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장밋빛 고용안정? 더 커진 불안감!

정년연장 카운트다운!

  • 박은경 객원기자 | siren52@hanmail.net

    입력2015-07-16 17: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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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부터 직원 300인 이상 기업, 후년부터 모든 기업에서 60세 정년 연장이 의무화한다. 바람직한 정책이지만 현실적 체감도는 별개다. 기업, 직장인, 청년층, 비정규직 근로자 할 것 없이 불안감은 더 커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장밋빛 고용안정? 더 커진 불안감!
    과거에 직장인들이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호기롭게 내뱉던 단골 레퍼토리가 있었다.

    “언제든 사표 낼 준비가 돼 있다. 안주머니에 늘 사표를 넣고 다닌다.”

    치사하고 아니꼬워도 밥벌이하느라 어쩔 수 없이 다니는 직장이지만, 언제라도 ‘수틀리면’ 보란 듯이 그만두겠다는 배짱이 두둑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런 술자리 광경이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쏙 들어갔다. 이후 민간기업, 공기업 할 것 없이 ‘상시 구조조정’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굳이 제 발로 그만두지 않아도 언제든 ‘○○퇴직’이라는 명분으로 등 떠밀려 회사 문을 나설 처지가 됐다.

    그렇게 언제 직장에서 밀려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살던 직장인들이 요즘 들어 한숨 돌리게 됐다. 내년부터 60세 정년 연장이 의무적으로 실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월급은 좀 줄더라도 회사를 오래 다닐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직장인들의 공통적인 바람이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300인 이상 기업 내년 의무화

    오래도록 현역으로 남고 싶은 직장인의 바람은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해 말 취업 포털 사람인(saramin)이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통한 정년 연장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72.3%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연령대인 과장급과 부장급에서는 80% 이상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복수응답)는 ‘노후 준비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어서’(64.9%), ‘연봉보다 오래 일하는 게 더 중요해서’(45%), ‘고령화 사회 대비책이어서’(43.6%), ‘업무 노하우 등을 활용할 수 있어서’(26.7%), ‘(퇴직) 압박 없이 여유 있게 일할 수 있어서’(24%) 등이었다.

    정년 연장 제도는 내년부터 공공기관과 공사를 비롯해 직원 수 300인 이상 기업, 2017년부터 300인 미만 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기대수명 100세 시대’와 함께 고령화 사회로 치달으면서 장년층 일자리 확보가 시급해진 데 따른 조치다.

    우리 사회는 인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 중인 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생산 가능 인구 감소, 40~50대 근로자의 조기 퇴직으로 인한 취약계층화, 심각한 노인 빈곤율 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장년 세대의 정년 연장을 통한 해결책이 모색됐다. 그 결과, 2013년 4월 국회에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 이하 정년연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법 시행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마당에 우리 사회 일각에서 정년연장법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과 대립,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다. 오랜 시간 노사정 협의를 거쳐 만들어진 법 시행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벌어지는 논란의 중심에는 임금피크제를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대신 일정 기간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정년연장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된 항목에 포함됐다. 이 법 제19조(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 2항에 따르면 기업은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정해야 하며 그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는 기업과 노동조합(또는 근로자 대표)은 기업의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장밋빛 고용안정? 더 커진 불안감!
    임금피크제 딜레마

    현재 근로자 100인 이상 기업 가운데 10곳 중 7개꼴로 호봉급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하고 있다. 직장인들도 임금 감액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건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건 감액의 적정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40대 후반 직장인 오모 씨는 “조기 퇴직이 잦다보니 그 이후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차에 정년이 연장된다니까 마음은 좀 놓이는데, 임금피크제가 실시되면 그동안 받던 월급에서 얼마나 깎일지, 정년이 연장된 시점부터 어떤 직급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가 100인 이상 기업에 종사하는 만 20세 이상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근로자의 72.8%가 임금피크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경우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임금 조정 수준은 평균 16.5% 감액이다.

    이에 비해 고용노동부가 지난 4월 주요 업종(자동차부품·조선·유통·제약·금융 5개) 임금피크제 도입 기업들의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임금 감액률은 16.3~39.6%로 업종별로 차이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평균 감액률은 22.8%로 근로자들이 적정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평균 감액률보다 6%포인트 이상 높았다. 50대 초반 직장인 최모 씨는 임금피크제에 대한 불안감을 이렇게 드러냈다.

