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이슈 진단

‘유일한 믿는 구석’ 수출도 비상

반도체 호황 끝 내년 초 국가적 위기 온다?

  • 입력2018-05-2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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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수출 마이너스…“국제경쟁력 하락 중”

    • 서비스업도 돈 못 벌어

    • ‘미·중 분쟁→중국 경제위기→한국 수출 타격’ 시나리오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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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나가던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 4월 수출 증가율은 -1.5%. 17개월 만의 하락세다. 정부는 자동차·조선업 구조조정과 불황 탓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현장 수출업체들은 경쟁력 하락에서 원인을 찾고,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수출 둔화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국무역협회가 연간 수출액 50만 달러 이상인 944개 기업에 물어보니, 올해 수출 부진의 이유로 보호무역주의(39.0%), 경쟁력 상실(21.1%), 선호도 감소(10.5%)를 꼽았다. 수출 전망과 수출 채산성에 대해서도 ‘안 좋다’는 응답이 많았다. 

    정부는 올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4%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수출을 주도해온 대기업의 58%, 전체 수출 기업의 40%는 증가율이 3% 이하에 그칠 것으로 본다. 수출입은행 조사에서도 수출 기업의 22%는 미국의 무역 규제가 현실화하면 수출이 당장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올 하반기 이후 수출 전선이 위험하다는 신호가 여럿 나온 것이다. 

    내수 부진 속에 경기를 이끌어온 수출마저 흔들리면 우리 경제는 믿을 게 없다. 정부는 2022년 일본을 제치고 중국, 미국, 독일에 이은 세계 4위 수출 대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러나 현실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무역회사 한국’의 네 가지 과제, 넘치는 것 2가지와 모자라는 것 2가지에 대한 긴급 처방이 절실하다.

    너무 높다, 반도체 의존도

    반도체는 올해도 맹활약 중이다. 3월 수출액이 108억 달러로 처음으로 월 100억 달러를 넘었다. 4월은 98억 달러로 약간 주춤했어도 역대 2위다. 1977년 수출 총액이 100억 달러를 넘어 ‘수출입국(立國)’의 가능성을 봤다며 기뻐한 것이 한국이다. 그런 기록을 단일 품목이 한 달 만에 거뒀으니 반도체가 한국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2017년 반도체 수출은 979억 달러로 전년보다 57% 증가했다. 수출 신장세는 데이터센터 건설 붐에 주로 기인했다. 데이터센터란 인터넷 서비스 업체 등이 클라우드, 자율주행차,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아두는 컴퓨터 시설이다. 고성능 서버에는 D램 등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데 전기를 적게 쓰고 유지보수 비용도 적은 프리미엄 D램이 선호된다. 



    시장조사업체 시너지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구글, 아마존 등 24개 글로벌 기업이 보유 중인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390개로 그중 300개는 지난해 지었다. 내년 말이면 총 500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초대형은 1000㎡ 넓이의 공간에 서버 5000대를 집어넣은 것이 기본이다. 서버가 수십만 대, 심지어 수백만 대인 곳도 있다. 이런 열기에 반도체 산업이 뜨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전망도 밝다. 글로벌 IT 자문기관인 가트너는 세계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 4190억 달러에서 올해 4510억 달러로 7.5%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의 고공행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D램 생산은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마이크론 3강 체제다. 누군가가 새로 뛰어들려면 10나노급 고도 공정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투자액이 엄청날 것이다. 

    이런 진입장벽 때문에 공급자 시장이 돼 있고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한국의 D램 업계에 주문이 몰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세계 최초로 10나노급 2세대 D램을 양산 중이라고 발표했다. 초고속 초절전 초소형 회로 설계가 가능하고 생산량을 30% 늘릴 수 있는 공정이라고 한다. 삼성전자는 월드 챔피언 인텔을 제치고 2017년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가트너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특히 4분기에는 소폭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했다. 많은 예측 기관은 “D램 호황이 길어야 앞으로 1년”이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반도체 하나에 의존해도 될지 ‘오래된 우려’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전체 수출 중 반도체의 비중은 2013년 10.2%에서 2016년 12.6%까지 서서히 상승하다 지난해 17.1%로 치솟았고 올해는 1200억 달러 수출로 전체의 2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및 정밀기기로 넓혀보면 지난해 수출 비중이 39.6%나 됐다.

