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도로 사고 4년새 1만1259건→1만6664건
- 차량 무단점유 기승…시·구청 나 몰라라
- 자전거는 차에 치이고, 보행자는 자전거에 치이고
- 설계, 관리, 홍보, 준법정신 모두 낙제점
서울시 자전거도로는 용산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목동을 지나 김포국제공항 인근 방면까지, 동쪽으로는 영동대교를 지나 강동구 상일동까지 나 있다. 남쪽으로는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을 지나 과천시까지 연결되고 북쪽으로는 노원구를 넘어 도봉산까지 뻗어 있다.
도심 내 자전거도로의 경우 서울 25개 구 대부분에 설치돼 있지 않다. 그러나 영등포구 여의도동, 송파구 잠실동, 마포구 상암동 세 지역엔 자전거도로가 골목 사이사이까지 거미줄처럼 조성됐다.
이 세 지역의 자전거도로는 서울 도심 자전거도로의 대표 격이다. 여의도동, 잠실동, 상암동 자전거도로의 총 연장은 58.8km에 달하는데, 78억6800만 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서울시 자전거도로는 2008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 취임과 동시에 추진된 주요 사업으로 총 연장은 약 708km, 전체 사업비는 551억 원이다.
노상주차장 된 자전거도로
토요일에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과 평화의공원이 인접한 자전거도로에 자전거 동호인 서모(27) 씨와 함께 나가 봤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 자전거만 다니는 전용도로가 설치돼 있었다. 인도와는 연석으로, 차로와는 노란색 실선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런데 자동차와 관광버스들이 하늘공원 앞 자전거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노상주차장과 다를 바 없었다. 자리를 빼앗긴 자전거 라이더들은 바깥쪽 차로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등 뒤에서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기도 했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가뜩이나 복잡한 도로에서 자전거가 차로 하나를 잡아먹는다’며 언짢아하는 것 같았다.
자전거도로에 주차해 있던 차들이 차도로 나가기 위해 불쑥 차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부딪치는 사고가 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차로로 쫓겨난 라이더들은 후방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보기 위해 수시로 고개를 돌려 경계해야 했다. 한 시민은 택시를 잡기 위해 차량들이 주차된 자전거전용도로에서 도로 쪽으로 갑자기 튀어나왔다. 결국 전방을 제대로 못 본 자전거 한 대가 이 시민을 치고 말았다.
서씨는 “이 지역에 자전거도로가 없었다면 자전거 라이더들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러 왔는데 막상 자전거도로는 주차장이 돼 있으니 이렇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마트가 자기 땅처럼…”
같은 날 마포구 상암동 평화공원 인근 대형 마트 주변의 자전거도로는 사정이 더 심각했다. 마트로 들어가는 물건의 상·하차를 위해 대형 트럭들이 수시로 자전거도로를 점거했다. 이들 트럭에서 내려져 적재된 화물들은 인도를 점유하고 있었다. 서씨는 “자전거도로가 제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 대형 마트가 공공재인 자전거도로를 당연하다는 듯 자기 땅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와 잠실의 자전거도로도 사정이 비슷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여의도와 잠실에선 노점상과 택시가 곳곳에서 자전거도로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근 출근 시간대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 자전거도로에 나가봤다. 아침을 거른 직장인에게 샌드위치를 파는 트럭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같은 날 퇴근 시간대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다코야키(문어구이) 판매 트럭이 불을 환하게 밝힌 채 샌드위치 트럭이 있던 자리를 물려받아 영업 중이었다.
여의도 업무지역 한가운데의 자전거도로는 택시 승차장이나 다름없었다. 오후 7시 지하철 여의도역 5번 출구 앞 자전거도로엔 택시 5대가 나란히 줄을 지어 퇴근하는 직장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호인 서씨는 “자전거도로는 구청이 수시로 관리·통제해야 하는데 모른 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영등포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오전·오후에 한 번씩 불법 노점상 점검을 하고 이후엔 신고가 들어오면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노점상만 쫓아낸다. 총괄은 우리가 아니라 교통행정과”라고 말했다.
자전거도로 무단 점거가 제대로 단속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정차된 차량과 노점상을 직접 신고해보기로 했다. 일요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맞은편 여의도공원 인근 자전거도로엔 음식을 파는 트럭과 승용차가 줄줄이 주차해 있었다. 그러나 순찰차에 탄 경찰은 관심이 없다는 듯 물끄러미 지켜보기만 했다. 오후 2시쯤 서울다산콜센터(120)에 신고했다. 얼마 뒤 ‘영등포구 당직실에 긴급 접수됐다’는 알림문자가 왔다. 이어 3시간쯤 지나 ‘처리됐다’는 답변이 왔다.
직접 신고해보니…
다음 날에도 같은 곳의 자전거도로가 무단 점거돼 있었다. 동일한 내용으로 서울다산콜센터에 신고했다. 이번엔 30분 만에 “조치가 완료됐다”는 답변이 왔다. 어떤 조치를 완료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재방문했다. 주차된 차량은 옮겨졌지만 노점상들은 계속 자전거도로를 점거한 채 영업하고 있었다.
신고를 당한 차량들이 옮겨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점거한다는 이야기다. 단속은 눈 가리고 아웅인 듯했다. 자동차들은 자전거도로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았다. 영등포구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그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점상은 정비를 하고 가면 또 나타난다. 현실적으로 완벽한 단속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달리는 자동차가 자전거도로를 자주 침범하는 것도 문제였다. 통행량이 적은 점심시간대엔 운전자들이 자전거도로를 잘 침범하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대엔 사정이 달랐다. 오전 8시 여의도 KBS 앞에선 상당수 차량이 곧게 난 자전거도로에서 달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라이더들은 달리는 차량 곁에서 아슬아슬하게 운행해야 했다. 일부 라이더들은 위험하다고 느꼈던지 인도로 올라와 운행했다. 이로 인해 보행자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다.
