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불행한가. 왜 우리는 아픈가. 왜 우리는 두려운가. 삶의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한 수련자의 명쾌한 진단과 해법. 그는 말한다. 몸을 잘 놀리는 방법을 알면 마음의 행복이 찾아오고 세상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왜 그런가. 왜 자신의 삶인데 즐겁게 살지 못하고 힘들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살아야만 하는가.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교육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인성이 메마르고 체육이 사라지고 다스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남긴 가장 뛰어난 유산이 지혜로운 삶의 방법론이었음에도 이를 까맣게 잊고 살기 때문이다. 이제, 그 유산 중 일부를 지금의 시대에 되살려 정말로 잘 살고 잘 죽는 법을 한번 되새김할 때다.
몸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그 진동수를 낮추어 다르게 드러낸 것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몸이 그 진동수를 높여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몸이 곧 나라는 믿음은 운전자 없는 자동차를 믿는 것과 같다. 바야흐로 몸을 통해 마음공부에 들어가는 시대다. 역사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알아야 변화하는 시대의 신인류가 된다. 적응자는 생존이요, 부적응자는 퇴출이다.
나는 기(氣) 수련을 하는 명상가다. 이를 체험하고 학문화하는 데 30여 년을 투자한 사람이다. 주변에선 나를 도사라고 한다. 기학박사이기도 하다. 내 자랑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까닭은 도사는 예언을 하고 박사는 예측을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요인이 딱 겹치면 세상의 변화를 미리 읽을 수 있다. 앞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예측적인 면에서 살필 수 있고 예언적인 변화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말하건대, 시대정신이 개인의 위대함, 스스로 각성하는 시대로 변화할 것임을 예언한다. 산업화, 정보화 시대를 거쳐 영성의 시대로 바뀔 것임을 예측한다. 다른 말로 하면 물질주의 시대에서 정신의 시대로 변증법적 변화를 이룰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예를 두어 개만 들자면 간단하다. 경제라고 이름 붙여진 생존의 시대는 한계에 다다랐음이 첫 번째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난 1000만 년 전(이것은 고고학의 역사적 사실이 아닌 수련자들의 내부적 정보다)부터 지금까지 인간의식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첫째도 생존이요, 둘째도 생존이다. 생존이 뒷받침됐을 때 가치 실현의 욕심이 드러났다.
그 생존의 철학이 모든 문제의 알파요 오메가다. 생존이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족 보전의 욕심이 뒤따라 나타난다. 개인 중심의 확대가 가족인 것은 종족 보전의 울타리인 것이다.
몸 가지고 놀기
이것이 해체되고 있다. 시집장가를 안 가고 자녀 생산이 둔화된다. 단순히 경제적 면에서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지만 시대정신의 변화에 대응하는 인간 본성의 외부적 드러남이 답이다. 생존의 욕망과 종족 보전의 욕망에서 인간 개개인의 영성의 발로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내 자신의 소멸이 몸의 사라짐뿐이지 생명 그 자체의 흐름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무의식이 알아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삶의 의식 변화 한두 개만 눈치채면 시대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지구는 왜 이리 뜨거워지는지를 도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두 번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20세기 초, 독일 물리학자 슈만이 지구의 공명 진동 주파수를 측정했다. 7.83메가헤르츠, 즉 전리층의 진동수가 일정함을 알아낸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이 진동수가 작동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21세기부터 갑자기 진동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구 온난화가 문제 되기 이전이다. 지금은 12메가헤르츠로 올라간 상태다.
무엇을 뜻하는가. 자연재해가 대륙의 충돌이나 마그마의 분출로만, 지진과 홍수가 과학으로만 예측되고 그 원인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지구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진동수도 같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인간도 온몸이 진동수의 이합집산으로 이루어진 상태인 만큼, 지구 진동수가 올라가면 당연히 의식의 진동수가 올라가야 한다. 뜨거워져야 정상이다.