    “길어야 1년”

    경기도 평택 반도체 단지와 반도체 제조시설 내부. [동아DB]

    경기도 평택 반도체 단지와 반도체 제조시설 내부. [동아DB]

    한 품목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불안정하다. 경제성장률 통계를 봐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제조와 수출, 일부 설비투자를 제외하면 소비를 비롯한 내수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산업 부문 간, 수출과 내수 간에 균형 잡힌 성장이 바람직한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반도체 굴기’에 나선 중국의 도전도 거세다. 대만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는 중국의 YMTC(낸드플래시 생산), 이노트론(모바일D램), JHICC(스페셜티D램) 등 3대 메모리 업체가 하반기 시험 생산에 이어 내년 상반기에 양산에 나설 계획이라고 최근 전했다. 트렌드포스는 “2020~2021년이면 3사의 웨이퍼 생산능력이 월 30만 장에 달해 글로벌 D램 시장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반도체 드라이브는 정부와 산업계가 주도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4월 “핵심 기술 돌파를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 회장은 “미국이 갑자기 반도체를 안 팔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라면서 4월 중순 반도체 제조업 진출을 선언하고 반도체 회사를 사들였다. 중국은 머니 파워를 앞세워 대만의 반도체 고급 인력을 휩쓸어갔다. ‘한국·대만 연봉의 5배를 보장한다’ ‘기술자가 이직 규제를 받지 않도록 중국 국적을 제공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내 고급 인력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반도체의 원조인 미국도 구경만 하지 않는다. 1970년 D램을 처음으로 개발한 인텔은 경쟁에 밀려 1985년 이를 포기했는데 2016년 메모리 시장 복귀를 선언해 삼성과의 재대결을 예고했다. 

    그간 인텔은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중앙처리장치(CPU)에 집중해 시장의 70%를 장악하는 등 비메모리 업체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D램 특수를 누리지 못했고 25년간 지켜온 반도체 월드 챔피언 자리를 삼성전자에 넘겨주고 말았다. 올해 1분기(1~3월)에도 인텔의 매출(17.3조 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20.8조 원)에 훨씬 못 미쳤다. 삼성전자 반도체가 매출액의 무려 55%를 이익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서 배가 아팠을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10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포럼에서 시장개방확대조치를 내놓으며 미·중 무역전쟁을 피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신화통신/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4월 10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포럼에서 시장개방확대조치를 내놓으며 미·중 무역전쟁을 피하려는 제스처를 보였다. [신화통신/뉴시스]

    인텔의 메모리 분야 복귀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에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지난 12년간 마이크론과 함께 낸드 메모리 개발에 매달려 2015년 처리 속도가 빠른 엑스포인트 메모리를 선보였으며 중국에서 양산을 준비 중이다. 올해 초 마이크론과 결별하고 대신 기술력이 약한 중국의 칭화유니그룹 등 메모리 업체들과 손잡았다. 인텔이 세계 최대 중국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경우 국내 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빼앗길 수 있다. 한국 반도체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의 반도체 호황이 마무리되거나 중국, 미국의 추격이 거세지면 반도체 가격이 출렁거려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주대영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월 ‘메모리 반도체 경기 전망과 발전과제’ 보고서에서 “국내 반도체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D램과 낸드플래시의 강점을 유지하고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로직 반도체 기술을 조기에 획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로직 반도체는 마이크로프로세서 같은 시스템 반도체 즉, 비메모리 반도체의 한 분야다. 한국은행도 D램 호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다 마무리될 것에 대비해 비메모리 분야 투자 확대와 핵심 설계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비메모리를 집중 육성해 국내 업체보다 앞서 있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가 70%로 메모리의 30%보다 훨씬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메모리 기술력을 바탕으로 파운드리 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파운드리는 설계를 받아와 위탁 생산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금껏 투자 실적이 좋지 않고 세계 1위인 대만의 TSMC의 견고한 시장 지배력에 접근도 못 했다. 중국도 파운드리에 가세하고 있어 한국은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다. 