곡선 구간에서도 자동차는 자전거도로를 차도인 양 달렸다.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 도로에선 수많은 차량이 여의도역 방면으로 가기 위해 우회전한다. 이곳엔 인도 옆 자전거도로와 그 옆 차로가 나란히 띠를 이루며 곡선을 그리고 있다. 확인해보니, 차량 거의 대부분이 회전 반경이 작은 자전거도로로 들어와 우회전하고 있었다. 차로로 운행하는 차가 극소수였다. 시야가 제한된 우회전 구간은 직진 구간에 비해 자전거와 충돌할 위험이 더 높다.
도로교통법(6조)에 따르면 차량이 자전거도로에 들어오는 것은 불법이다. 승합차나 화물차엔 5만 원, 승용차엔 4만 원, 오토바이에는 3만 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금융감독원 앞 도로에서 만난 운전자 이모(34) 씨는 “자전거도로에서 운행하는 것이 불법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전거도로에 차량이 자주 들어오는 구조적 이유로 자전거도로와 차로 사이에 연석이 설치되지 않은 점이 꼽힌다. 이에 대해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보행자전거과 관계자는 “(자전거도로) 설계 당시 차로가 좁아지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자전거 라이더 처지에서만 도로를 설계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도심 내 자전거도로 중 90% 이상은 보행자·자전거겸용도로(이하 겸용도로)다. 이 도로는 인도의 일정 구간을 쪼개 자전거에 내주며 차로와는 연석으로 구분된다. 이곳의 사정은 어떨까.
자전거, 보행자 뒤얽혀
버스정류장에 인접한 겸용도로는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 6월 12일 퇴근 시간대 송파구 잠실동의 한 버스정류장엔 버스를 타려는 시민들의 줄이 겸용도로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자전거 라이더들은 시민들 사이를 비집고 운행해야 했다. 스마트폰을 보며 줄지어 있던 일부 시민들은 자전거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잠실동 신천역 인근 겸용도로 옆엔 약 140cm 높이의 지하철 환풍구가 솟아 있다. 이 시설은 자전거 이용자의 전방 시야를 가려 다가오는 보행자를 발견하기 어렵게 한다. 12일 낮 한 자전거 라이더는 한산한 이 겸용도로를 질주하다 환풍구에 가린 보행자를 뒤늦게 발견했다. 라이더는 핸들을 틀며 급정거했다. 자전거는 타이어가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보행자 앞 주먹 하나 거리에서 가까스로 멈춰 섰다.
겸용도로 역시 무단 점유되긴 마찬가지였다. 최근 오후 2시쯤 자전거 동호인 김모(29) 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잠실역 인근 겸용도로를 찾았다. 이 도로엔 보따리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칫솔, 바가지, 목욕타월 등 갖가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이로 인해 보행자들과 자전거들이 복잡하게 얽혀 지나가야 했다.
세 시간 뒤인 오후 5시쯤 다시 가보니 여전히 보따리상인들이 겸용도로를 점유한 가운데 통행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들이 늘어나 더 복잡했다. 김씨는 “보행자와 부딪칠 위험이 높아 겸용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걸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했다. 결국 필자와 김씨는 버스와 승용차가 다니는 차도를 택해야 했다.
토요일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의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 뒤 밤늦도록 종합운동장역 주변 겸용도로는 노란 백열등을 켠 포장마차와 푸드 트럭 차지였다. 많은 사람으로 성황을 이뤘다. 술에 취한 보행자들은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큰 위험요소였다.
잠실역 9번 출구처럼 보행자가 많이 다니는 겸용도로는 자전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며 지나가야 했다. 많은 시민은 겸용도로에 자전거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자전거 동호인 권모(26) 씨는 “잠실의 겸용도로를 이용하면서 보행자들로부터 ‘인도에서 왜 자전거를 타느냐’는 항의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권씨는 “보행자들은 자신이 겸용도로 내 자전거도로 위를 걷고 있는 줄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종된 ‘자전거 행정’
문제는 서울시내 겸용도로에서 자전거와 보행자 간 충돌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점. 한 보행자는 2012년 5월 서울시내 한 자전거도로 위를 걷다 자전거에 치어 뇌를 크게 다치는 중상을 입었다. 서울중앙지법은 5월 이 사고에서 보행자의 과실이 60%라고 판결했다. 시민들이 겸용도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서울시가 시민들에게 겸용도로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은 탓도 커 보였다.
이에 비하면 도심을 벗어난 겸용도로는 비교적 문제가 덜했다. 마포구 불광천 겸용도로의 경우 필자와 자전거 동호인들이 방문해보니 산책 나온 보행자들과 자전거 라이더들이 각자의 도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서울시내 자전거도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그 건수도 많고 해마다 증가한다고 한다. 도로교통공단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자전거도로에서 난 사고는 2010년 1만1259건에서 2014년 1만6664건으로 늘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전우훈 박사는 서울시내 자전거도로와 관련해 “당국에서 어떻게 홍보하고 관리할지, 시민들이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전혀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많은 세금을 들여 자전거도로를 만든 뒤 이 도로가 엉망이 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하는 것 같다. 자전거도로 건설은 전직 시장 때 시작됐지만 관리는 현직 시장 몫이다.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자전거도로 행정은 낙제점 수준으로 비칠 만하다. 구청도 단속하는 시늉만 할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운전자들과 상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전거도로 관련 법을 어기고 있다. 이들의 준법의식도 개탄스러운 수준이다. 길을 걷는 시민들은 정보를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서울 도심 자전거도로는 자전거와 보행자에게 무용지물 내지 없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위험한 곳이 되고 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수강생인 필자가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