바로 이러한 상태, 즉 자연의 변화와 지구의식의 변화, 인간의식의 변화 시점이 눈앞에 다가왔음을 뜻한다. 도사의 예언이거니와 박사의 예측적 분석이기도 하다. 두 가지를 예로 들었지만, 분명 시대정신과 자연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투쟁, 상극의 시대가 폭발 지점을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분명 미친 사람이 많이 나올 것이고 기존의 가치관, 제도, 사회현상은 혁명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순수 영성의 시대에 맞는 사람들은 적응할 것이요, 과거에 매여 지식 위주의 사고에 묶인 사람들은 고(高)진동수의 압력에 스스로 도태될 것이다. 정치든 교육이든 경제든 폭발적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다음 생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환생으로 적응기를 거친 다음에.
여기에 우리의 숙제와 맞물린, 잘 죽을 준비의 과제를 던져보기로 한다. 어떻게 놀 것인가, 무엇을 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맞을지가 화두다. 영성의 시대, 정신의 발현 시대, 깨달음의 시대를 준비하고 노년의 놀이를 잘 엮는 사람들에게 몸 가지고 놀기의 숙제, 그 해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돈 들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필요치 아니하다. 복지 타령을 할 일도 없고 자식에게 얽매일 필요도 없다. 오로지 내 자신의 의지와 시간만 내면 된다. 특별한 장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정치인에게 기댈 일이 아니다. 재벌과 선생에게 기댈 일은 더더구나 아니다. 종교인과 지식인에게 답을 구할 필요도 없다. 단군 이래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 60 이후 인생의 열매를 어떻게 맺을지를 논해보자. 필자의 내공 수련 30년 결과물이기에 그저 필요한 사람만 이 글을 정독할 일이다.
동물적 생존성과 신성
몸은 무엇인가. 몸을 이끄는 내 생각은 무엇인가. 생각의 근원은 어디서 왔는가. 도대체 나는 무엇이고 누구란 말인가. 무엇하러 이 지구별을 방문해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바로 몸 가지고 놀기의 근원적 목표다. 이를 위해 선지자들의 언어적 유희, 성경과 불경의 글자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모든 해답이 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생리학적, 해부학적 전문지식 대신 기초적인 감각만 가졌다면 누구나 해답을 얻는다. 지식의 전문적인 해설서, 의사의 고난도 병명, 종교인의 뜬구름 잡는 마음 위안서 등은 그저 참고만 하시길.
내 안에 들어 있는 느낌 세 가지. 바로 동물적 생존성이 그 하나요, 인간적 더불어 삶의 영위가 그 둘이요, 하느님적 신성의 발현이 그 셋이다. 존재의 세 가지 드러남, 우주의 삼극, 색과 빛의 삼원소 등이 모두 내 몸 안에 있다. 앞의 두 개는 이해되는데, 신성이라는 하느님의 속성이 어째 내 안에 있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던진다면 당신은 그냥 동물이다. 짐승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의 원어가 짐승이다.
동물적 속성의 기본이 나를 드러내는 힘이다. 파워다. 돈의 힘, 권력의 힘, 미모의 힘 등이 바로 그러하다. 왜? 이 힘이 있어야 지구촌 안에서 벌어지는 먹이활동의 승리자로서 생존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다른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얻어야 살아가도록 내 안의 신성이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류는 이 힘을 추구해왔다. 전쟁의 근본 원인도 먹이활동에서 이기기 위함이다. 내 유전자를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해서다.
이 힘, 바로 생존과 종족 보전의 능력을 기르는 힘이 내 몸 안에서는 정력이란 이름으로 통칭된다. 바로 음식과 호흡을 통해 길러지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부분의 내 몸이다. 이 몸 안의 내공, 즉 정력의 힘이야말로 몸 가지고 놀기의 일차 수준이다. 이 정력의 단순한 표현이 정(精)이다. 이를 충만하게 하라. 바로 몸을 가지고 노는 방법의 첫 번째 숙제다.
