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호

한국사 시험을 축제로 만든 ‘큰별쌤’ 최태성

“역사는 사람을 배우는 과목…사교육이 아닌 평생교육”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1-03-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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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급 응시, 12만 명 몰린 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나만 믿고 따라와” 전야제 강의에 3만 명 동시접속

    • “시험에 나올 것만 찍어주세요” 절박한 취준생 안타까워

    • “다 함께 1급 따자” 절대평가의 건강성 보여줘

    • 역사는 삶의 해설서, 무료 강의 원칙 끝까지 간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2월 5일 오후 10시, 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D-1 전야제, 강사 최태성, 유튜브 채널 ‘최태성 1TV’. 

    “지금 여러분 손에는 펜이 들려 있어야 해요. 아니면 컴퓨터로 타이핑하면서 제가 물어볼 때 답하면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내용들 눈으로라도 보세요. 최소한 이 시간만큼은 집중하세요. 원래 ‘라방(라이브 방송)’은 50분짜리지만 오늘은 제가 준비해 온 것 다 끝내고 갈 겁니다. 제 목이 터져라 할 겁니다. 흐름을 잘 잡고 따라오세요. ‘한능검(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절대평가니까, 우리 같이 합격합시다. 이제부터 달릴 거니까 정신없을 겁니다. 무조건 집중!” 

    다음 날 치를 시험의 예상 문제를 최종 점검하는 ‘한능검 전야제’는 자정을 넘겨 끝났다. 2시간 내내 래퍼처럼 쏟아내고도 최태성(50) 강사는 할 말이 남아 있다. 마지막 당부. 

    “바로 자지 말고 제가 써드린 것 1시까지만 보세요.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약점 단권화 노트’와 오늘 정리해 드린 내용 다시 한번 보고 시험장에 가세요. 와, 동접(동시접속) 3만2000명을 찍었네요.” 

    유튜브로 생중계된 최태성의 ‘제51회 한능검 전야제’의 최대 동시 시청자 수는 3만2167명. 한밤중 순식간에 3만 명을 넘기는 숫자를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점수 따기보다 접수하기가 어려운 시험”

    2021년 2월 6일 토요일 시행된 5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원서 접수 대란이 일어났다. 이 시험을 주관하는 국사편찬위원회가 1월 11일 오후 1시부터 홈페이지에서 원서 접수를 시작했으나 응시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 과부하로 접속 장애가 발생했고, 몇 시간 후 재개됐을 때 이미 마감 인원 7만6000명을 꽉 채웠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부랴부랴 시험장을 확보해 추가 접수를 받았지만 접수 대란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남은 자리를 찾아 제주도, 강원도로 원정 시험을 보러 간다는 말이 현실이 됐다. 

    급기야 국사편찬위원회가 “채용 시험, 승진 등을 위해 이번 회차 시험이 꼭 필요한 분들만 응시하고 아니면 원서 접수를 취소하는 등 응시를 자제해 달라”고 공식 호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원자들 사이에서 “한능검은 점수 따기보다 접수하기가 어려운 시험”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연간 50만 명이 보면 응시료(심화 2만2000원, 기본 1만8000원) 수입만 100억 원이 넘는데 제발 서버를 증설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올해 첫 시험인 51회 응시자는 12만 명.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심화 6회, 기본 4회) 누적 응시자는 6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참고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원자는 49만 명이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열기는 예견된 것이다. 이 시험은 2006년 11월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도입됐으나, 공무원·공기업의 취업·승진 필수 자격시험이 되면서 2011년 13만2000명, 2016년 41만7000명, 2019년 51만5000명, 2020년 53만 명으로 해마다 응시자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부터 경찰공무원 공채에서 한국사 과목을 이 시험으로 대체할 예정이어서 내년에도 접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국사 덕후’로 불리는 일반 응시자까지 동반 상승하고 있어 한국사능력시험이 성인 수험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험서 시장 장악한 한국사

    실제 인터넷서점 예스24가 발표한 올 1월 수험 분야 도서 판매량에서도 이런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해마다 1월은 수험서 판매가 가장 많은 시기인 데다 올해는 코로나로 ‘집콕’ 수험생들이 늘면서 수험서 시장이 전년 동기 대비 39% 이상 증가했다. 특히 2월 6일 첫 시험을 앞두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관련 도서가 수험서 시장의 상승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수험서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중 8종이 한국사 관련 도서였고, 놀랍게도 8종 중 4종이 한 저자의 책이었다. ‘큰별쌤 최태성의 별별 한국사-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하)’ ‘심화(상)’ ‘기출 500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7일의 기적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까지 최태성 강사가 쓴 책 4종이 각각 1월 수험서 베스트셀러 각각 1~3위, 7위에 올랐다. 

