차라리 더 많다. 더는 연락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연락하게 된다면서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부인에게 들키면 그땐 마음이 돌변한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고 해서 흔히 ‘죄와 벌’이라고 한다. 누구를 죽인다거나 물건을 훔치면 그 행위가 죄라는 걸 부인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벌을 받기 전까지는 그것이 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뇌물을 받고, 청탁도 받는다.

    외도도 마찬가지다. 외도가 들통 나 부인의 비난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그다지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죄와 벌’이 아니라 ‘벌과 죄’다. 그렇다보니 외도와 관련해 남자가 상담센터를 찾는 가장 흔한 경우는 외도하다 들켜서 부인과 함께 오게 되는 상황이다.

    센터에 오는 남자의 태도는 대략 두 가지로 갈린다. 어떻게든 이혼을 피하려는 경우와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황에서 부인이 하도 닦달하니 마지못해 오는 경우다.



    ‘죄와 벌’ 아닌 ‘벌과 죄’

    외도를 한 후 이혼을 피하려 부인과 센터를 찾은 남성을 보면 그들을 지배하는 가장 주된 감정은 죄책감과 불안이다. 흔히 외도한다고 하면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남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착한 남자도 바람이 난다. 그들의 경우 직장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회식 후 집이 같은 방향이라 둘이서 한잔만 더 하자고 했다가 여관행으로 이어지거나 지방 출장을 함께 갔다가 외로운 마음이 들어 한 번 관계를 갖게 됐는데, 그다음에 끊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바람피우는 남자가 착하다고 하는 건 말 자체에 잘못이 있다. 하지만 불륜녀가 가장 좋아하는 남자는 가정에 충실한 남자다. 이 여자 저 여자 후리고 다닌다고 소문난 남자는 불륜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남자일수록 한번 불륜관계에 엮이면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게 된다. 물론 자기도 좋아서 관계를 가진 것이기에 잘못이라는 걸 안다.

    이런 남자는 일단 바람피운 게 들통 나면 그때부터는 180도 달라진다. 더욱이 부인이 현모양처인 경우 내가 미쳤었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울고불고 하는 부인을 보면서 마음이 찢어진다. 재산도 분할해야 하고, 이혼하면 아이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두렵다. 착한 남자는 체면도 중요시한다. 바람피우다 이혼하게 됐다는 사실은 부모에게도 알리기 싫다. 그러지 않겠다고 싹싹 빌고 죽을 때까지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의외인 것은 수도 없이 바람을 피운 남자도 막상 부인이 이혼 불사 의지를 보이면 어떻게든 헤어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흔히 자신의 부모가 절대로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을 만들 수는 없다고 둘러대지만 사실은 부인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이다. 이런 남자에게 부인은 기둥과 같은 존재다. 어떤 점에선 어머니 같은 존재다. 바람피우고 밖으로 도는 것도 돌아갈 집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항상 자신을 돌봐주고, 챙겨주고, 잔소리해주는 기둥이 무너지면 자신도 무너진다.

    이들은 말썽을 피우는 아이 같은 심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오래 참고 지내온 부인이 이번엔 어떻게든 이혼해야겠다고 분명한 태도를 밝히면 기둥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일단 잡고 봐야 한다는 생각에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한다. 재산도 분할해준다. 부부 상담도 받는다. 부인이 없다는 것, 가정이 사라진다는 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부인의 태도가 누그러지면 또다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린다. 이들은 죽을 때 부인에게 살아생전 수없이 많은 여자를 사귀었지만 내가 사랑한 이는 당신뿐이라는 유언을 남기곤 하는데, 사실 그 말도 일정 부분은 진실이다.

    흔들리는 마음

    그러면 이제 마지못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도 살펴보자. 처음 외도 사실을 들키고 나서는 대다수 남자가 뜨끔해한다. 더 이상 만나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남녀관계는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연애엔 상대방이 있다. 나는 헤어지고 싶어도 불륜 상대가 매달리면 마음이 약해진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기에 남자는 더는 안 만나겠다고 했으니 부인이 ‘쿨’하게 덮고 다시는 그 이야기를 거론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부인이 계속 의심하고, 확인하고, 시간이 지나도 조금만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면 바람피운 얘기를 하면서 죄인으로 몰면 점점 지친다. 부인이 의심을 하고 불륜녀에 대해 언급하면 남자는 그때마다 그 여자가 생각난다. 부인은 남편이 다시는 바람피우지 못하게 계속 확인하고 잔소리하는 것이지만, 의도와는 달리 남편으로 하여금 계속 그 여자를 떠올리게 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남자는 이렇게 억울하게 의심받을 바엔 차라리 만나고 의심받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만나게 되면 마음이 흔들린다. 그리고 도저히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막상 남자가 이혼하기로 마음을 굳히면 부인은 당황한다. 그러면서 남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부부 상담을 받자고 한다. 남편은 이미 아내에게 관심이 없다. 하지만 부인이 하도 사정을 하면서 한 번만 상담을 받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혼하겠다고 하니 상담을 받는다.

