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아내를 사랑하니 때린다? 자신만 사랑하니 때린다!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걱정도 습관이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입력2015-07-24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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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은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른다. 사랑과 학대를 착각하기에 아내를 살해하고도 “너무 사랑해서 죽였다”고 말한다.
    • 진정한 사랑은 배우자를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 남녀 모두 독립적 인간으로 ‘따로 또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 사랑은 폭력과 양립할 수 없다.
    아내를 사랑하니 때린다? 자신만 사랑하니 때린다!
    심리검사를 하면 남자가 ‘마초 타입’인지 여자가 ‘천생 여자’인지 알 수 있다. 마초 타입 남자 대부분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를 것 같은 천생 여자를 찾아 헤맨다. 어쩌면 ‘사냥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 여자가 지아비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남자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할 뿐이다. 그녀가 원래 어떤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처음 섹스를 하기 전까지는 참는다. 하지만 섹스를 하고 나면 변한다. 이제 여자가 자기 것이 됐다는 생각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것을 우기고, 목소리를 높이고, 주먹질까지 하려다 참는다. 이 모습을 본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다시 ‘깨갱’한다.

    그러다 다시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이 온다. 결혼하게 될 때다. 혼인신고가 ‘족쇄’가 돼 아내가 달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녀와 나무꾼’ 시대의 얘기지만, 사실 선녀와 나무꾼처럼 잔인한 얘기가 또 없다.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옷을 감춰서 못 달아나게 한 뒤, 옷을 준다고 유인해서는 납치하고 성폭행한다.

    현대판 ‘선녀와 나무꾼’

    그런데 이 시대 여성들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참지 않는다. 남편이 욕을 하거나 때리면 이혼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나오면 또다시 남자는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하고 참는다.



    그러다가 진짜 본색을 드러낼 때가 있다. 남자가 임신한 여자를 때리면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한다. 그런데 남자가 임신한 여자를 때리는 것은 그 여자가 임신했기 때문이다. 선녀와 나무꾼 얘기로 돌아가보자. 나무꾼은 선녀가 출산할 때까지 친정에 못 가게 한다. 아이를 여러 명 낳고 나서야 그제야 안심하고 아이들과 친정에 가게 한다. 그런데 친정에 간 선녀는 자신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남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선녀와 나무꾼 시대에는 일단 임신을 하면 발목이 잡혔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의 머릿속은 아직도 선녀와 나무꾼 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섹스를 하면, 결혼을 하면, 여자가 임신을 하면 본색을 드러내곤 한다.

    가정폭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상황을 ‘인형 이론’과 ‘닻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형 이론’은 남자가 여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마음 속의 인형과 같은 모습에 맞추려는 심리를 의미한다. 남자는 자기가 생각하던 여자의 이상적인 모습에서 아내가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견디지 못한다. 인형은 완벽하고, 자기 의견이 없다. 그냥 상상한 대로 믿으면 된다. 사람은 다르다. 아내가 자신의 이상과 다를 때 남자는 자신의 상상에 끼워 맞추기 위해 여자를 윽박지르고 때리는 것이다.

    ‘닻 이론’은 왜 이런 나쁜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배가 바다를 항해하다 멈춰야 할 때 ‘닻’을 내린다. 남자들은 자신이 ‘닻’을 내릴 여자를 찾아 헤맨다.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면 여자가 더 이상 자신을 만나주지 않기에 처음엔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그녀와 첫 섹스를 하고 나면, 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여자가 임신을 하고 나면 닻을 내리려고 한다.

    이런 남자들은 아내에게 욕을 하고, 소리 지르고, 구타한 후에 그러한 행동이 애정의 표현이었다고 강변한다. 여자들 처지에서도 학대받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 그래서 어떤 피해여성은 남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남편이 화를 낸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다른 여자들도 다 맞고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TV에 나오는 이른바 전문가들은 “무관심보다는 서로 싸우는 것이 낫다”면서 잘못된 판단을 부추긴다.

    통제, 착취, 소유욕…

    하지만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상황에서 부부상담이란 불가능하다. 부부상담을 하면서 아내로부터 기분 나쁜 말을 들은 남자는 집에 가서 “그런 말을 왜 정신과 의사 앞에서 해서 나를 망신 줬냐”며 보복한다. 겁에 질린 여자는 그 후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 “잘 지낸다” “내가 잘못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남편이 원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는 치료가 잘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학대는 부부가 동등한 관계에서 대화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무관심보다는 서로 싸우는 것이 건전한 부부관계라는 말은 매 맞고 사는 여성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행위는 절대 사랑이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이 사랑이라면 남편이 아내를 더 많이 때릴수록 남편은 아내를 더 많이 사랑하는 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때려죽이면 죽일 만큼 사랑한 게 된다. 도대체 말이 되는가.