    한국이 반도체 경쟁력을 지켜나갈 여건은 좋지 않아 보인다. 주 연구위원은 “국내 반도체 생산 업체가 대기업이다 보니 정부 지원이 멈춘 지 오래됐다. 여러 부처, 대기업, 중소 벤처, 연구소, 대학이 모두 참여하는 대규모 컨소시엄을 구성해 AI 전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반도체 R&D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고 말한다. 중국 대학의 반도체 연구소는 시설, 지원 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잘돼 있고 논문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메모리 반도체의 사이클을 감안해 비메모리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제때 만들지 못하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지켜만 보는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재계 인사들은 “반도체 호황이 끝나는 내년 초 국가적 위기가 올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ICT, 도매, 운송, 금융 형편없어

    한국은 지난해 수출 총액에서 세계 6위를 기록했고 올해는 네덜란드를 제치고 5위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코리아 무역회사’는 많이 팔고 달러를 잘 벌어들인다. 문제는 서비스와 연결해 더 큰돈을 벌진 못한다는 점이다.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것이다. 

    서비스 없이 제품만 만드는 방식으로는 잘해봐야 글로벌 제품 공급업자에 그친다. 예컨대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기술 활용→제조업과 서비스의 융합→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구조라야 좋다. 이런 시각에서 제조업 정책도 제조업 및 서비스 정책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0년대에는 생산 자체보다는 R&D, 디자인, 판매 마케팅, 서비스 같은 생산 이전과 이후 활동에서 더 큰 부가가치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2011년 제조업 수출품에 담긴 서비스 부가가치는 한국이 29.7%로 조사대상 40개국 중 38위에 그쳤다. 1995년 32.6%, 26위에서 더 나빠졌다. 한국은 ICT 강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수출 제품에 집어넣은 ICT 서비스 부가가치는 1.9%에 불과했다. 덴마크(3.9%), 프랑스·스웨덴·핀란드·영국(3%)은 한국보다 훨씬 높았다. 

    한국은 도매, 운송, 금융, 보험에서도 골고루 낮은 편이었다. OECD와 WTO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출의 국내 가치 창출 비중은 60% 미만으로 주요 선진국의 85%대는 물론 중국보다도 낮다. 중간재형 서비스업의 경쟁력이 낮아 국제 분업을 활용해 수출 물량을 늘려왔음을 의미한다. 그저 흑자만 내왔다는 소리다. 이장균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기술혁신 서비스를 통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동반 고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책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DJ 진노시킨 ‘가마우지 경제’

    고부가가치와 관련된 또 하나의 해묵은 과제가 소재부품이다. 소재부품 산업 이야기라면 일본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한국이 수출하려면 주요 소재나 부품을 일본에서 사와야 했기 때문이다. 수출은 한국이 하고 돈은 일본은 앉아서 버는 구조라고 해서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가마우지 경제’라는 표현까지 썼다. 어부가 가마우지라는 새의 목 아랫부분을 갈대 잎으로 묶어놓았다가 이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아오면 입을 벌려 물고기를 꺼내는 것에 빗댄 말이다.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는 1999년 일본 잡지에 “한국 기업은 핵심 부품을 만들지 못하고 한국 정부는 경제 회생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자극적인 글을 실었다. 제조업의 뿌리가 약해 수입 유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 경제의 약점을 찌른 것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측에 따르면, 이에 진노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특별대책 지시로 15개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부품소재통합연구단이 2001년 출범했다. 대일 적자 감축, 부품소재 중핵기업 300개 육성, 글로벌 공급기지화가 목표로 정해졌다. 

    그러나 일본 평론가들의 지적은 사실이었다. 2002년의 한 국내 뉴스는 이렇게 전한다. 

    “디지털TV는 칩셋, 렌즈, 디코더 같은 핵심 부품의 20%를 수입에 의존한다. DVD플레이어의 경우. 레이저다이오드, 고전력 모듈, 중앙연산처리장치(CPU) 등 핵심 부품의 70%를 수입했다. 휴대전화(55%) 공작기계(50%) 산업용 로봇(80%)의 수입의존도도 높다. 부품소재 산업은 전체적으로는 1998년부터 흑자를 보고 있지만 대일 적자는 매년 약 10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무역에서 한 해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2017년까지 54년간 5844억 달러의 누적 적자를 봤다. 적자의 약 40%는 소재에서 나온다. 특히 반도체, LCD 등 IT 분야 핵심 소재는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업계는 소재부품의 국산화에 노력했고 정부는 세계 일류 소재 개발, 맞춤형 R&D에 지원했다. 덕분에 소재부품 대일 의존도는 1990년대의 30~40%에서 2015년 16.5%까지 떨어졌다. 20년 만에 절반 정도 낮춘 셈이다.

