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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판사’의 한끼 | 따뜻한 모닝 빵을 구워온 2년

  • 정재민 전 판사, 작가

‘혼밥판사’의 한끼 | 따뜻한 모닝 빵을 구워온 2년

  • 재판은 상처로 시작해서 상처로 끝난다. 당사자들 상처에 비할 순 없지만 판사도 상처를 입는다. 그럴 때면 나는 혼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곤 한다. 정갈한 밥 한 끼, 뜨끈한 탕 한 그릇, 달달한 빵 한 조각을 천천히 먹고 있으면 울적함의 조각이 커피 속 각설탕처럼 스르륵 녹아버리고 위로를 받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고 해서 법정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맞은편 빈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한다.
2년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매달 혼밥판사 이야기를 써왔지만 사실 나는 3년 반 전 판사직을 그만두고 행정부 관료로 새 출발을 했다. 판사로서의 삶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판사로 지내면서 내 나이와 깜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실제보다 더 반듯하고 지혜로운 사람인 것처럼 존중받았다. 법정 안팎에서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한 해 한 해 더 내 일이 좋아지고 뭔가가 깊어졌다. 그럼에도 판사를 그만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생이 한 번뿐이라서다. 유럽 여행을 갈 때 처음 간 프랑스 파리가 좋다고 시종 파리에만 머무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좀 더 사는 듯 살고 싶었다. 처음부터 판사가 된 것은 축구로 치면 선수 생활 없이 심판이 된 셈이다.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선수로 직접 뛰면서 팀과 함께 환희와 좌절을 모두 경험해 보고 싶었다. 새처럼 허공에 머물며 멀찍이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대신 뱀처럼 직접 대지를 뒹굴어보고 싶었다. 세상을 법정에서 말과 글로만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대신 세상 속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퇴근 후나 주말까지도 범죄나 이혼 사건에 파묻혀 있는 대신 산보를 나가는 이웃집 토토로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천천히 먹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할 말이 소진될 때까지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글도 더 읽고 또 쓰고 싶었다. ‘신동아’ 덕분에 ‘정재민의 리걸에세이’를 2년간 연재하면서 판사 생활을 정리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첫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도 출간했다. ‘신동아’에 한 번 더 연재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음식 이야기를 해보겠노라고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먹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많이 먹지는 않지만 일단 먹을 때에는 후루룩, 츠룹츠룹, 꿀꺽 맛있게, 열심히 먹는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는데, 먹는 것에 대해 글 쓰는 일을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혼밥판사를 쓰는 법