    상담할 땐 일단 처음에 부부를 함께 보는데, 대체로 부인은 남편이 얼마나 자신을 힘들게 했는지, 남편이 얼마나 문제투성이인지를 속사포처럼 말한다. 그런데 부인이 일방적으로 자기 얘기만 하는 경우엔 통상 예후가 나쁘다. 집에서 뭐라고 말하려들면 남편이 사라져 얘기를 못하니 부인은 지금이 기회라는 듯 끝없이 자기 관점에서 얘기한다. 그렇게 계속 말하면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태도는 소중한 상담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부인은 의사가 당연히 자신의 말에 동조해 남편을 비난할 것이라 생각한다. 남편에게 가정을 버리지 말고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참고 살라고 말할 것이라 생각한다. 남편이 자신의 말은 안 들어도 의사의 말은 들을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부부 상담은 어느 한쪽이 바뀌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바뀌어야 하기에 그런 일방적인 요구는 역효과만 낸다. 그러면 이제 남편과 둘이서 얘기해보겠다고 한다.

    불륜녀의 진짜 매력

    남편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물어보면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대체로 외도 이전부터 결혼생활을 지긋지긋해한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다줘도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돈을 더 잘 버는 다른 남자와 비교를 일삼는다. 자녀 사교육에 미쳐 아무리 벌어도 남는 돈이 하나도 없다.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려고 하면 정신없는 남자로 몰아세운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이 소파에라도 앉아 숨을 돌리려고 하면 옷 갈아입어라, 샤워하라고 들들 볶는다. 주말에 밀린 잠이라도 자려면 다른 집은 주말마다 가족 나들이를 한다면서 누워 있지도 못하게 한다. 허구한 날 잔소리다. 그래서 한마디로 답답해 미치겠다는 것이다. 외도한 건 잘못이지만 자신이 외도를 하도록 밖으로 내몬 건 부인이었다고 말한다.

    이쯤해서 나는, 그렇다면 도대체 불륜 상대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물어본다. 흔히 사람들은 불륜녀라고 하면 색기 어린 요부를 떠올린다. 그런데 불륜남이 의외로 많이 하는 말은 “그 여자와는 말이 통해 좋았다”다. 서로 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마누라는 마주치기만 하면 불평불만이었다. 뭐가 필요하다, 뭐를 사야 한다는 게 마누라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다. 그게 아니면 남편을 무시하고 흠잡는 게 다였다. 그렇게 매일 무시당하고 살았는데, 불륜녀는 자신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줬다고 말한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푹 빠지게 됐고, 섹스는 차후의 문제였다는 것이다.

    ‘추격자-도망자 커플’

    나는 불륜 상대에게 빠진 이유가 ‘말이 통해서’였다는 얘기를 부인에게 해줘도 되겠는지를 남자에게 확인한다. 평소 여자관계가 복잡하지도 않았고 직업도 탄탄하며 성실했던 남자의 경우 부인의 태도가 바뀌면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부인이 남편을 존중하고 무시하지 않으면 남편도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부인에게 말해줘도 될지를 묻는다. 남편은 이미 자기가 부인에게 다 했던 얘기라면서 상관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곧 소용없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남편과 둘이서 얘기를 나눴으니 이젠 부인과도 얘기를 나눠야 한다. 남편과 둘이서 상담하고 나면 부인은 대개 무슨 얘기를 했는지 궁금해한다. 그러면서 꼭 하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그 여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는지 남편이 말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가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게 남편은 좋았더라고 말을 전하면 그때부터 부인의 열변이 터져 나온다. 자식 키우고 살림하느라 죽을 지경인데 얘기 들어줄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도 우아하게 살고 싶었고 이렇게 사는 게 지겹다고 한다. 이쯤 되면 상담은 솔직히 의미가 없다. 부인은 의사가 일방적으로 자기 편을 들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에 실망한다. 숨 막힌 가정에서 탈출하기로 이미 결심한 남편도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부부 심리치료 용어 중에 ‘추격자-도망자 커플’이라는 표현이 있다. 추격자인 부인은 더 빨리 달려 더 세게 남편을 쥐어 잡으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도망자인 남편은 더 멀리 달아날 뿐이다. 여자는 남자를 꼼짝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부인일수록 남편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잃으면 남편을 잃을까봐 굶다시피 해서 살을 빼고 보톡스와 성형수술로 성적 매력을 유지하려 한다. 남편을 홀리는 여자는 ‘예쁜 것’들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예쁜 것’들의 성적, 육체적 매력에 혹해 남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쁜 여자는 매력적이다. 대개 남자는 예쁜 여자를 보면 섹스를 하고 싶다. 그렇다보니 그런 여자에게 넘어가 불륜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상대방이 섹시해서 이뤄진 불륜은 오래가지 못한다. 아무리 예쁜 여자도 자꾸 보면 지겹다. 계속 뭔가 사달라며 징징대면 귀찮다. 그러다보면 다른 여자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예쁘기만한 여자는 남자의 몸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마음을 빼앗을 수는 없다. 섹스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남자는 그녀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 정신 제대로 박힌 남자라면 그런 여자에게 계속 놀아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남자의 마음을 빼앗는 여자는 말이 통하는 여자다.

    그렇기에 여자들이여, 남편의 불륜을 예방하려면 그를 인정하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자. 남자가 바람피우는 가장 주된 이유는 외롭고 말할 데가 없어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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