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키프로스 파포스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입력2015-07-24 10:5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파포스는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 섬 남서부 해안에 위치한 세계유산도시다. 사랑과 미(美), 다산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리스 신화의 장면을 새겨 넣은 바닥 모자이크를 보노라면, 아득히 먼 신화의 시대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지난 연말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 섬의 파포스(Paphos)를 방문했다. 이곳 대학교수로부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참석차 이탈리아 피렌체에 가는 길에 잠깐 들러 한국 정자건축에 대해 강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파포스?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이름이라 호기심에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파포스에 도착해서야 이 도시가 고고학 유지(遺址)로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파포스, 사이프러스, 키프로스

    키프로스 남서부 해안에 자리한 파포스는 미(美)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태어난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한때는 오거스타(Augusta)라고 불렸으며 현대 그리스어로는 Π·ccedil;φo·aacute;라고 한다. 파포스는 그 자체가 세계유산 등재 명칭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팔래파포스(Palaepaphos, Old Paphos)와 네아 파포스(Nea Paphos, New Paphos)로 나뉘었다. 오늘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네아 파포스다. 미국인들은 이곳을 ‘사이프러스’라고 부르는데, 현지인들은 키프로스라고 불리는 것을 선호한다.

    파포스는 일찍이 1980년에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이 도시는 고고유지(考古遺址)의 연속유산(a serial archaeological property)으로, 3종류로 구성된 2개 지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카토 파포스 도시(the town of Kato Paphos), 다른 하나는 코우클리아 마을(the village of Kouklia)이다. 카토 파포스에는 아프로디테의 성지인 네아 파포스 고대 유적과 왕의 무덤군으로 알려진 타포이 톤 바실리온(Tafoi ton Vasileon, Tombs of the Kings)이 포함되고, 코우클리아 마을에는 아프로디테 성소인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 및 팔래파포스가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올림푸스 12신 중 하나인 아프로디테가 인류 역사상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줬기에 이곳 유적은 아프로디테 숭배와 밀접하게 연관됐다는 점에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보편적 가치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 중 (ⅲ)과 (ⅵ)가 충족됐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ⅲ)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명의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돼야 한다.

    (ⅵ) 사건이나 살아 있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뛰어난 보편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 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돼야 한다.

    (ⅲ)과 관련해 키프로스는 기원전 6000년 무렵부터 그리스 선사시대의 다산(多産)의 신을 숭배했다. 이곳 아프로디테 신전은 기원전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네아 파포스의 모자이크 유적지는 아주 희귀하면서도 세계적으로 대단히 정교한 작품으로 인정된다. 이 모자이크들은 기원전 336~146년 그리스 시대부터 비잔틴 시대(330~1453년)에 걸쳐 조성됐다. 궁전, 저택 극장, 요새, 그리고 바위를 잘라 만든 기둥으로 둘러싸인 무덤(rock-hewn peristyle tombs) 등도 예외적인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됐다.

    (ⅵ)와 관련해서는 고대 파포스인들이 믿은 다산의 신이 미와 사랑의 상징, 아프로디테로 발전해 이 여신을 숭배하는 종교 및 문화로 이어졌기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됐다.

    이런 보편적 가치를 증명하는 양대 기준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완전성(Integrity)이다. 파포스는 아프로디테 숭배와 관련한 고고유적지, 희귀한 모자이크 유적지, 민간용, 군사용, 장례용 건축까지 모두 건축 구성의 진정성이 높다고 인정됐다. 완전성은 이런 유적들이 모두 291ha(약 88만 평)에 달하는 연속적인 영역 안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인정됐다.

    키프로스는 국가유적관리 관련법에 고고유지 주변을 ‘규제구역(Controlled Area)’으로 설정했지만 사실상 완충지역은 따로 없다. 이는 유적을 무시하거나, 유적 보호에 해가 되는 과도한 개발이 이 나라에선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화경관을 위협할 정도의 개발 압력에 대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처리할 방침이라는 키프로스의 설명을 유네스코가 인정한 것이다.

    파포스 중세 성

    Medieval Castle of Paphos

    파포스 항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축물은 파포스 중세 성이다. 애초에는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지은 비잔틴 양식의 요새인데, 프랑스 출신 십자군 기사로 키프로스 왕위에 오른 뤼지냥(Guy de Lusignans) 집권 시기에 새로 지었다가 16세기 오스만 침공 때 베네치안에 의해 해체됐고, 오스만이 다시 섬을 장악한 후 재건축됐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항구 보호용 시설로도, 감옥으로도 사용됐다. 19세기 후반 영국 지배를 받으면서는 소금 창고로도 쓰였다.

