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곽경택 영화의 고향 부산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입력2015-07-22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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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경택 감독의 주요 작품 대부분이 부산을 배경으로 한다. 부산 말씨와 정서를 고스란히 영화에 옮겨 싣는다. 지역색을 정면에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보편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곽경택의 부산은 ‘주변’이 아니다. 보란 듯 중심이며 주인공이 된다.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곽경택 감독은 요즘 ‘숨어서’ 영화를 찍는다. 아니, 숨어서 영화를 찍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치고 빠지는 데 선수다. 아니, 선수가 됐다. 소리 소문 없이 영화를 만들어서는, 소리 소문 없이 영화를 개봉하고는, 소리 소문 없이 300만쯤 관객을 들게 하고는 또 ‘잠수’를 탄다. 사람들은 영화를 실컷 보고 나서야 새삼 그게 곽경택 영화임을 알고 ‘어쩐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번 영화도 그랬다. 하필 제목이 뭔가 숨어서 하는 느낌이 드는 ‘극비수사’다. 6월 18일 개봉한 ‘극비수사’는 7월 9일 현재 관객 수 274만354명을 기록했다. 나름 ‘대박’을 친 셈이다.

    곽경택은 한때, 아니 지금도 유명 스타감독이다. 물론 옛날이 지금보다 훨씬 대단했다. 그건 분명히 2001년에 만든 ‘친구’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창인 4명의 친구 이야기인데, 그중 두 명이 조직폭력배 사회에 끼어들게 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벌이게 된다는 줄거리다. 화자는 서태화로, 그가 이야기를 회상해 나가지만 주인공은 두 명, 곧 장동건과 유오성이다.

    영화 ‘친구’는 한국 영화계에 이른바 ‘조폭 영화’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지금껏 이런 유의 영화로 ‘친구’만한 작품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곽경택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유전자 복제한 ‘친구2’를 2013년에 다시 만들었을까. 2009년에는 이를 TV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그것이다. ‘친구2’가 3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은 것은 그간 전편인 ‘친구’에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자기만큼 자기 영화를 다시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니가 가라, 하와이”



    사람들은 ‘친구’를 낱낱이 기억한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장면이 패러디 됐을 정도다. 예컨대 가장 잔인한 장면으로 꼽히는, 장동건이 수차례 칼에 찔려 죽는 신 같은 것이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대사를 사람들은 아직도 떠올리곤 한다. 그 기억에는 잔인함보다는 이상한 쾌감 같은 것이 묻어 있다. 그 장면 직전 유오성과 장동건이 술집 룸에서 대화를 나누는 신은 더 많이 회자돼왔다. “하와이 가라” “니가 가라, 하와이”로 이어진 대사는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이 영화로 유오성은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장동건은 외모만 출중한 스타가 아니라 (머리를 짧게 깎아 그 외모를 슬쩍 감추고도) 언제든 성격 연기를 펼쳐 보일 수 있는 연기자임을 입증하는 데 성공했다. 개봉 당시 ‘친구’의 흥행은 가히 폭발적이었는데, 그 이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JSA 공동경비구역’ 등의 성적을 가볍게 뛰어넘는 것이었다. 당시 600만 관객을 모았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1000만 관객에 버금가는 숫자다.

    굴곡진 인생살이의 ‘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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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친구’ 하면 뭐니뭐니 해도 로버트 팔머가 부른 ‘Bad case of loving you’다.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은 정말 신나게 찍혔다. 나중에 피가 튀기고 살이 튀기는 살육전을 벌이게 되든 말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그래도 마냥 즐거운 순간이 있는 법이다. 장동건과 유오성, 서태화, 정운택 등이 국제시장 골목길을 냅다 뛰어 도망갈 때 나오는 이 노래는 사실 가사 내용과 영화 장면은 전혀 별개의 것인데도, 주인공들이 젊고 어린 시절에 지녔던 뜨거우면서도 순수한 가슴속 열정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 노래는 ‘친구’의 OST로 사용된 후 전국적으로 열풍이 불었다.