회음 호흡
어떻게 이 힘을 기르는가. 내공의 처음, 아랫배를 튼튼하게 하는 근원, 바로 회음이다. 항문 바로 옆 혈자리 이름이다. 케겔운동이라 부르는 항문 쪼기는 바로 이 회음으로 호흡하는 기초 근육 운동이다. 그러나 서양 운동의 기본인 케겔운동은 바른 회음 호흡이 아니다. 의식이 집중된 느낌을 갖고 회음으로 숨을 쉬어라. 이것이 비결이다.
몸 가지고 하는 가장 기초적인 놀이다. 누워 하건 앉아 하건 걸으며 하건 바른 회음 호흡은 건강 비결이요, 내공의 힘을 기름이요, 장수의 기본 조건이다. 회음에 코끝을 두고 숨길을 배꼽까지 끌어올린 후, 다시 천천히 회음으로 내쉬면 된다. 단, 이때 아주 가늘고 긴 숨으로 숨길을 잡아야 한다. 절대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 아주 미미하고 약하게, 그리고 가늘고 길게!
내쉴 때 주의할 점은 마지막 숨의 끝에 회음을 꽉 닫아주는 것이다. 헤벌쭉하게 벌리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좀 무식한 말로 ‘똥꼬’를 힘차게 닫아라, 숨을 내쉴 때. 이것을 한번 시작하면 300번 하는 것이다.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50개씩 끊어서 서서 하고, 앉아서 하고, 누워서 하고, 걸으면서 하고, 소리내 해보면 그 정도 숫자는 채울 수 있다.
왜 회음이고 왜 항문인가. 몸의 기능을 가만히 살펴보면 머리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 몸통은 이의 해석과 환류(還流), 엉덩이와 아랫부분은 배출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것이 굳어져 쉴 새 없이 움직임을 계속하면 중고 자동차처럼 단순 반복을 하다 어느 날 고장 나서 폐차 처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보를 수집해 해석하는 뇌의 영역을 기운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운은 집중하는 곳에 몰린다. 손끝에 집중하면 손에 모이고, 머리에 집중하면 머리에 모이는 것이다. 현대인의 생활 습관은 먹이가 있는 곳, 짝이 있는 곳에 온 마음이 집중돼 눈 뜨고 있는 시간은 거의 전부 뇌에만 집중한다. 이것이 습관의 굳어짐이다. 질병의 원인이며 늙어감의 원인이다. 집중의 제일 좋은 방법이 숨길을 따라 생각을 모으는 것이다. 그래서 회음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음혈이야말로 쾌감의 출발점이며 땅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고차원적인 정보 수집 장치다.
진짜 술을 좋아하는 주선(酒仙)의 경지에 이른 사람은 항문으로 술을 마신다. 진정한 마약쟁이는 항문으로 마약을 주입한다. 장이 굳어 변비에 걸린 사람은 항문으로 커피나 약을 넣어 관장요법을 한다. 일정한 경지에 오른 요가 수련자는 항문으로 숨을 쉰다. 우리 같은 선도 수련자도 명상으로 들어가기 전에 회음으로 땅의 기운을 빨아들여 기초 에너지를 습득한다. 즉, 몸을 움직이고 건강하게 만드는 일차원적 정보수집, 바로 회음을 통해 기운을 모으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차원 높은 건강법이요, 병원에 가지 않는 생활법이요, 노년의 부부생활을 원만하게 만드는 비법이다.
