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개봉에 스키장, ‘백두산 체육촌’ 단장
- ‘백두산관광철도 돌격대’ 철도공사 투입
- 초현대식 호텔·쇼핑가로 관광객 유치
- “성과 못낸 경제특구 전철 밟을 소지 커”
성과를 냈거나 일을 잘한 노동당 당료, 내각 인사는 백두산 관광을 포상휴가 격으로 받는다. 내각 노동성 휴양관리국이 이를 관리한다. 노동당 양강도당 간부로 일하다 탈북한 한 인사는 “국제 경기를 치르려고 건설한 수준급 스키장도 마련돼 있다”고 전했다.
백두산 밀영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북한 당국이 선전하는 귀틀집이 있다. 백두산 관광에 나선 북한 주민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다. 항일 빨치산이 나무껍질을 벗겨 김일성·김정숙(김정일의 어머니)을 칭송하는 구호를 새겼다는 ‘구호나무’들도 필수 여정(旅程).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수단으로 사용되는 구호나무는 후대에 위조한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앞서의 인사는 “북한에서 오랫동안 선전·선동을 책임진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구호나무 각각의 글귀를 모두 외워 놀란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혜산-삼지연 철도공사 시작
북한 당국이, 성지로 여겨온 ‘백두산의 문’을 열고 국제관광특구로 개발한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것. 삼지연군 일대에 국제관광특구를 조성하기로 4월 확정했다. 백두산 일대의 교통·전력 인프라 구축에도 나섰다.
6월 4일 삼지연군과 혜산시(양강도 소재지)를 잇는 철도 착공식이 삼지연대기념비 앞에서 열렸다. 철도가 연결되면 백두산으로 중국인 관광객을 수송하기 편리해진다. “김정은 동지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진행되는 삼지연지구 철길 건설…”이라는 조선중앙방송의 보도대로 백두산 국제관광특구는 ‘나라 차원’에서 이뤄지는 관광단지 개발 사업이다.
김정은은 고모부를 처형하는 등 폭정에 가까운 통치 행태를 보이면서도, 시민의 저항을 막고자 빈곤화·우민화(愚民化)에 나선 역사책 속 독재자와는 달리, ‘경제 살리기’ 조치는 적극적으로 취하는 양상이다. 평양은 2013년 6개 경제특구, 13개 지방경제개발구를 동시다발로 지정한 후 외자를 유치해 경제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투자를 유인해 관광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특히 관광산업 육성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는 집요해 보인다. 한 대북소식통은 “금강산, 백두산, 칠보산 외에 각도의 경제개발구에도 관광산업을 육성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서 “모든 온천, 바닷가, 명승지를 관광 및 휴양지로 개발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관광산업의 컨트롤타워인 국가관광총국의 위상도 높아졌다.
조선중앙통신이 촬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 제2청사(7월 1일 준공) 시설은 언뜻 봐도 ‘수준급’이다. 마식령스키장, 문수물놀이장 등 현대적 레저시설도 속속 들어섰다. 김정은은 1월 1월 신년사에서 경제정책과 관련해 관광산업을 콕 집어 강조했다.
“대외 경제 관계를 다각적으로 발전시키며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를 비롯한 경제개발구 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北 당국, ‘신동아’ 기사에 격분
‘신동아’ 5월호는 북한 당국이 올해 작성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계획’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의 법률적 환경’ 문건, 지난해 작성한 ‘금강산 1단계 개발 총계획’ ‘투자 개발 설명’ 등 6개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했다(‘김정은 비즈니스 원산-금강산 80억 달러 개발 총계획 전모’ 제하 기사 참조). 북한이 내놓은 개발 계획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후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실은 이 기사의 결론은 “한국의 투자와 한국인 관광객 없이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는 것.
북한 관광당국은 이 기사에 격하게 반발했다. 북한은 5월 15일 금강산관광특구지도국 명의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괴뢰잡지 신동아의 모략 망발질을 두고’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가 이 성명을 전재했다. 다음은 이 성명의 주요 대목이다.
“우리의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사업과 경제개발정책에 대해 악랄하게 시비한 문제는 저들의 죄악을 미화하려는 얼토당토않은 나발질” “동족의 경제개발정책에 대해 못마땅해하면서 특히는 우리의 생명인 최고존엄을 모독한 데 대해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것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 수도, 지닐 수도 없는 가장 숭고하고 열렬한 절세위인들의 민족애와 도덕 의리심을 훼손시키고 우리의 경제정책을 헐뜯어보려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추악한 궤변”….
성명은 “단언하건대 우리는 무엄하게 우리의 최고존엄을 걸고드는 자들을 그가 누구든 첫 번째 징벌대상으로 단호히 처단할 것이라는 것을 한두 번만 강조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빈말을 하지 않는다”고 끝을 맺었다. 북한의 이 같은 반응은, 평양의 경제정책을 소개한 후 그와 관련한 전문가 의견을 실은 한국 언론 기사에 대한 반응으로는 이례적인 것이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는 김정은 주도로 이뤄지는 나라 차원의 비즈니스다. 평양이 신동아 기사에 격하게 반응한 것은 ‘최고존엄이 주도해 진행하는 사업’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 때문인 듯하다.
삼지연비행장 활주로 확장
신동아 5월호는 4월 17일 발행됐는데, 그로부터 1주일 후(4월 23일) 북한은 양강도 삼지연군 일대에 국제관광특구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백두산 국제관광특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신동아는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작성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광정책과 전망’이라는 제목이 붙은 98쪽 분량의 문건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백두산관광특구 청사진이 이 문건에 담겨 있다.
