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호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공진(共進)국가’ 구상하는 박형준

  • 대담·구해우 | 미래전략연구원장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15-03-20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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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DP 성장 아닌 ‘삶의 질 향상’ 목표로
    • 통일대박론? 모험주의·맹동주의 빠질 위험
    • 대통령제가 승자독식, 적대의 정치 고착화
    • 국가주의·기득권 잔재 지닌 보수 혁신해야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박형준(55) 국회 사무총장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운동권의 이른바 ‘글잡이’였다. 가명으로 출간한 이론서 수가 적지 않다. 사회구성체 논쟁 현장에 있었으며, 월간지 ‘말’에 편집위원으로 참여했고,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박 사무총장의 지적 이력, 정치 행로에는 한국 현대사의 맥락이 담겨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출간한 507쪽 분량의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공진국가 구상’ 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내 지적 편력과 정치적·사회적 행동의 변화는 개인의 궤적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지식인들의 의식 흐름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되돌아보려 한다. 좌와 우를 넘어 새로운 중도의 기획을 꿈꾸는 이들에게 역사적 기억을 불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머리와 몸으로 좌·우파 진영을 각각 경험했고 청와대에서 권력 운용의 실체와 작용을 들여다본 이론가형 정치가가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3월 9일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났다.

    한미동맹의 ‘현상’과 ‘실질’



    ▼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1월 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대한 논란이 거셉니다. 박 사무총장께선 MB 정부에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는 등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회고록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회고록은 회고록일 뿐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행위에 과도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회고록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대통령직을 마친 후 2, 3년 안에 회고록을 출간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기억의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왜곡을 막으려면 이른 시간에 집권 때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MB 회고록도 그러한 맥락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책 전체를 읽지 않고 단편적으로 표출된 내용만으로 비판하는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고록 집필에는 참여하지 않았으나 감수 때는 참여했습니다. 담담하게 서술한 회고록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합니다. 객관적 사실을 가능한 한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 것으로 압니다.

    MB 회고록은 국정 운영 주체의 시각에서 재임 때 일을 기록한 것입니다. 역사학자나 평론가의 시각이 아니에요. MB가 ‘내가 이런 취지에서 이렇게 행동했고, 결과를 이렇게 해석한다’고 밝힌 겁니다. 회고록의 특성상 국정 운영 주체의 주관적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다르게 해석할 것이고요.”

    ▼ 어느 정부나 공적과 허물이 있게 마련입니다. MB 정부의 공적 중 하나는 노무현 정부가 균열을 일으킨 한미동맹을 복원, 강화한 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미동맹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보수진영에서 나옵니다. 2월 27일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이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이 중국과 과도하게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한 언급인데요. 한미동맹을 다루는 데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차이를 보이는 듯합니다.

    “한미동맹에는 언제나 드러난 현상과 드러나지 않은 실질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관계는 실질적 측면에서 다양한 균열이 있었습니다. 양국 정상 간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적지 않았어요. 정상들의 불편한 관계가 다른 사안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MB와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는 인간적으로 친밀했습니다. 정상 간 대화의 질적 수준도 높았고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한국 내 정치적 갈등이 양국관계를 위협하기도 했으나 슬기롭게 대처했습니다. 국내의 정치적 압력 탓에 재협상에 나서면 한미동맹이 불편한 상황으로 되돌아간다는 MB의 확신이 재협상이 아닌 추가 협상의 길을 선택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부시가 MB를 굉장히 신뢰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신뢰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군사·안보 분야뿐 아니라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G20 가입 등 경제적으로도 미국이 상당한 도움을 줬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미동맹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야 할 숙제를 안았습니다. 미국과 가치, 비전을 공유하면서 한국이 가진 콘텐츠를 내놓아야 합니다. 한미관계가 핵심 축이고, 그 안에서 중국과의 관계가 돌아간다고 미국에 설명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뭐랄까, 한미관계가 후퇴했다거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미국 조야(朝野)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실질을 공고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는 듯해요.”

