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호

국산화보다 중요한 전력화 총력외교로 방사청 실책 보완해야

표류하는 KFX(한국형전투기) 사업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5-07-23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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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사청이 적기(適期)에 무기를 확보하는 전력화보다는 무기 국산화에 더 신경을 쓰는 한 KFX 사업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이 KFX 사업 파트너인 인도네시아에 전략물자 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방사청은 왜 손을 놓는가.
    국산화보다 중요한 전력화 총력외교로 방사청 실책 보완해야
    정중동(靜中動). 3월 30일 한국항공을 우선협상 업체로 선정한 한국형전투기(KFX) 체계 개발 현황이 그러하다. 국민과 언론은 ‘배신의 정치’ 등에 관심을 쏟지만 방위사업계는 건국 이래 가장 큰 방위사업인 KFX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KFX 사업은 스텔스 전투기인 F-35의 도입을 결정한 3차 FX 사업과 연계돼 있다. 이 사업 수주전에서 승리한 미국의 록히드마틴사(社)로부터 기술을 제공받아 개발하기로 했다.

    KFX 사업은 T-50 개발 때처럼 록히드마틴이 프로젝트를 따낸 ‘교수’ 역할을 한다. 한국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원생’ 격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발주한 것이라, 대학원생은 교수의 지시를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지만 주권도 행사한다. 도입해야 하는 장비와 기술을 결정하는 것. 하지만 한계도 있는데, 이는 뒤에서 상세히 설명한다.

    엔진 전쟁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두뇌’ 구실을 한다면 엔진은 ‘심장’ 구실을 한다. 심장이 약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제대로 된 작전을 하기 어렵다. 심장은 전체 전투기 가격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KFX에는 작은 심장 두 개를 넣기로 했다.



    KFX는 1차적으로 한국(120대)과 인도네시아(50대) 공군에 170대를 납품하기로 해 필요한 엔진 수는 340개다. 그런데 정비 등을 위한 여유분으로 10% 정도를 더 보유해야 하므로 실제 대수는 374개가 된다.

    한국 공군은 2차적으로 180여 대를 더 주문할 가능성이 높다. KFX가 양산될 때쯤(2025년 이후) 지금의 주력 전투기인 KF-16 등이 도태하니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KFX는 한국 공군에 300대, 인도네시아 공군에 50대, 총 350대가 제작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예비분을 보태면 엔진은 한국에서만 660개, 인도네시아 분을 더하면 770개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투기는 300대 이상 제작돼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고 하는데 KFX는 한국 시장에서만 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가격을 낮출 수 있어 수출에 유리해진다.

    지금 시점에서 새로 설계하는 전투기는 세계적으로 봐도 KFX뿐이다. KFX가 수출된다면 엔진은 ‘따라서’ 나가니, 세계의 엔진 제작업체들은 KFX 사업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다른 부품 업체들도 KFX 사업에 참여하려 심혈을 기울인다.

    KFX에 들어갈 작은 엔진은 미국의 GE, 영국의 롤스로이스(유로제트로 표현하기도 한다)가 제작한다. GE가 제작한 작은 엔진 두 개는 미 해군이 운용하는 FA-18에, 롤스로이스산(産) 엔진 두 개는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로파이터에 탑재됐다.

    GE는 작은 엔진으로 F-404와 이를 개량한 F-414를 갖고 있는데, 이 중 FA-18E/F에 탑재하는 F-414를 들고 KFX 사업에 도전한다. 롤스로이스는 유로파이터에 탑재한 EJ-200을 내놓으려 한다. 유로파이터는 유럽 4개국이 제작했기에 엔진도 4개국이 ‘유로제트’란 회사를 구성해 EJ-200을 만들었다.

    유로제트에는 영국의 롤스로이스가 가장 많이 투자했다. 한국에는 롤스로이스만 지사를 두고 있어, EJ-200의 한국 도전은 롤스로이스가 담당한다.

    實戰 경험 많은 GE 엔진

    GE는 엔진 제작 국가가 아닌 나라의 항공기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많다는 것이 장점이다. GE는 싱가포르가 만든 전투기 ‘슈퍼스카이 호크’(지금은 퇴역)에 F-404를 넣은 이래 스웨덴이 만든 그리펜 전투기에 F-404를, 이를 개선한 그리펜 NG에 F-414를, 한국의 T-50 시리즈에 F-404를, 인도 테자스(Tejas) Mk-1 전투기에 F-404를, 이를 개량한 테자스 Mk-2 전투기에 F-414를 넣은 경험이 있다.

