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이슈 추적

‘갑질 항공’에 어용 노조 부창부수?!

사측, 특정 노조위원장 지지 ‘큰절’ 임금안 ‘백지 위임’, 24년간 8차례

  • 입력2018-05-27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조양호 一家 갑질 사태에 같이 ‘얻어맞는’ 대한항공 일반 노조

    • 노무 담당 임원의 노조 선거 참석…“부당노동행위 가능성”

    • 조합원 동의 없이 회사에 임금案 맡겨…“매우 보기 드문 노조 행태”

    • 대한항공, “임금 인상 늦어져 미안한 마음에 큰절한 것뿐”

    • 노조위원장, “실망스러운 행태 있었지만 어용 아냐…임금안 위임 더 없을 것”

    5월 12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대한항공 직원들의 조양호 일가 퇴진 촛불 집회(왼쪽)와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뉴스1]

    5월 12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대한항공 직원들의 조양호 일가 퇴진 촛불 집회(왼쪽)와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 [뉴스1]

    ‘벤데타’ 가면을 쓴 대한항공 직원들이 거리로 나섰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경영 퇴진을 촉구하며 광화문 세종문화회관(5월 4일)과 서울역 광장(5월 12일)에서 촛불을 들었다. 두 차례 집회에 각각 500여 명과 300여 명이 운집했다. 반면 대한항공 일반 노동조합(이하 노조·조종사 이외 직군 가입)이 주최한 두 차례 ‘조양호 퇴진 시위’(4월 27일, 5월 3일)에는 100명 남짓 모이는 데 그쳤다. 15년 만의 노조 주최 집회인 데다, 조합원 숫자가 1만 명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촛불시위에 나선 대한항공 직원들은 노조를 회사 편에 선 어용(御用)으로 여긴다. 이들의 ‘노조 불신’은 뿌리 깊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에 올라오는 발언들에서는 조양호 회장 일가의 비정상적인 경영 행태에 노조의 책임 또한 크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조합원 이익을 대변하는 것에 존재 의의가 있는 노조가 왜 이토록 직원들에게서 외면받는 걸까. 

    대한항공 노조의 특징 중 하나는 노조위원장 선출 방식이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란 점이다. 1960년 ‘항공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노조는 1994년 위원장 선출 방식을 간선제로 바꿨다. 조합원이 아니라 조합원을 대표하는 대의원이 위원장을 선출한다. 위원장 임기는 3년, 연임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1994년 박대수 위원장을 시작으로 이대규, 이종호 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말 최대영 위원장이 간선제로 선출됐다.

    위원장 낙마하고 사무국장 취임?!

    직원들이 노조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간선제 전환 이후 ‘그 나물에 그 밥’인 노조 집행부의 인적 구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2008년 첫 임기를 시작한 이종호 전 위원장이 3연임 끝에 퇴진하고 최대영 위원장으로 교체됐음에도 노조 집행부 간부 상당수가 전임 집행부 사람들로 채워졌다. 조영남 수석부위원장, 오필조 사무국장, 강성수 정책국장은 전임 집행부에서 각각 조직국장, 부위원장, 서울지부 사무차장을 맡았었다. 

    오필조 사무국장의 이력이 특히 눈에 띈다. 그는 지난해 말 노조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최대영 위원장과 경쟁을 벌였으나, 낙선 후 최대영 집행부에 사무국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이대규 위원장 시절인 2005년 대외협력국장을 시작으로 정책국장, 부위원장 등 노조 집행부의 주요 직책을 장기간 맡아왔다. 이종호 전 위원장도 이대규 위원장 시설 수석부위원장을 오래 지내다 위원장에 선출된 경우다. 



    대한항공 노조위원장의 ‘다음 행보’는 상위 단체 진출이다. 현재 박대수 전 위원장은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이대규 전 위원장은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대영 위원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종호 전 위원장이 노조에서 상근고문 직을 맡고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며 “그 분은 현재 상위 단체 쪽으로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조만간 결정이 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종호 전 위원장까지 상위 단체로 ‘영전’하는 데 성공하면 간선제 전환 이후 대한항공 노조위원장 출신은 전원 한국노총 간부로 진출한 셈이 된다.
     
    최대영 위원장은 “상위 단체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본인이 선택할 문제이나, 좋지 않게 볼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국토교통부를 상대하는 일을 맡아주는 등 상위 단체가 대한항공 임직원을 위해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외향성 확장으로 봐달라”고 주문했다. 전임 집행부 간부를 대거 발탁한 것에 대해서는 “노조 일에는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집행부 경력이 있는 분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측 임원 큰절에 분위기 ‘술렁’

    ‘신동아’는 취재 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2017년 11월 28일 오전, 인천 중구 영종스카이리조트에서 대한항공 노조의 제53년차 정기 대의원 대회가 열렸다. 이날 주요 안건은 임기가 만료되는 이종호 당시 노조위원장의 4선 연임에 대한 찬반 투표. 그런데 이 자리에 인력관리본부장을 맡고 있는 강두석 상무가 참석했다. 

