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호

예수가 마오쩌둥 넘어선다?

신도 1억 육박說 중국인 파고드는 기독교

  • 홍순도 | 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mhhong1@daum.net

    입력2014-12-23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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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 중국은 기독교와 상극인 듯 비쳤다. 그러나 요즘엔 상황이 달라졌다. ‘예수 믿는 중국인’이 늘고 있다. 머잖아 신도가 1억 명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 내 기독교 확산 실태를 취재했다.
    예수가 마오쩌둥 넘어선다?
    사회주의의 비조(鼻祖)인 카를 마르크스는 종교를 아편으로 본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사회주의 이념과는 양립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유물론에 바탕을 뒀고, 유물론의 시각에서 신(神)은 인간이 상상해낸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몇 안 남은 사회주의 국가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신을 믿는다. 쿠바 국민의 85%가 가톨릭 신자다. 러시아나 동구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종주국인 중국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최소한 쿠바와 북한의 중간에 자리 잡았다고 단언해도 좋다.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기독교가 확산되는 양상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신자 리양의 하루

    20대 초반인 리(李)모 양은 베이징(北京) 시 차오양(朝陽) 구 신위안리(新源里)에 자리 잡은 유명 음식점 샹만러우(香滿樓)의 종업원이다. 리양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이른바 모태 신앙인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여느 독실한 기독교 신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집 근처 교회에 가서 새벽 기도를 드린다. 음식점에 출근해서도 일하는 틈틈이 중국어 성경을 읽는다. 음식점 조장은 그녀에게 “너무 성경에 빠진 것 아니냐”고 가끔 핀잔을 준다. 그러나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바쁜 점심 영업시간이 지난 뒤 저녁 영업 준비를 앞둔 자투리 한두 시간은 조장의 잔소리도 없는, 그야말로 신앙생활의 황금 시간이다. 동료들은 음식점 밖으로 나가 개인 용무를 보거나 쇼핑을 한다. 그러나 그녀는 늘 식당 안 조용한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는다.

    리양은 기자에게 “성경을 이렇게 열심히 읽는 정성으로 공부를 했으면 지금쯤 아마 명문대에 진학해 캠퍼스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엔 빠짐없이 교회를 찾는다. 주일(일요일) 예배는 철이 든 이후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교회에서 친구를 많이 사귄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집안은 10대째 내려오는 기독교 집안이다. 증조할아버지 항렬의 조상 중에서는 목사도 여럿 있었다고 들었다. 부모님도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문화대혁명 때 기독교가 탄압받았다. 당시 두 분은 10대와 20대였으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산당 당원이다. 이 점이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고 해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아들이 있었다면 목사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리양과 같은 독실한 기독교인은 이제 중국에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베이징 시내 왕징(望京)의 광순베이다제(廣順北大街) 소재 B교회. 매일 새벽 기도에 출석하는 열성 신도만 전체 등록 교인의 절반인 300여 명에 달한다. 일요일엔 기독교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예비 신도들까지 가세한 탓에 예배를 3부까지 본다. 예배 분위기도 한국 못지않게 뜨겁다. 기도 중 눈물을 흘리는 신도, 방언을 하는 신도가 많다. 성직자를 꿈꾸는 청년 신도도 적지 않다.

    10년째 이 교회에 나온다는 40대 초반의 개인 사업가 왕이(王懿) 씨는 교회에 대해 큰 애착을 드러냈다.

    “이 교회를 세운 목사님은 어릴 때부터 복음을 접한 분이다. 미국에서 정통 신학을 공부했다. 믿음이 강할 뿐 아니라 인격도 훌륭하다. 자연스럽게 부흥이 이뤄졌다. 더 중요한 점은 신도들의 평균적인 믿음이 아주 강하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신도가 많다. 그중엔 목사님처럼 신학교에 진학해 목회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중국에서 기독교는 더 이상 특별한 종교가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종교다. 기독교 관계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중국의 기독교 신도는 최소 2500만 명에 달한다. 천주교 신자(600만 명), 성공회 신자를 더한 범(汎)기독교 신자는 웬만한 나라의 인구와 맞먹는다. 이 신도들이 다니는 교회는 중국 전역에 걸쳐 6만여 곳을 헤아린다. 목사는 4500여 명, 장로는 6000여 명에 달한다. 22개 신학교에서 3700여 명의 학생이 교리를 공부한다. 그동안 총 1만4000여 명이 졸업했다. 특히 성경 발행점이 7000여 곳이나 된다. 지금까지 7000만 권의 성경이 인쇄된 것으로 추산한다.

    “크리스마스는 축제”

    이러니 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중국인까지 기독교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11월 말이면 중국 대도시의 상점과 거리, 가정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에서 캐럴이 흘러 나온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기독교인만의 경축일이 아니라 비신자도 함께 즐기는 날이 됐다. 신자들은 12월 내내 성탄절을 준비한다.

