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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국의 길, 러시아의 길

‘딜레마’ 아닌 ‘기회’ 한국이 만능열쇠 쥐고 있다

‘미국이냐, 러시아냐’ 朴정부 선택은?

  • 윤성학 | 고려대 러시아CIS연구소 교수 dima7@naver.com

‘딜레마’ 아닌 ‘기회’ 한국이 만능열쇠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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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이 기로에 섰다. 러시아는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일(5월 9일)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다.
  •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최룡해를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김정은의 행사 참석을 확인했다. 미국은 박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모스크바 방문과 관련해 ‘참석하느냐 마느냐’, 나아가 ‘미국이냐 러시아냐’라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다. “중국에 지나치게 다가선다”면서 한미동맹의 균열을 우려하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러시아행을 반대한다. 모스크바 방문을 거절하면 핵심 외교·안보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통일대박’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갈지 말지 선택해야 할 시점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가 초청을 받은 지 두 달을 훌쩍 넘기고도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서 국내외적 갈등은 더욱 커졌다. 진보 진영은 답보에 빠진 남북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스크바에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 진영은 한미동맹을 걱정하며 참석을 반대한다.

기로에 선 朴대통령

대외 여건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보리스 넴초프가 암살당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이미지가 나빠졌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대(對)러시아 제재를 1년 더 연장해 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을 부담스럽게 한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도 악재라고 하겠다.

이렇듯 부정적인 분위기가 확산되는 터라 참석 불가로 결론 날 공산이 커 보인다. 청와대가 ‘참석 불가’를 결정해놓고 러시아를 달랠 명분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방문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파국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총리를 대신 보내고 푸틴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해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면 유럽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러시아도 한국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갈 것이다.



문제는 9월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 승리 70주년 기념행사다. 김정은이 5월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9월 베이징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이 러시아 행사는 외면하고 베이징만 방문한다면 남은 임기 동안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중국에 가지 않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런 복잡한 변수가 박 대통령을 괴롭힌다.

1904~1905년 러일전쟁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이 시시시각 다가오는데도 대한제국 정부는 쇄신 노력은 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러시아와 일본을 오락가락 추종하다 망국의 길로 들어섰다. 박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가든 안 가든 남북관계 개선과 유라시아 협력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정부는 미국도, 러시아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박 대통령의 러시아 전승기념일 행사 참석을 반대하는 미국의 의지는 분명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외 정책 및 안보에 대한 비정상적 위협의 배후로 러시아를 지목한다. 오바마 정부는 미국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동맹국이 합류할 것을 요구한다. 유럽과 일본은 이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전승기념일 행사에도 동맹국이 미국과 함께 불참할 것을 호소했다.

‘딜레마’ 아닌 ‘기회’ 한국이 만능열쇠 쥐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의장 발언을 듣고 있다. 박 대통령 오른쪽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美 “모스크바 가지 말라”

한국 정부는 유럽, 일본과 달리 아직 제재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 노력을 팽개치고 미국에 적극 동조한 것과 비교된다. 한국이 미국을 의식하면서 러시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터라 2013년 11월 한·러 정상회담에서 구상한 외교·안보 협력에 속도가 붙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한·러 양국은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고 외교·안보 인사의 교류도 축소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호전되는 양상인데도 미국이 제재를 연장한 것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 러시아의 힘을 약화시켜 유라시아에서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지금 러시아를 견제하지 못하면 향후 중국의 부상 등과 관련해 통제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다. 동북아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은 러시아를 완전히 제압하는 냉전적 해결 방식이 아니라 긴장을 완화해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적 아니면 우리 편’이라는 진영 논리로는 제3의 길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이념적 갈등에 기인한 신(新)냉전 국면이 아니다. 많은 이가 ‘미국이냐, 러시아냐’의 패러다임에 현혹되는 것은 신냉전의 시각으로 우크라이나 사태를 들여다봐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미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의 지정학적 갈등일 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를 둘러싼 서로 다른 이념의 대결이 아니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중재하는 제3의 길에 들어선 만큼 한국도 이런 흐름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 심지어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이스라엘조차 때때로 미국과 외교 갈등을 겪었으나 미국이 보복한 경우는 없다.

러시아의 동진(東進) 전략이 서방의 제재와 압박 속에서 고립을 탈피하려는 전술적 차원의 움직임만인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러시아는 유럽 시장의 발전 가능성에 회의를 느끼며 성장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시아를 주목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의 대(對)EU 에너지 자원 수출은 정체하거나 줄었지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교역은 크게 증가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베트남 등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에너지 자원 수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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