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이렇게 바꾸자!

2022년 ‘간접흡연 0%’ 일본서 배우자…

“끽연자 ‘흡연구역’으로 분리해 ‘길빵’ 막아야”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6-04 09: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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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市 3분의 1이 금연구역이지만 유명무실

    • 간접흡연 韓 늘고, 日 줄어… ‘회색구역’ 탓

    • 성인 남성 40%가 흡연자… “흡연 부스 늘려야”

    • 담뱃세 11조 원 거두면서 금연정책·흡연 부스엔 ‘찔끔’

    • ‘1갑당 841원’ 건강증진기금, 간접흡연 줄이는 데 써야

    5월 2일 오후 8시 40분 서울 종로구 종로3길 인도에 흡연자가 모여 있다. 식당가에서 술자리를 갖다 흡연 욕구가 생겨 밖으로 나온 이들이다. 길을 오가는 행인들이 담배 연기가 역한지 인상을 찌푸린다. 담배 냄새 탓에 2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해 맞은편 인도로 옮겨가는 이도 있다.

    무용지물 금연구역… “‘길빵’ 싫어요”

    30대 남성이 담배 연기를 뻐끔뻐끔 내뿜다가 흡연을 마치고는 꽁초 버릴 곳을 찾는다. 주변을 둘러봐도 휴지통이 없다. 결국 바닥에 다 피운 담배를 버린다. 흡연자들도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께름칙한 표정이다. 행인이 다가오면 인도 구석으로 몸을 움츠린다. 행인을 피해 차도로 나아가는 이도 있다. 흡연자도 비흡연자도 고생이다. 

    “행인에게 피해 준다는 건 잘 알죠. 그런데 담배 피울 곳이 없어요. 금연구역이 늘어났으면 흡연구역도 지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흡연 부스라도 있으면 좋죠. 끊긴 끊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담배꽁초 버릴 휴지통 찾기도 힘듭니다. 꽁초를 들고 한참을 걸어도 버릴 곳이 없어요.” 

    종로3길 D타워 인근 2차선 도로에서 담배를 피우던 40대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종로에서 종로구청 방향으로 걸어가던 20대 여성의 생각은 다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번화가 근처 골목길마다 담배꽁초가 수북해요. 아이들이 지나가는데도 담배 연기를 내뿜는 사람도 있어요. 요즘 미세먼지도 심각한데 이게 뭐하는 짓인가요. 국가에서 아예 담배 판매를 금지해야 합니다. 몸에도 해로운 걸 당최 왜 피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길빵(길에서 담배 피우는 것)’하는 사람들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어요.” 



    2015년부터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음식점 등 모든 영업소에서 전면 금연이 시행됐다. 자치구들은 조례를 만들어 거리와 공원 등 실외 금연 지역을 지정·운영한다. 서울에서 금연지역으로 지정된 구역은 2011년 19.19㎢에서 2016년 85.51㎢로 5년간 4배 넘게 증가했다. 실외 금연구역은 2011년 670개 장소에 불과했으나 2017년 말에는 1만9201개 장소로 27배 넘게 늘었다. 실내 금연구역까지 포함하면 서울시 금연구역은 26만5113곳에 달한다.

    서울시 전체의 33%가 금연구역… “담배 피울 곳은 어디?”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지정한 85.51㎢에 달하는 금연구역은 공원 광장 거리만을 포함한 것으로 각종 시설과 지하철역 출구 등을 포함하면 금연구역은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가량인 것으로 추정된다. 

    금연구역이 이렇듯 확대됐으나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 불만이 많다. 금연구역, 흡연구역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면도로, 골목길, 빌딩 사이 공간 등 ‘회색 지대’에서 흡연하는 이들이 늘면서 ‘길빵’ ‘간접흡연’ 피해가 더 커졌다. 통계청 국민건강영양조사는 “공공장소 간접흡연율은 20%에 육박한다(2016년 기준)”고 밝힌다. 서울시 면적 3분의 1이 금연구역이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얘기다. 