문건에 따르면 북한은 양강도의 40%를 국제관광특구로 꾸리려고 한다. 국제관광특구의 면적은 6500㎢에 달한다. 평균 해발고도는 1300m. 8월 평균기온이 18℃라 여름철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
국가관광총국은 삼지연공항을 이용하는 하늘길, 평양-혜산-삼지연을 잇는 철길, 평양-함흥-혜산-삼지연·청진-대홍단-삼지연을 잇는 육로로 관광객을 수송한다고 밝혔다. 삼지연-혜산을 잇는 ‘백두산관광철도’ 공사는 착공식에 앞서 5월 25일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백두산관광철도 돌격대’가 조직됐다. ‘돌격대’는 북한에서 건설 노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평양 류경호텔(105층)은 ‘백공오호텔’이라는 별칭을 가졌는데, 105호 돌격대가 시공을 맡아서다.
삼지연공항은 대형 여객기가 이착륙하도록 활주로의 길이를 확장하고, 공항 청사를 새로 건설할 계획이다. 삼지연공항의 정식 명칭은 ‘삼지연비행장’으로 북한 공군이 사용하던 곳이다. 삼지연비행장을 민간공항으로 개축하겠다는 게 평양의 구상이다.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계획에는 군사시설인 원산의 갈마비행장 대신 통천에 국제공항을 새로 짓는 것으로 돼 있다.
백두산, 밀영, 삼지연, 청봉숙영지, 무포숙영지, 리명수폭포, 보천보혁명전적지, 대홍단군, 혜산시를 관광 벨트로 묶어 개발한다. ‘백두산 체육촌’도 새로 단장한다. 아이스하키장, 스케이트장, 스키 슬로프 등이 이 체육촌에 들어서 있다. 삼지연과 밀영 사이에 있는 베개봉에는 스키장을 새로 건설한다.
백두산관광특구의 잠재력을 설명한 문건의 한 대목이 눈에 띈다. △국내(북한 내) 관광 수요 △중국인 관광 수요 △남조선(한국) 관광 수요를 언급한 것. 한국인 관광객도 염두에 두고 관광특구를 건설한다는 얘기다. 문건은 베개봉호텔을 개건하고 현대식 국제호텔, 식당, 관광기념품 상점 등을 새로 짓는다고 밝혔다. 호텔, 콘도미니엄 등의 조감도가 담겨 있는데, 건축물은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됐다. 문건은 발전소를 비롯한 인프라 투자와 관련한 내용도 다뤘다.
백두산관광특구의 성공 여부는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구와 마찬가지로 외자 유치와 관광객 확보에 달렸다. 북한은 국가관광총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상대로 한 관광지 홍보에 열심이다.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10여 개 나라에 지사를 둔 ‘평양고려국제관광사’를 올해 1월 설립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북한 여행 정보를 유럽 주재 북한대사관을 통해 제공하는 등 홍보활동도 벌인다. 조성걸 북한 국가관광총국장과 탈렙 라파이 세계관광기구(UNWTO) 사무총장이 7월 12일 평양에서 관광 진흥과 관련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기도 했다. 북한은 금강산관광특구법을 지정한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구의 전례처럼 백두산 관광특구법을 제정한 후 본격적인 외자 유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2002년 창바이산(長白山, 백두산의 중국명)을 중화 10대 명산(6위)중 하나로 선정했다. 2008년 창바이산 공항도 개청했다. 중국은 창바이산 일대의 국제관광지, 동계스포츠센터, 박물관, 생태건강산업센터 등에 5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할 계획이다.
관건은 남북관계 개선
중국의 창바이산 국가생태여행경제시범구와 북한의 백두산 국제관광특구 중 어느 곳이 중국인에게 더 경쟁력이 있을까. 물론 중국의 투자와 북한의 개발 계획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다음은 15년 넘게 남북경협 현장을 들여다본 한 전문가의 설명이다.
“원산-금강산과 달리 백두산은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적지 않겠으나 한국 투자를 유치해 한국인 관광객을 유인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특구로 지정하고 혜택을 준다고 해서 대규모 중국 자본이 들어오겠나. 2009년 8월 현대그룹과 백두산 관광을 개시하기로 합의했는데, 합의대로 관광이 시작됐으면 지금의 백두산 일대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충돌했다면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는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형국이다. 6월 북한의 반대로 한국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러시아·중국·북한을 비롯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28개국이 가입한 철도 협력체) 가입이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경원선 복원 및 유라시아 철도 연결에 북한이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원칙’을 앞세운다.
북한이 2013년 지정한 6개 경제특구, 13개 지방경제개발구 중 성과를 낸 곳은 한 곳도 없다. 백두산 국제관광특구도 한국이 돕지 않으면 경제특구, 경제개발구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교류를 늘려가는 것은 남북 모두에 이득이다. 통일을 준비하는 선투자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외가가 제주도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로 삼지연을 향하고, 평양공항에서 제주로 날아가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한국 측이 금강산에 조성한 골프장은 관광 중단 7년 만에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변해 재공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선상 호텔인 해금강호텔도 배가 많이 부식됐다고 한다. 한국인의 금강산 관광이 끊긴 후 북한 당국이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을 금강산에 유치하려고 노력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원산의 마식령스키장도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면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백두산 국제관광특구의 성공 여부도 남북관계 개선 여부에 달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