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속도 조절로 골목상권 더 유지해야”

김종국 동반성장위원회 사무총장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14-12-23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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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부 역량, 내부 자원 결합한 협력경영을”
    • “대기업 ‘갑(甲)질’ 횡포는 낮은 자본주의”
    • 고졸 7급 공무원의 입지전 인생
    “속도 조절로 골목상권 더 유지해야”
    ‘동반(同伴)’의 사전적 정의는 ‘일을 하거나 길을 가는 따위의 행동을 할 때 함께 짝을 짓는 것’이다. ‘성장(成長)’은 ‘사물의 규모나 세력 따위가 점점 커짐’을 뜻한다. 두 단어의 병립은 적자생존·승자독식의 무한 경쟁 사회에선 어우러지기 쉽지 않다.

    그러니 동반성장위원회(위원장 안충영)의 활동도 간단치 않다. 동반성장위원회(이하 동반위)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에 관한 민간부문 합의를 도출하고 동반성장 문화를 조성, 확산하는 구심체가 되기 위해 2010년 12월 설립된 민간위원회. 따라서 무엇보다 중시하는 것이 ‘균형’이다.

    그런 동반위의 김종국(57) 사무총장(차관급)이 동반성장 주간(11월 17~21일) 첫날 저서 ‘협력경영 동반성장’(부제 : 새는 날개 하나로 날 수 없다)을 펴냈다. 산업 현장 곳곳을 누비며 쌓은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 이 책에서 김 총장은 동반성장이 중소기업에 대한 배려나 보호를 위해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거나, 사회적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게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네트워크 형태로 변화한 기업 생태계를 감안해 새로운 동반성장 해법으로 ‘협력경영’을 제시했다. 그는 책 인세 전액을 동반위 활동에 기부했다.

    1985년 통상산업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김 총장은 중소기업 현장의 애로 해결과 규제 개선에 힘썼고, 전통시장·소상공인 지원제도를 마련해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에도 앞장서왔다. 특히 1998년 중소기업청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재래시장지원과장, 기업금융과장, 정책총괄과장, 중소기업연구원 정책연구위원, 중소기업 옴부즈만실 지원협력관,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등을 두루 거쳐 중소기업 분야 전문가이자 소상공인 지원정책과 동반성장의 산증인으로 평가받는다.

    ‘널뛰기 정신’



    ▼ 책을 쓴 계기는.

    “중소기업에 초점을 맞춘 책이 드물다. 그간 경영이라면 대기업 경영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소기업 경영에 맞춤한 책을 내려고 업무 중에 체험하고 느낀 생생한 이야기를 추려 담았다. 흔히 동반성장을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양보, 퍼주기, 배려쯤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동반성장은 경영의 일환이다. 외부 역량을 내부 자원과 효율적으로 결합해 최대한 잘 활용하도록 유도해 경쟁력을 높이고, 서로가 원하는 방향을 갖추게끔 상생 방안을 찾는 경영 방식이다. 이는 향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 활동이 될 것이다. 삼성이나 일본 도요타의 예에서 보듯, 이미 전 세계적으로 기업 대 기업의 경쟁을 넘어 네트워크 간 경쟁이 화두다. 대기업이 납품 회사로서 자신의 네트워크에 속한 수십 수백 개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게 바로 ‘협력경영’이다.”

    ▼ ‘협력경영’?

    “동반성장 활동은 경영 성과를 개선함으로써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그 본질은 개별 기업 단위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협력사 역량을 키워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네트워크 중심의 ‘협력경영’에 있다. 지금은 협력적 분업의 시대다. 이 시대에 관심을 끄는 용어들, 예컨대 파트너십(partnership), 컨버전스(convergence), 코퍼레이티브(cooperative), 컬래버레이티브(collaborative), 거버넌스(governance) 등은 모두 파트너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협력경영’을 달리 표현하면, ‘널뛰기 정신’이다. 내가 더 높이 뛰어오르려면 상대방도 높이 뛰어오를 수 있게 힘껏 널을 굴러줘야 한다.

    요즘 대기업 70여 곳에 동반성장 전담 부서가 생겼는데, 소속 직원들은 읽을 만한 교본조차 없다고 하소연한다. 공유가치창출(CSV·기업이 수익창출 이후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는 행위)과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혼동하는 이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실무 노하우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쉽게 쓰려 했다.”

    시장 300곳 돌아다녀

    ▼ 동반성장 문화가 선순환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결국 수익의 증대로 연결된다. 그 형태는 제품 품질이나 생산성이 향상된 경우, 신제품 출시로 시장이 커진 경우, 협력을 통해 비용이 절감된 경우 등으로 나타난다. 동반성장은 대기업에도 도움이 되는데, 성과공유제 비율 추이를 보면 과거엔 대·중소기업이 나누던 비율이 7대 3이었는데, 2년 전엔 5대 5, 2014년 여름엔 4대 6으로 역전됐다.”