    강남대로, 광화문광장, 여의도공원 등 사람이 몰리는 곳은 대부분 금연구역이다. 금연구역 주변 이면도로나 골목길에는 어김없이 흡연자 아지트가 형성됐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흡연 장소마다 담배꽁초는 물론이고 음료수 깡통이 나뒹군다. 이면도로의 하수구와 배수 시설에는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일부 흡연자들의 시민의식 부재가 문제겠으나 흡연 공간과 휴지통이 ‘없어도 너무나 없다’. 2017년 말 기준 서울시 금연구역에 설치된 흡연 부스는 59개에 그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면서도 흡연 부스 설치에는 인색한 것이다. 담배 피워본 사람들이 다 알 듯 흡연자는 흡연 욕구를 참는 게 생리적으로 어렵다. 

    5월 2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조계사 방면으로 난 도로에 형성된 흡연 아지트. 건물주가 ‘노 스모킹(No Smoking)’이라는 문구를 붙여놨는데도 흡연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다. 삼삼오오 담배를 태우는 시민들 사이에 외국인 일행도 끼어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관광객이다. 니클라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40대 남자는 취재진이 ‘노 스모킹’ 문구를 가리키자 황급히 담배를 끄면서 이렇게 말했다. 

    “몰랐다. 미안하다. 흡연 공간인 줄 알았다. 서울엔 담배 피울 곳이 아예 없는 것 같다.”

    ‘간접흡연율 0%’ 도전하는 일본… “규제보다 분리”

    서울의 한 하수구에 부착된 담배꽁초 투기 예방 포스터. [뉴스1]

    서울의 한 하수구에 부착된 담배꽁초 투기 예방 포스터. [뉴스1]

    간접흡연과 ‘길빵’ 피해를 막으려면 흡연자를 비흡연자와 분리해야 한다. 지난해 6월 취재한 일본의 간접흡연 방지책은 한국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일본은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는 쪽으로 금연 정책을 수립했다. 금연구역이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흡연구역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6월 23일 일본 도쿄의 불교 사찰 센소지 주변은 시민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센소지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는 고찰(古刹)이다. 센소지 입구 맞은편에 흡연 부스가 설치돼 있다. 일본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섞여 이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번화가나 지하철 출입구 인근에서 흡연 부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편의점 주변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흡연 부스 디자인에도 신경을 써 쾌적한 느낌마저 준다. 

    일본은 2002년 8월 건강증진법에 간접흡연을 막는 것을 명문화했다. 간접흡연율 감소 목표치도 정했다. 현재 16.9%인 간접흡연율을 2022년까지 0%로 줄이는 게 목표다. 일본은 2004년부터 ‘흡연자를 분리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비흡연자와 흡연자가 마주치지 않게 하는 방식이다. 실외에 금연구역을 지정하면서 흡연 공간을 함께 조성했다. 비흡연자의 동선과 흡연 공간을 분리한 것이다. 흡연 공간 주변에 화분, 식물 등을 놓아 시각적 쾌적함도 구현한다. 

    건물 내부 금연구역 지정 또한 의무화하지 않았다. 거꾸로 건물 내에 흡연공간을 만들었다. 건물주나 상인이 자발적으로 흡연 공간을 설치하면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2015년 기준으로 일본 음식점의 70%, 사무실의 97%에 흡연 공간이 마련됐다. 흡연권을 보장하면서도 비흡연자가 겪는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다.

    서울市가 지난해 설치한 흡연 부스 ‘0개’

    한국과 일본 흡연율은 엇비슷하다. 한국의 19세 이상 성인 흡연율은 22.6%, 일본은 19.5%.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254개 보건소와 함께 19세 이상 성인 22만83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지역사회건강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성인 남성의 39.3%가 흡연자다. 