실제로 ‘혼밥판사의 한 끼’를 쓰는 시간은 늘 행복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거실에 놓인 하얀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다. 고개를 들면 유리문 밖으로 아파트 꼭대기 너머 카푸치노의 우유 거품처럼 떠 있는 구름이 보인다. 커피를 입구가 큰 머그잔에 담아놓았더니 커피향이 거실 가득 퍼진다. 음악도 없으면 안 된다. 글을 쓰다가 막히면 귀로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으로는 구름을 쳐다보면서 입으로는 커피를 마신다. 그러니까 글이 써져도 좋고, 안 써져도 좋다(그래서 안 써질 때가 훨씬 많은 건가). 볕이 들면 볕을 팔뚝으로 느끼면서,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면서, 눈이 오면 눈으로 뒤덮이는 세상을 구경하면서 글을 쓴다. 짜장면, 순대, 두부 같은 것은 테이블 옆에 두고 먹으면서 썼다. 지방에 출장을 가면 조용한 카페를 찾아가서 홀로 있는 밤의 적적함이 사라질 때까지 쓴다. 그러니 혼밥판사 글을 쓰는 시간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굴튀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독자들은 이미 느꼈겠지만 나는 음식 자체를 설명하려고 ‘혼밥판사의 한 끼’를 연재한 것은 아니다. 나는 프랑스 유명 요리학교 출신이 아니고 미슐랭 스타 식당을 탐방하는 미식가도 아니다. 짜장면, 순대, 통닭, 곰탕, 돼지갈비 같은 평범한 음식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글은 에세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음식을 빌려 궁극적으로 사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결코 잡문이 아닌(무라카미 씨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보면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독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며칠 전 취직 시험에 ‘원고지 4매 이내로 자기 자신에 관해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프로 작가인 무라카미 씨라면 그런 글도 술술 쓰십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대답한다.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굴튀김에 관해 써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결국 당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혼자 밥 먹는 이야기를 충실히 하다 보면 굳이 직접 설명하지 않더라도 평범한 판사가 법과 재판과 사람과 세상을 보는 시각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나는 음식 세계와 법 세계를 나란히 놓아보고 싶었다. 음식은 그 속에 들어간 탄수화물, 나트륨, 지방이 각각 몇 퍼센트인지, 레시피가 무엇인지로 치환할 수 없다. 같은 성분, 같은 레시피라도 음식 모양과 냄새와 맛은 결코 같지 않다. 사람도, 사람 행위도, 그 사람 인생도 말과 글로, 법과 판례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음식을 알면 알수록 ‘맛이 있다, 없다’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을 살면 살수록 인간을, 그의 행위를, 그의 인생을 유죄와 무죄, 위법과 적법,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음식을 성분과 레시피가 아닌 음식 자체의 맛과 냄새와 온기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사람과 인생도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법과대학에서도, 법학 서적에서도, 선배 판사들에게서도 좀처럼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재판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결국 판사도 그만두게 된, 결코 작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그동안 문학작품을 읽고 별 소질도 없으면서 글을 써온 건 그러한 부족함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유리알유희의 비밀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변변찮은 소설이나 에세이도 몇 권 냈지만 학창시절에는 내가 글을 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고교 시절 그 흔한 문학 소년도, 독서광도 아니었다. 책을 좋아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때 읽은 소설 중에 헤르만 헤세가 말년에 쓴 대작 ‘유리알유희’가 있다. 이 소설은 수백 년 후 유럽에서 예술, 철학, 종교 같은 정신문화가 유리알유희로 통합되고 한 명의 유리알유희 연기자가 세계인을 위해 유리알유희를 선보인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한 소년이 평생에 걸쳐 수련을 거치면서 유리알유희 명인이 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유리알유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어려운 책을 고생하면서 읽었는데 대체 유리알유희가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게 억울해 일곱 번을 거듭 읽어봤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검색할 수도 없었다. 국어선생님에게 여쭈었지만 시험에 안 나온다는 말만 들었다. 더는 방도가 없어 포기하고 지냈다. 

대학교 3학년 때 사법시험 공부용으로 독일어 수업을 들었다. 수강 신청을 늦게 하는 바람에 가장 인기 없는 수업을 선택하게 됐다. 등록한 학생이 채 다섯 명이 안 됐다. 그나마도 학생들이 번갈아가면서 결석했다. 어느 날 다른 학생이 모두 오지 않는 바람에 나는 교수님과 단둘이 수업을 하게 됐다. 그때 문득 잊고 있던 유리알유희가 떠올랐다. 나는 “헤르만 헤세 소설에 나오는 유리알유희가 대체 무엇입니까”라고 여쭈어보았다. 교수님은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답을 했다. “유리알유희는 소설을 은유한 거야. 헤세는 소설 지상주의자야. 소설이 모든 예술을, 예술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인 양식이라 본 것이지. 난 안 좋아해, 헤세.” 

유레카! 교수님은 헤세를 안 좋아한다고 했지만 예술, 철학, 종교 등 모든 정신문명의 정수를 뽑아놓은 유리알유희가 소설 쓰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꽤나 그럴듯하게 들렸다. 실제 소설은 예술, 철학, 종교 등 모든 걸 담아낼 수 있으니까. 유리알유희 명인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문화의 즐거움을 향유하도록 하듯 작가도 책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으니까. 고교 시절 ‘유리알유희’를 일곱 번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의 가장 고결하고 종합적인 정신 작업이라고 믿게 됐던 유리알유희의 자리를 그 순간부터 소설이 대체하게 됐다. 