    우리가 누군가를 때릴 때는 미워서 때리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행위가 사랑이라면 그 남자는 그녀를 처음 만나 반했거나 사랑을 고백했을 때부터 때렸어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때린다는 것은 그 남자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임을 의미한다. 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기가 좋을 때 생색내듯이 잘해주고는 자신이 여자를 사랑한다고 주장한다. 학대자는 사랑을 주고받을 줄 모른다. 학대를 사랑으로 착각하기에, 이러한 남자들은 아내를 살해하고도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죽였다”는 터무니없는 변명을 한다.

    진정한 사랑은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그녀가 진정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따로 또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사랑은 폭력과 양립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폭력남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의도적인 거짓말일까. 겉으로 잘해주면서 속으로는 때릴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반드시 그렇진 않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여자에 대한 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를 때리지 않는 남자들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들이 느끼는 강한 집착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이 지닌 이러한 감정은 정상적인 사랑과는 거리가 먼 통제, 간섭, 착취, 소유욕, 집착, 질투다.

    술로 양심을 마취하다

    여자를 때리는 남자들은 여자가 불평 없이 평생 동안 자신에게 헌신해서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한다. 아내가 하녀처럼 죽어라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주는 생활비에 맞춰서 살기를 원하며, 주제 넘게 무엇인가 갖고 싶다고 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은 아내가 남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이기를 원한다. 아내가 매력적이고, 날씬하기를 원한다. 아내가 못 생기고 뚱뚱하다는 생각이 들면 절대 동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원할 때 섹스하기를 원한다. 아내가 갱년기가 돼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아파해도 개의치 않는다. 여자가 더 이상 관계를 갖지 않으면 다른 여자와 관계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자가 외도나 불륜에 대해 따지면 “섹스를 안 해준 네가 문제였다. 남자는 섹스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면서 합리화한다. 그들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여자를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이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자신의 이러한 욕망이 실현될 때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천국 같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이 실현되는 관계는 여자에게 생지옥이다.

    맨 정신으로 누군가를 때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남자는 여자를 때리기 위해 술을 마신다. 본인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때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술 취했을 때 만난 모든 이에게 폭력을 행사해야 한다. 반대로 평소 아내와 아이를 존중하던 사람이 술을 마시고 고성방가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자신을 제압하러 온 경찰은 때릴지 몰라도 자신을 말리려고 온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벙글거리면서 반가워한다.

    밖에서는 술에 취해도 실수하지 않는 ‘매너남’이 집에만 들어오면 아내와 아이들을 구타한다? 그가 가족을 때리는 것은 술에 취해서가 아니다.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아내를 때렸더라도 핑계가 될 수 없다. 필름이 끊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술을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을 마신 것은 결국 그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좀 더 용이하게 아내와 아이들을 욕하고, 괴롭히고, 때리기 위해 술을 이용한다. 술을 마시면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양심의 가책을 덜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본군이 학살을 자행하기 전 병사들에게 술을 먹여 양심을 마취시켰듯, 이런 남자들은 술을 마셔서 자신의 양심을 마취시킨다. 그들은 술을 마시지 말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요청을 자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으로 여긴다. 그들이 이런 생각을 유지하고자 하는 한 술을 끊을 수 없다. 폭력도 멈추지 않는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싫은 기색을 보이면 남편을 무시한다고 여긴다. 아내가 자신의 말을 받아들일 때까지 멈추는 법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면 대화를 한 거라고 생각한다. 남편의 집요함에 질린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약속을 했다고 여긴다. 남자의 말이 곧 법이다. 자기가 해주고 싶지 않은 것을 해달라고 하면 일단 못 들은 척 무시한다. 그럼에도 여자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내면 언성이 높아진다. 그 시점에서 여자가 잘못했다고 빌지 않으면 폭력을 휘두른다.



    아내를 물건으로 아낀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는 자신에게 아내를 때리고 욕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가장이 결정해야 한다.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같은 사소한 일부터, 믿을 수 없는 친구에게 집을 담보를 잡히고 보증을 해줄 지 같은, 집안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까지 자신만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 아내의 권리는 아주 작게 줄어들고, 아이들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 가장의 권리만 비대해져 특권을 누린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지요. 저라고 때리고 싶겠습니까”다. 이런 남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하거나 축소한다. 아내의 갈비뼈를 부러뜨려놓고도 그저 밀기만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면 법적, 사회적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서 부정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자연스러운 일로 여긴 탓이 크다. 아내를 죽도록 때리는 남자는, 술을 마시고 가족을 살해한 패륜 가장의 뉴스를 보면서 “저러면 안 되지. 나는 가족을 칼로 찌르지는 않으니까 가정폭력은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마지못해 가해자들이 자신의 학대행위를 인정해도, 피해자와 면담을 해보면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가해자들이 실제로 기억을 못하는 게 아니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한 욕설, 구타행위를 모두 기억한다. 다만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설명하고 사과하는 것이 귀찮고 괴로워서 그냥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대는 것이다.

    그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으로 여기고, 그 가치가 유지되는 한 아낀다. 소용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린다.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한테 남자들이 늘상 하는 말이 “남의 집안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술이라도 한잔 걸친 상태라면 “내가 내 마누라한테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 네가 왜 참견이야” 하고 소리 지른다. 아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그들은 물건을 아끼듯이 아내를 아낀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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