    경찰 출신 펑(彭)모 씨는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그의 아내는 열렬한 신자다. 펑씨는 “기독교의 이미지는 비신자에게도 대단히 좋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예수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이는 중국 종교 당국의 공식 견해라고 한다. 펑씨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이 뭐가 있겠나. 이날은 중국인들의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예수가 마오쩌둥 넘어선다?

    베이징 시내 옌징신학원.

    중국에서 기독교가 뜨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다. 역사나 전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이 기독교를 처음 접한 건 기원전 33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 때인 이 무렵 세계 최강국 로마의 군대가 중국의 변경을 침략했다. 그러자 진탕(陳湯)이 토벌에 나서 많은 로마 병사를 포로로 잡았다. 진탕은 이들을 중국으로 끌고 와 살도록 했다.

    이들 병사 중에 기독교 신자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기독교는 로마에서 종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은 중국에서 적극적으로 포교에 나섰다. 그 결과 많은 중국인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후 기독교는 중국에서 유교나 불교 같은 주류 종교는 아니지만 명맥을 유지하며 민간에 퍼졌다. 당나라 태종 때는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심지어 태종은 경교를 국교로 삼아 널리 권장하기까지 했다.

    청나라 말기인 1851년 홍수전(洪秀全)은 기독교를 접한 뒤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켰다. 기독교가 중국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근대 중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쑨원(孫文)도 기독교인이었다. 그의 친구이자 장인인 쑹자수(宋嘉樹)는 목사였다. 이런 점은 중국에서 기독교가 최근 갑자기 부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중국인은 ‘중화사상’ 같은 국수주의 성향을 갖고 있어 서양 종교인 기독교를 멀리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상당수 중국인은 기독교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우선 중국인은 굳이 기독교가 아니라도 종교에 천착하는 습성이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거의 대부분 종교와 관련한 비밀결사의 준동으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

    기독교가 갖는 보편적 교리가 중국에서도 잘 통한다고 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윤리를 중시하는 기독교의 특성은 중국인의 유교적 전통과 부합하는 면이 있다. 여기에다 전반적으로 경제사정이 넉넉해진 현실, 집권당인 공산당이 유물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도 기독교의 부흥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의 기독교 신자는 종교의 자유를 절반만 누린다. 기독교는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다. 원래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는 달리 교파가 많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각 교파는 독립적으로 교회를 운영한다. 중국 기독교는 이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오로지 삼자(三自) 교회만 정통으로 인정받는다. 삼자는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가리키는 말로, 외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자력으로 전도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외국인에 의한 전도는 범죄로 취급된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수많은 기독교인이 중국에서 전도를 하다 적발돼 문제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 삼자 교회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중국기독교협회와 삼자애국위원회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천주교도 중국천주교삼자애국협회가 같은 역할을 한다. 바티칸의 교황청도 중국 천주교회엔 관여할 수 없다.

    한국 교회의 열성적 전도

    그러나 전도를 향한 한국 교회의 열의는 이런 중국 당국도 가끔 당혹스럽게 한다. 다음은 베이징 소재 한국 언론사 특파원의 말이다.

    “베이징에 있는 한국 교회들은 어떻게 하면 중국인에게 전도를 할 수 있을지 늘 궁리한다. 실제로 은밀하게 전도도 한다. 중국 당국으로선 베이징에 교회가 너무 많은 탓에 이런 전도 행위를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인 신도와 중국인 신도의 접촉을 막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삼자 교회도 당국이 쳐놓은 보호의 테두리를 벗어나고자 시도한다. 당국은 지시에 잘 따르지 않거나 불필요한 부흥회, 집회를 개최하는 경우 가차없이 철퇴를 내린다. 2013년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의 교회 다수가 잇따라 공안에 의해 문이 봉쇄되거나 예배당이 철거되는 횡액을 당했다.

    중국에선 가정에서 몰래 예배를 보는 이른바 가정 교회(지하 교회)도 나온다. 이런 교회는 더 탄압을 받는다. 심할 경우 국기(國基)를 흔든 반체제 단체로 낙인찍힐 수 있다. 성직자나 신도는 투옥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천 명이 종교적 양심을 버리지 않은 채 수형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기독교가 발생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사교(邪敎)가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기독교 신도가 늘어나면서 사이비 기독교도 판을 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전능신(全能神)이다. 교리가 기독교와 유사한데 신도 수가 10만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3년 5월 말 일부 신도들이 산둥(山東)성 자오위안(招遠)시에서 선교 도중 ‘묻지마 살인’을 저질러 충격을 줬다. 2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교세 확장에 나서 당국의 타도 대상 1순위에 올랐다. 1000여 명이 체포돼 수감 생활을 한다.