    ‘친구’의 바로 그 장면을 찍은 국제시장 골목들, 그리고 남포동으로 이어지는 길들을 다시 한번 걸어 다니는 것은 꽤나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친구’를 만든 후 15년쯤 지났다. 부산은 이제 꽤나 ‘트랜스포밍’된 도시다. 일부 지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됐다. 예컨대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 ‘영화의 전당’이 들어선 센텀시티 같은 곳이 그렇다. 불야성을 이루는 광안리와 해운대를 밤에 바라다보면 마치 할리우드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1980년에 만든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10년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광경이다. 곽 감독이 ‘친구’를 만들던 2000년대 초반 장엄한 분위기의 광안대교는 흔적조차 없다.

    그런 변화의 와중에 ‘친구’의 느낌을 여전히 살려내주는 동네가 국제시장 · 남포동 · 광복동을 잇는 굽이굽이 시장길, 골목길이다. 여기는 여전히 사람들이 바글대며 살아간다. 사람과 삶과 굴곡진 인생살이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그건 약간 비릿하면서도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 특유의 군내 같은 것이다.

    이 길을 지나가는 데는 빠른 걸음이 부적절하다. 중간중간 멈추고, 구경하고, 사 먹고, 잡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천히 어슬렁거리게 만드는 지역이다. 그러다 막상 남포동 부산극장 같은, 이제는 허름해지고 비루해진 옛 극장과 마주치면 왠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월이 정말 무상한 것이다. 그 옛날 ‘친구’ 속 그 친구들처럼 숨차게 달리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다.

    곽경택만큼 자신의 소속, 그 정체성을 상업적으로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활용하는 감독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는 부산 토박이다. 이미 오래전 부산을 벗어나 영화를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자기가 ‘팔아먹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아이템은 부산에 몽땅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주요 작품 대개가 부산을 베이스로 하고 부산 곳곳을 무대로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무궁무진한 부산 아이템

    탁 트인 남동해를 만끽할 수 있는 해운대 해변은 기본이고, 또 다른 명품 해변인 광안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황령산 공원, 영도다리와 태종대, 자갈치시장(이제는 현대식 수산시장 건물로 바뀌었지만) 등등은 그가 영화를 찍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이다.

    영화적 공간만 부산에서 따오는 게 아니다. 부산의 말씨, 그리고 무엇보다 부산적 정서를 그는 고스란히 영화에다 옮겨 싣는다. 이상하게도 그가 구사하는 ‘부산식’의 모든 것을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지역색을 감추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보편적인 느낌을 강렬하게 전한다.

    곽경택의 부산은 결코 주변이 아니다. 지방도시가 아니다. 부산은 보란 듯 중심이며 주인공이다. 곽경택 덕분에 부산은 서울에 이은 ‘제2의 도시’ 따위의 얘기는 듣지 않게 됐다. 부산은 명실 공히 그냥 부산 스스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명백히 곽경택의 역할이 컸다.

    만들기만 하면 다 황금으로 변하는 미다스의 손이 곽경택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곽경택만큼 기복이 심한 감독도 드물다. 그는 성공과 실패를 밥 먹듯 반복해왔다. 사람들은 그가 늘 잘나가는 감독 대열의 선봉에 서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그의 초창기 시절은 더했다. 장편 데뷔작 ‘억수탕’은, 우리 영화계 사람들에게 ‘영화는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억수로 망한’ 작품이 바로 ‘억수탕’이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작품으로 부산 동아대를 배경으로 찍은 ‘닥터 K’도 모호한 제목 탓인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태풍’ 이후 6년의 슬럼프

    ‘억수탕’은 부산 변두리 지역의 한 공중목욕탕과 그 안을 들락거리는 사람들, 특히 서민들의 풍경을 담아낸 작품이다. ‘닥터 K’는 일종의 판타지 미스터리물인데, 기(氣)로 불치병을 치료하는 의사 얘기였다. 아무래도 그때로서는 조금 이른 얘기였다. 다소 어설퍼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그가 영화 초년병인 1995년 찍은 단편 ‘영창 이야기’ 때문에 제작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그만큼 이 단편은 당시 영화계에 새로운 감독의 출현을 알린 작품이고, 사람들은 일찌감치 곽경택이 큰일을 터뜨릴 사람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처음 내놓은 두 작품은 여지없이 ‘꽝’이 되고 말았다.