    강 상무는 대의원들이 찬반 투표를 하기 전 무대에 올라 큰절을 했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조합원은 “노사화합을 강조하며 이종호 당시 위원장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회사 측 간부가 노조의 선거 현장에, 그것도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무대에 올라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강 상무가 노조 대의원들을 향해 큰절을 하자 현장 분위기가 술렁거렸다고 전해진다. 

    안태은 노무법인 정명 대표는 “사측 임원이 노조 대의원들에게 특정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면 노조 선거에 개입한 셈”이라며 “지배 개입 여지가 있어 부당노동행위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16년 임금인상 협상이 1년여 동안 장기간에 걸쳐 이어졌고, 당시 노동조합이 회사 측에 위임한 2017년 임금에 대한 조치가 늦어짐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큰절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한항공의 노사 간 분위기가 여타의 경우와 다른 점은 임금협상 행태에서도 확인된다. 노조 집행부가 해마다 회사와 임금협상을 벌여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노조 대의원 총회에서 대의원 찬반 투표를 거쳐 인준을 받는 것이 통상의 노조 활동이다. 

    그런데 ‘신동아’ 취재 결과 대한항공은 3년에 한 번꼴로 노사 간 임금협상을 하지 않고 임금안을 ‘백지 위임’으로 대체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대한항공 노조는 노조위원장 간선제가 실시된 1994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8차례 임금안을 회사에 위임했다고 한다. 위임이란 노조가 회사와의 임금협상을 포기하고, 회사에 임금을 얼마나 올릴 것인지를 맡기는 행위다. 안태은 대표는 “노조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단체협약, 즉 임금협상에 있다”며 “노사 화합을 명분으로 종종 임금협상을 하지 않고 임금안 결정권을 사측에 위임하는 일이 있긴 하지만, 3년에 한 번꼴로 자주 하는 노조는 보기 드물다”고 했다. 

    이에 대해 최대영 위원장은 “대한항공 노조는 전통적으로 고용안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왔고, 실제로 직원 대부분이 정년까지 근무하고 있다”며 “고용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역대 노조 집행부가 임금안을 사측에 위임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동결은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고 회사에 임금안을 위임한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대한항공 노조는 회사에 임금안 결정 권한을 위임할지 여부를 조합원 투표나 대의원 총회에서 결정하지 않는다. 노조 집행부의 권한에 속하는 사안으로 집행부가 결정한다. 노사 간 협상에 의해 합의된 임금안은 여타 노조들과 마찬가지로 대의원 총회에서 인준 절차를 거치지만, 회사에 위임해 회사가 결정한 임금안은 대의원 총회 없이 그대로 확정된다. 대의원이나 조합원이 백지 위임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의사를 개진할 통로가 전혀 없는 셈이다.

    “고용안정 보장받으려고”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5월 1일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두했다. 오른쪽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 화면 캡처. [조영철 기자]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5월 1일 폭행 및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조사받기 위해 서울 강서경찰서에 출두했다. 오른쪽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대한항공 갑질 불법비리 제보방’ 화면 캡처. [조영철 기자]

    한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http://dart.fss.or.kr)에 공시된 대한항공 임직원의 임금 현황을 분석해보면 조양호·조원태 등 등기임원의 1인당 평균 보수는 2014년 7억3000만 원에서 2017년 14억7300만 원으로 102% 상향됐다. 반면 같은 기간 대한항공 전 직원의 1인당 평균 급여액은 6188만 원에서 7137만 원으로 15% 인상되는 데 그쳤다. 

    2차 촛불집회를 하루 앞둔 5월 11일 저녁, 대한항공 직원들은 노조로부터 2017년 임금인상안이 결정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지난해 5월 이종호 당시 노조위원장이 회사에 임금안을 위임했으나, 1년 가깝도록 회사가 임금안을 내놓지 않다가 이날 총액 기준 3% 인상과 상여금의 50%에 해당하는 격려금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만족했을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분위기는 냉랭하다. ‘프레임을 임금투쟁하는 사원들로 바꾸려는 의도’ ‘저 돈 준다고 집회 안 나갈 줄 알았나’ ‘이거 먹고 조용히 좀 하라는 것인가’ 등의 반응이 나왔다.
    최대영 위원장은 “과거 노조가 조합원들에게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인 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내가 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달라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던 와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져 참으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간선제 노조가 곧 어용은 아니고, 위원장이 의지를 갖고 잘 해나갈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한 임금안을 회사에 위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일반 노조는…

    대한항공에는 총 3개의 노조가 있다. 1960년 ‘항공노동조합’이란 이름으로 설립된 일반 노조 외에 조종사들로만 구성된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및 ‘대한항공조종사 새 노동조합’이 그것이다. 

    대한항공 전체 직원은 1만7000여 명인데, 일반 노조(이하 노조)에 가입된 조합원 숫자가 1만 889명(2018년 3월 기준)으로 가장 많다. 이들은 본사·객실·서울·부산·제주지부로 나뉘어 있다. 승무원들로 구성된 객실지부 조합원 숫자가 5273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절반에 가깝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