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 너무 많이 해 몸이 좀 무겁네요”
- ‘KLPGA 홍보모델’ 유일하게 7년 연속 선정
-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159전 160기
- “이상형? 편안한 남자!”
그는 지난해 7월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대회에서 KLPGA투어 첫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프로 데뷔 9년, 무려 160경기 만의 우승이었다. 언론은 ‘159전 160기’라거나 ‘9년 만의 한풀이’라며 그의 우승을 집중 조명했다.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단비 같은 우승에 그는 더욱 자신감을 얻었다.
올해 목표는 ‘우선 1승’
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마련한 한화골프단 전지훈련장에서 그는 또 한 번의 우승을 위해 ‘지옥훈련’으로 스스로를 담금질했다. 그가 출전하는 올 시즌 첫 경기는 4월 둘째 주로 예정된 롯데마트 여자오픈. 과연 그의 각오는 어떨까. 전지훈련 중이던 지난 3월 9일, 그와 장거리 통화를 했다. 이틀 전 한화골프단 관계자로부터 그의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걱정이 좀 앞섰다.
▼ 몸 상태는 좀 어때요.
“훈련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컨디션 조절이 힘들어요. 몸이 좀 무겁고 그래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에요.”
▼ 훈련이 무척 힘들다던데 어느 정도인가요.
“월요일에는 레슨과 개인연습,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실전처럼 라운드를 해요. 매일 일과 이후엔 조깅을 하고 헬스 PT(Personal Training, 1대 1 개인훈련)를 받아요. 몸 상태에 따라 쉴 때도 있고 조절을 조금 하는데,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해요. 저는 그래도 매년 같은 스케줄이라 어느 정도 적응했죠. 올해로 4년째거든요.”
▼ 시범 라운드 성적은 잘 나오나요.
“이븐파 전후로 왔다갔다 하는데, 크게 연연하지 않아요. 연습할 때와 시합할 때가 많이 다르거든요. 지금은 훈련기간이라 샷과 코스 공략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있어요.”
▼ 시즌 시작을 앞둔 지금 기분은.
“한국에 가서 경기한다고 생각하니까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그래요. 올해 훈련도 큰 문제없이 잘했고…. 첫 시합을 빨리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경기할 때가 제일 좋거든요.”
▼ 올 시즌 성적을 예상해본다면.
“지난해 첫 우승을 한 만큼 우선 1승을 목표로 열심히 할 거예요. 목표를 크게 잡으면 욕심이 앞설 것 같아서, 한 단계씩 차분히 밟고 싶어요.”
▼ 지금도 우승했을 때가 가끔씩 생각나죠?
“당연하죠, 얼마나 우승하고 싶었는데요. 정말 오랜 세월 끝에 했잖아요. 목에 걸려 있던 음식이 쑥 내려가 소화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우승하고 나니까 주변에서 더 기대하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도 해요. 그래서 올 시즌이 제 골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 돌이켜봤을 때,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몇 번 기회가 왔지만, 제가 부족하니까 그랬던 거죠. 샷이 잘 맞는다고 해서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고, 멘털(정신상태)이 잘 조절된다고 해서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거든요. 샷과 멘털, 이 둘이 박자가 맞아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던 것 같아요.”
‘無冠의 홍보모델’ 부담 날려
▼ 우승할 때는 뭔가 좀 달랐나요.
“우승하려는 욕심보다는 저 혼자만의 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물론 우승하고 싶었죠. 그런데 샷을 할 때 다른 생각을 가지면 뜻대로 잘 안되거든요. 걸음을 걸을 때마다 마인드 컨트롤을 했어요.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퍼팅할 때나 샷할 때 정말 제 루틴(정해진 방법과 순서)에만 집중했는데, 다행히 그게 강해서 우승에 대한 욕심을 누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샷이든 퍼팅이든 자신이 있었어요.”
지난해 7월 20일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대회에서 우승한 윤채영이 우승 트로피에 물을 담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왠지 집중도 더 잘될 것 같고, 전보다 조금 더 쉽게 경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 그동안 ‘무관(無冠)의 홍보모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솔직히 기분이 어땠습니까.
