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 유가인 배럴당 57~59달러가 얼마나 절묘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현재보다 더 하락하면 러시아는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돼 서방 처지에서는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이 쉬워질 수 있지만, 미국 경제 회복에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는 셰일가스 시추업체들이 타격을 입는다. 러시아 위기는 유럽과 신흥국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안길 수 있다.
반면 지금 수준보다 상승해 70달러선이 되면 러시아가 부도 위기를 넘겨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를 압박하기가 어려워지고, 회복 추세의 세계경제에도 다소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유가는 우크라이나 문제가 지속되는 한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횡보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할 수 있다.
지난해 6월만 해도 배럴당 110달러를 기록하던 국제 유가가 연초 40달러 초반대까지 급락하면서 원유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의 국가 부도설이 대두했다. 러시아는 재정수입의 50%, 상품 수출의 65%를 원유와 원유제품,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에 의존한다. 따라서 국제 유가 급락은 러시아에 치명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19일 세계경제전망 수정판에서 지난해 10월 0.5%로 전망한 러시아 경제성장률을 -3.0%로 3.5%포인트나 낮췄다. 심지어 -5%까지 추락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신용평가기관 S·P는 1월 26일 러시아의 루블화 표시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인 BB-로 낮췄다. 러시아 국채가 투기 등급으로 전락한 것이다.
루블화 가치는 폭락했다. 달러당 35루블 안팎을 유지하던 루블화 환율은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급등세로 돌아서 올해 2월에는 60루블대 후반에 이르렀다.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2014년 7월 9일 260베이시스포인트(bp)에서 12월 16일 770bp까지 치솟았다. 2011년 국가 부도를 내고 구제금융을 받은 남유럽 국가들의 당시 CDS프리미엄이 대체로 600~700bp였던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는 사실상 부도난 것이나 다름없는 형국이었다.
연초 세계경제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과연 러시아가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조 달러로 한국의 1.4배쯤 되는 대국이다. 이런 정도의 국가가 부도나면 국제금융시장은 물론 세계경제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은 했지만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옛 독립국가연합 여러 나라도 태풍의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등 자원을 수입하고 상품을 수출하는 유럽 국가도 영향권 안에 있다.
교차로에 선 러시아
다행히 최근 들어 유가가 다소 반등하면서 한숨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두바이유 기준으로 1월 14일 배럴당 42.55달러까지 하락한 유가는 3월 6일 57.26달러로 반등했다. 급등하던 달러당 루블화 환율도 2월 3일 69.66루블을 정점으로 반전해 3월 7일에는 59.99루블로 50루블 선을 회복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부도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부도 가능성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변수가 원유 가격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지난해 러시아의 상품 수출은 약 4967억 달러로 추정된다. 2013년보다 5% 감소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유가 하락이 수출 감소의 주원인이다. 2013년 3502억 달러이던 원유, 원유제품,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액은 2014년 3222억 달러로 줄었다. 2014년 러시아 총수출의 65%를 원유, 원유제품, 천연가스 등 에너지 수출이 차지한다. 에너지 기업의 대부분이 국영(國營)이라 유가는 재정수입과도 연계된다. 2014년 경상수지는 에너지 수출이 감소했는데도 상품 수입이 전년보다 333억 달러 감소한 데 힘입어 567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2013년에 비해 흑자 규모가 225억 달러 증가했다.
따라서 러시아의 연내 부도 가능성을 전망하는 데는 유가의 행보가 가장 중요한 변수다. 최근 발표된 유가 전망 자료를 종합해보면 세계경제의 회복 속도가 더뎌 유가가 더 하락할 것이라는 견해도 일부 있지만, 유가가 바닥을 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재 유가는 브렌트유와 두바이유 기준으로 배럴당 50달러 후반대에서 횡보한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까지 하락하면서 지난해 12월 5일 1920개이던 미국의 셰일가스 시추공 수가 올해 1월 16일에는 1676개로 줄었다.
일각에서는 세계경제가 다소 회복하기 시작하면 유가가 다시 배럴당 60달러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한다. 두바이유 기준으로 지난해 평균 배럴당 96.6달러, 올해 초~3월 6일까지 평균 51.6달러를 기록한 유가가 올해 평균 60달러로 상승할 경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은 1933억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1289억 달러 줄게 된다. 따라서 다른 변수가 동일하다면 경상수지는 대략 500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올해 평균 유가가 70달러까지 상승하면 에너지 수출이 2578억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644억 달러 줄어들고, 경상수지 적자폭은 150억 달러가량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경상수지 적자는 외환 소요액 추정에서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두 달 새 1050억 달러 유출
러시아의 부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외환보유액과 외채 규모다. 2월 말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3646억 달러. 지난해 말 4696억 달러였는데 두 달 만에 1050억 달러가 증발했다. 평소엔 많아 보이는 외환보유액도 일단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상상외로 빨리 소진된다. 평상시 만기 연장을 잘해주던 외채도 만기 연장이 안 되고, 언제나 들어올 것처럼 보이던 외국인 투자자도 빨리 빠져나가지 못해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때 외환보유액이 부족하면 곧바로 외환위기 또는 외화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