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김정은 비핵화 방정식

‘盧정권 최고 대북전략가’ 라종일

김정은, ‘루이제 린저의 북한’ 동경? “안보, 중국에 맡기자는 책임 있는 분 있어”

  • 입력2018-05-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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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핵화는 정상국가화

    • 핵무기 감추기 어려워

    • 정치범 수용소 없애는 게 이익

    • 중국·베트남 모델 안 맞아

    • 한국 뒤좇다간 정권 위험

    • 친환경 경제개혁 모델로 차별화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자신이 쓴 ‘장성택의 길’ 일본어판을 들면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자신이 쓴 ‘장성택의 길’ 일본어판을 들면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라종일(78) 가천대 석좌교수는 김대중 정부 때 국가정보원 해외·북한담당 1차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엔 대통령 국가안보보좌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경희대 대학원장, 우석대 총장도 역임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의 최고 대북전략가인 그는 진보성향 문재인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이 급격한 변화를 누구보다 속속들이 꿰뚫어보는 사람일 것이다. 언론 접촉이 거의 없던 그를 만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김정은의 앞날’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경희대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겠네요? 

    “그분은 법대에 다녔고 저는 정경대 교수여서…. 그때 저의 제자들과 친구였다고 해요. 제가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할 때 그분은 민정수석비서관을 했죠.”

    “사제지간이라 아무래도 어색”

    청와대에서 서로 대화하기도 했나요? 

    “그럼요.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것저것 이야기했는데 사제지간이라 아무래도 어색했어요. 차분한 모습, 옳은 일을 하려 애쓰는 모습으로 기억해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예측해봤나요? 

    “아마 문 대통령 마음속에 제일 크게 있던 것이지 않나 해요.” 

    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4월 27일 정상회담 후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 확인’ ‘올해 종전 선언,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6월 12일 비핵화를 위한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것은, 북한이 ‘감추는 것이 없고 미디어의 자유로운 취재를 허용하는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것과 상관관계가 있지 않나 해요.” 

    완전한 비핵화와 관련해, 라 교수는 핵무기를 모두 찾아내 제거하는 ‘미시적 접근’보다는 핵무기가 불필요한 상황을 만드는 ‘거시적 접근’에 더 주목한다.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서 망한 나라도 있고, 핵무기를 갖고 있다가 스스로 버린 나라도 있고, 핵무기를 안 갖고 있으면서 안전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나라도 있어요.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정성을 갖고 있다 없다 하는 문제와 별개로, 향후 북한에서 벌어질 변화를 함께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 핵 문제가 나왔는데 미국이 해놓은 게 없어요. 이제 미국 본토까지 위협받고 있죠. 이 문제를 꼭 풀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대통령에게 있을 수 있죠. 사적으로, 그는 국내에서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그 돌파구로 의미가 있지 않나 해요.”

    “다 안 뒤져도 기록 보면 알아”

    문정인 대통령외교안보특보는 미국 전문가들의 북·미 정상회담 전망과 관련해 “비관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 80% 이상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대해 라 교수는 “미국인들이 북한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게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북한이 일부 핵탄두를 고의로 신고하지 않고 꽁꽁 숨겨두면 아무리 사찰하더라도 못 찾을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숨기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예를 들어, 핵 처리장을 철저히 검색하면 핵무기 (개수 등) 개발 정도를 알 수 있어요. 곳곳을 다 뒤져야 하는 건 아니죠. (사찰팀이) 생산시설이나 기록을 볼 수 있다면, (북한이) 몰래 숨겨놓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죠.” 

    다 알아낼 수 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문제는 북한이 정상적인 나라가 되느냐 하는 것과도 연관됩니다. 우호적 관계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형성된 나라가 핵무기를 꽁꽁 숨겨놓을 순 없어요.” 

    이 대목에서 라 교수는 인권 탄압의 상징인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를 거론한다. 이젠 정치범 수용소 폐쇄가 오히려 김정은과 북한에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21세기에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나라로 대우받을 정도의 변화가 필요할 것입니다. 정치범 수용소 같은 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국제적인 교류, 미디어 개방… 이런 것이 정상적으로 돼야죠. 또, 이란이나 이라크 같은 나라에도 외국 문물이 들어와요. 북한만 아주 예외죠. 이런 게 잘 해결되느냐 하는 것은 핵 폐기가 진심이냐 아니냐 하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한국은 반전(反戰) 문화”

    남북한 정상은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것 같습니다만. 