    그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소위 ‘터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부산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부터다. ‘친구’(2001), ‘똥개’(2003)’, ‘사랑’(2007)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 중간중간 선보인 ‘챔피언’(2002), ‘태풍’(2005)은 들인 공, 쓴 돈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결과가 베스트가 되지 못했다.

    특히 한국 영화 사상 처음이라는 소리를 들은 대형 해상 블록버스터 ‘태풍’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인데, 곽경택이 그동안 벌어들인 영화 수익을 한 방에 날린 작품이 됐다. 곽경택은 ‘태풍’으로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 사람들은 그가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그런 감이 적지 않았다. 주진모 주연의 ‘사랑’이 간신히 체면치레한 것을 제외하고 ‘태풍’을 만든 이후 약 6년간 슬럼프를 겪었다. 한석규·차승원 주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아예 그가 대타로 들어가 연출한 작품이다. 중간에 감독이 바뀌었으니 프로덕션 과정이 얼마나 속 시끄러웠겠는가. 그럼에도 ‘역시 곽경택’이라는 소리를 들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곽경택이 중간에 들어가 연출을 맡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권상우·정려원 주연의 ‘통증’은 언뜻 용산 사태를 방불케 하는 뛰어난 사회·정치적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흥행에서는 톡톡히 실패를 맛본 작품이다. 그즈음에 그는 자신이 젊을 적 만든 단편 ‘영창 이야기’를 초저예산 장편영화로 다시 찍을 결심을 한다. 오달수가 주연을 맡은 ‘미운 오리새끼’가 그것인데, 이 영화도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곽경택이 이전의 곽경택과는 다른, 또 다른 곽경택이 돼가고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는 그때,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이면 늘 그렇듯이 진정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돈이 아니라 열정과 의지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로 복귀하고 싶어 했다.

    “나의 걸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미운 오리새끼’는 단순히 곽 감독의 초심만을 담고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거기엔 또 다른 복심(腹心)이 들어 있었다. 그는 지금의 2010년대를 보면서 1980년대, 정확히는 1987년의 혹독하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고 봤다. 당시 우리 사회는 혼란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우리 사회는 그때의 절망을 극복해냈는가, 우리 사회는 정말 조금이라도 진화했는가, 오히려 결코 변화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건 영화감독으로서 이름을 얻고 크게 성공했다고 하는 나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자성과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코미디와 드라마로 촘촘히 포장해내고 있지만, 그래서 늘 에둘러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업영화의 대가로 불리는 곽경택의 영화에는 종종 우리 사회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정치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지형도를 지닌 채 관통된다. ‘미운 오리새끼’는 병영이라는 작은 우주를 통해 우리 사회 전체, 곧 큰 우주를 대조하고 비교하게 만든다. 병영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웃지 못할 소동극은 우리 사회가 여태 겪고 있는, 일종의 ‘잔혹한 코미디’와도 일맥상통한다고 그는 빙글거리며 얘기한다. 그가 그때 이렇게 얘기한 기억이 난다.

