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시비를 가릴 일도 많아졌다. 부모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부부가 헤어질지 말지, 헤어진다면 위자료와 자녀양육비는 어떻게 할지 같은 가족 간 문제를 법정에서 푸는 경우도 많아졌다.
억울해서, 괘씸해서…
50대 초반과 중반인 윤모 씨와 그의 여동생은 수년 전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윤씨의 남동생(여동생에게는 오빠)과 상속재산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윤씨의 주장에 따르면, 아버지와 함께 살며 가업을 돕던 남동생은 부친의 사망을 앞두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를 부추겨 부친 명의의 공장 건물과 토지 등 모든 재산을 자기 명의로 돌려놓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윤씨와 여동생은 “아버지 재산을 원래 명의로 돌려놓고 미리 작성해둔 유언장에 따라 상속분을 나누자”고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 남동생은 “아버지가 생전에 내게 재산을 직접 증여했기 때문에 그전에 작성된 유언장은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언장이 있는데도 상속재산을 한 푼도 못 받게 된 윤씨 남매는 남동생(오빠)을 상대로 자신들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와 함께 상속재산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60세 안팎인 김모 씨 4자매는 80세가 넘은 아버지가 오래전 양자로 입양한 남동생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려 하자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대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동생이 아버지를 잘 모셔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약속과 달리 남동생이 아버지를 제대로 보살피지 않자 보다 못한 큰딸이 자신의 집으로 아버지를 모셔왔다. 이후 부친이 사망하자 남동생을 괘씸하게 여긴 자매들은 남동생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비록 우리가 돌려받을 수 있는 액수가 크진 않겠지만 생각할수록 화가 나 아버지 재산을 한 푼이라도 찾고 싶다”는 게 소송 이유였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상속에 관한 사건’ 접수 건수는 2010년 3만301건으로 처음 3만 건을 넘어선 이후 2011년 3만1682건, 2012년 3만2251건, 2013년 3만5030건, 2014년 3만7002건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기간 ‘상속재산의 분할에 관한 처분’ 접수 건수도 435건에서 771건으로, ‘유언에 관한 사건’은 같은 기간 198건→262건, ‘기여분 결정’은 98건→170건으로 급증했다. 상속과 관련된 사건은 예외 없이 증가세다.
상속 관련 사건이 급증하자 3~4년 전부터 일부 로펌들은 앞다퉈 회계사 출신 변호사, 국세 전문 변호사, 상속 전문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상속사건 전문팀’을 꾸렸다. 이들에 따르면, 상속 분쟁의 배경에는 핵가족화, 가족관계 해체로 인한 유대감 약화, 여권 신장, 가부장 사회의 쇠퇴와 같은 사회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성별, 혼인 여부에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자식이면 모두 동등하게 상속재산을 물려받도록 한 상속법 개정에 따라 여성(딸)의 권리의식이 커진 측면도 있다. 경제난이 지속되면서 부모 재산에 기대려는 자식들의 의존 심리도 한몫한다. 상속재산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훨씬 커진 것도 상속 분쟁이 급증한 핵심적인 이유로 꼽힌다.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한 채가 웬만하면 10억 원을 훌쩍 넘고, 도심 6~7층 건물 시세는 100억 원을 웃돈다. ‘오빠나 형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느라 고생했으니 상속재산을 다 가져라’라며 양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법무법인 세종 김현진 변호사)
“재산이 많을수록 피상속인 사후 가족 간 분쟁이 많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생존해 있을 때는 다툼을 자제하다가 남은 부모마저 사망하면 제몫을 챙기려고 소송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 혼외자가 등장하면 상속재산 다툼은 더욱 치열하고 복잡해진다”(법무법인 충정 곽정민 변호사)
“우리 사회엔 피상속인의 재산이 혼자 일군 게 아니라 가족이 희생하며 공동으로 일군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 때문에 가족끼리 의견이 안 맞으면 상속 분쟁으로 치닫는다.”(법무법인 넥서스 신동윤 변호사)
성년이 되면 대부분 부모와 떨어져 독립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서구 사회와 달리 우리 사회엔 결혼 전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성년이 된 후 부모에게 금전적으로 기대는 자녀가 많고, 반대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거나, 형제끼리 금전 문제로 얽히는 경우가 많아 상속재산 배분을 꼬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작은 돈도 끝까지 받아낸다
어머니와 사별하고 홀로 된 아버지를 2년 전 요양원에 모신 50대 후반의 박모 씨는 최근 동생들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은 집 한 채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놓고 동생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가난한 집 장남인 나는 동생들 대학공부 시키느라 고등학교만 졸업했다. 뼈 빠지게 일해 번 돈으로 결혼까지 다 시켰다. 아버지가 요양원에 가시기 전까지 모신 사람도 나와 아내다. 이제 와서 자기들이 무슨 염치로 아버지 집을 탐내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들이 똑같이 집을 나눠 갖자고 하면 절대 그럴 생각이 없다.”
곽정민 변호사는 “상속분쟁은 인지청구, 상속회복청구, 유류분반환청구, 상속재산분할청구, 유언장을 비롯한 사문서 위·변조 등 민사·가사·형사 사건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