    한국계인 통일교, 다미선교회, 세계엘리야복음선교회도 중국에서 세를 넓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교회의 신도 수는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통일교는 중국 내 역사가 30년 이상인데 중국 당국도 단속에 골머리를 앓는다.

    예수가 마오쩌둥 넘어선다?

    톈진 시내 한 교회의 주일학교.

    대만에 거점을 둔 기독교 계열 종교단체도 중국 내에서 활동한다. 혈수성령(血水聖靈), 원돈법문(圓頓法門), 화남교회(華南敎會)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선교한다. 기업인으로 위장한 선교사들을 파송해 세를 넓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능신, 통일교와 함께 중국 당국이 2013년 규정한 20개 사교에 포함돼 있다.

    광신도의 등장 역시 중국 기독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들은 집단생활, 무차별 선교 같은 행태를 보여 사회 문제가 된다. 중국에서 기독교는 이제 결혼에도 영향을 준다.

    미혼인 기독교인 중 상당수가 비(非)신자와 결혼하기를 꺼린다. 같은 교인끼리의 결혼이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다. 이는 15년 전 철퇴를 맞은 파룬궁(法輪功)과 유사한 양상이라고 한다. 중국 당국은 이런 현상에 대해 특히 신경을 곤두세운다.

    정부의 통제와 탄압에도 중국의 기독교는 앞으로 계속 세를 확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공산당의 통제가 점점 안 먹혀들기 때문이다. 경제 발전에 따라 중국 국민의 민도도 높아졌다. 당국의 종교 통제에 대한 저항감은 점점 더 커지는 형국이다. 자연스럽게 당국도 과거와 다른 온건한 접근법을 모색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와 더불어 중국 정부와 바티칸의 관계도 최근 빠르게 좋아진다.

    당국의 통제가 지금보다 느슨해지는 경우 신도 수는 급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10년 내 신도 수 1억 명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린(吉林)성 옌지(延吉)에서 가정 교회를 이끄는 한국인 황모 목사는 “중국 기독교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그의 설명이다.

    “만약 중국 당국이 신도의 전도, 특히 외국인의 전도를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신도 1억 명을 돌파하는 데 10년도 안 걸릴 것이다. 가정 교회를 인정하면 신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 있다. 중국 기독교인의 신앙심은 순교도 불사할 정도로 강한 편이다.”

    파룬궁 트라우마

    중국의 기독교에 대해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이고 당분간 이런 체제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중국 당국이 기독교에 대한 통제를 풀면 기독교는 필연적으로 크게 확산된다. 이 경우 교리에 입각한 정통 기독교의 목소리도 더불어 커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종교와는 상극인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이 커질 수 있다. 중국 공산당으로선 기독교의 몸집을 키워줬다간 자신이 물릴지 모른다고 여길 수 있다. 여기엔 ‘파룬궁 트라우마’도 작용하는 듯하다. 중국 당국은 1992년 리훙즈(李洪志)가 기공 수련법으로 파룬궁을 창시할 때만 해도 그리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공산당 간부들이 앞장서서 기공이 건강에 좋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 결과 파룬궁은 얼마 안 가 공산당 최고 수뇌부에도 보급됐다. 급기야 공산당 당원 수보다 많은 1억 명의 신도를 둔 초거대 종교집단으로 발전했다. 공산당은 이 상황에 이르러서야 깜짝 놀라 탄압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볼 때 중국은 파룬궁을 완전히 소멸시켰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수많은 파룬궁 신도가 지하에서 저항을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은 기독교도 파룬궁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실제로 중국의 종교 문제를 총괄하는 국무원 산하 국가종교사무국은 최근 이 문제를 놓고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고 한다. 안전망을 갖추지 않은 채 기독교가 성장하도록 방치할 경우 공산당 체제가 위험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국은 기독교를 계속 억압할 것이고 이런 시도가 효과를 거두는 한 중국의 기독교는 성장에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을 것으로 비친다.

    현재 중국에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가 있고 수많은 신도가 있다. 심하게 말하면 종교 안 가진 중국인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다.

    따라서 기독교가 신도 수를 늘리기 위해선 다른 종교의 신도를 빼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도를 1억 명까지 늘리는 일은, 아무리 중국의 인구가 많아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중국 내 1억 무슬림과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중국 기독교의 발전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듯하다. 일부 중국인은 기독교의 확산이 중국 사회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본다.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넘어 ‘서구식 고도 자본주의’로 접어들었다. 칼뱅이즘이 서구 자본주의의 도덕적 기반이 된 것처럼, 중국 기독교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새로운 영(靈)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중국에 만연한 부정부패, 물질만능주의의 치유책으로 기독교만한 게 없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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