회음 호흡이 잘되고 있음을 어떻게 본인이 느끼는가. 일주일간 하루 300회를 충실히 했다면 먼저 배설의 쾌감을 체험한다. 아주 굵은 황금색 똥이 쉽사리 빠져나온다. 이어 오줌발이 강력하다. 다음에 두통이나 가슴 답답증이 없어지면서 숨이 아주 깊어진다. 계속하면 숙면을 이루고 고질적이고 잡스러운 질병이 사라지는 체험을 할 것이다. 100일 정도 해보면 입안에 단침이 고인다. 이빨 사이사이로 설탕물이 흘러나오는 체험을 해보시라. 내 몸이 이렇게도 내 의지대로 바뀌는구나, 하는 희열을 느낄 것이다.
누워서 침 뱉기?
두 번째로 몸을 갖고 노는 방법은 심장의 감정 기운을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회음호흡은 에너지의 운용과 조절이지만 이를 있게 한 근원적인 자리는 내 생각이다. 심장이란 명칭이 왜 마음 심(心)자를 쓰는지 한번 고민해보자.
마음이란 친구는 엄밀하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몸에 의해 외부 조건에 대해 반응해 일으키는 마음, 1차 표면의식이다. 이 표면의식을 있게 한 깊은 내면의 세계, 무의식이 두 번째다. 마지막으로 진짜 마음이라 불리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신의 속성, 절대의식으로 불리는 우주의 근원 의식이다. 신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깊은 절대의식은 마음자리를 연구한 디팩 초프라에 의해 명명됐다. 동시성의 원리를 가지며 종교의 근원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을 있게 한 창조주의 자리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심장을 가지고 놀아보자고 한 것은 1차 표면 의식과 2차 무의식의 에너지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 바로 심장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무의식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프다던가.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건 참을 수 없다고 한 진정한 의미를 아시는가. 그냥 시기와 질투가 남다르게 많다는 부정적 의미보다 신의 속성이 강하다는 긍정의 의미다.
좀 더 도사적 의미에서 말한다면 태초에 영혼과 물질을 창조한 신들의 경쟁이 시작됐을 때, 나의 창조물이 다른 창조물의 먹이가 돼 에너지의 변환 상태를 경험한 창조주 신의 속성이 바로 배 아픈 건 못 참는 무의식의 신성이다. 즉, 나의 깊은 내면에는 내 창조물에 대한 애착, 지구별에서 창조의 놀이를 시작한 신의 속성이 우리 한국인에게 유별나게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가장 종교적이고 유일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내 심장을 바라보고 놀자는 것은 이 깊은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외부적 드러남의 변화를 감지하며 놀아보자는 뜻이다.
먼저 정치, 경제, 교육, 언론, 군사, 문화 등 우리 시스템의 계(界)를 하늘의 관점에서 보자. 하나의 계는 다른 여러 조직과 인드라의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서로 영향을 미친다. 국무총리 청문회에서의 흠집 내기는 제살 파먹기다. 흠집을 내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흠집을 낸다. 다른 기업을 넘어뜨리는 기업은 똑같이 망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나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늘자리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행위와 마음에 대한 깊은 연구와 명상의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서너 명의 총리 후보자 낙마의 뒷면에는 서로 잘났다는, 신의 속성이 나뿐이라는 속성이 작동한다. 하늘자리에서 보면 행위를 하는 모든 마음 작용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행위라는 사실임을 모른 채.
스트레스 치유법
만일 당신이 상대방에게 욕을 하거나 상처를 건드린다고 해보자. 상대에게 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두뇌 속에서 욕에 대한 에너지를 발현하고 나서 외부로 그 욕을 발산한다. 말이라는 진동을 통해. 욕을 들은 상대에게서 부정적인 진동이 많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욕을 하는 내가 부정적인 진동수를 많이 경험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욕하는 사람이 먼저 자기를 100% 때린 후 상대에게 10% 정도의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누가 손해인가.
여기서 심장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소개한다. 사실 명상이라고 이름 붙인 모든 행위가 이 심장 가지고 놀기다. 무의식과 표면 의식이 상호 작용을 하며 영향을 미치는 곳이 심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이름 붙인 부정적 의미의 진동수는 바로 심장에서 발생하는 생체 전기의 진동수가 낮음을 의미한다.
