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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후 1년, 우리는 오늘도 '세월호'를 탄다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세월호 참사 vs 고베 대지진

  • 이성권 주일 고베총영사 | lsksml@naver.com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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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원점으로 돌아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 마련에 몰두하면 제2의 세월호와 같은 인재(人災)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안전·방재강국인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사람의 ‘안전의식’의 중요성과 그것을 함양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재해기념관’ 건립을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일본 고베에는 1995년 1월 17일 규모 7.3의 강진에 의한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다.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이었다. 6434명이 사망하고, 4만379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 총액이 10조 엔(최대 13조 엔)에 달하는 대형 참사였다. 이는 1995년 추산한 피해액인데, 당시 우리 정부의 예산이 54조8243억 원인 점을 감안해 단순비교해도 정부 예산의 2배를 넘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것도 단일 자연재해로부터. 하지만 지금의 고베는 복구와 부흥을 달성하고, 도시 및 항만 인프라에서부터 주민의 정신과 의식이 창조적으로 거듭났다.

필자가 고베 대지진으로부터 착안한 것은, 도시 복구와 방재시스템 정비 등이 아니라 재해(災害) 예방과 그 피해를 줄이려 노력하는 그들의 ‘의식세계’다. 고베 대지진은 자연재해이며, 세월호 참사는 인재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낸다는 결과는 같다. 인재는 오히려 사람의 부주의 혹은 고의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예방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재일수록 사람들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인의 의식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고베 시내를 걷다보면 건물 벽면에 유달리 벽시계가 많이 걸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 5시 6분을 가리키며 멈춰 서 있다.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시각이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다. 건물 소유주인 시민들이 20년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벽시계를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식의 발로다. 건물은 풍화돼도 당시의 재해의 참상과 고통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고베 시에 인접한 아시야(芦屋)에는 ‘사이호지(西法寺)’라는 사찰에 ‘드럼통’으로 만든 추모 종(追悼之鐘)이 있다.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이 사찰에 몰려왔는데, 당시 주지스님이 드럼통을 수십 개 모아 ‘스토브’ 대용으로, 냉장고 대용으로, 욕조 대용으로 사용해 이들을 돌보았다. 드럼통과 함께 고베 대지진을 극복했기 때문에, 재해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드럼통을 그대로 추도의 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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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는 참사

그 밖에도 진원지였던 아와지시마(淡路島)에는 지진단층인 노지마단층(野島·#26029;層)이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로 보존되고, 시내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방파제와 교각 등 기념물이 300개가 넘게 보존됐다.

고베 대지진을 경험한 일본 사회가 이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바로 ‘기억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정부기관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기록으로 집대성하고 연구해 미래에 전달하고자 설립된 곳이 재해기념관인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다. 이 시설에는 고베 대지진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복구와 부흥의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오랜 시간을 들여 수집·보존한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만 해도 16만 점이 넘는다. 이 자료들을 활용해 당시 지진재해 참상과 방재(防災)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생생하게 전시한다.

이 시설에는 연간 5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데, 그중 지진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 비율이 60%나 된다. 재해기념관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안전과 방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육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재해기념관은 실천적인 방재 연구와 방재 전문가 육성, 재해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 재해 대처 지원, 교류 및 네트워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일본에서 유일한 종합 재해기념관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 어릴 때의 안전교육과 훈련은 평생의 습관으로 체화된다. 어릴 때 자전거 타기를 배우면, 어른이 돼 다시 탈 수 있는 것처럼, 교육과 훈련은 무의식적으로 근육과 신경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교육과 훈련이 사회 전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자체가 방재(防災) 효과를 갖는다. 일본 사회는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어릴 때부터,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안전·방재교육을 체계화했다.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은 일본의 모든 학교에 ‘위험 발생 시 대처요령(위기관리 대응매뉴얼)’을 작성해 이를 기반으로 훈련하도록 권고한다. 학교에서 하는 안전·방재교육의 목표를 ‘생존하는 힘(生きる力)’으로 규정했다. 즉 습득한 지식에 기초해 신속하게 판단하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만일 우리도 학교 현장에서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면,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선장 등 세월호의 지휘부가 승객들에게 탈출을 지시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위기 상황임을 지각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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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권 주일 고베총영사 | lsksm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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