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인터뷰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팀장

“코레일·SR 통합이 공공이익? 진짜 공공성 따져봐야”

  •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8-05-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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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R이 가져온 고속철도 서비스 질 향상

    • 벽지노선 운행, 고속철도 영업이익과 연관 없다

    • 선진국이 철도 통합한다고? 오히려 개방 확대 중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팀장. [지호영 기자]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팀장. [지호영 기자]

    국토교통부에서 지난 4월 18일 코레일과 SR의 통합 여부를 검토하는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라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코레일과 SR 통합 여부 및 그 방식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이번 용역이 어떤 방향을 정해놓고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업계에선 통합을 위한 ‘명분 쌓기’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같은 날, 정당을 비롯한 60여 개 종교·학생·시민·사회·노동단체가 모여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를 출범한 것도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철도의 공공성 강화’를 코레일과 SR의 통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코레일-SR 통합 검토”를 밝힌 바 있다. 

    코레일 노조는 지난 대선 직후부터 SR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도 여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 사장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조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중진의원 출신이다. 반면, 통합 대상자인 SR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승호 SR 사장은 사표까지 제출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통합을 반대하는 이 사장에게 국토교통부가 사퇴를 권유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국토교통부는 “(이 사장의 사퇴는) SR이 올 2월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이뤄진 것이지, 코레일과 SR 통합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공공성 강화 vs 서비스 향상

    2016년 12월 9일부터 수서-부산과 수서-목포 간 SRT를 운행하고 있는 SR은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 철도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받았다. 100년 넘게 독점 운영되던 철도 산업에 경쟁을 통한 서비스 향상, 경영효율화라는 새바람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반면, 코레일과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는 SR로 인해 코레일 적자가 심화되었다며 공공성 강화와 철도 산업 효율화를 위해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합리적인가? 최진석(52) 한국교통연구원 고속철도·산업연구팀장을 만난 이유다. 최 팀장은 오랫동안 고속철도 및 철도 산업을 연구해온 대표적인 전문가다. 

    박근혜 정부에서 코레일 자회사로 SR을 만들어 독립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코레일 노조뿐 아니라 정치권에서조차 SR을 대기업에 팔아넘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SR 매각 가능성이 있나. 

    “SR은 코레일이 41%의 지분을 가진 코레일 자회사다. 물론 나머지 59% 지분을 가진 연기금, 산업은행 등 금융기관이 자기 지분을 매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사회 승인을 거쳐야 하고, 같은 가격이면 민간기업이 아닌 코레일에 매각하도록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민간기업에 매각하기는 불가능하다.” 



    SR 개통 전, 코레일 노조에서는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요금 낮추기 경쟁이 심화돼 안전설비 투자가 소홀해져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안전설비 투자는 정부 몫이다. 정부에서 안전설비 투자 예산을 크게 늘렸다. 요금이 낮은 SR에서 경영수익을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하거나 차량 정비를 부실하게 해서 사고가 난 예는 없다. 코레일도 마찬가지다.”

    SRT 개통과 코레일 적자의 인과관계

    최 팀장은 오히려 SR로 인한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체감한 것처럼 고속열차 서비스 질이 향상됐다. 사라졌던 KTX의 마일리지제가 부활하는 등 요금 할인은 물론 차내 전원 콘센트 설치, 와이파이 용량 확대 등 과거 독점 체제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SR로 인한 코레일의 변화 사례를 든다면. 

    “사당역~KTX 광명역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광명역 도심공항터미널을 오픈하는 등 연계 서비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과거 고객 불만 중 하나가 호남선은 왜 용산역에만 서고, 경부선은 왜 서울역에만 서느냐였다. 과거엔 무조건 그렇게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SR과 경쟁하면서 이게 가능해졌다. 비용 절감을 위한 노력도 나타났다. 올림픽이 끝난 후 더 이상 인천공항까지 운행을 안 한다. 서울역에서 인천공항까지 갔다 오는 시간이면 부산까지 갈 수 있다. 인천공항 승객이 100명이라면 부산행은 평균 700~800명이다. 효율성 차이가 크다. 과거 같으면 그런 거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운행했을 것이다.” 

    ‘고속철하나로운동본부’는 수익이 보장된 알짜 노선만 운행하는 SR로 인한 코레일의 손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코레일도 SR 분리로 2017년 약 2400억 원의 손실을 입어 적자로 돌아섰다고 주장한다. 

    “계산법이 이상하다. 코레일 2017년 손익계산서를 보면 매출이 2016년에 비해 3000억 원 정도 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차이가 SR 때문인지는 따져볼 문제다. 원래 2015년 예정이던 SRT 개통이 늦어지면서 코레일은 SR에 임대해줘야 할 열차 22편성을 KTX 노선에 투입해 추가 수입을 올렸다. 2017년부터는 그 열차를 사용할 수 없었으니 그만큼 매출이 준 건 당연하다. 코레일 이용자가 2016년 하루 평균 17만5000명에서 2017년 16만3000명으로 1만2000명 정도 줄었다고 하는데, SR열차를 임시 사용해 늘어난 숫자를 빼고 계산하면 코레일도 승객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SR이 열차 임차료 등으로 코레일에 1290억 원을 지급했다. 고속여객 수송에서 줄어든 수입은 실제 1000억 원 안팎으로 보인다. 적자의 가장 큰 이유는 영업비용이 3700억 원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인건비가 3700억 정도 늘었다. SRT 개통과 코레일 적자의 인과관계를 따지기 위해선 KTX 이용률 변화, 적자 구조 분석 등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벽지노선 운행 보조금’ 진짜 수혜자