    “데뷔하고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영화가 가진 두 가지 속성 주변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살아온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미운 오리새끼다. 이미 거위가 됐다고 착각했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오달수를 제외하고는 배우 전원을 신인으로만 채우며 나를 거칠게 몰아세운 것도 그러한 자각을 스스로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서 한창 영화 공부를 할 때 스승은 곧잘 칠판에 ‘compromise’(타협)란 단어를 쓰곤 했다. 그런데 그걸 내가 지금껏 잘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다. 예술과 돈의 영역에서 진실로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자문했다. 이번 영화는 바로 그런 내 내면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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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텔링’

    그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친구’의 큰 성공 이후 나는 계속 조금씩 까먹으면서 작품을 한 것 같다. 그렇게 성공의 파이를 파먹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 아니냐는 깨달음이 들었다. ‘태풍’으로 엄청난 빚을 지고 좌절의 늪에 빠졌을 때 일본의 한 큰손 제작자가 내게 이런 얘기를 한 것이 기억난다. 피카소의 작품은 수천 점이다, 그중에서 200여 점만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걸작은 계속되는 노동과 노력에서 나온다, 걸작은 걸작을 만들려는 생각과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 내게서는 걸작이 나오지 않은 셈이다.”

    흔히들 누군가는 “스토리는 되는데 텔링이 안 된다” 하고, 또 누구는 “스토리 없이 텔링만 한다”고 한다. 곽경택은 스토리와 텔링이 언제나 뛰어난 감독이다. 그는 늘 새로운 작품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극비수사’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 긴가 민가 하는 분위기였다. 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유괴 사건 이야기다. 이 사건을 맡게 된 공길용 형사(김윤석)는 아무리 날고 기고 애를 써도 범인의 꼬리를 잡는 데 실패한다. 그 와중에 그는 신기가 있다는 점쟁이 김중산(유해진)의 예측 아닌 예측에 점점 더 귀를 기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사는 공개냐 비공개냐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데 이는 곧 범인을 잡을 것에 주력하느냐, 아이를 찾을 것에 힘을 쏟느냐가 달렸기 때문이다. 공개수사를 한다는 것은 범인을 잡겠다는 것이고, 아이는 이미 유괴돼 살해된 것으로 추정 혹은 단정한 것을 의미한다. 영화는 수사 공개냐 비공개냐를 축으로 사람들의 생각, 이해관계, 시대의 풍속도를 씨줄 날줄로 엮어놓는다. 그 미세한 스토리의 촘촘함이란!

    ‘미운 오리새끼’처럼 ‘극비수사’ 역시 과거로 돌아간 작품이다. 혹시나 박정희 시대의 엽기적인 사건을 통해 지금의 박근혜 시대를 풍자하고 비교해보려는 것이었을까. 실제로 지금 정부 들어 얼마나 많은 대형 사건이 일어났는가. 곽경택 본인은 손사래를 치며 제발, 절대, 그리고 부디 그런 정치적인 색안경일랑 끼고 보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자꾸 이상한 상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그 자체가 때론 정치가 된다. 아마도 사람들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300만에 가까운 관객이 이 영화를 찾는다는 건 바로 그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풍광, 사투리, 지역정서 모든 게 영화가 된다
    언제나 영화의 고향

    ‘극비수사’는 시작은 부산에서 하고, 일은 서울에서 벌이고, 정리는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서 하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건, 곽경택의 영화 인생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에는 어물이 쏟아지는 자갈치시장의 옛 풍경도 잠깐 나온다. 1978년에도 KBS는 여의도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당시 여의도광장은 ‘5 · 16광장’이라 불리기도 했다. 영화는 주인공이 여의도 KBS 주변에 잠복해 있다가 눈앞에서 범인을 놓치는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그 서스펜스를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만큼 연출이 완벽했다는 얘기다.

    부산은 곽경택 감독 한 명, 그의 영화 서너 편으로 해석되고 에둘러 설명될 수 있는 도시가 아니다. 부산은 명실 공히 영화의 도시 아니던가. 그럼에도 부산에 가면 곽경택의 영화 ‘친구’가 자꾸 생각난다. 곽경택의 영화를 생각하면 자꾸 부산을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도시가 된다. 반대로 도시도 영화가 된다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부산은 언제나 영화의 고향이다. 영화는 정녕 그곳, 부산으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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