    “종전 선언을 한다고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고,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평화가 오는 건 아니죠. 1953년 휴전협정을 맺고 휴전이 됐나요? 소규모 충돌이 이어졌고 미군 주둔이 없었다면 전쟁이 다시 시작됐을 수 있죠.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저는 평화협정 자체에 그리 큰 의미를 안 둬요.” 

    북한은 평화협정을 체제 보장의 수단으로 여깁니다만. 

    “누가 한 나라의 체제를 보장해줄 수 있나요? 미국 같은 초강대국도 안보 위협은 있어요. 이건 해주느냐, 안 해 주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체제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현실은 다르죠. 미군이 1949년 한국에서 철수한 지 얼마 안 돼 김일성이 전쟁을 시작했죠.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 별 관심이 없었고 북한을 공격할 마음도 없었죠. 전쟁이 난 다음 북한의 공식 입장은 미국이 먼저 침범했다는 것이죠. 만약,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북한은 미국이 한국전쟁을 시작한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 사람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어요.” 

    실제로는…. 

    “미군은 자국 책임 안에 있는 나라가 무력 침입을 당하니까 반응한 것이죠.” 

    평화협정 자체로는 북한 체제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라 교수의 말은 상식적인 내용이지만 현 비핵화 시국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는 듯했다. 

    “솔직히 한국은 반전(反戰) 문화죠. 전에 외국인들에게 이렇게 물었죠. ‘만약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라면 왜 서울에 제대로 된 방공호가 없는가?’라고요. 북한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하는데 서울은 전쟁을 할 생각이 없어요.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전쟁 대비를 안 해왔죠. 이런 측면에서, ‘핵무기가 없으면 미국과 한국이 자기를 칠 것 같아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것은 그리 설득력 있는 주장이 아닙니다.” 

    이어 라 교수는 쟁점인 주한미군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북한은 미국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안전이 위태로우니 미국이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미군은 1950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계속 머물러왔죠. 그동안 주한미군은 두 가지 역할을 해왔어요. 하나는 북한군에 대한 저지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군에 대한 억제죠. 북한군이 먼저 공격해 한국군이 보복하려 할 때마다 미군은 이를 제어하기 위해 애썼죠. 주한미군이 사라져야 북한 체제의 안전이 보장된다? 이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중국에 의한 안보 위협 커질 것”

    남북 정상회담 이후 문정인 특보는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엔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 주한미군 철수를 강하게 암시한 것으로 비쳐 논란이 발생했다. 청와대는 평화협정과 주한미군이 별개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라 교수는 “그럴 수 있다. ‘평화가 실현됐는데 무엇 때문에 미군이 여기 있나? 우리끼리 평화롭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화협정이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 

    “철수로 이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지만 철수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되겠죠. 남북한의 관계가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라든지 덴마크와 스웨덴의 관계 정도가 된다면 미군이 있을 필요가 없죠. 그러나 평화협정에 서명한다고 그런 평화적 상황이 될까요? 평화를 담보할 제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그러지 않고 평화협정만 맺으면 희망만 앞세우는 것이죠.” 

    제일 중요한 제반 조치는 무엇일까요? 

    “핵무기가 완전히 철폐되었는가, 전방에 전개된 북한 군대가 물러섰는가, 서울을 겨냥한 방사포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이런 군사적인 조치 이외에도 남북한 관계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는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국 쪽도 마찬가지겠죠.”

    “미군 철수 시 주권국 힘들어”

    라종일 석좌교수는 “바람직한 비핵화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라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라종일 석좌교수는 “바람직한 비핵화는 북한의 정상국가화”라고 말한다. [박해윤 기자]

    평화협정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군사동맹이 사실상 와해된다면, 한국의 안보는 중국에 의한 위협으로 인해 취약해질 것이라고 합니다만. 

    “안보 위협뿐만 아니라 중국의 영향력이 너무 커지겠죠. 일부는 ‘중국에 안보를 아예 맡기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해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드 배치 때 중국의 위력을, 그 행태를 봤죠.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데 거기에다 안보적으로 의존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중국에 종속된다? 