    이 성은 1935년 고대 기념물 유적으로 지정된 후 오늘날 파포스의 주요 상징물 중 하나로 간주된다. 성 앞에선 다양한 문화축제가 벌어지는데, 해마다 9월이면 파포스 아프로디테 페스티벌의 오페라 주무대로 사용된다. 해변을 따라 예술품을 설치해놓은 것 또한 볼만하다.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카토 파포스 고고유지

    The Archaeological Sites of Kato Pafos



    이 유적지는 파포스 항구에 있다고 할 정도로 바다에서 가깝다. 주로 로마식 빌라로 된 주거지 유적으로, 엄청난 모자이크 유적이 남아 있어 전체 지구를 파포스 모자이크(Paphos Mosaics)라고도 한다. 현재도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다.

    모자이크(Mosaic)란 작은 돌이나 유리 타일 등의 조각을 사용한 ‘쪽무늬 그림’을 말한다. 누가 창안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모자이크 기법은 직접기법과 간접기법으로 나뉘는데, 파포스 모자이크는 직접기법 중 하나로 제작됐다. 즉, 작은 조각인 테세라(tessera)를 하나씩 붙여나가는 것이다. 뜯어서 박물관에 전시되지 않았다는 점,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모자이크의 내용을 만들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디오니소스 주택, 테세우스 주택, 아이온 주택, 오르페우스 주택 및 사계절 주택의 바닥 모자이크 관람이 가능하다. 1962년 한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이후 40여 곳의 모자이크가 발굴됐다. 모두 2~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술과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 주택에선 말, 호랑이 등 동물 모자이크를 많이 볼 수 있다. 공작이 날개를 활짝 편 모자이크가 있는 공작방, 기하학적 모자이크가 있는 방, 바닥 모자이크를 볼 수 있도록 관람 동선을 목조로 만든 것 등이 볼만하다. 스킬라(Scylla) 자갈 모자이크도 놓쳐선 안 된다. 스킬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좁은 물가에 사는 괴물.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카리브디스(Charybdis)라는 바다 괴물과 대치되는 신이다.

    아테네 국가를 창건한 영웅, 테세우스는 ‘묻혀 있는 보물’이라는 뜻이다. 테세우스의 어원은 시저러스(Thesaurus). 어원이나 유사 단어를 찾는 사전을 시저러스라고 한다. 테세우스 주택에는 아기 아킬레스를 스틱스 강(River Styx)에서 목욕시킴으로써 영원히 살 수 있게 했다는 그리스 신화가 서려 있다. 신화에서 스틱스 강은 삶과 죽음, 즉 땅과 지하세계 히데스의 경계로 통한다.

    아이온은 영원한 시간(Eternal Time)을 상징하며 젊은이가 원(circle)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이온 주택은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된 이후에 발굴됐다. 4세기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디오니소스의 목욕’ ‘레다와 백조’ ‘카시오피아와 미인대회’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대결’ ‘오니소스의 행차’ 등의 모자이크를 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조인숙

    1954년 서울 출생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성균관대 석·박사(건축학)

    서울시 북촌보존 한옥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울시 건축위원회 심의위원

    現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 역사건축구조 국제학술위원회 부회장, 국제건축사연맹 문화정체성-건축유산위원회 국제공동위원장


    오르페우스는 잘 알려진 바대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시인이자 악사. 리라라는 전설적 악기의 명수다. 오르페우스 주택은 파포스 모자이크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중요한 유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키프로스를 점령한 영국군이 모자이크를 발견했지만, 전쟁 중이라 일단 덮어뒀다가 추후 발굴하러 왔지만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해 또다시 덮었다고 한다. 이후 1978년 발굴이 재개돼 이 모자이크들이 대규모 주택의 일부라는 사실이 확인됐고, 한층 체계적인 발굴로 1984년 오르페우스 모자이크를 찾아냈다.

    사계절 주택은 디오니소스 일부로 여름-봄-가을-겨울 사계절을 순서대로 묘사하는 바닥 모자이크가 있다. 2세기 무렵의 것으로 추정된다.

    페트라 투 로미우

    Petra tou Romiou

    페트라 투 로미우는 그리스의 바위(Aphrodite‘s Rock) 라는 뜻으로 이 바위에서 사랑과 미, 다산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물거품 속에서 태어났다고 해 아프로디테 바위라고도 한다. 이 바위 주변에서 수영하면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는다는 미신이 전해진다. 그러나 물살이 거친 곳이라 수영이 금지돼 있다. 바위 위에 올라가는 것도 안 된다.

    앞쪽 커다란 바위는 사라센 바위(Saracen Rock)라고 한다. 서사시 디게니스 아크리타스(Dighenis Akritas)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비잔틴 영웅 바질(Basil, 디게니스 아크리타스의 별칭이기도 함)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 사라센 해적에게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바질은 그리스와 아랍의 피가 반씩 섞인 사람이라 ‘디게니스(Two-blood)’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아프로디테 체취 풍기는 그리스 신화 속 도시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