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중국의 구애는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언사(言辭)가 갑론을박을 낳았다. 외교장관이 ‘압력’을 ‘구애’로 인식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상승 대국’ 중국의 부상(浮上)과 ‘기존 대국’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지정학적 구조를 뒤흔든다.
윤영관(64) 서울대 교수는 7월 3일 ‘신동아’와의 대담에서 “지정학(地政學)적 한계를 지경학(地經學)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경협이라는 수단을 통해 북한을 엮어 들어가면서 통일로 가는 구심력을 키워내자”는 뜻이다.
윤 교수는 “서방정책과 동방정책의 상호 보완을 통해 통일을 이뤄낸 ‘독일 모델’에서 우리가 배울 게 많다”면서 “광복 100년인 2045년에는 통일된 한반도가 평화 지향 국가, 통상 물류 중심 국가가 돼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로만 ‘통일’ 외치는 형국”
▼ 8월 15일로 ‘광복 70년’을 맞습니다. ‘분단 70년’이기도 하고요. ‘광복 100년’을 맞는 2045년 우리나라가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요. 바람직한 미래를 맞으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그건 제가 학자로서 가진 화두,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이런 나라가 되기를 바랍니다. 2045년 한반도는 통일돼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번영한 평화 지향 국가면서 통상 물류의 중심입니다. 이웃 나라가 통일된 한반도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봅니다. 동아시아에 갈등이 사라지고 안정이 정착됩니다.
이런 나라가 되려면 앞으로 등장할 정부들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국제정치에는 한반도 통일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원심력이 존재합니다. 현상 유지를 도모하는 막강한 힘이 작용해요.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부딪치는 접점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어지간하면 한반도가 분단된 채로 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봅니다. 통일된 한반도가 자국의 이해관계와 반대 방향의 외교 노선을 취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일본은 통일된 한반도가 친중국화하는 것을 걱정합니다. 중국은 통일된 한반도가 미국, 일본과 연합해 자국을 포위하는 것을 우려하고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네 나라는 한반도의 통일보다 분단 관리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통일과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원심력을 어떻게 약화시킬지에 한국 외교의 방점이 찍혀야 합니다. 주변국이 한반도가 통일되는 것이 자국에 이득이라고 판단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통일과 반대 방향의 원심력을 압도할 내부적 구심력을 키워내야 합니다. 구심력의 핵심은 남북한의 통합을 향한 노력입니다. 말로만 ‘통일’ ‘통일’ 하는 게 현 상황인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을 통일로 가는 구심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재조정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키워드는 경제예요. 남북경협을 통해 서로 얽혀야 합니다. 경제로 엮어 들어가야 해요. 남북한의 시민들을 경제로 엮어야 합니다. 지정학적 한계를 지경학적(geo-economic) 수단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경제라는 수단을 통해 통합을 향한 구심력을 키워내면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번영된 국가로 ‘광복 100년’을 맞이할 겁니다.”
中日이 충돌하면 미국은…
▼ 6월 말 일본 시사주간 ‘슈칸겐다이(週刊現代)’는 “(아베 총리가) 중국을 일본 자위대와 미국의 ‘가상 적국’으로 인식하며, 중국과의 전쟁도 궁리[謀劃]하고 있다고 인정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와 관련해 중국 정부 및 언론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추상적 가능성으로만 회자되던 중국 일본 간 국지분쟁이 현실적 이슈로 떠오르는 듯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남중국해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갈등을 계기로 국지분쟁을 벌인다면 우리는 어떤 외교·안보적 자세를 견지해야 할까요.
“우선 세력 변화 구도를 살펴봐야 합니다. 중국-일본 간 경쟁보다 근본적인 게 미국-중국 관계예요. 상승하는 중국 세력과 기존 세력인 미국의 갈등을 말하는 겁니다. 미중관계에는 협력과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왔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 외교가 공세적으로 변화하면서 갈등 구조가 더 부각되는 양상입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상승 대국’은 국제 무대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역할과 발언권을 요구합니다. ‘기존 대국’은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요. 상승 대국의 뜻을 용인하는 것은 기존 대국의 상대적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골격은 상승 대국의 요구와 기존 대국의 태도가 부딪쳐 긴장이 조성되는 상황이라고 하겠습니다. 긴장을 제대로 못 풀면 제1차 세계대전 같은 충돌이 빚어질 수 있지요.
동아시아에 국한해 사안을 살펴봅시다. 상승 세력인 중국과는 반대로 하강 국면을 걸어온 나라가 일본입니다.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일본인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형국입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을 더 튼튼하게 하는 것도 기저에 불안감이 존재해서예요.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 군사대국화로 나아갑니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에 대한 반작용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중일관계는 미중관계라는 큰 맥락으로부터 분리해서 해석할 수 없습니다. 중일 간 무력 출동은 미중 간 무력 충돌로 연결되는 사안이에요. 센카쿠열도 등에서 국지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이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이 분쟁에 개입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미국 보수주의의 판테온(Pantheon)’이라고 불리는 에드윈 풀너(73) 헤리티지재단 설립자는 지난해 10월 1일 ‘신동아’ 인터뷰 당시 센카쿠열도에서 중일 간 분쟁이 발생하면 한국도 미국을 도와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취지로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와 과거의 미국 정부는 공화당, 민주당 구분 없이 그 섬들이 일본의 영토라고 언급해왔습니다.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따르면 누군가 일본 영토를 공격한다면 이 조약을 침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답은 아주 명백합니다. 앞선 행정부들과 현 행정부 역시 센카쿠열도는 미일안전보장조약의 방위 의무 대상이라고 확인했습니다. 나는 한국이 누구와 안보 동맹을 맺었는지 상기하길 바랍니다. 또한 서울이 미국과 한국이 공유한 비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수십 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함께 희생했다는 사실도 상기하기를 바랍니다. 미국과 한국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합니다.”(‘신동아’ 2014년 11월호 “美中 사이 한국의 중립은 中과 조공관계로 돌아가는 것” 제하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