    “임금피크제로 월급이 깎이면 나중에 퇴직금도 줄지 않을까 걱정된다. 보통 퇴직 시점에 월급이 가장 많은데,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월급 평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문제 될 게 없었는데, 정년 연장 이후엔 임금피크제로 월급이 줄어든 상태에서 퇴직금을 계산하기 때문에 퇴직금이 지금보다 줄어들지 않겠나. 또한 임금피크제 때문에 월급이 많이 깎이면 회사를 2~3년 더 다녀본들 원래 퇴직 때까지 직장생활하면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임금 총액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득도 없이 회사만 더 다닌 꼴 아닌가.”

    직장인들은 이처럼 회사가 정한 기존 정년까지 임금피크제 도입 없이 근무할 때보다 전체적으로 금액 부분에서 손해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고 있다.

    ‘명퇴’ 압박 더 커졌다

    직장인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건 최근 일부 기업에서 거세지는 퇴직 압박이다. 대기업 계열사 임원인 50대 초반 윤모 씨는 이렇게 회사 분위기를 전한다.

    “우리 회사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하자 올해 초부터 50세 이상 직원들에게 명퇴를 종용하고 있다. ‘법 시행 전에 내보낼 사람은 다 내보내겠다’는 식으로 혈안이 됐다. 말을 안 들으면 갖가지 편법이 동원된다. 한직으로 발령 내거나 부하직원을 상사로 승진시킨다. 대기발령을 내고 보직을 없애버리면 버틸 재간이 없다. 다들 불안해한다.”

    또 다른 대기업의 30대 후반 직원 박모 씨가 전하는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회사는 정년이 56세인데, 정년을 넘겨 근무하는 사람들은 기존 임금의 75% 정도를 받는다. 그런데 회사가 60세 정년 연장을 미끼로 이들의 임금을 더 삭감하겠다며 ‘사인할래? 안 할래?’ 이렇게 나오고 있다. 아무리 회사가 정년 보장을 약속하고 임금체계를 정해놓는다 해도 그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요즘 선배들을 보면 제도가 어떻게 바뀐다 해도 직장인은 ‘영원한 ‘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은행 등 금융권에선 임금피크제를 이미 실시 중인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권 정년은 대부분 58세지만 정년까지 회사에 남아 있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은 50대 초반의 은행 지점장 서모 씨의 푸념이다.

    “금융권에선 보통 정년 1~2년 전, 혹은 3~4년 전에 명퇴 요구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년 연장을 의무화한다 해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사 적체가 심한 경우 설령 60세까지 회사에 남더라도 승진에 목맨 후배 직원들 눈치 보면서 어떻게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겠나. 임금이 깎이면 일할 의욕도 꺾일 수밖에 없다. 그런저런 스트레스를 견디며 60세까지 남을 사람은 얼마 안 된다.”

    보험업계에 근무하는 40대 후반 이모 씨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다보면 아무리 월급이 많아도 노후 준비를 하기 어렵다. 정년이 연장되면 월급이 깎이더라도 회사에 더 오래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 늦둥이를 둔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괜히 정년연장법에 기대 희망을 품었다가 실망할까봐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부모는 고용, 자식은 실업”

    300인 이상 기업들은 채 6개월이 남지 않은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지만 노사 협상이 순탄치 않아 고민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임금피크제 도입률은 9.9%, 300인 이상 기업은 23.2%에 불과하다. 촉박한 일정을 감안하면 기업 처지에서는 마음이 바쁘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임금 조정기간은 몇 세를 기준으로 얼마 동안 할 것인지, 임금 감액률은 몇 %로 할 것인지를 놓고 곳곳에서 노사 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0대 초반 직장인 이모 씨는 “가령 현재 회사 정년이 57세이고 그때부터 60세까지 임금을 줄여나간다면 어쨌거나 3년간 월급을 더 받을 수 있어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원래 정년보다 2년 앞당겨 55세부터 57세까지 임금을 동결하고, 이후 순차적으로 임금을 줄여나간다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들은 오래 일하는 효과를 최대한 얻을 수 있도록 최소 감액으로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를 희망하는 것.

