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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의 미술과 마음 이야기

‘만종’ ‘씨 뿌리는 사람’

장 프랑수아 밀레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포사람 원장

‘만종’ ‘씨 뿌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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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 ‘씨 뿌리는 사람’

‘만종’

저는 1970년대 초반 서울 강북구에 있는 수유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수유리 주변은 시골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집 바로 앞에는 화계사가 있었고, 인수봉이 바라보이는 북한산 자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도시 아이였음에도 시골 같은 수유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 시절에는 자연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어 상담학을 공부하면서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치유의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초록색 대지, 울창한 나무, 향기로운 숲, 그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새와 동물은 우리 인간에게 건강한 치유효과를 안겨줍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갖게 되는데, 상처의 적지 않은 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인간관계는 한편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그런데 자연은 바로 이 지친 삶에 잔잔하지만 큰 위안을 선물합니다.

황혼이 내리는 들판

서양화에서 자연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는 세 사람입니다. 영국의 존 콘스터블, 독일의 카스파 프리드리히, 그리고 프랑스의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입니다. ‘건초 마차’로 유명한 콘스터블이 소박한 전원 정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 근대 풍경화의 새로운 영역을 열었다면, ‘빙해’ 같은 걸작들을 남긴 프리드리히는 웅장하고 고독한 자연에 정신적 의미를 부여한 낭만주의 풍경화의 절정을 보여줬습니다.

밀레는 콘스터블과 프리드리히보다 더 널리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 까닭은 ‘만종’ ‘이삭 줍기’와 같은 그의 작품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렘브란트의 ‘야간 순찰’,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피카소의 ‘게르니카’ 등과 함께 서양 회화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만종’ 복제본은 우리나라에서 오래전 식당, 미장원, 이발관 등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밀레는 흔히 ‘바르비종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군의 프랑스 화가들은 1830년대부터 파리 교외 퐁텐블로 숲가에 있는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 모여 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이 마을의 이름을 따서 이들을 바르비종파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루소, 코로, 도비니 등은 밀레와 함께 바르비종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이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와 19세기 전반 영국 풍경화로부터 영향 받은 바르비종파는 빛과 대지의 연구를 통한 자연의 재현에 주력했습니다. 바르비종파는 후에 빛의 효과를 탐구한 인상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오늘 살펴보려고 하는‘만종’(The Angelus, 1857~59)은 밀레의 대표작이자 바르비종파의 대표작입니다. 해 저무는 들판에서 한 젊은 부부가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담은 작품입니다. 원래의 제목은 ‘삼종기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저녁 때 울리는 ‘늦은 종’이라는 의미의 ‘만종(晩鐘)’으로 불립니다. 삼종기도는 가톨릭에서 하루 세 번 일과를 잠시 멈추고 기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만종’이 갖는 아우라는 경건한 자연과 독실한 신앙의 재현에 있습니다. 황혼이 내리기 시작한 벌판은 무척 평화롭고 경건해 보입니다. 하루의 고된 노동이 끝난 다음 삼종기도를 올리는 부부의 신앙은 아주 순수하고 독실해 보입니다. 평범한 전원 풍경을 그린 작품인데도 ‘만종’이 유명해진 이유는 이러한 풍경에 밀레가 기독교 신앙을 불어넣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 앞에 서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에 대한 친밀감과 소박하고 순결한 신앙심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대지에 맞서는 영웅

‘만종’과 관련해 큰 화제를 남긴 사람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입니다. 달리는 어릴 적부터 ‘만종’ 복제본을 보고 이를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여자의 발 주위에 있는 바구니가 원래 아이가 들어 있는 관을 그린 것이고, 부부가 이를 슬퍼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마주한 부부가 근친상간 충동을 가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라는 기상천외한 견해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예술가가 작품을 완성하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관람객의 자유입니다. 저는 달리의 주장이 기발하긴 하지만 ‘만종’이 갖는 아우라를 생각할 때 그의 해석이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종’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겨준 까닭은 이 작품이 주는 다양한 울림에 있습니다. ‘만종’은 풍경화인 동시에 종교화입니다. 또 리얼리즘 회화인 동시에 낭만주의 회화입니다. 어느 하나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여러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작품이 ‘만종’입니다. 하나의 감동이 아닌 복수의 감동을 안겨주는 게 진짜 명작이 아닐까요.

밀레는 ‘만종’을 그린 이유가 어릴 적 할머니에 대한 기억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종기도 종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할머니 말을 생각하면서 ‘만종’을 그렸다고 합니다. 배경에 펼쳐진 들판은 아직 환한데 기도를 드리는 부부 주변에는 이미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공존하는 이 작품은 자연의 평화로움, 인간의 유한성, 삶의 소박함, 신앙의 경건함을 모두 느끼게 해줍니다.

밀레의 작품들을 보면서 저는 자연스레 귀농(歸農)을 떠올립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인생 제2막을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 귀농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귀농에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빠른 속도와 분주한 일상으로 특징지어지는 도시의 삶은 우리에게 활력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피곤을 안겨줍니다. 느리고 한갓진 삶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로 하여금 도시를 떠나 시골로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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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포사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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