    최태성 강사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부터 2016년까지 고교 역사 교사로 재직하고 2017년부터 ‘이투스’ 소속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광고 재직 시절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고, 2001년부터 EBS 한국사 강의를 시작해 단순 암기가 아닌 역사의 흐름을 짚어주는 열정 넘치는 강의로 ‘큰별쌤(수강생들이 이름 태성을 풀어 붙인 별명)’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2008년과 2012년 두 차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EBS 역사자문위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출제위원으로 활동하는 한편 MBC ‘무한도전’, KBS ‘역사저널 그날’, tvN ‘수업을 바꿔라’ 등 방송 출연으로 얼굴을 알렸다. 현재 자신이 운영하는 ‘모두의 별별한국사연구소’ 소장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이게 전부 무료라고?

    공교육의 아이콘이던 최 강사가 사교육계로 온 후에도 고수하는 원칙은 두 가지다. 무료 온라인 강의와 별도 교재가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운 ‘판서’다. 

    2월 5일 일산 EBS 스튜디오에서 수능 특강 녹화를 마친 최 강사를 만났다. 왼손가락엔 흰색, 빨간색, 노란색, 연두색 분필이 차례로 꽂혀 있다. 당일 강의 내용을 칠판 하나에 완벽하게 정리해 ‘아트 판서’ ‘대한민국 판서 종결자’로 불리는 그의 필수도구다. 

    - 올해 첫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접수 단계부터 역대급 대란이었다. 

    “한능검이 공무원 시험을 대체하다 보니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건 시험이 됐다. 수험생들은 절박하다. 한능검 등급이 있어야 공무원 시험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년 방학 중 치르는 시험에 응시자가 몰린다. 이번 시험을 놓치면 다음 공부 스케줄에 영향을 받으니 사활을 건다. 여기에 코로나19 영향으로 국사편찬위원회는 시험장 확보에 애를 먹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평소보다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한데, 신학기 개강을 앞둔 학교들이 방역 때문에 빌려주기를 꺼렸다. 오죽하면 응시 자제 요청까지 나왔겠나. 특수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또 홈페이지 접속 장애로 응시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가답안 해설을 위해 우리 연구원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제주도는 이미 끝났고 강원도에 간신히 추가 접수하자마자 마감되더라. 이번에 국편위에 엄청난 민원 전화가 몰린 것으로 안다. 서버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 2006년 시작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15년 만에 매년 50만 명 이상이 보는 시험이 됐다. 과열 양상 아닌가. 

    “교사 시절 국편위 분들과 한능검 이야기를 많이 했다. 기왕 만들었으니 회당 응시자가 1만 명만 넘어도 좋겠다, 인기가 없어서 폐지되면 어떻게 하나를 걱정했는데 이렇게 뜨거워질 줄 누가 알았겠나. 기본적으로 이 시험을 도입한 취지는 ‘재미있게 역사를 공부하자’였다. 단순히 외우는 시험이 아니라 즐기면서 공부하고 한국사의 저변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응시자가 는 것은 기회라고 본다. 취업을 준비하는 20~30대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온 가족이 함께 시험을 보기도 한다. 응시자의 30% 정도는 교양과 취미 차원에서 도전하는 분들이다.”

    “너무 쉬운 시험? 쉽게 얘기하지 마라”

    유튜브 채널 ‘최태성 1TV’ 장면 캡쳐.

    유튜브 채널 ‘최태성 1TV’ 장면 캡쳐.

    - 응시자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애초 시험 취지가 왜곡될 우려는 없나. 

    “다행인 것은 이 시험이 절대평가라는 것이다. 수강생들 댓글을 보면 ‘우리 모두 함께 1급 받아요’란 말이 자주 나온다. 상대평가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지만 절대평가는 ‘다 함께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다. 절대평가의 건강성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한능검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시험이다. 반면 학교 내신은 여전히 상대평가다. 변별이 필요하고 함정 문제를 낸다.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는 시험이다. 그런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는다. 학교 현장이 좀 더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 누구나 쉽게 1등급을 받는 시험이라면 변별력은 어떻게 하나. 

    “공무원 시험엔 종종 ‘떨어뜨리기용’ 지저분한 문제가 나온다(예를 들어 2018년 서울시 공무원 7급 한국사에서 고려 후기 발행된 역사서를 시간순으로 배열하라는 연도 문제에 대해 그는 ‘꼴랑 3년, 한국사 교육을 왜곡하는 저질 문제. 출제자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런 문제는 찍을 수밖에 없어서 오히려 변별력이 없다. 반면 한능검에는 연도를 외우지 않아도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면 풀 수 있는 ‘신박(신기하고 참신)’한 문제가 많다. 초기 15회까지는 역사 전공자들도 못 푸는 문제들이 나와 국회 국정감사에 오를 정도였다. 그런 과도기를 거쳐 요즘은 ‘이건 아트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할 수 있는 이상적인 문제가 많다. 제발 국편위가 그런 출제 기조를 유지해 주기 바란다.” 