    오바마 공감 이끈 MB

    ▼ MB가 미국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동맹 강화에 적절히 활용했다는 말로 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인간적 측면의 접근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한 기관이 우리 영토 관련 지명을 잘못 표기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정서상 중요한 문제였는데, 부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줬습니다. G20에 가입할 때 중국과 일본은 ‘한국이 무슨?’ 하면서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프랑스도 의문을 표했고, 경쟁자이던 네덜란드 같은 국가들도 반대했고요. 부시 대통령이 영국, 호주 등을 움직여 한국이 G20에 가입한 겁니다. 경제위기 때 통화스와프에도 중국과 일본은 소극적이었습니다. 미국이 먼저 나서 우리와 스와프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정상들이 나누는 대화가 한미동맹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여럿이 대화하는 공식 회담 말고 단둘이 얘기할 때 얼마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느냐가 핵심이죠. 서로 다른 나라의 정상이 깊은 친분을 쌓는 것은 성격이 맞았을 때가 아니라 두 사람이 자신의 가치, 비전, 콘텐츠를 갖고 대화를 나눴을 때 얘기해볼 만한 상대구나, 인식이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때입니다. MB가 오바마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3만 명 넘는 미군이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서 적과 싸우다 죽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도와준 나라 가운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실현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다. 미국이 신봉하는 가치가 옳았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다. 따라서 한미동맹은 가치동맹이다.’

    오바마가 이 말에 깊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MB는 이렇게 덧붙였죠.

    ‘한국은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결국 집이 가난해 뻥튀기 장사를 하던 소년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오바마에겐 이 말도 무척 인상적이었나봅니다. 그 후 가는 곳마다 한국 교육을 언급했어요.”

    ▼ 정상회담에서 ‘가치동맹’이란 표현이 나온 게 그때가 처음입니까.

    “예전에도 개념적으로는 사용하던 표현입니다.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게 외교에 큰 도움이 됩니다. 미국 자동차산업 노조가 한미 FTA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제조업 노조가 미국 민주당의 지기 기반이잖아요. 오바마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이해관계를 오랫동안 설명했는데, MB가 한미동맹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가치동맹이므로 산업의 이해관계를 넘어선다고 설득했습니다. 이후 FTA 협상이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객관적 현실 vs 희망적 추론

    ▼ MB 회고록 중 많은 비판을 받는 내용이 대북정책입니다. 임태희-김양건 회담 내용을 주관적으로 해석해 서술하거나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북한 관련 발언을 불필요하게 누설한 것 등은 전직 대통령 회고록으로서는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회고록을 쓸 때 공개 수준을 놓고 늘 그런 문제에 부딪힙니다. 내부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을 겁니다. 그 정도는 공개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했겠죠. 어쨌든 MB 정부는 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북한 정권에 직접 현금을 주는 식으로 움직이거나 물밑에서의 음성적 거래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을 지양하면서 남북관계를 새롭게 정상화하려고 했어요. 결과물이 미흡했던 건 무척 아쉬운 대목입니다.”

    ▼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MB 정부 내에서도 한쪽으로 경도된 견해를 가진 이들이 과도하게 주관적으로 해석해 서술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이 100억 달러를 요구해 정상회담이 무산됐다는 등의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협상에 직접 나선 당사자는 회고록 내용과 다르게 말하고요.

    “옆에서 지켜보기는 했지만….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 MB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한 주원인의 하나는 핵심 당국자들이 객관적 현실이 아닌 희망적 추론(wishful thinking)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북한을 봉쇄하면 정권을 붕괴시켜 통일을 이뤄낼 수 있다는 식의 우파 이념에 바탕한 주관주의적 정책 추진이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2010년 상반기까지는 우파 주관주의에 경도된 사고를 가진 이들이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다가 천안함 폭침과 5·24조치를 거치면서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한쪽으로 경도된 이들이 대북정책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배경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천안함 폭침이 일어나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고, 아무래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게 되죠. 권력 내부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봐야 해요. 북한 붕괴를 전제로 정책을 수립해 대북정책이 강경으로만 치달았다? 그렇게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MB정부는 이전 10년간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전략을 저지하지 못하면서 북한 정권의 유지·강화를 돕는 쪽으로 기능을 했으며, 남북경협 또한 왜곡됐다고 인식했습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여겼으며, 북한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우리는 밑밥을 대주는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북한 핵무기를 용인한 상태에서 다른 부분을 열어젖히는 것은 불가하다고 여겼고요. 압박·공세 정책을 구사한 것은 틀림없지만, 활로를 뚫으려고 정상회담도 시도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은 북한의 전술적 선택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말을 잘 안 들으니 도발한 것이죠. 천안함 폭침 이후 청와대는 강력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향후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통일대박 패러독스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리면서 MB 정부의 대북정책이 의도와 무관하게 압박·공세 정책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건 사실입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MB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제적 의미가 없었다고 평가해선 안 되지만, 북한을 유인할 수단을 발굴해 확장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거든요. 남북관계는 유연하게 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유연성의 폭을 넓힐 시점이 됐어요.”