    “선진국과 4~7년 격차”

    정부는 2001년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 특별조치법을 만들었고 2조 원을 투입했다. 10년 후 부품소재 수출이 3.7배로 증가했고 세계시장 점유율이 10위에서 6위로 도약했다는 정부 보고서가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일 부품소재 무역 적자가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고 핵심 소재는 선진국과 4~7년의 격차를 보인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국산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산업이 발전할수록, 수출이 늘어날수록, 이 부문의 대일 적자는 확대된다는 아이러니를 재확인한 것이다. 

    국내 산업계는 10년 이상 부품소재 산업 기반 확충을 위해 노력해왔다. 지난해 부품소재에서만 1000억 달러 이상 흑자를 냈다. 하지만 소재부품종합정보망(mctnet.org)에 따르면 부품소재의 대일 수입의존도는 2015년을 저점으로 다시 상승해 지난해 17.4%를 기록했다. 게다가 중국산 부품소재의 품질이 우수해지면서 2010년대 이후 국내 기업들이 일본산을 중국산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일본 소재부품 산업은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부품을 발판 삼아 다시 돌아왔다. 전자부품의 경우 기업 간 거래 시장을 뚫고 들어가 2016년부터 매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을 ‘센서 강국’으로 만든 일제 센서 부품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기술력을 자랑한다. 제2의 반도체라는 적층세라믹콘덴서는 글로벌 톱5 가운데 2위 삼성전기만 빼고 모두 일본 기업이다. 

    중국도 성장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1997년부터 한국산 소재부품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2010년 한국산 수입 비중이 36.3%까지 높아졌다. 수년 전까지 한국의 중국 수출액 중 소재부품이 60~7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2014년 953억 달러이던 중국의 한국산 부품 수입액은 2017년 887억 달러로 꺾였다. 중국의 총수입 중 소재부품의 비중도 46%로 낮아졌다. 중국은 2010년 이후 소재부품 R&D 투자를 대폭 늘렸고 수입품 대신 자국산 중간재를 더 많이 쓰도록 종용했다. ‘부품에서 완제품까지’라는 삼성의 전략을 중국이 국가적으로 채택한 셈이다. 중국 정부는 핵심 자재 자급률을 2025년 70%로 끌어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싸고 질 좋은 중국산 소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소재부품 산업이 고사할 위기를 맞고 있다.

    노르웨이 연어의 교훈

    중국이 한국의 최대 수출 시장으로 부상한 것은 한중수교 10년차인 2003년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총 수출 5737억 달러 중 중국을 향한 수출은 24.8%인 1421억 달러였다. 중국이 대체로 25%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 상황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중국 대상의 중간재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중간재는 소비재와 자본재가 아닌 원자재, 연료, 부품 등을 말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2016년 “중국 기업이 제품을 만들 때 자국산 소재부품을 많이 쓰기 시작해 글로벌 무역이 둔화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가공무역에서도 벗어나고 있다. 가공무역이란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입해 가공한 뒤 완제품을 수출하는 것이다.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1980~90년대 이를 적극 장려했다. 2000년대 들어 에너지 다소비에 따른 환경오염이나 무역흑자 확대에 따른 통상 압력이 발생하자 중국은 가공무역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임금 상승에 따라 가공무역의 이점도 줄어들었다. 중국 수입에서 가공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 42%에서 2016년 25%로 하락했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등은 2015~16년 2년간 한국의 대중국 가공무역 수출이 매년 15%씩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기업은 일본이나 대만 기업에 비해 가공무역 방식을 일반 무역으로 전환하는 데 더딘 편이었고 그만큼 중국 수출에 불편을 겪었다. 

    사실 우리의 대중 수출 비중이 과도하게 높기 때문에 중국의 정책 변화가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지난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을 봐왔다. 중국은 정치적 목적으로 경제 보복을 하는 나라다. 

    수출의 25%, 외국 관광객의 47%를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앞으로도 중국의 경제 보복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 베트남, 대만 사례를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2010년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에게 노벨평화상을 준 뒤 중국은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통제했다. 노르웨이산 연어는 2010년 중국 소비의 92%를 차지했지만 곧 30%로 추락했다. 노르웨이는 한국과 유럽연합(EU) 같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고 홍콩을 통해 중국으로 우회 수출했다. 