    GE는 194대가 생산된(생산 예정분 포함) T-50 시리즈에 F-404 엔진을 한 개씩, 40대의 F-15K 전투기엔 또 다른 엔진인 F-110을 두 개씩 탑재했다. 한국 공군기에 자사 엔진이 많이 장착됐다는 것은 GE로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KFX에도 자사 엔진이 탑재된다면 한국 공군을 위한 엔진 정비 지원을 더 원활히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GE는 F-414 엔진의 실전(實戰)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 엔진을 탑재한 FA-18E/F 전투기들은 이라크전과 아프간전, 최근에 있었던 리비아 공습전 등에 참전했다.

    실전은 ‘긴장감이 빠진’ 비(非)실전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적의 반격을 피하기 위해 전투기의 속도를 높이는 애프터버너를 켜는 등 급기동할 때가 많다. 다급한 순간 가볍게 터치했는데 제대로 작동했다면, 우수한 엔진임에 틀림없다.

    국산화보다 중요한 전력화 총력외교로 방사청 실책 보완해야
    비행 도중 엔진이 꺼지면 항공기는 추락한다. 엔진이 언제 작동을 멈출지예상할 수 없기에 업체들은 비행기가 일정 시간을 비행하면 무조건 엔진을 떼어내 내부 부품을 교체한다. 부품별로 수명주기를 정해놓고 그 시기가 되면 기계적으로 교체해 사고를 피해나가는 것이다. 부정기적으로도 엔진을 살펴본다. 그때도 정비사들은 비행기에서 엔진을 떼어내 분해해야 한다.

    그런데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전자산업이 발달함으로써 부정기 정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엔진에 탑재된 작은 컴퓨터가 엔진의 이상(異常) 여부를 점검해 그 사실을 알려주니, 이상 여부를 알기 위해 엔진을 비행기에서 떼어내 해체할 필요가 사라진 것.

    GE는 엔진과 컴퓨터를 연결해 엔진 상태를 쉽게 살펴보게 하는 통합 시스템을 F-414에 적용했다. 따라서 부정기 점검 때는 엔진을 비행기에서 떼어내 분해하지 않고도, 컴퓨터만 보고 점검 여부를 판단한다.

    EJ-200은 유로파이터 제작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에 제공된 사실이 없다. 유럽 4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EJ-200 엔진을 넣은 전투기를 만든 적이 없는 것이다. 실전 경험도 적다. 유로파이터는 리비아 공습전 등에 참전했으나 전체적인 실전 경험은 FA-18E/F보다 떨어진다. 따라서 롤스로이스는 다른 점을 강조한다. EJ-200은 F-414의 원형인 F-404보다 훨씬 뒤인 1990년대 후반 기술로 개발됐기에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요즘 자동차는 좋은 것일수록 엔진을 비롯한 기계적 요소보다는 전자적 요소를 더 중요시한다. 엔진에도 전자적 요소를 많이 넣은 것이 비싸다. 전투기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에 설계한 것은 아무리 개량해도 한계가 있다. 기본 틀을 바꾸지 못하기에 전자적 요소를 넣는 데 제한이 있다. EJ-200은 전자산업이 발전한 1990년대 후반 기술을 적용했기에 엔진 구조가 단순하고 소음도 작다.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해 정비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두 엔진 가운데 무엇을 고를지는 ‘대학원생’이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교수’는 개입할 수도 없고 개입하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임무컴퓨터의 통합 프로그램

    좋은 ‘심장’을 갖췄다고 해서 좋은 전투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른 판단을 신속히 할 수 있는 ‘머리’도 있어야 한다. 판단과 결행은 조종사 몫이지만 그것이 조종사의 기량만으로 결정되진 않는다. 조종사가 조종과 전투 등을 잘하려면 그에 필요한 장비가 그 앞에 모여 있어야 한다. 감각기관인 눈과 귀, 코, 입이 사람 얼굴에 몰려 있듯이, 레이더와 표적획득장비 등 센서(sensor)를 조작하는 장치들이 조종사의 눈과 손 ‘앞’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촉감(觸感)을 느끼는 세포가 전신에 퍼져 있듯이, 전투기에 탑재할 센서들을 좁은 조종간에 집중시킬 수는 없다. 촉감세포처럼 전투기 이곳저곳에 배치해놓고, 이들을 조작할 수 있는 선을 조종간으로 모아놓아야 한다. 그리고 뇌가 여러 감각기관에서 전해온 느낌을 종합해 판단하듯이 이들을 통합 처리하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임무(任務)컴퓨터다.

    뇌가 상황을 종합할 수 있는 것은, 귀가 소리 정보를 수집하고, 눈이 시각 정보를 모아오고, 코가 냄새 정보를 수집해오는 기본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임무컴퓨터도 모든 센서의 기본 원리를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임무컴퓨터는 전투기 작동의 핵심이 된다.