    ▼ 유연한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까.

    “MB 정부에서 주관주의적 인식에 따른 붕괴론은 김정일 사후에 강화한 것입니다. 김정일 체제도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김정은 체제가 과연 오래가겠느냐는 인식이 팽배했어요. 북한의 특성을 볼 때 지도자가 흔들리면 체제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같은 가정에 기초해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고 여기고, 거기에 맞춰 대북정책이나 통일 시나리오를 짜는 것은 주관적 모험주의, 맹동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MB 정부 때 정보기관이나 대북전략을 짜는 쪽에서 그런 경도된 인식이 존재했던 건 사실입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해보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그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측면이 있는데,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으며,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북한체제 붕괴상황에 대해서는 계획을 갖고 준비해야 하지만, 극단적 상황을 전제로 대북정책을 가져가는 것은 현실에 입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유연한 상호주의와 관련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단호함으로 대응할 영역과 유연함으로 대응할 영역이 따로 있습니다. 핵무기, 비대칭 전력, 사이버 능력 등을 보면 북한의 전쟁 능력은 과거보다 강해졌습니다. 이 같은 부분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류 협력 등 우리가 사용할 지렛대를 내던져버리면 긴장만 심해집니다. 북미관계의 변화와 무관하게 우리가 움직일 영역을 스스로 없애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주체 ‘지적 능력’ 부족해 ‘선언’만 있고 ‘처방’ 안 나와”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3월 9일 대담에서 “관성적인 발전국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수명 다한 국가 중심 성장 모델

    ▼ 박 사무총장께선 19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했고,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합리적 보수의 길을 걸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과 관련한 고민과 모색을 오랫동안 한 것으로 압니다. 광복 이후 70년 동안 보수, 진보의 대결 구도가 선명했고, 진영 간 적대감은 어느 사회보다도 뿌리 깊습니다. 보수와 진보 양쪽을 다 경험한 정치인으로서 진보가 나아가야 할 길, 보수가 나아가야 할 길이 어떠해야 한다고 보는지요.

    “21세기 진보의 가치가 무엇이냐, 진보의 비전과 전략은 무엇이냐와 관련해 진보세력이 콘텐츠를 정립하지 못한 것이 대안세력으로의 진보 혹은 좌파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을 약하게 하는 요인입니다. 진보세력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나 북한의 전체주의와 완전히 분리되지 못한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특수성 탓이기도 하고, 권위주의 정권과의 오랜 투쟁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도 영향을 미쳤고요.

    전체주의 모델은 대한민국 진보의 미래가 되지 못한다는 선언이 필요한데, 온정주의 혹은 과거의 경험을 공유한 동료의식 탓인지 분명하게 선을 긋지 못합니다. 진보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는 전체주의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진보세력이 가장 중시할 것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최근 들어 종북세력 문제가 수면으로 올라오면서 진보세력이 그들과 자신들을 분리하려고 시도하는 것 같은데,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인지, 그렇지 않은지 불명확합니다. 경제적 사안에서는 자유주의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가주의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세력은 개인의 자유나 권리에 대한 이해가 약해요. 진취적인 문화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요. 미국의 보수주의(공화당 지지 성향)와 자유주의(민주당 지지 성향)가 뒤섞인 데다 기득권 세력의 잔재와 국가주의적 요소 또한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환영을 못 받죠. 고루한 정치세력으로 느껴지는 겁니다.

    현실은 보수와 진보, 두 세력이 가까워질 것을 요구합니다. 국민도 가까워지라고 압력을 행사합니다. 극우와 극좌를 배제한 중도좌파, 중도우파의 건강한 긴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 질서 재편이 시야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불가피할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일입니다.

    국가 중심 고도성장 모델이 수명을 다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계몽해 이끄는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시장, 똑똑한 시민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렇듯 변화한 시대 상황에 맞는 정치 모델, 경제 모델을 모색해나가야 합니다. 시대변화에 걸맞은 합의 공감 설득 타협의 리더십이 필요해요.”

