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상류층과 고위공직자 사이엔 ‘법치 불감증’이라는 것이 만연해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인데도 자신들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거죠. 때론 거추장스럽게 여기기도 합니다.
-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국민에게는 지키라고 강요하는 법을 국회나 정부는 지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우리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행 중인 ‘제설(除雪)’에 관한 조례가 있습니다. 법은 그 위반행위의 경중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법 적용의 형평성이 살아 숨 쉬는 사회에서 존 케리의 사례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저만의 소회일까요.
5, 6년 전인가 미국 CNN 방송 화면에서 본 장면이 떠오릅니다. 미국 연방하원의원 5명이 워싱턴DC 수단대사관 앞에서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는 모습입니다. 경찰은 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망설임 없이 그들의 손을 등 뒤로 모아 노끈형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순순히 체포에 응했습니다. 의원들 중에는 여당인 민주당 하원 원내 서열 10위 안에 드는 실세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한국인 70% “법 불공정”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버트런드 러셀이 88세 되던 1961년의 일입니다. 러셀은 당시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주도하던 중 그해 2월 18일 런던의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연좌시위에 참가해 대중에게 불법행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습니다. 중앙경찰재판소는 8월 12일 그에게 징역 1개월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내려지자 방청객 한 사람이 외칩니다. “부끄러운 줄 알라, 88세 노인에게 징역이라니!” 그러자 판사가 응수합니다. “나잇값을 하시오.” 판결 후 러셀은 1주일로 감형돼 병원구역에서 복역했습니다.
방청객과 판사가 주고받은 재치 문답을 소개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영국의 법치주의입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학자의, 평화를 위한 핵무기 반대라는 정당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라도 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적 수단에 의한 것이라면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게 영국 법치주의의 원칙입니다. 아울러 법은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는 법치 확립의 의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법치의 핵심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첫째, 법은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법 적용의 형평성·일관성). 둘째, 법은 투명하고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법의 개방성·투명성). 셋째, 법 적용은 효율적이고 시의적절해야 한다(법 적용의 적시성·경제성).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 적용의 공정성과 일관성입니다.
제가 법제처장으로 있던 2009년, 국민의 법의식에 관한 조사를 한국법제연구원에 의뢰한 적이 있습니다. 조사 결과 ‘법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가 조사 대상의 70%에 달했습니다. 또 3명 중 1명은 ‘법대로 살면 손해’라고 여겼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법 적용의 공정성과 일관성 결여를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충격적인 것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0% 가까이가 ‘그렇다’고 답변한 점입니다.
2012년 법률소비자연맹에서 고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조사 대상의 94%가 권력과 돈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며, 10명 중 7명은 법률이 공평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법이 ‘잘 안 지켜지고 있다’고 한 응답자는 무려 90%에 달했고, 법을 안 지키는 사람들로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가 가장 많이 꼽혔습니다. 고교생들 역시 법 적용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겁니다. 그만큼 우리 기성 질서에 대한 불신이 깊고, 사회적 신뢰는 위기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마 국민의 법의식을 지금 다시 조사한다 하더라도 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은 이보다 높으면 높지 낮지는 않을 것입니다.
법은 윗사람부터 지켜야
공자는 국가의 구성 요소를 군사력, 경제력, 사회적 신뢰라고 하면서 그중 사회적 신뢰를 가장 중시했습니다(‘논어’). 사마천은 ‘상군열전’에서 법치를 확립한 진(秦)나라의 개혁가 상앙(商?)의 입을 빌려 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부터 법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윗사람들의 행실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행되지만, 윗사람들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명령을 내려도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진 효공이 법가인 상앙을 등용하고 법령을 정비할 때의 상황을 ‘상군열전’에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새 법령은 제정되었으나, 아직 공포는 하지 않았다. 백성이 신임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그리하여 높이가 세 발 되는 나무를 성중의 남문에다 세우고 글을 써 알리기를, ‘이 나무를 북문에다 옮겨놓는 자에게는 10금(金)을 준다’고 사람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모두들 이상하게만 여기고 옮기려는 자가 없으므로 다시 광고하기를 ‘이 나무를 북문에다 옮기는 자에게는 50금을 준다’고 하였다. 어떤 자가 이것을 옮겼으므로, 얼른 50금을 주었다.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 알린 다음에, 마침내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러나 법령이 시행되자, 백성들은 도성으로 몰려와 그것의 불편함을 고하는 자가 수천이 되었다. 그러다가 태자가 법을 범했다. 상앙은 ‘법이 잘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 있는 자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다(法之不行 自上犯之)’ 하고 태자를 처벌하려 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다음 임금이 될 사람이므로 형벌에 처하기는 난처한 일이라고 하여, 그 대신 태자의 스승을 처벌하였다. 다음 날부터 백성들은 모두 법을 지켰다.
법을 시행한 지 10년에 진나라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고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도 집는 사람이 없었다. 산중에는 도둑이 없어졌고, 집집마다 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다 족하였으며, 백성은 전쟁에 용감하고 개인의 싸움에는 힘쓰지 않았으며, 국내의 행정은 잘 다스려졌다. 일찍이 법령의 불편을 말한 자 중에 이번에는 법령의 편리함을 말하러 온 자가 있었다. 상앙은 ‘이런 자 역시 다 선도감화(先導感化)를 어지럽히는 백성이다’ 하여 모두 변방의 성으로 쫓아버렸다. 이후 진나라 백성들은 감히 법에 대해 의논하지 못했다.