    ▼ 30년째인 공직생활 내내 다양한 정책을 만들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전통시장, 소상공인, 여성기업, 동반성장 분야 정책을 기획했는데, 전부 최초다. 전임자가 없어서다. 그래서 묵정밭에 쟁기질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보람이 큰 순서대로 들면 첫째는 여성기업 관련 정책이다. 외환위기 직후 남편의 실직 때문에 자영업에 뛰어드는여성이 많았는데,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에 일조해 교육, 컨설팅, 융자지원 등 구체적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당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설립을 위해 회원을 모으고 창립총회를 열었는데, 그때 80만 명을 좀 넘던 여성기업인 수가 지금은 130만 명이다.

    둘째는 전통시장이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인데, 정부로선 도우려 해도 ‘how-to’가 없었다. 나도 한동안은 시장만 돌아다니다 이후 입법활동에 참여해 15대 첫 국회에서 전통시장 지원을 위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전통시장 현대화를 위해 아케이드를 둘러씌우는 게 쉬운 일 같아도 엄청난 발상 전환이 필요했다. 고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과 제품 품질 향상 노력, 상인 사기 진작을 위한 우수 전통시장 표창, 전통시장박람회 개최, 교육을 위한 상인대학 개설 등을 하면서 300여 곳의 시장을 돌아다녔다.

    셋째는 소상공인 분야인데, 이것도 관련 정책이 아예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소상공인지원센터는 설치됐지만, 국가적으로 관심을 갖지는 못했다. 그러다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소상공인 10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소상공인혁신보고대회를 열었는데, 그걸 준비하느라 전통시장과 긴 인연을 맺게 됐다.”

    대리점·유통업계 횡포 여전

    “속도 조절로 골목상권 더 유지해야”

    2014년 1월 경기 군포시의 한 빵집에 들러 주인 고재영 씨와 사진 촬영을 한 김종국 사무총장.

    ▼ 2013년 6월 동반위 사무총장을 자청했다고 들었다.

    “현장에 더 자주 나가 더 자유로운 방식으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고 싶어서였다. 동반위의 모태가 된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설립을 내가 기안했다. 재단 설립을 위한 1, 2차 준비회의에도 참여했다. 이후 재단이 설립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반위도 재단 산하조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이명박 정부 때 독립조직으로 재출범). 이렇듯 동반위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데다, 아직 동반성장 문화가 성숙하지 않아 내가 할 일이 적잖게 남았다고 생각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출범의 모태가 된 소상공인지원센터와 시장경영지원센터 등도 김 총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그는 분투하는 소상공인을 격려하려 매주 한두 번은 그들의 가게를 찾는다. 2014년 1월 17일 경기 군포시의 한 빵집에 들렀을 땐 주인 고재영 씨와 사진을 찍었는데, 고씨는 그날 오후 ‘고재영 빵집의 모든 이야기’라는 네이버 블로그에 ‘동반성장위 김종국 사무총장님이 다녀가셨어요. 응원해주시고 직원들을 위해 빵도 한아름 사서 가셨습니다. ‘페친(페이스북 친구)’이라 그런지 어제 본 것같이 반가웠습니다. 동네 소상공인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주신답니다’라고 적었다.

    ▼ 대기업의 골목상권 위협이 예전보단 덜하다지만, 소상공인이 체감하는 온도 차는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를 텐데.

    “지갑이 닫혀 내수경기가 좋지 않은 건 세계경제의 전반적 흐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심각한 우리나라 자영업의 과밀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정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시대적 변화도 기존 자영업자에게 불리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속옷을 파는 상인은 장사가 잘되지만, 오프라인에서 란제리를 파는 사람은 반대다. 떡볶이보다 치킨바, 빵보다 샌드위치, 빈대떡보다 피자를 더 많이 먹지 않나. 전통 방식의 자영업자들은 이런 시간과의 싸움에 허덕이며 점차 사회취약계층으로 전락한다. 대기업의 과도한 골목상권 진출로 영업 터전을 잃은 이들을 국민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정부의 적극적, 지속적인 보살핌도 필요하고. 속도 조절을 통해 골목상권을 좀 더 유지해야 한다.”

    김 총장은 저서에서 동반성장을 저해한 대기업 횡포 사례도 들었다. 빵집 운영 사업자를 모집하면서 입찰 자격을 실제론 대기업 식품업체 두 곳에만 한정한 국민체육진흥공단, 이 과정에서 동반위 권고사항을 위반한 SPC 등이다.