    좌는 우로, 우는 좌로

    그는 ‘한국사회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파의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중도로 나아가려는 관점을 갖고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방향에서 좌파의 시각을 갖고 새로운 중도로 나아가려는 관점도 필요하다. 나는 이 두 관점이 필연적으로 인식의 공감대가 퍽 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차이는 있으되, 그 차이가 적대적 차이가 아니라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차이일 것이라고 믿는다. 차이를 좁히려면 시야를 과거에 고정할 것이 아니라 미래로 확장해야 한다. 10년 뒤, 20년 뒤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와 사회로 변모해야 하는지 고민한다면 의견 차이는 출발선상의 인식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1980년대엔 이른바 운동권의 이론가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중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책도 많이 썼고요. 사회주의로는 안 되겠다고 여긴 것은 1987년, 1988년 동유럽을 들여다볼 기회를 가지면서입니다. 민주화의 가치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는 근원적으로 달랐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를 비롯한 여러 비전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2004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는데 1980년대부터 함께해온 이들은 불편했을 겁니다. 좌·우파를 모두 경험하면서 양 진영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청와대 경험까지 해보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발전국가 모델에서 공진국가 모델로 전환해야 합니다. ‘국정을 수행할 환경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합니다.”

    ▼ MB 정부에 참여할 때 하고자 한 일이 많았을 텐데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잘할 것 같습니까.

    “한국의 정치 시스템에서는 뭘 하려고 해도 잘할 수가 없어요. 다시 해도 똑같을 겁니다. 경험이 있으니 조금 낫기야 하겠죠.”

    ▼ 한국 진보세력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와 완전히 분리되지 못했다고 했는데, 3월 5일 1980년대 운동권 세대면서 친북적 사고를 가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주한 미국대사를 테러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습니다. 종북 혹은 친북 좌파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그들 나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 진보좌파 내에 존재하는 종북 및 친북세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진보세력의 의도와 무관하게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상황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어요. 천안함 폭침 직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정세의 본질을 ‘전쟁이냐, 평화냐’로 규정한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이튿날 야당의 지방선거 현수막을 보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전쟁이냐, 평화냐’로 선거 프레임을 바꿨더군요. 북한의 의견이 그런지 모르고 그렇게 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논리가 스며들 통로가 있었다는 겁니다. 선거연대, 정책연합의 틀이 있었으니까요. 북한은 통일전선전술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야권은 언제든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진보가 대한민국의 중심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종북세력과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해요.”

    늘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

    ▼ 민주화운동으로 형성된 이른바 ‘87년 체제’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집니다. 개헌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입맛에 따라 바꾸려 한 탓인지 (87년 헌법 체제를)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헌법은 필요에 따라 늘 바꿔가는 겁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경직돼 있어요. 권력구조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조항이 아주 많습니다. 1조부터 ‘국민’이라는 낱말이 계속 나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국민만 있는 게 아닙니다. 국민이 아닌 사람의 인권과 권리는 현행 헌법에서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지방자치의 발전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는데, 이 부분 또한 하나도 반영을 못합니다. 여성의 권리도 마찬가지고요. 손봐야 할 시점이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87년 체제는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난 발전국가 모델이 바탕입니다. 대통령만 잘 뽑으면 우리가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양 오도하는 경향이 있죠. 사회적 과제 대부분이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통일도 마찬가지고요.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주축으로 한 권력구조, 정치구조가 국가의 미래와 관련해 바람직한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90개 넘는 나라 중 성공한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미국조차 정치의 위기에 빠진 마당에 대통령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지역주의가 고착화, 심화하고 있습니다. 승자 독식의 정치문화 또한 강화되고 있고요. 적대의 정치는 선거를 거치면서 더 심화하는 반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타협의 토대는 약화합니다. 이런 환경을 그대로 두고 미래로 나갈 수 있을까요.

    개헌은 지금 당장 하느냐, 몇 년 후에 하느냐의 문제이지 꼭 해야 할 과제입니다. 현재 의회는 권한은 큰데 책임은 없습니다. 여당은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반면, 야당은 차기 선거에서 이기고자 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려고만 하기에 늘 싸울 수밖에 없죠. 개헌의 방향은, 의회가 권한을 가진 만큼 책임도 갖는 구조로 이뤄져야 합니다. 개헌을 통해 연합의 정치가 이뤄질 토대를 만들어야 해요. 다원적 이익과 다원적 요구, 다원적 의견이 충돌하는 복합사회에서 30%, 40%의 득표로 승자 독식하는 모순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복잡하고 다각적인 의견과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합의를 통해 담아내는 정치체제를 지향해야 해요.”

    Co-Evolutionary Sate

    ▼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내세운 ‘공진국가(Co-Evolutionary Sate)’의 핵심 개념은 무엇입니까.