    근속연수에 따라 기본급을 정하는 호봉제 채택 기업에서 정년을 연장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업들은 임금피크제 외에도 성과급, 직무급으로 등 임금체계를 다양화함으로써 부담을 최소화하려 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기업들은 지금 일하고 있는 직원도 내보내야 할 처지다. 현행 연공급(호봉제) 체계에서 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임금상승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인력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없다. 부모 세대는 정년을 연장해서 계속 직장에 다니고, 자식 세대는 일자리가 없어 계속 실업 상태로 남아야 한다.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게 시급하기에 노사정 협의에서 정년 연장 대신 기업의 임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합의해놓고는, 막상 법이 통과되자 노동계가 태도를 바꿔 임금체계 개편을 가로막고 있다.”

    “여차하면 문 닫겠다”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6월 1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과 성과연봉제 확대 등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민간 확산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 그와 함께 30대 기업과 중점관리 대상 기업 500여 곳에 임금피크제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집중하기로 하자 노동계가 강력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하루 뒤 “정부가 임단협 시기에 민간 부문을 임금피크제 중점 관리 사업장으로 선정한 것은 노사 자율에 맡기지 않고 직접 개입하겠다는 뜻”이라며 총력 대응체제 구축을 선언했다. 한국노총도 “노사 협의로 이뤄져야 할 임금피크제 도입에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상생이 아니라 노동자를 더 옥죄는 것”이라며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경영계와 노동계가 법 개정 전 여러 차례 협의과정을 거쳤음에도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중심에는 ‘취업규칙 변경’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르면 기업 측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대표)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만약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려 할 경우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내년 정년 연장 시행을 앞두고 시간이 촉박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은 초조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를 경영하는 60대 초반의 김모 사장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쉰다.

    “정부 정책이니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할 순 없지만, 많은 기업주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회사를 끌고 가기도 벅찬데, 정년은 연장해놓고 임금은 노사 자율로 해결하라니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자칫 내후년부터 정년만 연장되고 노사 협의가 안 돼서 임금피크제를 도입 못하면 늘어난 인건비를 버텨낼 회사가 몇이나 되겠나. 협상할 엄두를 못 내는 곳도 많다. 여차하면 회사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사장들도 있다.”

    더 불안해진 비정규직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 정지연 과장은 “100인 미만 소기업들은 인력난을 겪고 있어 정년 연장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덜한 편”이라며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앞두고 지금 가장 불안해하고 예민해진 곳은 100인 이상, 300인 미만 근로자와 노조가 있는 중소기업”이라고 전했다.

    “대기업은 임금체계와 관련한 전문가나 시스템을 갖춘 데다 노조와 맞설 여력이 충분하겠지만, 중소기업은 전문가도 없고 전혀 준비가 안 된 곳이 대부분이다. 취업규칙 변경을 두고 정부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지침’은 안 지키면 그만이다. 중소기업들은 정년 연장 시행 전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법으로 강제하고 취업규정 변경도 ‘동의’ 대신 ‘성실히 응할 것’ 정도로 완화해주기를 희망한다. 근로자가 원할 경우 개개인의 합의로 임금피크제에 동의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도 많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하는 중소기업이 많다. 정부가 가이드라인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보다는 기업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업종별로 구분해 기준을 마련하고 어떨 땐 어떻게 하면 좋은지, 그에 맞는 임금체계 개편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주면 좋을 것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50대 한모 씨는 “임금피크제 합의 없이 정년 연장이 시행될까봐 더 걱정이다. 그렇게 되면 직원은 원래 받던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으니까 손해 볼 게 없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사가 가만히 있겠나.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할 거고, 당연히 월급이 많은 사람부터 내보내려 할 거다. 정년 연장은 고사하고 일찌감치 명퇴를 당하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고 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경영계와 노동계 힘겨루기는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불안감도 깊어지게 만든다. 지난해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재취업했다는 40대 후반 이모 씨는 “우리 회사는 직원이 많지 않아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성실히 일만 잘하면 정규직 전환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정년 연장 때문에 회사가 부담을 느끼게 된다면 정식 직원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힘들게 잡은 기회인데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밀려날까봐 걱정”이라고 불안해했다.

    고용안정 효과 미미?