    베트남도 중국으로부터 농산물 수입 제재를 받자 한국 등으로 수출을 늘려 대응했다. 대만은 2016년 차이잉원 총통이 독립 기치를 들었다가 중국인 대만 관광 제한 조치를 당했다. 그러자 한국과 동남아, 이슬람권 관광객을 유치해 위기를 넘겼다. 우리나라도 중국 리스크를 줄이려면 시장 다변화에 더 주력해야 한다.

    중국의 금융 리스크, 지방부채, 부동산 거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5일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동아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25일 워싱턴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해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AP/동아일보]

    중국 내부의 위험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미·중 무역 분쟁이 시작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수출에 지장을 받으면 한국산 소재부품이나 중간재 수입을 더 줄일 것이다. 중국경제시보가 경제학자 100인에게 물어본 결과, 중국 경제는 △금융 리스크 △지방부채 △민영기업의 쇠퇴 △부동산 거품 △실물경제 위축 △빈부격차에 직면해 있다. 응답자의 70%는 이중 금융 리스크가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중국발 위기가 몰려올 때 한국 수출기업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을지 모른다. 과거 중국 진출 한국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노동 관련 규제 강화만으로도 큰 피해를 봤다. 지금부터 중국 경제 위기 가능성에 적절히 대비해야 한다. 

    수출은 우리만 잘하려고 해서 잘되지 않는다. 받아주는 수입국이 골을 부릴 때도 적지 않다. 최근 중국의 비관세장벽 발동,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미국의 철강 쿼터 규제는 이런 수입 제한 조치에 해당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는 특히 한국의 통상 환경에 충격을 준다. 트럼프 정부는 6대 우선 과제로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미국 우선 외교정책 △일자리 창출과 성장 △미국 재건 △법질서 회복 △모든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을 제시했다. 통상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장착한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무역확장법 232조다. 이란-리비아 원유 수출 금지의 근거로 쓰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발족 후 사문화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으로 부활시켰다. 올해 3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도 232조를 근거로 한 것이다.

    미국 국민은 보호무역 선호?

    보호무역주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적인 경향성이다.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 때도 무역특혜연장법, 무역촉진법 같은 보호무역주의 조치들이 나왔다. 눈여겨볼 대목은 일반 미국인이 무역 자유화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은행 컨설턴트인 크리스토프 라크너 등의 연구에 따르면, 무역 자유화의 결과로 중국, 인도, 태국 같은 아시아 국가는 이익을 봤지만 선진국 노동자의 소득은 정체했거나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이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미국인들이 보호무역을 내세운 트럼프를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보호무역의 단골 타깃이다. WTO에 따르면 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일본 같은 경제 규모가 크면서 수출도 많이 하는 국가는 가장 많은 규제 조치를 받았다. 

    올해 4월 기준,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수입 규제는 27개국 198건에 달한다. 미국(40), 인도(29), 터키(16), 중국(15)이 주로 제기했다. 품목별로는, 철강, 금속, 화학에 전체의 4분의 3이 몰려 있다. 철강은 세계적으로 공급 초과 품목이고 한국은 세계 6위 생산국이다. 이런 통계는 이제 새삼스러울 게 없다. 앞으로도 주요 국가에서 상당히 강한 보호무역 조치가 단행될 것이란 점을 상수로 놓고 대응해야 한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로서 통상 마찰에 상시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갈팡질팡하는 정부

    하지만 현실은 갈팡질팡하는 정부가 눈에 들어올 뿐이다. 미국이 우리 철강에 취한 조치만 봐도 그렇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을 마치고 “철강 협상을 마무리해 대미 수출 기업의 불확실성을 조기에 해소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산 철강에 대한 관세 면제를 발표한 다음 날 철강 선재 제품에 대해 41.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정부는 “애초부터 개별적으로 진행된 사안” “실제 충격은 거의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국면이 바뀔 때마다 다른 설명을 하니 정부의 신뢰도가 깎인다. 

    김현종 본부장은 2017년 “열강의 눈치를 보느라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리겠다는 구상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정부는 그 방법을 쓰고 말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방한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산 무기 구입 약속을 받아냈다고 자랑했다. 지난해 미국의 한국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의 대미 흑자는 178억 달러로 대폭 감소했다. 

    수출 기업들과 한국 경제가 갈 길이 순탄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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