    “그건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책임 있는 분들 중에 안보를 거기에다 맡기자고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중국에 안전 보장을 맡기고 나서 주권국가로 제대로 살 수 있나요? 중국과 우리는 정치체제, 규범 등의 차이 문제도 있습니다.”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이 핵전략자산의 한국 전개를 중단하는 방안을 북한에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말도 들린다.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은 김정은의 이익에 침해되지 않는 건가요? 

    “선대(김정일 국방위원장)부터 ‘주한미군 계속 있어도 괜찮다’고 말하다가 번복하기도 했죠. 주한미군의 성격이나 능력이 무엇인지를 보고 북한이 판단하면 됩니다.” 

    주한미군의 성격이나 능력이 북한 공격용이 아니라면 김정은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지금 대북제재와 압박 때문에 북한 경제가 굉장히 어렵다고 보나요? 아니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보나요?
     

    “중국과 러시아까지 제재에 가담하니 북한으로선 어려운 형편이었겠죠. 그렇지만 북한은 늘 어려운 형편이었죠.”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약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김정은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택할지, 베트남식 모델을 택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식 모델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중앙정부 통제하에 시장을 개방하고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경제특구를 설치해 경제를 발전시키는 방식이다. 베트남식 모델은 중국식 모델과 유사하지만 특구 대신 사회주의적 공유제의 비중을 높인다. 또한, 중국에 대한 의존성을 낮추는 대신,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최근 ‘김정은은 베트남식 모델을 더 선호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보다 열등하다”

    이와 관련해, 라 교수는 “중국식 모델과 베트남식 모델 모두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맞지 않다. 북한에 적용하기 힘들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로 ‘북한이 중국·베트남과 달리 분단국가인 점’을 든다. 

    “베트남은 이미 통일을 이룬 반면, 북한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한국이라는 경쟁자를 갖고 있어요. 베트남 모델을 따르면, 한국과 비교되는 처지에 놓이죠. 개혁·개방 과정에서 ‘한국보다 열등하다’ ‘한국을 봐라’ 하는 이야기가 내부에서 나오겠죠. 정권의 정통성과 안보가 진정으로 위태로워질 수 있어요. 한국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기를 부르죠.” 

    그러면 김정은은 어떤 방식으로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하나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경협을 보면, 북한은 한국의 지원을 받으면서 가급적 북한 주민들이 노출되는 것을 차단했어요. 금강산 관광의 경우, 한국 관광객들이 가는 루트와 북한 주민들이 지나는 루트가 각각 따로 있죠. 또한, 한국에서 도움을 받는 것을 자기 식대로 해석해요. ‘한국이 우리한테 돈을 주는 것은 우리를 존경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침략을 막아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요. 문자 그대로 당당하게 받죠.” 

    이번에도 그 기조를 계속 유지할 것 같나요? 

    “아니요.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디지털 레니즘’

    중국은 중앙정부의 계획과 첨단 기술에 의해 경제 발전을 이뤄 ‘디지털 레니즘’으로 평가되기도 하고, 김정일 위원장은 상하이를 보고 천지개벽이라고 하기도 했는데요.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을 따라 할 가능성은 없나요?
     

    “중국은 북한이 중국식 모델을 수용하기를 원해요. 김정은의 관심사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한국이 없으면 김정은은 얼마든지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나 한국이 있으니 늘 한국에 도움을 받아야 해요. 지금까지 해온 ‘주체사상’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을 뒤좇는 모양새가 되죠. 북한은 완전히 다른 모델로 가지 않으면 자존심을 살릴 수가 없어요. 완전히 다른 제3의 모델을 택하는 거죠.” 