“많이 부담스러웠죠. KLPGA 홍보모델 중에 우승 경력이 없는 선수는 저밖에 없더라고요. 우승, 정말 꼭 한 번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원동력이 돼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우승의 기쁨도 잠시. 많은 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윤채영은 첫 우승 이후 두 대회 연속 컷오프 탈락했다. 그 이후에도 30~40위권을 맴돌다 10위권 이내에 진입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함께 걸으며 얘기 나누는 친구’
▼ 우승 이후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 같은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우승 이후에도 여느 때와 똑같이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다만 우승한 직후 인터뷰하랴 촬영하랴 인사 다니랴 일주일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 몸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컨디션 조절이 잘 안돼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경기 운영도 잘 안됐어요.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면서 감이 올라오더라고요. 우승 한 번 하고서 이 정도인데, 여러 번 우승한 선수들은 얼마나 바쁠지 상상이 안 가요.”
▼ 골프를 시작한 이후 2009년 시즌을 가장 힘든 시기로 꼽던데요.
“공이 정말 안 맞았어요. 당장 내년 투어를 뛰면서 그다음 해 시드(출전권)를 받는 게 쉽지 않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는 전지훈련(그해 전지훈련지는 호주였다)도 안 갈 생각이었죠. 한 달 정도 잠깐 숏게임 연습이나 레슨만 받으려고 갔는데, 좋은 외국 코치를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경기할 때 마인드 컨트롤 방법 같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쳐준 대로 열심히 훈련을 받았죠. 그러니까 자신감이 바로 붙더라고요.”
▼ 그때 터득했다는 ‘마음을 다스리고 즐기는 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래야 성적에 대한 부담도 덜고 경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경기가 안 풀릴수록 캐디랑 많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요. 그러면서 긴장도 완화하죠. 또 시합 때 많이 먹어요. 어차피 안 풀리는 것, 먹으면서 잊어요, 하하.”
윤채영은 어릴 때부터 수영, 스피드 스케이트 등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육상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골프는 아버지를 따라 학교 옆 골프연습장을 몇 번 따라갔다가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는 골프를 시작하면서 한 번도 다른 길에 눈을 돌린 적이 없다. 골프가 천직이었다. 부모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이젠 두 동생도 골프 선수로 나서면서 완전히 프로골퍼 가족이 됐다.
▼ 골프란 어떤 운동이라고 생각합니까.
“함께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본인에게 골프란?
“하나의 ‘인생 동반자’라고 할까요….”
“투어 뛰는 게 가장 행복”
▼ 골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승을 차지하는 나이 어린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뭘 모르니까 배짱과 자신감으로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후배들은 다른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많이 성숙했어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도 잘하고, 다들 베테랑 같아요. 나는 왜 어릴 때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어떤 골퍼가 되고 싶습니까.
“줄리 잉스터가 제 인생의 롤모델이에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가정을 꾸리고 여자의 삶을 살면서 꾸준한 체력관리를 통해 투어 생활을 이어가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도 이제 점점 나이도 차고 언니 축에 드는데….”
▼ 결혼은 언제쯤에나?
“그건 아무도 모르죠. 그게 제 계획대로 되는 건가요? 하하.”
▼ 남자친구는?
“없어요.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어요.”
▼ 이상형은?
“제 직업이 평범하지 않다보니까, 이해심 많고 저를 많이 배려해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좀 편안한 사람? 외모보다는 성격이 중요하죠.”
▼ 프로골프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체력이 닿는 한 최대한 해보고 싶어요. 잘하든 못하든 투어에서 뛰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아요.”
윤채영의 좌우명은 ‘매 순간에 항상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인생도 골프도 늘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가 가끔 골프를 쉽게 포기하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잘하는 후배들은 잘하니까 걱정할 게 없어요. 하지만 뭐든지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올 때가 있듯이,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는 거잖아요. 조금만 성적이 안 좋으면 금방 포기하려는 후배들이 있어요. ‘안되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골프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걸 쉽게 포기하면 다른 것도 마찬가지죠. 지금까지 노력해온 게 있으니 목표를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냈으면 좋겠어요.”
KLPGA가 윤채영을 포함한 올해의 홍보모델을 발표한 건 인터뷰 바로 다음 날이었다. 그에게 추가로 소감을 물었다.
“7년 연속 홍보모델에 뽑혀 영광이고요. 매년 예쁘게 봐주신 만큼 실력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