    장밋빛 고용안정? 더 커진 불안감!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신규 창출할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의문을 표시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9000여 곳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금피크제 도입 현황 및 효과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비율은 전체 사업장의 9.4%였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은 사업장은 퇴직자 수가, 도입한 사업장은 신규 채용자수가 많았다. 신규 채용자 중 30세 미만인 청년층 비율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50.6%)이 미도입 사업장(43.9%)의 그것보다 높았다. 지난 6월 국회입법사무처가 발간한 ‘이슈와 논점’에서 환경노동팀 김준 팀장(사회학박사)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임금피크제가 고령자의 고용 안정이나 청년 고용 창출에 미치는 영향은 경영계 예측이나 정부 기대보다 훨씬 작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나라 근로자 중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한 근로자의 비중이 67.1%이며, 근로자가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한 연령은 평균 53세라는 연구결과(한국노동연구원)도 있다. 이는 법정 정년이 60세가 되더라도 근로자가 정년 이전에 비자발적으로 조기 퇴직하는 경향은 노동시장 상황이나 임금제도 등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나라 기업은 2013년 기준으로 직접노동비용의 26.9%에 해당하는 간접노동비용을 추가로 지출한다. 임금피크제로 직접노동비용을 절감하더라도 기업 전체 노동비용 절감 정도는 그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고령자 고용기간이 연장되면 기업의 인건비 총액 자체는 현재보다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정부의 기대나 경영계 예측과 달리 청년 신규 고용 창출에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장밋빛 고용안정? 더 커진 불안감!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신규 고용 창출 효과를 놓고 사회 각계의 분석과 시각이 엇갈리면서 아직 일자리를 찾지 못한 20~30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찌감치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를 개편한 기업들은 느긋한 표정이다. 2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다스코(DASCO)는 2010년부터 정년 연장을 실시했다. 이 회사 전병일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 회사가 가진 국내외 특허가 40여 건이다.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경력이 오래된 고급 숙련 직원들을 내보내는 건 회사에 큰 손실이다. 정년인 56세를 넘어 근무하는 직원이 R·D연구소와 사무직, 생산 현장에 20여 명 있다. 정년을 넘기면 재입사 형태로 근무하는데 임금은 정년퇴직 시점과 똑같다. 대신 보너스를 조금 줄이고 성과급에서도 일반 직원과 차이를 둔다.

    정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우리 회사는 본인이 원하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같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애사심이 남다르고 분위기도 가족같이 화기애애하다. 정년 연장으로 회사와 직원이 서로 윈-윈 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올해 칠순을 맞은 이 회사 R·D연구소 김성곤 상임고문은 제품 품질 테스트를 맡고 있다. 상무로 정년퇴임한 뒤 재입사 7년차다.

    “자동차 시장은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변화와 품질 향상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젊은 직원들한테 뒤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틈틈이 자전거를 타고 등산도 한다. 주위에 이 나이까지 일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보람도 있고 뿌듯하다. 친구들도 부러워한다.”

    전자제어 분야 개발담당인 이 회사 이안선 상무는 “지난해 정년퇴임을 맞았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다음 날 바로 출근했다. 직장을 잃을까봐 불안한 마음이 없으니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은 “정년 연장을 비롯한 노동시장 규제개혁은 고령화 대비,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성 확보 등의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다. 따라서 더 큰 틀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노동생산성에 비해 임금 수준이 높은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고도성장 때부터 지금까지 임금이 계속 상승했다. 지금의 경제, 투자 환경은 소비와 수출 부진, 저성장 기조 등으로 고도성장 때와는 전혀 다르다. 기업들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기도 어려운 여건이다. 산업 전반과 노동시장 여건을 살펴 일자리를 배분하고 중소기업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정년 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에 기대다보니 지금과 같은 혼란이 벌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결국 임금 개편으로 갈 수밖에”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금피크제를 둘러싸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논란과 혼란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렇게 조언했다.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에서 노동생산성 저하를 당연하게 여기는 선진국은 ‘임금피크제’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노동생산성에 따른 임금 감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정년 연장 전에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체계를 개편했다. 그런데 우리는 임금피크제 도입이 미미한 상황에서 정년을 연장하다보니 마치 임금을 깎아서 정년을 늘인다는 인식이 퍼졌다.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정년 연장이 조기 도입된 측면이 있어 혼란이 불거진 것이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 개편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노동계나 경영계도 잘 알기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혼란과 갈등이 수그러들 것이다. 다만 정부도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절감 재원으로 신규 채용 확대 기업에 대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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