당장 소설을 써보고 싶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학창 시절 법대 가는 것, 법조인 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법대에 온 데 대해 스스로 자랑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법조인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는지 고민하던 터였다. 그길로 학생회관 문구점에 찾아가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샀다. 짬이 나면 거기다 소설을 썼다.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그래서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전공 공부가 잘 안 될 때 머리를 식히려고 소설을 썼는데 차츰 소설을 쓰다 머리를 식히려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모닝 빵을 굽는 마음

그렇게 서너 달 정도 지나니 짧은 소설 한 편이 거의 완성됐다. 학창 시절 친했던 두 남자와 한 여자가 성인이 된 뒤 한 남자가 죽고 남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사는 얼개를 가진 ‘배려’라는 소설이었다.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는 글이다). 나는 사법연수원생이 된 직후 최초로 개최된 행정자치부 주최 공무원문예대전에서 이 소설로 ‘장려상’을 받았는데 이때 너무 크게 ‘장려’돼 지금까지 글을 쓰게 됐다. 

그 소설을 완성하던 날 조금만 더 쓰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버티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었다.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고 오렌지주스만 마시면서. 시험공부 할 때에도 밤을 새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첫 소설을 완성한 다음 기숙사 휴게실로 가서 출력을 했다. 몇 차례 덜거덕거린 프린터가 찌징찌징찌징찌징하는 소리로 새벽 고요를 깨며 활자로 가득한 A4용지를 한 장씩 토해냈다. 만져보니 따뜻했다. 마치 새벽에 빵집에서 구워낸 모닝 빵의 온기처럼. 내가 쓴 소설이 하얀 종이 위에 반듯한 활자로 찍혀 나오는 것을 보고 마치 나의 첫 책이 출간되기라도 한 것처럼, 기분이 모닝 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초고를 책가방에 넣고 수업을 들으러 학교로 가던 기숙사 뒤 오솔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자고, 매일 먹던 토스트를 먹지도 않았는데 몸이 둥실둥실 떠다니듯 가벼웠다. 별로 친하지 않던 친구를 만났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나 반갑게 인사하게 됐다. 

지금도 글을 완성한 날에는 어김없이 그날 새벽의 프린터 작동 소리, 모닝 빵처럼 따뜻했던 종이, 황금색 아침 햇살에 반짝이던 촉촉한 오솔길 아침이 떠오른다. 글을 쓸 때는 오렌지주스가 아니라 커피가 더 어울린다는 생각도 함께. 지난 2년간 그날의 모닝 빵을 만드는 마음으로 ‘혼밥판사의 한 끼’를 써왔다. 모닝 빵은 대단한 기술보다 정성이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나는 허름하지만 깨끗한 공간을 마련하고, 튼튼한 테이블과 삐걱거리지 않는 의자를 놓고, 내가 여러 번 들어서 고른 잔잔한 음악을 틀고, 향이 좋은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이 마치 익숙한 자신의 공간처럼 느낄 수 있도록 실내를 가꾸고, 손님 앞에 따뜻한 빵을 내놓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 빵을 먹는 사람이 온기와 맛을 느낀다면, 하루 반나절을 버틸 힘을 얻는 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면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사는 듯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 이 특별하고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도록 사는 듯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의 모든 이에게 조금씩만 힘이 더 생기기를 바라며 연재를 마친다.



정재민 | 혼밥을 즐기던 전직 판사이자 현 행정부 공무원. ‘사는 듯 사는 삶’에 관심 많은 작가. 쓴 책으로는 에세이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보헤미안랩소디’(제10회 세계문학상 대상작) 등이 있다.



신동아 202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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