    ▼ 2013년 대리점을 상대로 한 남양유업의 이른바 ‘슈퍼 갑(甲)질’이 사회 이슈화한 이후에도 대기업의 갑질 횡포는 여전하다. 최근엔 매월 집중관리 품목을 선정한 뒤 제품별 할당량 이상을 구입하라고 대리점에 강요(밀어내기)한 두유업계 1위 정식품의 갑질 소식에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었다.

    “갑질 문화는 낮은 자본주의다. 완전히 해소될 순 없겠지만,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과거 동네 구멍가게에 붙어 있던 ‘외상 사절’ 문구를 기억하는지?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나라에서 기업들이 물건대금 갖고 외상거래를 논할 땐가. 제조업 분야에선 동반성장 문화가 많이 확산됐는데, 대리점업계와 유통업의 횡포는 여전하다. 그래서 12월 3일 동반위는 본사-대리점 간 거래에 대한 체감도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소통의 나무’

    “속도 조절로 골목상권 더 유지해야”

    ‘소통의 나무’ 옆에 선 김종국 사무총장.

    ▼ 11월 17일 동반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을 추진하던 21개 품목 중 6개 품목(골판지 상자, 순대, 청국장, 간장, 고추장, 된장)만 다시 지정해 2017년 9월 30일까지 대기업의 사업 진입이나 확장 자제 등을 권고했다. 3년 만기의 기한 종료로 이번에 제도를 손질한 건데, 향후 계획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보호’라는 동반성장의 본래 취지가 후퇴한 건 아니다. 적합업종을 실현하는 방식을 좀 더 다양화한 것이라 보면 된다.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3년 동안 4단계 권고(진입 자제, 확장 자제, 사업 축소, 사업 철수) 중 한 가지 이상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적합업종 지정이라는 큰 카드를 꺼내 들지 않고 시장 감시만 해도 될 품목이 있더라. 예컨대 한두 개 중소기업만이 생산하거나 아직 대기업이 진입하지 않은 품목들이다. 그런데도 대기업 진입이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경우가 있었다. 이런 건 시장을 살피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 된다.

    정책이라는 보호수단을 너무 안 써도 문제지만 남발해서도 곤란하다. 적합업종이란 정책 수단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면도 있다. 따라서 그것보다는 대·중소기업 협력경영을 위해 선제적인 연구개발(R·D) 투자, 해외시장 공동 진출, 중소기업 제품의 대형 유통업체 납품, 중소기업 인력 훈련 등을 실시하는 협력 프로그램을 겸하는 방식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더 나을 수 있다. 즉 ‘적합업종+협력프로그램’인데, 이게 바로 ‘자율협약’이다. 적합업종의 본래 취지와 틀은 유지하되 대기업과 지원기관들에 좀 더 내놓게 해서 중소기업 경쟁력과 함께 시장의 파이도 키우자는 거다. 대기업 발목만 잡는 규제를 하자는 게 아니다.”

    김 총장의 삶은 입지전적인 면이 있다. 전남 광양 태생으로 순천고를 졸업한 그는 군 복무 후 고졸 7급 공무원으로 출발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학업을 한동안 미뤘다가 독학사로 행정학사학위를 땄고, 이후 경영학 석·박사학위(숭실대)도 받았다. 스스로는 “호기심 때문”이라 말하지만, 저서와 연구 실적도 적지 않다. 업무에 대한 열의와 학구열 덕분이다. ‘중소기업 우문현답’(2012), ‘나는 골목의 CEO다’(2013)라는 두 권의 책을 공동집필했고, ‘소상공인 경영성과 효과 연구’ ‘전통시장 강소상인 육성 전략’ 등 각종 연구실적도 냈다.

    ▼ 1월에도 ‘협력경영’을 주제로 한 책을 출간한다는데.

    “이번 책이 실용서 성격을 띤다면, 후속작은 대학교재로 쓰일 경영학 서적이다. 한국경영학회 소속 교수 5명과 함께 쓰는 협력경영 관련 이론서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할 일이 아주 많다. 현장도 더 자주 다녀야 하고,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 특화된 경영 연구도 하고 싶다.”

    그의 집무실엔 알록달록한 작은 카드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일명 ‘소통의 나무’다. 동반위 직원들이 총장에게 바라는 것이나 축하, 격려의 글귀를 적은 카드를 걸어놓는 용도다. 범위를 좁히면, 이 또한 김 총장과 동반위 직원들 간 동반성장, 곧 협력의 실천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동반위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가 ‘winwingrowth. or.kr’인 까닭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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