    SR이 SRT를 운행한 지 1년 5개월여 만에 코레일과의 통합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동아DB]

    SR이 SRT를 운행한 지 1년 5개월여 만에 코레일과의 통합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동아DB]

    그는 “SR은 코레일로부터 임차한 22편성 외에 자체적으로 10편성을 더 구매해 운영하고 있다”며 “과연 코레일이었다면 그렇게 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코레일은 2004년 고속철도 개통 이후 계속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정부가 배정해주는 열차 편성 외에 자체적으로 더 구매한 사례가 없다. 그게 공급자가 독점이어서 생기는 폐해다. 반면 SR은 예상 승객 수요를 계산해서 10편성을 더 구매해 운영, 흑자를 냈다. 철도 운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열차 시간 편성도 그렇다. SR은 3개월마다 승객이 덜한 시간은 편성을 줄이고 탑승률이 높은 시간대는 늘리면서 효율성을 높였다.” 

    SR로 인해 코레일 적자가 커지면 비용 절감 명분으로 벽지노선이 폐지될 수 있다며, 코레일과 SR을 통합해 고속철도에서 생긴 이익을 벽지노선에 투여해 ‘보편적 이동권 제공’이라는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벽지노선 운행은 고속철도 영업이익과 아무 연관이 없다. 코레일은 정부가 주는 벽지노선 운행 보조금만큼만 운행했지 적자를 감수하며 선의로 운행한 게 아니다. 코레일에 벽지노선 운행 보조금을 주는 것도 따져봐야 한다. 2016년 비수익노선 총 이용객이 700만 명인데, 보조금이 2111억 원이었다. 한 번 타는데 3만 원씩 지원한 셈이다. 벽지노선 이용자들에게 이동할 때마다 3만 원씩 현금을 준다면 이분들이 열차가 아닌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용객이 한 명만 있어도 운행하겠다는 것은 공공성이 아니다. 어떤 결정으로 특정 기관이나 특정 단체, 특정 부류에게만 이익이 가지 않고 전체에게 이익이 가게 하는 게 공공성이다. 그런데 현재의 벽지노선 보조금은 코레일에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다.”

    좌석 수 지금도 늘릴 수 있어

    통합되면 코레일이 흑자 기조로 전환된다는 주장도 있다. 

    “SR의 2017년 당기순이익이 300억 원 수준이고, 코레일의 영업적자는 5280억 원 수준인데, 어떻게 흑자가 되나. 코레일 적자는 구조적인 것이어서 이를 먼저 개선한 이후에 통합 논의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 

    통합하면 노선의 효율적 운영을 통해 공급 좌석 수를 늘리는 등 수익성과 이용자 편의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장점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SRT를 서울역, 용산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고, 수서역에서 KTX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고속열차 좌석을 합리적으로 배분하고,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좌석 수를 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지금도 정부 의지와 두 회사의 합의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반면, 통합 후 합리적인 좌석 배분이란 명분 아래 공급자만 유리해지고 소비자에게는 불편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지금은 경쟁을 하느라 두 회사가 최대한 많은 열차를 운행하려 하고 있지만 통합한 후에도 과연 그럴까.” 

    통합하면 어쨌든 중복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약 260억 원에서 370억 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데. 

    “2017년 SR의 비용 내역을 살펴보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한 비용을 줄일 여지가 적어 보인다. 결국 경영진 인건비와 홍보비가 중복된다는 건데, 그런 논리라면 우리나라 항공사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코레일은 자기네가 철도 사업을 독점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 아닌가,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것을 못 견뎌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다.” 

    통합되면 연기금 등 SR 주주에게 배당되는 돈을 철도산업 발전에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17년에 배당 등 (철도)외부에 유출된 돈이 177억 원이다. 철도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흑자를 내서 배당을 주기에 민간 자본이 철도 산업에 투자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철도 사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 영향으로 신안산선, GTX 등에 민간 자본이 참여하고 있다. 또한 선로 사용료 50%를 내고 차량을 임차하면서도 흑자를 냈기에 우리가 해외 고속철도 사업에 뛰어들 때 해당국에 내세울 모델이 생겼다.”

    서두르는 느낌

    통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선진국들이 철도 경쟁을 철폐하고 통합 중심으로 프레임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한다. 국토교통부가 발주한 연구용역에 해외 사례가 과업 내용으로 포함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유럽 등 철도 선진국에서는 경쟁체제 도입 후 그에 따른 장점은 확대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식으로 정책을 펴고 있다. 오히려 유럽은 모든 국가가 2019년부터 광역철도에 대해 국적과 상관없이 철도 운송 사업을 할 수 있다. 2021년부터는 지역 철도 시장도 개방한다. 경쟁을 통해 선로이용률을 최대한 높이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업자를 통합하자고 하니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철도 구조개혁을 한다면서 ‘철도 공공성 강화를 위한 철도산업 구조평가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SR을 더 운영해보고 평가하면 좋을 텐데, 서두르는 느낌이 든다. 통합 논의는 국민의 편의성 제고와 서비스 수준 향상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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