    어떤 모델인가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자연에 대한 최대의 착취’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죠. 특히, 자본주의는 양극화와 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죠.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다 수면이 올라가는 것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고도성장과 풍족한 소비를 원하는 국민의 욕구를 충족시켜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요. 따라서 장기적인 계획을 추진하지 못해요. 북한은 이럴 필요가 없어요. 투자된 것이 적어 이해관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국민을 강력하게 통솔합니다. 제가 강단에서 ‘북한 체제의 장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학생들이 곤혹스러워해요. 북한은 에너지를 적게 쓰고 쓰레기를 적게 버리죠. 이건 큰 장점이죠. 또, 북한은 1948년 출범할 때부터 평등 사회를 지향했어요. 북한은 이런 걸 살려나가야 해요. 저는 ‘스마트 그린 모델(Smart Green Model)’이라 불리는 친환경 경제개혁 모델을 북한에 권고해왔습니다.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이 미국의 ‘38North’지에 실린 일도 있죠.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경제개혁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야 할 정당성 내지 당위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북한 동경한 이유

    비핵화의 대가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이런 친환경 경제개혁 모델을 정착시킨다면 북한은 한국과 체제경쟁을 할 수 있다? 

    “체제경쟁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우위에 설 수도 있죠. 1948년 당시 북한 체제는 한반도 내 많은 지식인의 공감을 샀죠. 당시 북한으로 간 지식인이 많았어요. 이후 루이제 린저나 장 폴 사르트르 같은 서양의 일부 지식인들도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어요. 김정은은 이런 북한 사회를 재건하려 하는지 모르죠. 지금 북한은 지식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해요. 정치범 수용소, 인권유린, 테러, 핵·미사일 도발, 유엔 결의 위반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북한이 핵무기를 갖지 않고도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한국, 미국, 중국이 하지 못하는 인류적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봐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본격화된다면, 김정은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선거에 신경 쓸 필요가 없고 국가의 경제 규모가 작으니까요. 주민의 풍족한 생활을 보장해주면서 친환경적이고 평등한 발전을 보여줄 수 있죠.” 

    자신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네. 독재체제라 하더라도 그렇게만 하면 아마 세계의 지식인 중 상당수가 북한을 높게 평가할 겁니다. 북한이 자신의 체제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라 교수는 ‘장성택의 길’을 비롯해 여러 북한 관련 책·논문을 냈다. ‘장성택의 길’은 일본에서 출판된 데 이어 영어로 번역돼 내년 미국에서도 나온다. 

    한국 사회에서 김정은에 대한 호감이 확산되고 있다는데요. 

    “핵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희망도 있고. 그리 괴이한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나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죽인 건 사실이죠? 

    “물론이죠.” 

    잔인하다는 평가도 나올 수 있는데요. 김정은은 왜 장성택을 제거해야 했습니까? 

    “그런 체제에서 2인자를 용인할 수 없었던 거죠. 아버지인 김정일은 정권 유지에 자신이 있었으니 장성택을 내치기도 하고 가까이 두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나 기반이 약한 젊은 지도자는 그럴 수 없었던 거죠. 여기에다 장성택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모였어요. 다른 군인들은 옥수수밥을 먹는데 장성택 휘하의 군인들은 쌀밥을 먹죠. 데릴사위는 유능하면 의심받고 무능하면 멸시받죠.”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의도로 북핵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습니까? 

    “전쟁 위기였는데 이 위기를 해체하고 있어요. 평화체제가 정착되기를 희망합니다. 너무 어려운 조건이 많긴 하지만요.”

    핵을 넘어선 더 큰 그림

    몇몇 대북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 대신 결국 ‘적당한 비핵화’를 선택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회담까지 하는 마당이므로 성과를 내야 한다. 몇몇 핵탄두를 모른 척 눈감아주면서 ‘비핵화 성공’으로 포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트럼프는 핵탄두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없애려 할까요? 아니면 적당히 타협할까요? 

    “다 없애고 싶겠죠. 그러나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입니다. 리얼리티(실제·reality)와 어피어런스(외양·appearance)의 차이죠. 트럼프는 실제보다는 외양, 그렇게 보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어요. 그의 목표는 재선에 성공하는 것이니까요.”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 군사충돌 위기가 다시 오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우리 쪽이 안보 태세만 갖추고 있으면 북한의 현 집권 세력은 전쟁을 불사할 혁명 세력이 아니죠.” 

    비핵화의 여러 단계별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지는 쟁점 중 하나다. 이에 대해 라 교수는 “나는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체제 안보를 위해 핵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체제 안보가 목적이고 핵이 그 수단이죠. 핵에만 관심을 둬선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다. 저는 핵을 넘어선 본질적인 문제, 체제 안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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