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은 비유를 전혀 쓸 줄 모른다. 무미건조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 어떤 사람은 비유를 잘못 써서 곤욕을 치른다. 비유는 양날의 칼이다. 잘 쓰면 성공을 가져다주는 명검이 된다. 베일까 겁난다고 칼집에 넣어두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禍 자초할 수도
많은 이가 비유를 사용하지만,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성공은커녕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약간의 예외를 제외하면 양해를 얻기 어렵다. 비유는 기본적으로 의도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이다. 비유는 철저하게 자기책임주의 아래에 있다. 부적절한 비유로 논란을 유발한 뒤 사과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무책임하다.
적절, 적시, 적정
우리는 가끔 카타르시스를 주는 비유를 만난다. 적절성, 적시성, 적정성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때다. 비유가 성공적이려면 무엇보다 내용이 적절해야 한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맥락이 닿지 않는 비유는 전달력을 떨어뜨린다.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안 하느니만 못한 비유라 할 수 있다.
시기도 맞아야 한다. 가뭄이 심각해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일 때, 기우제를 미신으로 냉소하는 비유를 한다면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이 비유가 적합한 것인가’를 늘 고려해야 한다.
센 표현이 능사?
표현 수위 역시 중요하다. 비유의 주목도를 높이려면 이른바 센 표현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반감을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내 말이 위력을 가질 수 있을까. 남들을 압도할 수 있을까. 그들을 내 말에 빠지게 만들 수 있을까. 비유는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이 점에서 비유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이다. 말로 영향력, 곧 권력을 획득하려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정치권, 방송가에서 활개
그래서인지 비유는 정치권에서 활발히 사용된다. 방송에서도 환영받는다. 인기 게스트 중엔 ‘비유의 달인’이 적지 않다. 일반인은 이들이 만들어낸 비유를 재활용한다. 이른바 유행어의 유통이다. 다른 말로, 정치권이나 미디어 쪽으로 진출해 성공하려는 사람은 비유 능력을 갖춰야 한다.
중간은 없다
비유는 양날의 칼이므로 성공사례와 실패사례가 극명하게 갈린다. 중간은 없다. ‘그저 그런 비유’는 실패로 봐야 한다. 먼저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지난해 한 드라마의 대사가 모든 직장인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많은 직장인이 ‘바로 내 이야기로군’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묘한 비애감과 전투 의지가 동시에 밀려왔을 것이다. ‘미생(未生)’이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열심히 웹 서핑을 한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바둑의 돌이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인 미생을 인생에 비유한 작가의 의도가 적중한 순간이다.
이 대사가 특히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최근의 사회경제적 환경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적절성, 적시성, 적정성이 모두 잘 맞아떨어졌다.
투박하지만 공감 유발
“나는 개가 아니라 사람이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의 당사자인 박창진 사무장이 한 말이다. 인간이 개일 수 없지만 ‘개 취급’을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이 말은 좀 투박했지만 공감을 유발했다. 과거에 개는 정말 개 취급을 받았다.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어야 했고, 화난 사람 발에 걷어차이기 일쑤였고 그러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쓰였다. 박 사무장의 개 비유가 관심을 끈 이면에는 사람을 과거의 개처럼 취급하는 ‘갑질 논란’이 자리 잡고 있다.
나폴레옹 대신 히틀러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압박을 받자 이렇게 응수했다. “히틀러도 러시아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러시아 국민은 통쾌해했고, 서방 지도자들은 흠칫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불쾌했을 것이다. 감히 우리를 히틀러에 비유하다니!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대응하기도 애매했을 것이다. 유럽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은 나폴레옹도 러시아를 침공한 적이 있다. 그런데 푸틴은 나폴레옹 대신 히틀러를 택했다. 이 점이 포인트다. 히틀러를 택함으로써 비유의 적정성을 높인 것이다.
“우린 가까울 수 없는 사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직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자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두 사람이 조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걱정하는 이가 많았다. 2009년 5월 취임 후 첫 백악관 출입기자단 연례만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로 확산 중이던 신종플루에 빗대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했다.
“우린 여전히 가까울 수 없는 사이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이 멕시코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를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으면서 직접 멕시코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기 때문이죠.”
멕시코는 신종플루 첫 발생 국가이고, 포옹하고 가볍게 키스하는 서양식 인사가 위험할 수 있다는 분석이 한창이던 때였다. 폭소가 터졌고 두 사람의 긴장관계를 걱정하던 우려의 시선도 누그러졌다.
롯데 직원은 소?
비유의 실패 사례 역시 적지 않다. 롯데그룹 인재교육원은 지난 3월 포스터를 만들어 계열사에 배포했다. ‘칭찬과 배려의 말, 우리 모두를 힘나게 합니다.’ 아름다운 제목이었다.