    성인 남성 10명 중 4명이 담배를 피우는 만큼 흡연 공간을 설치해 관리하는 게 전체 시민의 복리 증진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금연구역만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닌데도 서울시가 지난해 설치한 흡연 부스는 0개다. 

    서울시가 2015년 285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1%가 간접흡연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피해 장소는 길거리(63.4%) 건물 입구(17.3%) 등 ‘회색 구역’이 대부분이다. 2022년까지 간접흡연율을 0%로 줄이겠다는 일본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국도 흡연자를 격리해 ‘그들만의 공간’에서만 담배를 피우게 할 필요가 있다. 

    지역민들의 민원 제기로 자치구들도 흡연구역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하나 흡연 부스 지정 및 설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데다 법적 강제성도 없어 간접흡연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렇다 보니 KT&G와 필립모리스 같은 담배회사가 자체 예산으로 공공장소에 흡연 부스를 설치한다. 

    서울시는 2017년 1월 ‘실외 금연구역 내 간접흡연 피해 방지를 위한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흡연 부스를 늘리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외 흡연실 간 이격거리를 최소 500m로 규정한 데다 폐쇄형 흡연시설 설치를 막았으며 담배회사로부터 후원받는 것도 금지했다. 전문가 다수는 한국도 일본처럼 흡연권을 보장하되 간접흡연을 막는 방향으로의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회에는 흡연구역 설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월 6일 대표 발의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은 어린이집, 어린이놀이시설 등 이용자의 특성과 규모를 고려해 예외를 인정하되 시설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경우 흡연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으며 흡연실 설치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민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흡연실 설치 의무화법’ 발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설치”

    신경민 의원은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금연구역은 26만5113곳인 반면 흡연실은 1만 곳에 불과한 데다 고층건물이 밀집된 도심은 금연건물 지정으로 건물 밖에서 흡연하는 흡연자가 늘어나 보행자가 간접흡연에 시달리는 풍선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흡연실 설치를 의무화하고 그 비용을 지원해 보행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고 흡연자의 흡연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했다. 

    담배 1갑의 소비자 판매가는 4500원이다. 그중 3318원이 세금이다.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금은 한 해 11조 원이 넘는다. 판매가의 74%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걷는 명분 중 하나가 국민 건강 증진이다.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줄이고 금연을 돕는 데 담뱃세의 일부를 사용하겠다는 취지로 담배에 붙는 세금을 늘린 것이다. 외국계 담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간접흡연 예방 정책은 주차장 없이 건물을 짓는 격”이라면서 “담배에 붙는 세금을 올려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겠다고 해놓고 돈을 다른 곳에 쓴다”고 꼬집었다. 

    2017년 정부가 담배에 부과된 세금으로 거둬들인 돈은 11조2000억 원에 달한다. 일반 담배에서 11조 원, 전자담배에서 2000억 원이다. 2015년 1월 1일부터 한 갑당 담뱃세를 1550원에서 3318원으로 2배 넘게 올린 후 매년 10조 원 넘는 세수가 걷히고 있다.(2015년 10조5000억 원, 2016년 12조4000억 원)

    연간 담뱃세 11조2000억 원… 금연 사업엔 1470억 원 '찔끔'

    1갑당 세금 3318원 중 국민건강증진기금은 841원이다. 담배 1갑에 붙는 세금 중 25%인 841원은 원칙적으로 △흡연 피해 예방 △금연교육 및 광고 △흡연피해자 지원 등에 사용해야 한다. 2017년 국민건강증진기금 예산액 3조7342억 원 중 보건복지부는 3조3001억 원을 지출했다. 그중 금연 사업에 사용된 금액은 4.4%인 1469억 원에 불과하다. 국민 건강 증진은 명분일 뿐 부족한 세수를 벌충하고자 담뱃세를 올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국민건강증진기금 일부를 간접흡연 예방과 흡연 부스 확충에 사용하면 “미세먼지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길빵’으로 인한 갈등을 줄일 수 있으며 비흡연자와 흡연자의 복리가 동시에 증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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