    “지금껏 얘기한 것이 핵심입니다. 왜 공진국가가 필요하냐면, 이제 연 5% 넘는 경제성장을 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국가의 총량적 발전이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낡은 것입니다. 고도성장이 아닌 포용적 성장, 질적 성장으로 초점을 바꿔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되, 성장의 내용을 고민해야 해요. 국가 경영의 목표도 총량의 발전이 아니라 개인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지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정부는 혁신을 주도하는 곳이 아니라 혁신을 조력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발전국가 모델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정부의 임무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눠 잘 도와주는 겁니다. 삶의 질에 대한 투자를 얼마나 적절하게, 잘 해내느냐가 고령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지금껏 해온 것처럼 선거 때마다 표를 얻으려 복지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재정은 물론 복지의 균형까지 깨뜨립니다. 길게, 넓게 보고 복지를 디자인해야 해요. ‘몰빵 복지’가 아닌,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춘 복지가 이뤄져야 합니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은 복지보다 삶의 질을 강조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복지라는 낱말에는 돈과 관련한 이미지와 시혜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복지를 강조하면 어려운 이들을 얼마나 어떻게 도와줄 것이냐는 시각에서 정책이 시작됩니다. 삶의 질이라는 개념을 강조하면 개인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을 잘해 행복을 추구하도록 국가가 어떻게, 얼마나 많이 도와줄 것이냐 하는 각도에서 정책이 출발합니다. 이처럼 근본적인 전환을 이뤄내려면 정치개혁이 필수입니다. 적대의 정치, 승자 독식의 정치를 그대로 놔두면 지역주의 아래에서 제한된 청중만을 상대로 다투는 비생산적 시스템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요.”

    ▼ 아일랜드 출신 영국 정치인이면서 보수주의 정치철학 대부로 일컬어지는 에드먼드 버크는 역사의 발전, 인간의 행복을 이뤄내려면 사회의 섭리(Providence)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신중한 변화(Prudent Change)를 추구하면서 구체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처방(Prescription)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보수 정당의 국회의원과 보수주의 정부의 청와대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 보수주의 정치인들이 버크의 말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것 같습니까.

    캐머런이 완성한 제3의 길

    “우파든 좌파든 한국 정치는 기득권의 벽이 너무나 높습니다. 새누리당은 지역주의를 매개로 기득권의 골이 깊습니다. 시장 제일주의 관점, 관성적인 발전국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경제와 기업을 우선한다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경제활성화를 말하는데, 내용이 없습니다. 금융시장, 노동시장을 개혁하려면 뒷받침하는 철학과 이론이 필요한데 상황 논리로만 대응해서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야당을 설득하기도 어렵습니다.

    서구 복지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국가 모델 중 그나마 성공 모델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것은 복지제도 덕분이 아닙니다. 복지제도는 결과물일 뿐이에요. 좌·우파가 정치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게 중요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전후 60년 중 40년 동안 1당, 2당이 좌우연정을 했습니다. 스웨덴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낼 때는 사민당이 노조를 설득하고 우파가 기업을 설득했습니다. 각자가 자기가 선 위치에서 지지세력을 설득해 중간으로 와야 하는데, 우리는 타협의 당위만 강조할 뿐 그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노동당 혁신을 주장하며 제3의 길을 제시했습니다. 보수당의 캐머런 정부에서 제3의 길을 완성했습니다. 독일 사민당 슈뢰더의 중도 노선은 우파인 메르켈 정부가 실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민당과의 연정이 있었죠. 캐머런 영국 총리는 ‘보수정당은 자본의 정당이 아니라 자본에 책임을 지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의 우파는 미래 비전과 관련한 일을 너무 안 합니다. 세상이 변하고, 시민이 답답해하는데도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우파의 혁신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기 혁신을 통해 구체적 행동 전략을 마련해야 해요.”

    ▼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은 선언(declaration)은 많은데, 구체적 처방은 빈약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각종 개혁 천명도 계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접근하는 측면이 강해 보입니다. 국정의 중심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정치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의 지적 능력이 달립니다. 다른 나라의 주체들과 비교하면 크게 달려요. 정치인의 지적 수준 차이만 말하는 게 아니라 싱크탱크의 지적 능력, 두뇌집단을 활용하는 능력을 포함한 얘기입니다. 대증요법이 대부분입니다. 상황 논리에 맞춰 일을 진행합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일목요연하게 설득해내려면 지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전국선거가 2년마다 한 번씩 있습니다. 재보궐 선거도 전국선거처럼 치릅니다. 정당이 선거의 논리에 함몰돼 있어요. 정책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정당보조금의 3분의 1을 정책과 관련한 돈으로 하는 등 별별 조치를 다 했으나 선거에 이기는 것에만 매몰된 게 현실입니다. 심도 있는 처방이 나올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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