그런데 삽화가 문제였다. 황희 정승 일화가 담겼는데, 황희 정승이 농부에게 “어떤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농부는 “소도 듣는다”면서 “둘 다 소중한 소”라고 답한다. 황희 정승을 경영진으로, 농부를 중간관리자로, 소를 직원으로 비유한 것이다. 롯데 직원이 소처럼 일하는 것이 비록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직원을 소로 취급하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무고한 사람에게 불쾌감
이승한 홈플러스 사장은 얼마 전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에 대한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장애인이 맛없는 빵을 만든다면, 중요한 건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을 만들게 하는 것…기존 소상공인들은 맛없는 빵을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홈플러스)에게도 맛없는 빵을 만들라고 한다.”
이 말에 소상공인단체와 장애인단체가 반발하고 나섰고 홈플러스는 결국 사과문을 내야 했다. 굳이 비유의 대상을 장애인으로 택한 이유는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상공인은 장애인이고 홈플러스는 비장애인이라는 차별의식에 더해, 장애인은 빵을 맛없게 만든다는 그릇된 인식까지 심어줄 우려가 있는 비유였다. 무고한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말만 하지 않아도 비유의 역풍을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다.
비유와 막말의 차이
악의적 비유는 상대방을 비난할 때 자주 활용된다. 유독 정치권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데, 수위가 지나치면 막말이 된다. 즉, 막말은 적정성에서 실패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막말 때문에 당원권 정지를 당했다. 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 발언을 한 까닭이다.
“일왕 묘소에 절할 수 있나”
그의 막말 논란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문재인 당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자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 사과했다고 유대인이 히틀러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거나, 일본이 우리에게 사과했다고 우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일왕 묘소에 가서 절할 수 있느냐”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문재인=유대인 또는 한국인·박정희=히틀러 또는 일왕 등식을 전제로 한 비유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
여당도 마찬가지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교통사고”라고 말했다. 배도 교통수단이니까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불법, 비리, 구조 부실로 수많은 어린 학생이 사망한 상황에서 단지 사고로 시선을 돌리려 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한 비유였다. 주 의장이 악의적 비유를 했다고 단정 짓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선의의 비유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 정도면 부부관계”
악의적 비유를 하더라도 적정성을 유지해 살짝만 악의적으로 하면 위트로 받아들여진다. 이걸 잘하는 대표적 인물이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다. 노 전 의원은 이완구 전 총리와 성완종 전 회장이 1년 동안 217회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자 “이 정도면 부부관계”라고 꼬집었다. 부부도 그만큼 자주 통화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한 비유였다.
공격인 듯 아닌 듯
‘땅콩회항’ 사건 후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난 여론 속에 부사장직을 유지한 채 보직만 사퇴한다고 했을 때 노회찬 전 의원은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간 격”이라고 비유했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내용이지만 절대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노 전 의원 특유의 비유법이다. 불가피하게 악의적 비유를 해야 할 때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김구라와 윤종신의 경우
생각 없는 비유가 화를 자초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애드리브가 난무하는 방송가에서 흔히 일어난다. 2002년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김구라는 “창녀들이 전세버스에 나눠 탄 것은 옛날 정신대 이후 최초일 것”이라고 말해 모든 방송사에서 출연정지를 당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정부의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타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러 간 것을 일본군 위안부에 비유한 것인데, 용서받기 힘든 비유였다.
가수 윤종신도 2007년 라디오 방송 진행 중 “남자들은 신선한 여자를 찾는다”며 여성을 생선회에 빗대 논란을 빚었다.
이처럼 비유의 달인조차 가끔 잘못된 비유로 인해 밥줄이 끊길 만큼 커다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비유는 양날의 칼인 것이다.
담 쌓고 지내면…
이 때문에 아예 화를 자초하지 않겠다며 비유와 담 쌓고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비유는 현대인이 반드시 갖춰야 할 교양으로 통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비유 없이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무미건조해 잘 흡수되지 않는 비효율성을 톡톡히 감수해야 한다.
식상한 표현은 금물
‘식상한 표현’도 피할 일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 같은 뻔한 속담이나 경구는 각인효과를 크게 떨어뜨린다. 차라리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조지 오웰은 “익숙하게 본 비유를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작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스티븐 킹은 상투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작가들을 향해 “케케묵은 표현으로 독자의 시간을 빼앗지 말라”고 질타했다. 이런 지적은 작가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해당한다. 식상한 비유는 말하는 이의 공신력을 떨어뜨린다. “센스가 없는 것 같아”라는 평판을 얻기 십상이다.
‘살짝만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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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밀히 들여다보면 비유는 언어 습관이자 패턴일 뿐이다. 비유를 즐기는 이들은 늘 비유에 활용할 재료를 찾는다. 꼭 메모를 해둔다. 이런 것이 쌓여가고 활용 빈도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비유의 달인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유도 자꾸 해버릇하면 는다고 할 수 있다. 비유를 철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오늘날의 노회찬에 이르기까지 비유의 정수는 ‘살짝만 비틀기’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과하면 역공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