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FC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은 한때 축구 유망주였으나 갖가지 사정으로 꿈을 접고 축구를 그만둔 이들의 패자부활전을 다룬 프로그램. 청춘FC는 청주대에서 선수들과 함께 합숙하고 있다. 처음엔 서울이나 경기도에 숙소를 마련할 예정이었는데, 청주대와 청춘FC를 오가는 이을용의 사정을 고려해 청춘FC가 아예 청주대로 숙소와 훈련장을 옮겼다.
오전에는 청주대 선수들을, 오후에는 청춘FC 선수들의 훈련을 챙기며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는 이을용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는 청춘FC 선수들을 위해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더 열심히 선수들을 지도한다.
‘진지한 이을용’
그는 일정이 빡빡하다면서 수면 부족을 호소했다. 그런 그를 9월 7일 청주대를 찾아가 만났다. 청주대 캠퍼스를 함께 걸었는데, 그는 이미 학교의 유명 인사였다. 학생들이 그를 알아보고 달려와 사인 요청을 했다. 기자가 “인기가 장난이 아니네요”라고 하자 “지금은 (안)정환이가 없어서 그래요. 정환이랑 같이 가면 애들이 난 쳐다보지도 않아요”라며 낄낄 웃었다.
▼ 얼굴 살이 쏙 빠졌네요. 먼저 방송 얘기부터 할게요. 이을용 감독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프로그램에서 시종 진지한 모습을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예요.
“청춘FC 선수들을 처음 봤을 때 어린 시절 이을용이 그 안에 섞여 있더라고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 축구를 그만둔 선수, 부모님 돌아가시고 동생들 키우느라 축구를 할 수 없었던 선수, 부상으로 일찍 은퇴한 선수 등 사연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안)정환이가 처음에 이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주저 없이 ‘오케이’한 데는 솔직히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수들과 몸을 부대끼며 훈련하면서 느낀 것은 제가 그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선수들을 통해 제가 배우고, 깨닫고 있어요. 오랫동안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정도 많이 들었고요. 방송을 통해 선수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습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 국가대표 선수생활을 같이 한 이운재(42), 안정환(39) 씨와 함께 지도하는데, 두 사람도 선수들과 합숙하나요.
“정환이나 운재 형은 바쁘잖아요(웃음). 방송 외에 하는 일도 있고요. 청춘FC가 청주대에서 합숙하는 바람에 제가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새벽 훈련부터 일일이 다 챙기다보니 정작 우리 학교 선수들이 서운해하더라고요. 그래도 조민국 감독님(청주대)이 많이 배려해주셔서 별 탈 없이 두 집 살림을 잘 병행합니다.”
▼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촬영할 때만 뭔가 연출해서 보여주면 될 텐데, 축구는 오랜 기간 선수를 만들고 다듬어 제대로 뛰게 해야 하니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끊임없이 챙겨야 하겠어요.
“맞아요. 촬영할 때, 안 할 때를 구분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는 게 제 스타일도 아니고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막 합니다(웃음).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했잖아요. 방송보다 더 중요한 건 ‘미생’의 선수들을 ‘완생’이 될 수 있도록 키우는 거예요. 촬영 여부는 전혀 고려할 게 아니죠. 함께 고생한 모든 선수가 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 ‘축구를 통해’ 돈을 벌고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면 좋겠어요. 이 선수들이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뛰게 된다면 정환이나 운재 형의 수고와 노력도 충분히 보상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벨기에, 프랑스로 전지훈련도 다녀왔더군요.
“훈련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어요. 선수들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올인’하려면 한국을 떠나야 했거든요. 청춘FC 선수들의 공통된 특징은 기본기가 안 돼 있다는 점이에요. 그건 그들을 가르친 지도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수들이 어느 순간 스스로 성장을 멈춰버린 거니까요. 멈춰버린 어떤 것을 깨뜨리는 게 급선무였어요.
벨기에에선 주로 체력훈련만 반복했습니다. 1년, 3년 이상 축구와 담을 쌓고 지낸 선수가 대부분이라 일단 체력을 만들어놔야 전술훈련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일주일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소화하고 나서 전술훈련을 시키니까 선수들이 금세 따라오더라고요. 사실 지도자들에게 해외 전지훈련은 한국에서보다 더 힘들고 지치는 일이에요. 잠을 하루 서너 시간밖에 못 잤어요. 그걸 버텨내게 한 건 선수들의 열정이었습니다.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열정이 그들에게서 넘쳐났거든요.”
▼ 프로 선수로서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이 있나요.
“서너 명 정도 눈에 띕니다. 당장 프로에 직행하긴 힘들어도 K3리그나 챌린지리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지금은 가급적 연습경기를 많이 하려고 해요. 방송을 보고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더라고요. 이랜드FC나 챌린지리그 팀들이 연습게임 좀 하자고 전화를 해옵니다. 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해요. 그래야 스카우트 담당자들이 관심을 보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