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김정호의 외할아버지 박동실 명창이 판소리를 전수한 담양 죽녹원은 이젠 데이트 코스가 됐다. (아래)가사문학의 뿌리인 담양 명옥헌.
이런 유의 ‘김정호 다시 보기’는 김정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굿 뉴스’가 된다. 모두들 저마다의 가슴속에 한 마리의 하얀 나비를 간직한 채 살아온 이들이 지금의 중년 세대다. 온갖 서러움, 어려움 속에서도 때가 되면 다시 필 것이라는 노랫말을 되새기며 지난 시절을 견뎌냈다. 그러나 김정호 생전, 그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지 않은 지자체들이 이제 와서 저마다 그를 이용하려는 듯한 세태가 야속하고 원망스러운 것은 그가 남긴 노래들이 너무 서럽고 슬프기 때문이다.
김정호의 노래를 계절로 표현하자면 늦가을이다. 그의 노래는 나의 10대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기제가 된다. 우연히 그의 노래들을 듣게 되면 문득 생머리를 뒤로 곱게 묶은 수줍은 모습의 박인희가 생각나고 카펜터스, 나자리노, 엘 콘도르 파사, 스카브로의 추억 등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아, 또 있다. 매력적인 외모로 당시 한국 10대들을 사로잡은 올리비아 뉴튼 존의 ‘Let me be there’도 있고, 진추하와 아비가 부른 ‘one summer night’, 고고장에서 단골로 틀어주던 ‘블루 나이트 요코하마’도 있다.
그 많은 노래 중에 유독 잊히지 않는 것이 김정호의 노래다. 험난하던 시대, 하늘이 높아만 가던 늦가을,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학교 방송반에서 틀어주던 ‘날이 갈수록’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나곤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를 잊고 살았고, 이제 그가 간 지 꼭 30년 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유튜브의 흑백 동영상을 보면 그가 폐결핵으로 얼마나 고통 받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왜 즐거운 노래는 부르지 않은 걸까. 아득한 10대 시절,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금주의 인기가요’에 등장한 그의 노래를 들으며 늘 의문을 가졌고, 그가 폐결핵으로 엄청난 고통 속에 사망했다는 것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가을이다. 기나긴 여름을 견딘 배롱나무가 여전히 묘한 색깔 꽃잎으로 저만치 가는 여름을 배웅하고, 나는 오늘 유튜브 흑백 동영상으로 그가 부르는 ‘하얀나비’를 듣는다. 그의 노래에서 가을이 묻어 나온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어디로 갔을까 길 잃은 나그네는
음 어디로 갈까요 님 찾는 하얀나비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