    임무컴퓨터 자체는 대단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다. 임무컴퓨터가 모든 센서의 구동 원리를 알고 그 센서들이 잡아준 느낌을 종합해 조종사가 판단할 수 있게 해주려면, 그러한 일을 하는 프로그램이 깔려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센서가 보내준 것을 통합하는 것이라 ‘체계 통합’, 줄여서 ‘통합(integration)’ 임무를 한다. 통합 소프트웨어가 비밀 중의 비밀이다.

    미국을 비롯해 첨단무기 제작국은 자국이 개발한 첨단무기 기술이 가상적국이나 경쟁국가, 장차 경쟁국이 될 수 있는 나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따라서 무기나 무기 관련 기술을 팔 때는 정부가 수출 여부를 결정하는 엄격한 ‘수출허가(export license, E/L)’ 제도를 운용한다. 이 수출허가는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개개 품목에 대한 수출허가다. 레이더가 그러한 품목에 해당한다.

    미국의 수출 통제

    선진국 회사가 전투기를 판매(수출)하게 된 경우, 이 회사는 자국(선진국) 정부에 먼저 ‘이 레이더를 수출하려는 전투기에 탑재해도 되는지’를 묻고 허가 여부를 기다려야 한다. 정부로부터 수출 허가를 받지 못하면, 이 회사는 이 레이더를 탑재하지 못한다. 그 경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다른 레이더를 탑재해 수입국을 위한 전투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때 선진국 정부는 오로지 수출만 허가한다. 도입한 국가가 레이더를 뜯어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레이더를 뜯어보면 레이더 구동 원리를 알게 돼, 얼마 뒤 복제품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 정부는 도입국이 임의로 레이더를 뜯어본 사실이 드러나면 거액의 과태료를 물리거나, 군수지원을 중단해 도입국이 그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도입국 처지에서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종속’이고 자주국방을 못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따라서 선진국도 동의할 수 있는 기술 도입 방안을 찾게 된다. 기술력이 부족한 도입국이 빨리, 그리고 정확히 레이더 구동 원리를 알고자 한다면, 선진국 회사로부터 ‘도제(徒弟)식’으로 배워야 한다. 선진국 회사가 레이더를 정비할 때 같이 하면서 익히고, 그 회사를 ‘모시고’ 새로운 레이더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록히드마틴을 선생으로 모셔놓고 배워가면서 KFX를 개발하려는 것과 같다. 이렇듯 도제식 수업은 기술을 넘겨주는 첩경이니, 선진국은 그냥 허용하지 않는다. 엄격히 심사해 통과된 경우에만 허가한다. 선진국 정부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술 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 이는 기술에 대한 수출허가다. 선진국의 수출허가 제도에는 품목에 대한 것과 기술에 대한 것이 있다.

    선진국은 동맹 정도에 따라 나라를 분류해놓았다. ‘최고 동맹국에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할 경우 중요한 군사기술을 넘겨줄 수도 있다. 그저 그러한 나라에는 고급 기술은 전혀 판매하지 않고 상당한 대가를 내놓아야 그렇고 그런 기술을 제공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적대국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기술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미국은 한국을 최고 동맹국으로 여기나 핵심 군사기술을 넘길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AESA(능동주사형)로 불리는 첨단 레이더 기술을 최고의 군사기술로 여기기에 최고의 동맹국에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유럽이 이를 개발해 유로파이터에 탑재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유로파이터를 개발할 때 AESA 레이더 개발에 들어갔으나, 유로파이터를 생산할 시점에도 개발을 완료하지 못하다가 유로파이터가 양산돼 실전까지 해본 지금에야 개발에 성공했다.

    갈등의 핵 AESA 레이더

    따라서 한국이 AESA 레이더 개발에 도전한다면 KFX가 양산돼 200~300대 생산될 때쯤 완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확실한’ 한국 시장이 상당히 소진된 다음이라 이 AESA 레이더를 탑재할 KFX가 많지 않을 것이다. AESA 제작팀은 개발비를 건지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 부담을 피하려면 KFX가 양산되기 전에 AESA 레이더를 개발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나 유럽에 상당한 대가를 주고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은 AESA 레이더 기술을 수출하지 않는다. 유럽은 반반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유럽을 설득해 한국이 AESA 레이더를 공동개발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를 비롯한 여러 센서가 잡은 정보를 임무컴퓨터에 종합하는 ‘통합’이다. 미국은 ‘통합은 미국 기업만이 한다’는 전제하에 통합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임무컴퓨터를 KFX에 탑재(수출)하도록 허가했다.

