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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조직의 명령뿐”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조직의 명령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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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공직 개혁’ 首長에 전직 삼성맨 깜짝 발탁
  • ● ‘기술의 삼성’ 일조하며 애니콜 신화 동참
  • ● “고집과 추진력 남다르다”(삼성 전·현직 동료들)
  • ● “공무원연금 개혁은 시대의 소명”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조직의 명령뿐”
‘공직 개혁’을 이끌 수장으로 민간인이 깜짝 발탁됐다. 이근면(62) 초대 인사혁신처장이다. 삼성그룹에서 30년 넘게 인사 업무를 도맡아온 인사통(人事通)인 이 처장은 앞으로 인재 발굴, 관피아 척결, 공무원연금 개혁 등 간단치 않은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그는 취임 직후 주요 보직에 워킹맘을 앉히고, 휴가 사용을 약속하고, 저녁 6시에 칼퇴근 하는 등 ‘작은 변화’부터 실천에 옮기고 있다.

‘신동아’ 인터뷰는 취임 3주가 지난 12월 9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서울정부청사 내 그의 집무실에서 칼퇴근 원칙을 깨고 이뤄졌다. 이 처장은 자신을 “공직 사회의 안영이(드라마 ‘미생’의 여주인공)”라고 소개했다.

“나는 공직 사회 ‘안영이’”

▼ 고(高)스펙이라서요?

“하하. 공무원 신입인데, 장그래 같이 뛰어난 식견이 있는 건 아니라서요. 요새 ‘늘공’ ‘어공’이란 말이 있다죠? 저는 ‘나공’, ‘나도 공무원’이 되고 싶어요. 안영이가 주변에서 도움 받으며 성장하잖아요. 저도 국민으로부터 많은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늘공, 어공은 요즘 공무원들 사이에 통용되는 은어다. 일반직 공무원은 ‘늘 공무원’이고, 외부에서 온 정무직과 별정직 공무원은 ‘어쩌다 공무원’이란 뜻.

▼ 기획조정관, 대변인, 비서실장에 모두 워킹맘이 임명됐습니다.

“그 세 사람이 모두 워킹맘이어서 화제가 됐다는 건, 여성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에 여전히 진보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드러냈다고 봐요. 인사에 젠더(gender)는 중요치 않아요. 누가 적임자냐, 그게 핵심이죠. 우리 부처는 여성 직원이 41%입니다. 곧 남녀 비율이 역전되고 ‘워킹대디’를 배려하자는 말이 나올지도 몰라요.”

▼ 공직 인사는 청렴성, 공공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적 위주의 인사를 해온 민간 전문가가 과연 적합하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청렴하지 않은 사람을 쓰진 않습니다. 삼성도 아주 엄격한 감사 제도를 갖고 있고요. 문제는 공공성입니다. 산간에 다섯 가구만 살 때 기업은 전기를 놓아주지 않아요. 반면 효율보다 공공이 우선인 정부는 놓아줍니다. 그렇다면 공직 내부의 업무 프로세스는요? 효율이 우선돼야죠. 그래야 공무원 경쟁력이 높아져 대국민 부담이 줄고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장은 서울 출생으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 삼성코닝 인사과장, 삼성종합기술원 관리부장, 삼성SDS 인사지원실장,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 등을 지냈다.

▼ 공대생이 어쩌다 인사통이 됐나요.

“제가 사람을 좋아합니다. 첫 근무지가 삼성코닝이었는데, 공장 직원들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아볼 정도였어요. 그 때문에 사원 대표 비슷한 것에 선출됐어요. 또 제가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책이나 신문 읽기를 좋아하거든요. 이 두 가지가 엮여서 기술직에서 인사직으로 전환됐죠. 지금도 그 공장 분들과 모임을 하고 있어요. 채소장수, 공영주차장 징수원, 보일러공 등을 하시는데, 이분들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기자는 복수의 전·현직 삼성 동료에게서 이 처장의 삼성 시절에 대해 들었다. 이들은 그가 “기술의 삼성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평가했다.

1987년 이병철 당시 회장이 삼성종합기술원을 만들었을 때만 해도 삼성 내에서 연구조직은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이근면 관리부장은 연구원에 대한 직제, 평가기준, 보상체계 등을 바꿔 연구에만 전념해도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쳤다고 한다. 이 ‘연구임원’ 제도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시작돼 삼성그룹 전체로 확산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임원 1200여 명 중 연구위원이나 전문위원으로 불리는 연구임원이 500여 명에 달한다.

삼성종합기술원에서 그와 함께 관리부에 근무한 동료는 “1980년대 후반 이근면 부장은 전문직 단일호봉제를 제안했다”며 “너무 획기적이라 받아들여지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의미 있는 아이디어였다”고 회상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으로 삼성 해외공채 1호로 불리는 윤석열 R·D경영연구소 대표는 “이 처장은 시험분석실을 만들어 과장인 나를 실장으로 앉히더니 비싼 장비를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사람도 원하는 만큼 뽑아줬다”며 “그렇게 확보된 전문 인력과 장비는 훗날 반도체, IT, 가전 등 제품 개발에 필요한 최적의 소재를 빠르고 정확하게 개발하는 원천이 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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