    -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과목이 된 한국사는 절대평가다. 그렇다 보니 지난 수능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주먹도끼)을 묻는 문제는 정답률이 98%일 만큼 ‘너무 쉬웠다’는 지적이다. 

    “한국사 시험의 목표는 한국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훈민정음’을 창시한 사람 하면 바로 세종대왕이 나오고, 임진왜란 때 바다를 지킨 사람 하면 이순신 장군이 나와야 한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면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라고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본 소양이다. 초등생도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고조선 단군도 모르는 학생들 많다. 그런 수준의 학생들까지 다 아울러서 보는 시험이 수능 한국사다. 한두 문항은 변별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기본 소양을 묻기 위해 출제한다. 그렇게 쉬운 문제가 나와도 1등급(40점 이상)은 34%밖에 안 됐다. 이번엔 50% 이상 나올 줄 알았다. 아직 멀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공간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강의는 어떤 차이가 있나. 

    “역사의 본질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수능에 비해 한능검 강의에는 ‘여백’을 많이 둔다. 여백이란 역사를 배우면서 사람을 만나는 공간을 많이 집어넣는다는 의미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 ‘삶의 해설서’다. 단순히 문제 풀고 합격증을 따는 게 아니라. 이왕 공부했으면 역사 앞에서 내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시민으로 살아야겠구나를 생각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한능검이 생존 시험이 되면서 온라인 강의에 ‘선생님, 강의 중 다른 말씀하지 마시고 시험에 나올 것만 찍어주세요’라는 댓글이 달리곤 한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 사교육 시장으로 옮긴 뒤에도 온라인 강의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가능한가. 

    “기본적으로 교육은 공유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철학이다. 또한 역사는 사교육이 아니라 평생교육이라는 체제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을 배우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한국사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판서에 공을 들이는 것도 따로 교재가 없어도 강의 내용을 노트에 옮기면 충분히 수업을 따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EBS, 이투스, 유튜브에 올리는 기본 강의 내용은 똑같다. 각자 접근하기 편한 채널을 이용하면 된다.”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응시자의 절반은 최태성 교재로 공부한다고 한다. 사실인가. 

    “작년에 교재가 40만 부 이상 팔렸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출판사에서 인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 누적 수강생 500만 명의 효과인가. 

    “EBS 수능개념 수강 신청자만 매년 10만 명이다. EBS나 이투스 수강생은 정확히 카운트되기 때문에 숫자를 부풀릴 이유가 없다. 올해는 600만 명을 넘길 것 같다. 

    - ‘우리는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라는 강의에서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마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멀리 갈 것도 없이 100년 전만 살펴봐도 시대마다 과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항기는 신분제(봉건)로부터 해방, 일제강점기에는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 광복 이후로는 가난과 독재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았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나도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뜻이다. 역사는 세대 간 소통의 통로다.”

    함께 울고 웃는 축제가 되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51회 한능검 전야제’를 위해 뛰다시피 자리를 떴다. 밤 10시부터 시작된 생방송은 ‘집단 열공’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해 주었다. 51회 응시자 12만 명 중 4분의 1이 이 생방송에 동시접속했고, 해당 영상 조회수는 16만 회를 넘겼다. 그리고 다음 날 2월 6일 오전 11시 40분 시험이 종료되자마자 진행된 ‘가답안 공개’ 영상에는 간증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예상문제) 황산전투 이성계, 진짜 할렐루야 했어요. 감사해요. 전야제 3번 돌려봤습니다.” 

    “자격증이 필요해서 반강제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제가 선생님 강의 들으며 웃고 울고 있더라고요. 86점으로 1급 합격했습니다.” 

    “8개월 아기 키우면서 아기 낮잠 잘 때 조금씩 공부해서 94점 1급을 땄습니다. 수능 이후 15년 만의 국사 공부였는데 한 달 만에 좋은 성적을 받게 된 것 최태성 샘 덕분입니다. 경력 단절을 벗어나고자 한발 나선 첫걸음에 좋은 결과를 얻어 용기가 샘솟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을 외우는 건 힘들었지만 그들의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제 인생도 다시금 돌아보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정도 반응이면 강의가 아니라 축제다. 최태성 강사에게 예상 문제의 높은 적중률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다. 

    “많은 분이 행복해하시니 너무 좋아요. 이 맛에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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