즉 분노와 짜증, 걱정, 불안 증세의 모든 것은 심장 생체 전기의 효과 때문이다. 긍정의 고진동 전기와 부정의 저진동 전기를 서로 비교하며 이것이 심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는 행위가 바로 심장 가지고 놀기다. 고급스럽게 말하자면 내가 선택의 권한을 가진 진동수 조절 능력을 확인하는 행위다.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과거의 여러 원인 중에 후회하는 부정적 선택의 결과를 한번 떠올려보자. 만일 아내를 선택한 것이 후회된다면 당시의 상황과 환경 여건을 있는 그대로 떠올려보자. 당시의 감정이 어떻게 내 심장에 작용했는지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좋아했을 당시, 그 기분 그 감정을 떠올려보면 분명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마누라가 몹시 밉다면 미운 현상 하나만을 떠올려 온몸이 다운되는 경험을 한번 해보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진동수를 체험하면서 그 기분, 그 감정이 어떻게 심장에 작용하는지를 회상해보시라.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 박동수가 팍팍 뛰는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잘 놀 준비가 됐다.
만일 당신이 오장육부에 심각한 질병이 있다면, 부정적 진동수가 일상화돼 스트레스가 굳어진 결과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다. 한의학에서 이를 냉기라고 이름 붙인 이유가 바로 심장 생체 전기의 작용을 설명하는 용어다. 이것이 나를 다치게 하고 나를 때리는 장본인이다.
고강도 집중과 이완
오랜 기간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자신을 맡긴 사람이라면 이 심장 갖고 놀기를 통해 치유할 일이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 돈과 명예에 대한 관계 등을 마음껏 떠올려 보라. 그리고 그 떠올린 생각이 내 심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느낌으로 살펴보라. 분명 내가 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그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초능력자이므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파괴하며 유지할 줄 아는 능력자가 바로 나이므로.
세 번째, 몸 가지고 놀기의 진수는 두뇌 놀기다.
뇌! 모든 의식의 집합소요,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의 근원 물질이며 삶의 주관지인 동시에 심판소요, 구원의 핵심 장소다. 그런데 과연 이 몸 안에 있는 기능적 요인으로서의 뇌가 몸 전체의 사령부이면서 나를 나답게 하는 요소일까. 이 의문으로부터 출발해야 뇌 갖고 놀기의 의지가 생긴다.
답부터 말하자면 뇌는 생각을 창조하는 장소가 아니다. 단지 수신만 하는 장소다. 마치 라디오라는 몸체가 있고 그 속의 전파를 수신만 하는 것처럼, 뇌는 흘러다니는 우주의 생각을 수신해 몸 전체에 전파하고 다시 되돌리는 역할을 하는, 방송인 동시에 라디오인 것이다. 이 사실은 생리학적인, 해부학적인 설명이 아닌 생명 그 자체로 접근한 결론이다. 따라서 뇌를 가지고 놀 때는 기능과 구성에 관한 지식이 필요 없다. 이름도 요상하게 붙은 전두엽이니 뇌하수체니 페르츠 회로니 하는 것을 몰라도 보통 사람들의 느낌 영역만 체험하면 되는 것이다. 라디오 주파수처럼 AM이나 FM 영역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의 권한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만 온전히 믿고.
비결은 생각의 집중과 이완이다. 고강도 집중과 고강도 이완이다. 어떻게? 기도로!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은 생각의 집중일 뿐이다. 엄청난 에너지를 넣어 믿음의 힘을 체험해야만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 양손 끝에 의식을 집중하고, 손끝을 이마에 댄 다음, 강하게 원하거나 바라는 바를 100번 되뇌는 것이다. 그냥 중얼거리는 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내 의지를 담아 뇌의 한가운데, 의식의 중앙점인 이마 가운데를 생각한 다음, 거기서 내가 원하는 염원을 담아 내면의 소리를 내어 기도해보라.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아주 강력한 기운을 담는 내면의 에너지다. 그것도 한두 번만으로는 뇌를 깨울 수 없다.
