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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파운드→달러’ 세계 경제패권의 이동

  • 조인직 | 대우증권 동경지점장 injik.cho@dwsec.com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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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럽, 1차대전 위해 불환지폐 남발
  • ● 독일에 GDP 20배 배상액 부과
  • ● 1달러=4조2000억 마르크!
  • ● 日·獨·伊, ‘블록 경제’ 위기감에 2차대전 도발
  • ● 전쟁에 대한 반성…IMF, GATT 등 안전판 구축
美, ‘광란’과 전란 거쳐 최강 경제대국 우뚝
최근 일본과 유로 전 지역에 이어 중국,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은 금리를 낮춰 돈을 풀고 이를 통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양적 완화’에 열심이다. 선진 경제권 중에선 미국만 금리 인상을 검토 중이다. 이르면 오는 6, 7월경 금리 인상을 통해 시중의 유동자금을 흡수하고 다시금 ‘강한 달러’의 위상을 과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4분기 성장률 5%를 찍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도 주요 선진국 중 유일하게 3%를 넘는 성장이 확실시된다.

이른바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석유자원 활용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선 데다, 산업설비투자의 자국 회귀(Back to America), 환태평양무역협정(TPP) 체결을 통한 무역 주도권 강화, 여기에 높은 출산율과 개방적 이민정책을 가미한 역동성 등에 힘입어 미국은 리먼 쇼크 이후 느슨해 보이던 경제 패권의 고삐를 다시 한 번 조이는 모양새다. 양적 완화를 통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한층 낮춘 주변국들은 구매력이 높아진 달러가 자국 제품을 왕성히 구입해주는 것을 시작으로 다시금 세계경제의 견인차 노릇을 해주길 기대하는 눈치다.

淸 배상금 ‘금 2억냥’

‘슈퍼 달러의 시대’는 몇 번의 사이클 부침이 있었지만 처음 도래한 시기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는 전 세계 무역거래 통화의 80%가 달러지만, 19세기만 해도 영국의 파운드가 국제통화였고, 미국이 이를 이어받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다. 산업혁명 이후 국제경제 질서를 이끌던 영국 중심의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nica·‘영국에 의한 평화’라는 의미)’ 시대와 교대하던 시점이다.

달러가 파운드로부터 패권을 이어받긴 했지만,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에 뒤이어 대공황(1929)까지 롤러코스터 경기가 이어졌고, 유럽 주요국들도 대공황의 여파로 경기침체를 겪게 된다. 선진 각국이 자국 환율의 인위적 절하를 통해 무역 주도권을 노리면서도 자국 경제권에 대한 보호무역정책을 펴면서 세계적 무역 축소는 불가피했다. 결국 위기를 느낀 국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일으켰고, 전란에서 큰 상처 없이 살아남은 미국은 이후 보다 견고한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유럽 각국은 당시까지 국제통화이던 금의 유출을 막기 위해 금과 자국 통화의 교환을 정지하고 불환(不換)지폐를 남발해 군사비를 충당했다. 당시까지의 ‘마켓 컨센서스(Market Consensus·시장의 공감대)’랄 수 있는 금본위제(gold standard)로부터의 이탈을 진행한 것이다. 지금이야 각국(특히 선진국) 중앙은행의 신용이 보장돼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당시 이 같은 방식의 양적 완화는 일견 위험한 조치였다. 유럽 각국은 이를 알면서도 ‘전쟁에서 이기면 패전국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메우겠다’는 심산이었다.

달러 시대에 앞서 전개된 금본위제는 통화의 표시 가치만큼 금과 교환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제도다. 200여 년 전인 1817년 영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으면서 ‘소버린(Sovereign) 금화’를 발행한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1온스의 금에 3파운드 17실링 10.5펜스의 가격을 연동시켰다. 은행에 금을 맡기면 그만큼의 돈으로 교환해줬고, 이렇게 교환이 가능한 통화라는 의미로 ‘태환(兌換)지폐’라는 말이 쓰였다.

금본위제는 영국 주변 무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확대됐다. 쉽게 말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화폐 하나하나에 대해 금에 연동되는 비율을 정하고, 제반 당사국 간의 합의로 이에 대한 국제적 신용을 부여한 것이다. 1870년대에 독일과 프랑스가, 1890년에는 미국이 금본위제를 실시했고, 일본도 1897년부터 0.75g의 금을 1엔에 연동시켰다.

화폐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그 나라는 필수적으로 일정량의 금을 보유해야 했다. 보유한 금의 양만큼 화폐를 발행할 수 있으므로 최소한의 초기 자본, 혹은 최소한의 규모의 경제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선진 무역국인 유럽과 미국에 이어 일본이 발빠르게 금본위제를 도입할 수 있던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기여한 바 크다.

당시 조선 조정이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일본군의 개입을 요청했고, 이게 빌미가 돼 청일전쟁(1894~1895)이 일어났다. 승리한 일본이 전쟁 배상금으로 당시 청나라로부터 ‘금 2억 냥’을 받았는데, 이것이 일본은행의 초기 자본금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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