    따라서 유럽의 협조를 받아 AESA 레이더를 개발할 생각이 있다면, 한국은 먼저 미국으로부터 ‘유럽과 협력해서 개발한 AESA 레이더를 임무컴퓨터에 통합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 약속 없이 덜렁 개발했다가 미국이 통합해주지 않겠다고 하면, 개발비만 날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산화가 능사 아니다

    KFX를 개발하겠다는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이 부분을 경시해왔다. 방사청의 문제는 방산 비리가 아니라 ‘철학 부재’에 있다. 방사청은 국방을 위한 기관이니 국방을 할 수 있도록 ‘적기(適期)’에 필요한 무기를 확보하는 전력화(戰力化)를 제일의 임무로 여겨야 한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스텔스 전투기가 필요하다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방사청은 핵심 무기나 부품을 적기에 마련하는 전력화(戰力化)가 아니라 이를 국내에서 개발하는 국산화(國産化)를 더 중요시하는 듯하다.

    지금 방사청은 AESA 레이더 등 4대 센서 개발을 KFX 사업의 최고 목표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임무컴퓨터에 통합시킬 때 혼선이 없도록 미국과 수출허가 문제를 정리해놓아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방사청은 올해 6월 말 KFX 체계개발 본계약을 체결한다고 했으나 하지 못했다. 올 연말이 지나도 본계약을 맺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통합 등을 놓고 미국과 사전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고 협상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방사청의 무능은 다른 면에서도 증명된다. AESA 레이더 등 4대 센서를 개발하려면, 이 센서의 시제(試製)를 싣고 다니면서 검증할 비행기가 필요하다. 비행기에는 엔진을 비롯해 많은 것이 돌아가기에 전파 간섭 등이 일어난다. 이러한 간섭이 첨단 전자제품인 AESA 레이더에 영향을 줘 오작동을 일으키게 한다. 따라서 AESA 레이더를 개발할 때는 설계대로 시제를 만들고 이를 비행기에 싣고 다니며 여러 상태에서 정상작동을 하는지 점검해 수정해나가야 한다.

    개발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검과 수정을 하려면 시제를 싣고 비행할 ‘실증검사기(機)’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KFX 개발에는 이 비행기 도입 비용이 잡혀 있지 않다. 이런 식으로 허점이 있으니 KFX 사업은 할수록 커지게 된다. ‘돈 먹는 하마’가 될 공산이 큰 것이다.

    미국의 수출허가 문제와 관련해 KFX 사업에는 방사청이 만들어낸 이상한 허상(虛像)이 하나 더 숨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20%의 개발비를 지원받아 KFX를 개발하겠다고 한 계획이 그것이다. 인도네시아는 20%를 투자하기에 KFX를 그들의 국산 전투기인 IFX로 부른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의 무슬림 국가인데, 미국은 무슬림권을 우호국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에 내주는 정도의 수출허가를 인도네시아에는 절대 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AESA 레이더 한국 수출을 한국이 사용할 KFX에만 AESA 레이더를 단다는 조건하에 허가한 것이다. 인도네시아가 쓸 KFX(IFX)라면 따로 미국 정부에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덜렁 개발비의 20%를 지원받는다는 조건으로 인도네시아를 KFX 사업 파트너로 삼았다.

    인도네시아가 철수하면

    미국은 인도네시아에 AESA 레이더가 실린 전투기가 제공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결정은 본계약 이전에 나온다. 그리하여 IFX에는 AESA 레이더가 탑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인도네시아가 약속했던 20% 투자를 거부한다면, KFX 사업은 바로 ‘파탄(破綻)’이 난다. 사업비가 부족해 진행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공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2025년 KFX가 양산될 것으로 믿고 어렵게 고물 전투기를 유지해온 공군은 허탈해지는 것이다. 전력화 계획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전력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외국 전투기를 수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려면 다시 사업비를 계산해봐야 한다. 그로 인해 다른 사업들도 영양을 받아 줄줄이 연기된다. 모든 것이 엉켜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곤마(困馬)를 피하려면 방사청은 미국, 인도네시아와 계약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방사청은 이제야 이 문제에 대해 미국과 협의에 들어갔다. 미국과의 협의에서 결과가 나와야 그것을 토대로 인도네시아와 협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KFX 본계약은 올해 안에 성사되기 어렵다.

    인도네시아의 투자를 유지해 KFX 사업을 예정대로 추진할 방법은 무엇인가. 대미외교에 총력을 기울여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뿐이다. 이러한 노력은 방사청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물론이고 국정원과 대통령까지 나서는 총력외교를 펼쳐야 가능할까 말까다.

    박근혜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70학번 동기인 장명진 방사청장은 국과연에 오래 근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의식이 아직도 국산화에 매몰됐는지, 아니면 전력화와 미국의 수출허가 제도, 미국-인도네시아와의 관계 같은 국제 문제에 쏠리기 시작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고, 대통령에게 어떻게 보고하느냐에 따라 10년 뒤의 대한민국 안보는 안정될 수도 있고 흔들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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