늙음은 행복, 죽음은 축복
처음 하는 사람은 그냥흘러 다니는 생각, 표면 의식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루 이틀 계속해 강력한 염원을 담는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새 무의식의 세계와 접속하는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연세가 많은 분은 과거의 어느 한순간에 대한 강력한 회상의 방법을 써도 무방하다. 자신이 경험한 사실이고 현상에 대한 의심이 없기 때문에 생각 그 자체가 에너지다. 따라서 자신이 경험한 어느 순간을 시간과 공간, 그때의 감정과 기분 그대로를 떠올려 당시와 같은 방법으로 즐겨보는 것이다.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 온몸이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일정한 경지에 오른다. 예를 들어 골프에서 홀인원을 한 경험이 있다면 그 당시의 클럽, 동반자, 캐디, 그리고 샷 감각 등을 그대로 떠올려 치는 힘과 손에 맞는 느낌을 그대로 떠올려 힘과 기분까지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회상해보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몸이 그 당시의 호르몬을 그대로 생산하는 느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뇌 가지고 놀기의 진수는 이런 식의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럼, 이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50대 이상이라면 내가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에게 돈버는 기계로만 비친 건 아닌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따위의 허무감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때 줄 수 있는 답이 바로 이것이다. 즉, 나라는 존재는 그냥 존재했을 때 가치가 있는 것이지 무엇을 하려고, 어떤 것을 이루려고 이 땅에 존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뇌라는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을 통해 영적 에너지로 진화하려 빛으로 바뀐 그 무엇이기 때문에 존재 그 자체가 기쁨이고 희열이다.
물질놀이의 후유증
다른 무엇이 왜 필요한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이렇게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데 무엇이 더 필요한가. 늙어감이 슬픔이 아니라 행복이고 죽음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랜 기간이 필요치 않다. 생명은 뇌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의 소멸일 뿐이다. 육체는 감각기관의 세팅일 뿐이라는 점, 더 깊은 육감, 칠감, 팔감, 구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절대의식과 교감하는 것이다. 단지 깊은 집중과 완전한 이완을 통해.
세 가지 방법을 정리해보자. 첫째, 아랫배의 에너지를 얻어 정력을 강화해 건강을 찾아라. 둘째, 가슴 중앙의 심장을 통해 삶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감정의 변화, 그 주인됨을 알아라. 셋째, 뇌는 빛이 물질로 변한 초감각의 영역임을 확인하라. 이것이 삶과 죽음 그 자체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도구다.
이것을 우리 선조는 조화와 교화, 치화라는 이름으로 후손에게 전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가 셋으로 드러내어 나를 만들었고, 인간의 몸은 이를 찾아가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도 가르쳤다. 내 안의 신성이 생존이라는 물질놀이에 심취한 나머지 영적 각성이 나의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타난 지금의 각종 부정적 현상, 전쟁과 투쟁, 갈등과 질병, 인간관계의 파괴적 현상…. 이 모든 것이 몸이라는 물질 도구를 한 곳으로만 편중되게 사용한 결과물로 나타난 것이다.
정치인들에게 알리자. 스스로가 신성의 또 다른 결과물이요, 백성이 하늘 그 자체라는 확신을 갖도록 몸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숙달케 하자. 교육자들이게 이 놀이를 시켜보자. 우리 아이들이 모두 일등이라는 신기루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노인에게, 병든 자에게 이것을 주입해보자. 더는 건강보험과 복지라는 논란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행복한데 더 이상 무엇을 바란단 말인가. 21세기 국가의 지표, 새로운 생활철학과 교육이념. 이 모든 것을 개인의 위대한 힘으로 이끌어갈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