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호

명사에세이

밥상은 약국이 아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적당히 먹는 기쁨

  • 입력2018-10-10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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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옛 직장 동기들을 만났다. 명분은 새로 책을 낸 친구를 축하하기 위함이었지만 늘 그렇듯 주제가 일 얘기, 회사 얘기로 자연스레 흘렀다. 이미 외부인이 된 지 오래라 주제가 심드렁하던 찰나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 요즘 눈이 안 좋아서 블루베리 사서 먹고 있잖아”로 시작된 건강 이슈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블루베리보다 자두가 더 눈에 좋다고 하더라”는 ‘카더라 통신’부터 “귀리를 쌀밥에 섞어 먹으니까 속이 편해지고 좋더라” “밀가루를 끊으니 몸이 가벼워졌다”라는 ‘간증’까지 이어졌다. 

    어느새 몸에 좋은 음식 정보를 공유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가 벌써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됐구나’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불편함이 피어올랐다. 정말로 ‘몸에 좋은 음식’만 먹으면 건강해질 수 있을까. 아니, 그에 앞서 몸에 좋은 음식이란 게 맞는 말일까.

    제국주의 전쟁 과정에서 탄생한 영양학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왕이면 좋은 음식을 먹는 게 건강에도 좋지 않겠느냐는 말은 너무 당연하게 들려 토를 달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켜면 각종 건강 상식과 좋은 음식에 대한 정보가 쏟아진다. 식당에서도 한쪽 벽면엔 ‘동의보감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음식 효능에 대한 문구가 크게 붙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음식을 먹을 때마다 효능에 세뇌되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음식을 만들고 또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콘텐츠를 보면 깊은 한숨부터 내쉬게 된다. 어째서 우리는 음식을 치료 효능을 가진 약으로 인식하게 된 것일까. 

    약식동원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서양의 경우 고대부터 음식의 성분과 질이 인체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인체의 네 가지 속성, 즉 뜨겁고 차갑고 건조하고 습한 속성 사이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건강도 나빠진다는 이른바 체액론은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를 거쳐 로마 의학자 갈레노스에 의해 완성됐다. 이후 해부학에 밀려 구식 이론이 됐지만 체액론은 건강을 지키려면 특정한 속성을 지닌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인식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약식동원의 개념이 더욱 구체화하고 체계화한 건 19세기 영국에서 영양학이 등장한 이후부터다. 당시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려면 건강한 남성이 필요했다. 그런데 주요 징집 대상이던 노동계급 남성의 영양 상태는 형편없었다. 전투력 약화를 우려해 정부 차원에서 영양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음식을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무기물이라는 영양소 단위로 구분했다. 과학자들은 각 영양소에 기능과 에너지 가치를 부여하고 국민에게 이상적인 식단을 설계했다. 단백질이 근육을 구성하고 지방과 탄수화물이 에너지원으로 쓰인다는 개념은 이때 탄생한 것이다. 



    영양이 과학의 옷을 입으면서 점점 중요성이 강조됐고 동시에 상업적 마케팅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대공황이 끝난 후 황금기가 찾아온 미국에서 소비자의 불안과 두려움에 호소하는 이른바 ‘효능 마케팅’은 음식 광고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정부와 민간 상업 영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각 음식에는 효능이 있고 건강을 위해서는 특정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영양학적 이데올로기에 젖고 말았다. 

    문제는 이러한 영양학적 이데올로기가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단백질은 한때 영양소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다. 세계 각국 정부가 국민의 단백질 섭취량을 늘리고자 고기 먹기를 권했다. 하지만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붉은 고기는 건강을 위협하는 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반면 초기 영양학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않던 과일과 채소는 섬유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단백질을 밀어내고 필수 음식 자리를 꿰찼다. 앞으로도 각종 연구 결과에 따라 언제 어떤 음식이 건강의 동반자가 될지, ‘철천지원수’가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이라는 이원대립적 사고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에서 새우를 검색하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단백질, 지방, 비타민, 칼슘, 철, 타우린 등 영양소가 풍부한 새우는 고혈압 예방, 동맥 경화 방지, 눈의 피로 방지, 면역 강화, 간 기능을 강화시키는 효능이 있습니다.’ 이 내용만 보면 건강에 이로운 점이 가득하고 심지어 맛도 좋으니 이보다 완벽한 식품이 있을까 싶다. 그러나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거나 통풍으로 고생하는 이에게 새우는 위험한 음식이다. 수입이 최근 10년 사이 15배나 늘어난 아보카도는 칼륨 성분이 많아 다량 섭취하면 자칫 쇼크가 올 수 있으며,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하다는 브라질너트는 셀레늄 중독 가능성 때문에 권장 섭취량이 하루 두 알에 불과하다.

    건강은 선택이다

    식품을 영양학적으로 세분화하고 각 영양소의 기능만 떼어내 그것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하는 것은 건강 정보라기보다 마케팅 정보라고 보는 게 현명하다. 특정 식품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방송 프로그램에서 효능을 강조하는 걸 보면 ‘수입사나 판매업체에서 홍보를 열심히 하고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야지 ‘저것을 먹으면 내 몸의 문제가 해결될 거야’라고 믿으면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현대 질병 대부분은 영양소 부족이 아닌 영양소 과잉에서 온다. 어떤 것을 먹느냐보다는 얼마나 먹느냐가 건강에 더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과학적 관점에서 음식 이야기를 풀어내는 정재훈 약사는 ‘음식은 약보다 안전한 만큼 효과도 완만하다’라고 지적한다. 웬만큼 먹어도 몸이 그 효과를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신 적당한 양을 골고루 먹는 것을 제안한다. 

    매번 유행이 바뀌는 다이어트 시장에서 한때 탄수화물을 줄이고 지방 섭취량을 늘린 이른바 ‘저탄고지’ 다이어트가 각광을 받았다. 탄수화물이 건강 악화의 주범이라는 혐의를 받은 탓이다. 주요 칼로리 공급원인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 자리는 이미 그전에 ‘건강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된 바 있는 지방이 대신했다. 삼겹살 같은 고지방 식품을 많이 먹어도 다이어트가 가능하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많은 이가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그러나 상당수가 얻은 건 극적인 체중 감소보다는 부작용이었다. 일부 영양소의 부족과 과잉으로 영양 섭취 균형이 깨지면 자칫 몸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알려졌고, 많은 의사가 뒤늦게 저탄고지 다이어트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나는 음식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프라이드치킨은 단지 음식일 뿐이다. 그 자체로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음식의 가치는 그것을 섭취하는 인간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혼자서 치킨 한 마리를 다 먹는다는 선택을 하면 내 몸에 부담을 안기는 것이다. 그 치킨은 분명 내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다리 한 조각, 가슴살 한 조각만 먹는다면 그것이 내 몸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낮다. ‘한 조각 더, 맥주 한 잔 더’라는 유혹만 뿌리칠 수 있다면 치킨은 내 몸에 좋은 음식일 수 있다. 더 이상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마케팅과 가짜 정보에 현혹되지 말자. 얼마나 골고루 먹고 어떻게 하면 적게 먹을지만 생각하자. 내 몸의 주인은 온전히 나이니 말이다.


    장준우
    ● 1985년 부산 출생
    ● 전 아시아경제신문 기자
    ●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 졸업
    ● 저서 :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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