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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난로 팔고 아프리카에 스키 팔고

‘수출한국’ 첨병 종합상사맨의 추억

  • 최호열 기자 | honeypapa@donga.com

사막에 난로 팔고 아프리카에 스키 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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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 놓고 “여기 가보자”

당시 영업전략은 ‘무조건 나가고 보자’는 식으로 단순했다. 현대종합상사 상무를 지낸 강정식 씨는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보다가 그냥 ‘여기에 가보자’ 해서 나가는 식이었다”며 웃었다. 한 달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가 현지에 1년 넘게 머무는 일도 잦았다. 18박19일 동안 10개국을 돌아본 적도 있다. ‘돈 냄새’가 나면 미국, 일본, 유럽, 동남아는 물론 아프리카, 중남미의 오지, 심지어 적대국이나 전쟁터에도 달려갔다. 강 전 상무는 브루나이 유전을 따내려 현지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가 식인종(?) 마을에 갇힌 적도 있다고 했다.

1973년 29세에 삼성물산 런던 지사장이 된 김재우(71) 한국코칭협회 회장은 1975년 중동지사장으로 발령을 받고 레바논 베이루트로 향했다. 당시 중동은 석유파동으로 원유값이 4배나 뛰어 돈이 흘러넘쳤다. 거기서 뭐든 팔아보라는 게 회사의 지시였다. 하지만 국교수립도 안 됐고 환경도 열악해 월급도 제때 전달되지 않았다.

“생활비가 다 떨어졌지만 돈을 빌릴 데가 없었다. 길을 가는데 미국계 은행이 눈에 띄었다. 서울의 삼성물산 본관 1층에 있는 것과 같은 은행이었다. 무작정 들어가 지점장을 만나 ‘나는 삼성물산 직원이다. 회사에서 월급 송금처리가 늦어져 돈이 없다. 삼성물산 본관에 당신네 은행 지점이 있으니 그곳에 연락해 내 신분을 확인하고 1만 달러를 빌려달라’고 했다. 지점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며칠 후 돈을 빌려주겠다는 연락이 왔다.”

이 일을 계기로 지점장과 친해진 그는 지점장에게 이 은행에서 신용장을 개설한 무역상 명단을 받아 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름도 잘 모르는 나라,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로부터 물건을 사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 무렵, 한 무역상이 지나가는 말로 “군복을 만든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삼성그룹의 제일모직은 원단을 만드는 회사로 군복 완제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역상에겐 무조건 ‘우리 본사에 군복 전담과까지 있으니 걱정마라’고 큰소리쳤다. 베이루트에 있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무실에 군복이 몇 벌 굴러다니는 걸 본 기억이 났다. 그걸 가져다 샘플이라며 보여줬다. 군복을 살펴본 무역상은 마음에 들었는지 사우디아라비아 군부의 군복 납품 담당자를 연결해줬다.”

한 벌에 12달러씩 3만 장을 계약했다. 부임 후 첫 계약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우디 군부에 287개 품목을 수출해 연매출 1억 달러 실적을 올리게 됐다. 인연이 이어져 시리아에도 야전점퍼를 600만 달러어치나 팔았다.

그뿐 아니다. 그 후 바레인에서 활동할 때 이라크에도 팔 게 없을까 살펴보려고 여권도 없이 수차례 이라크에 밀입국했다. 걸리면 감옥행은 물론이고, 국교수립도 안 된 상태인 데다 이란과 전쟁 중이어서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

사막에 난로 팔고 아프리카에 스키 팔고

종합상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미생’.

“그렇게 이라크 상인들과 안면을 넓혀가던 중 사담 후세인 군부에서 ‘무기를 사고 싶다’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본사에 연락했더니 국방부 직원과 안기부 요원이 날아왔다. 이들과 함께 이라크로 협상을 하러 갔는데,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를 자동차로 통과해야 하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걸 뚫고 갔더니 이라크 부총리가 직접 나와 당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가장 큰 무기였던 155mm 곡사포를 요구했다. 미국의 동의 아래 2000만 달러어치를 수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무기 수출이었다. 이 거래를 계기로 양국이 수교까지 갔으니, 내가 꽤 기여한 셈이다.”

서울산업진흥원(SBA) 해외수출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김달호(70) 씨도 전쟁터에서 ‘무역 신화’를 일궜다. 1980년 1억 달러를 수출한 공로로 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즐기는 수출 돈 버는 무역’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의 영업 노하우를 전수한다.

“삼성물산에서 일하던 1976년 리비아 트리폴리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우리와 국교 수립도 안 됐을 뿐 아니라 북한과 더 가까웠다. 게다가 카다피 혁명정부 시절이라 반미시위가 잦았고 치안도 불안했다. 언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될지, 언제 시위대가 집이나 사무실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지내야 했다. 반미시위가 한창 심할 때는 외국상사 직원들은 다 빠져나가고 달랑 혼자 남은 적도 있다. 풍토병에 걸린 부하 직원이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겪었다. 그렇다고 영업을 안 할 수는 없었다. 매일같이 수입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들을 드나들며 팔 만한 물건이 없는지 고민했다.”

‘북극 에스키모인들에게 냉장고를 파는 게 진짜 세일즈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그는 반대로 사막에 난로를 판 것으로 유명하다. 리비아는 국토의 90%가 사막이다. 흔히 ‘사막’ 하면 덥다고만 생각하지만 밤엔 꽤 춥다. 특히 겨울은 우리나라 초겨울 날씨와 비슷하다. 그는 카다피 정권이 사막에 사는 주민에게 난로를 배급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입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처음 계약한 게 720만 달러어치였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억 달러가 넘는 액수다. 컨테이너 273개 분량의 막대한 양이었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당시 난로 제조사들이 총동원됐다. 난로를 대한항공 화물기에 실어 날랐는데, 우리 국적 항공기가 처음으로 리비아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착륙 허가가 나지 않아 마지막까지 고생했다. 그 뒤 3년 동안 난로만 약 2000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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