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은 씨가 직접 그려 국정원에 제출한 북한산 ‘기억 지워주는 반창고’.
“못 만났다. SBS가 최씨를 인터뷰했는데, 스스로 인터뷰에 응한 최씨는 갑자기 SBS가 자신의 신원을 노출했다고 고소했다. 솔직히 나는 그가 이 사건을 제보한 뒤 간첩신고 포상금으로 얼마를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기회만 된다면 재판과정에서 이 모든 걸 다투고 싶다.”
▼ 또 이상한 점은 없나,
“이씨는 내연관계인 A씨와 동반 탈북했는데, 탈북하기 전 마음이 바뀌어 탈북을 주저했다. 그러자 A씨는 이씨를 두들겨 팬 뒤 중국으로 끌고 나왔다. 중국에 나온 뒤에도 이씨는 다시 북한에 들어가겠다고 버티다 A씨에게 구타당했다. 남파 지령을 받았다는 간첩이 두들겨 맞으며 탈북했다? 더 이상한 건, 이씨를 마구 두들겨 패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데려온 동반자 A씨가, 국정원과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씨의 하부조직원이란 점이다.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다. 누가 이런 설명을 이해할 수 있겠나.”
박 변호사는 이씨가 보위사로부터 받기로 한 남파공작 대가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씨는 보위사령부 소속 장성에게 직접 지령을 받았는데, 간첩활동의 대가로 이씨가 받기로 한 것은 남편과의 이혼소송에서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었다.
“북한이 웃을 것 같다”
“남파공작원이라는 여자가 자기 부하에게 죽도록 맞아가며 탈북했다. 게다가 간첩활동의 대가라는 게 이혼소송 편의 제공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씨에게 유리하게 재산분할이 되도록 보위사 장성이 돕는다는 것이다. 간첩사건마다 등장하는 공작금 얘기도 없다. 간첩사건 기록은 영구보존된다. 언젠가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 시기가 빨리 오면 좋겠다.”
▼ 2심 재판을 앞둔 홍씨 사건은 어떻게 되고 있나.
“12월 24일 항소심 첫 재판이 열린다. 열심히 준비한다. 홍씨도 매일 내 사무실에 출근해 변론을 준비한다. 항소이유서를 보니 검찰이 사활을 걸었다는 느낌이 든다. 만만치 않은 싸움일 것 같다.”
▼ 홍씨 사건도 자백이 유일한 증거였다는데.
“홍씨는 국정원에서 12번, 검찰에서 8번 조사받으면서 간첩이라고 자백했다. 자백 내용만 보면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진술하지 못할 내용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마지못해 한 진술을 그럴듯하게 만든 느낌이 든다. 홍씨가 만약 혼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면 꼼짝없이 간첩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동반 탈북자가 있었다. 그래서 검증이 가능했다.”
▼ 홍씨 사건은 증거능력이 부정되면서 무죄가 나왔다. 특이한 경우인데.
“변론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사건의 실체를 무너뜨리는 방법도 있지만 증거법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았거나 반인권적인 방법으로 수사를 했거나 영상녹화를 제대로 안 했음을 밝히는 방식이다. 홍씨 사건에서 법원은 검찰의 주장이 증거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판을 진행하면서 내용에서도 홍씨가 간첩이 아니라고 판단했기에 무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본다.”
▼ 검찰과 국정원 간첩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보나.
“그동안 수사기관은 간첩사건을 다루면서 의심스러운 주장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선 이런 일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고 넘어갔다. 예를 들어 검찰은 이시은 씨가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은 채 남파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씨가 보위사에서 받은 지령은 한때 연인관계였던 사람의 동향파악이다. 특별한 간첩교육을 안 받고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보위사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런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
▼ 검찰 주장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을 보면 웃을 것 같다. 사실 어떻게든 간첩을 잡아야 하는 검찰과 국정원의 처지를 이해는 한다. 나도 간첩을 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 그동안 간첩사건을 변호하면서 특히 힘들었던 점은.
“증거수집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사건과 관계된 탈북자를 만나기도 어렵고 증언대에 세우는 것도 어렵다. 게다가 증거는 다 북한에 있다.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우리 사회의 편견이다. 정치권과 언론 모두 간첩사건에 대해선 실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편을 가르듯 어느 한쪽의 시각만 반영한다. 공개적인 토론도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게 가장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