이처럼 상앙은 법을 너무 엄격하게 시행함으로써 많은 적을 만들었습니다. 진 효공이 죽자 태자가 뒤를 이었고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상앙은 모반을 꾀한다는 모함을 받게 돼 이웃나라로 도망가지 않을 수 없었죠. 상앙은 달아나다 국경 근처까지 와서 객사에 들러 하룻밤을 묵고 가려고 했습니다. 객사의 주인은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고 말합니다.
“상군(商君)의 법률에는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재우면 그 손님과 연좌로 죄를 받게 됩니다.”
연좌제는 진 효공 때 상앙이 만든 제도입니다.
“아! 신법의 폐단이 마침내 내 몸에까지 미치는가?”
결국 상앙은 체포돼 가족과 함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맙니다. 개혁은 예나 지금이나 지난한 과제이고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史實)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떻든 상앙은 법 집행의 형평성을 강력하게 주장해 법치의 핵심을 확립했으며, 후일 진나라 천하통일의 기반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앙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는 인색합니다.
“차라리 목을 베시지…”
“상군은 천성이 각박한 사람이다. 그가 당초에 제왕의 도로써 효공의 신임을 얻었던 일을 관찰해보면 뿌리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한 것이지 그가 본래 가지고 있는 자질이 아니었다.”
사마천은 ‘사기’의 ‘순리열전’과 ‘혹리열전’에서 법 집행관, 사법관 등 법조인 관료들을 다뤘습니다. 또한 ‘장석지 풍당열전’에서는 장석지라는 인물을 통해 법과 정치, 법 적용의 일관성과 공정성 등의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절대군주제하에서의 일입니다. 장석지는 서한시대 가장 명망 높은 사법관료로서 최고 사법관인 정위(오늘날의 대법원장)를 지낸 사람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한의 3대 황제 중 한 명인 문제가 외출 중 위교(渭橋)를 지나는데 갑자기 다리 아래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문제가 탄 말을 놀라게 했습니다. 대로한 황제는 그 자를 장석지에게 넘겨 죄를 다스리게 했죠. 사건을 심리한 장석지는 이자가 어가를 피하려고 다리 밑에 숨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참 뒤 어가가 통과했거니 생각하고는 다리 밑에서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어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장석지는 법 규정에 따라 이자에게 벌금을 4량 물리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받은 문제는 처벌이 너무 가볍다면서 장석지를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이에 장석지는 차분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합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미국 보스턴 자택 앞 길에 눈이 쌓여 있다. 케리 장관은 눈을 치우지 않아 벌금 50달러를 물었다.
문제는 마음이 언짢았지만 장석지의 말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죠. 비록 법을 제정한 황제라 할지라도 일반 백성과 동일하게 그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장석지의 주장,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의 핵심입니다.
저에게는 고시 공부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선뜻 이해되지 않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법률 규정이 있습니다. ‘기간을 준수하라’는 규정인데요, 법원이나 행정부 등은 이를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국민은 단 하루만 늦어도 가차 없이 권리행사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제도입니다.
힘없는 국민만 ‘기간 준수’?
예컨대 헌법재판소법(38조)이나 민사소송법(199조) 등에 보면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종국결정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 또 ‘법원은 소송이 제기된 날로부터 5월 이내에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180일, 5개월 등은 법리상 훈시규정으로서 이를 지키지 않더라도 부적법한 것이 아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로 소송을 제기한 국민 입장에서는 제때 판결이 선고돼 신속한 권리구제를 받는 것이 절실히 요청되는데도 선고 기간을 훨씬 넘어서(심지어 몇 년이 지나서) 선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국회도 마찬가지지요. 예컨대 헌법(제54조)에는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만 이 기간을 지키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이런 예는 행정부, 법원, 국회 등 관련 법률에 많이 있습니다. 반면 행정소송 등은 ‘공권력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또는 행정청의 잘못된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각각 90일 이내에 제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90일의 기간은 법리상 이른바 효력규정으로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하루만 늦어도 소송을 제기하지 못합니다.
똑같이 ‘일정한 기간 내에 하여야 한다’고 돼 있는데도 어느 경우는 훈시규정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되고 어느 경우는 효력규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공권력의 주체(법원 등)가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은 훈시규정이니 효력규정이니 하는 말장난 같은 법리(法理)에는 별 관심이 없고 똑같은 기간(날짜)을 국민에게만 불리하게 해석하는 권력기관의 횡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법치주의는 ‘쌍방통행’
이처럼 권력을 행사하는 측에서는 지키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나 책임이 따르지 않는 반면 상대방인 국민에게만 준수를 요구하는 제도나 법의 운용은 고쳐져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일방통행이 돼서는 안 됩니다. 국민에게만, 약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가 아닙니다. 권력을 행사하는 측에서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잘못된 법 집행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법치주의는 국민과 국가기관 모두가 준수하는 쌍방통행이 될 때 비로소 공정한 사회의 토대가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그룹, 소외계층 등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이분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 등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는 정부의 시혜적 차원이 아닌 국민의 기본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불법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들의 행위에 대해서만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것 역시 헌법 정신과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입법가)이자 철학자인 솔론은 피해를 입지 않은 자가 피해를 입은 자와 똑같이 분노할 때 정의는 실현된다고 했습니다. 이어 솔론은 자신을 방문한 현자 아나카르시스와의 대화에서 만고의 명언을 남깁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솔론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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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법을 만드는 것은 법은 위반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일세.” -솔론
“모르는 소리 마시오. 법률은 거미줄과 같습니다. 약한 놈이 걸리면 꼼짝 못하지만, 힘이 세고 재물을 가진 놈이 걸리면 줄을 찢고 달아나버립니다.” -아나카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