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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로 풀어쓴 현대사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그리스 사태’ 잉태한 ‘유로존’

  • 조인직 | 대우증권 도쿄지점장

체급, 체력 제각각 산으로 가는 EU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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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U 효시는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 ● 룩셈부르크 총리, 1970년 단일화폐 도입 첫 제안
  • ● 英, 퀀텀펀드 공격 3일 만에 항복
  • ● 재정난 남·동유럽 국가 유로존 탈퇴 의견 많아
유로존의 오랜 골칫거리이던 그리스 부채 문제가 일단락됐다. 국민투표로 일단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유로존 주요 국가들 가운데 일부가 그릭시트의 필요성을 여전히 주장해 ‘뇌관’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유럽 대륙은 200여 년 전부터 범세계적 문명사회를 이끌었지만, 언제부턴가 ‘유로존’이라고 하면 적어도 경제적 의미에서는 정체(停滯)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사실 ‘그리스 사태’라고 칭하기는 하지만 ‘그리스 신화’ 정도만 빼고는 그리스에 대해 많은 부분이 생소하다. 그리스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99년 유럽연합(EU)의 단일통화 유로의 탄생부터 살펴봐야 한다. 유로의 탄생 배경은 다시 70여 년 전인 세계 2차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영국이 단일통화 유로에서 빠진 뒤 지금까지 ‘나홀로 파운드’를 고집한 배경에는 1990년대 초반, 당시에는 이름도 낯설던 헤지펀드의 공격에 따른 학습효과가 있었다. 그즈음 베를린 장벽을 허물며 탄생한 독일 통일은 정치적으로는 엄청난 이벤트였을지 모르나 당시 유럽 역내 외환시장 질서를 왜곡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처음부터 단일하지 않은 나라들이 왜 단일경제권으로 묶인 걸까. 단일경제권 내에서 쓰기로 한 단일화폐를 왜 영국은 굳이 거부한 걸까.

EU의 효시는 1951년 만들어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다. 프랑스 외무장관이던 로베르 슈만이 제창해 파리 조약을 통해 만들어졌다. 파리 조약의 표면적 내용은 참가국 간에 석탄과 철강의 공동 시장을 창립하는 것을 골자로 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공감대가 투영된 결과였다.

국경 넘어선 시장 통합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유럽 대륙이 전장으로 초토화하는 바람에 전후 미국과 러시아만이 급부상했다. 반대로 유럽엔 한 번 더 비슷한 전쟁이 터질 경우 회복 불능의 공도동망(共倒同亡) 상태로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비등했다. 이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은 승전국과 패전국이 구조적으로 이해(利害)를 같이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모았다. 경제동맹을 통한 공동의 정치적 안정이 노림수였던 것이다.

ECSC 참가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벨기에 · 네덜란드 · 룩셈부르크) 등 6개국으로, 현재 EU 체제에서도 가장 강력한 핵심 지위를 보유한 가맹국들이다. 이후 1957년 새롭게 발족한 유럽경제공동체(EEC, Europe Economy Community)는 가맹국끼리 맺은 관세동맹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국경을 넘어선 시장통합의 움직임이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됐다.

1967년 EEC는 기존의 ECSC,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등을 흡수하며 새로운 유럽공동체(EC)로 거듭나게 된다. 1968년에는 특정 품목에 대해서 EC 가맹국 간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기로 합의했다.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차례로 EC에 가입해 가맹국은 9개국으로 확대되고, 1980년대에는 남유럽의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이 가세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외연을 넓혔다.

터널 안의 뱀

EC가 오늘날의 EU로 거듭난 것은 1993년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의 도시) 조약에 기인한다. 경제와 화폐의 통합은 물론, 공동의 외교정책과 안보정책, 내정과 사법에 관한 회원국의 협조를 약속하는 것 등이 조약의 골자였다. 2년 뒤인 1995년에는 오스트리아 · 핀란드 · 스웨덴이 EU에 새로 가입했고, 2004년에는 폴란드 · 체코 · 헝가리 등 동유럽 10개국, 2007년에는 루마니아 · 불가리아가 가입을 확정했다. 2013년 7월 가입한 크로아티아를 합치면 현재 EU 가맹국은 28개국이다.

EC 체제 안에서 관세장벽이 단계적으로 폐지되자 각국의 관심사는 화폐통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침 독일 마르크화가 급등하고 프랑스 프랑은 절하되는 등 유럽 내 경기가 요동을 치면서 EC 울타리 내에서 관리해 오던 농산품 공동가격제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환율 변동의 피해가 없는 ‘공동체의 안정’이 화두로 떠올랐다.

EC 집행위원회는 경제통화공동체(EMU)를 만들었고, 1970년 룩셈부르크 총리 피에르 베르너는 EMU 특별위원회 의장을 맡아 유럽 단일화폐 제도의 당위성과 로드맵을 그린 이른바 ‘베르너 리포트’를 발표했다. 당시의 고정환율제로부터 10년 후에는 가맹국 모두가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단계적 도입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 ‘혁신적인 안’은 때마침 터진 ‘닉슨 쇼크’와 ‘오일쇼크’로 인해 빛을 보진 못했지만, 이후 1990년대 말 단일통화 유로(Euro)가 도입되기까지 줄곧 이론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EU 가맹국은 각국 통화를 일정한 합의에 의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변동시키는 일종의 ‘역내 공동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며 외환 변동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했다. 단일화폐 논의는 2차대전 후 이어진 미국 ‘슈퍼 달러’의 갑작스러운 위상 변화에 맞서는 자구책과 같았다.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금과 달러, 달러와 각국 화폐가치를 각각 고정비율로 교환하는 고정환율제도를 도입했으나 1971년 닉슨 미 대통령이 달러화의 금 태환 폐지를 선언하면서 변동환율제의 물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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