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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해부] “겸손하고 착한 척이 정무 감각은 아냐…경쟁 잣대 세워야”

반란과 도발의 아이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이준석 대해부] “겸손하고 착한 척이 정무 감각은 아냐…경쟁 잣대 세워야”

  • ● “국가는 경쟁 환경 만들어주는 플랫폼”
    ● “보수주의보다는 불간섭주의”
    ● 2030, 게임 캐릭터처럼 이준석 소비
    ● “예의 갖추며 토론하기 어렵다”
    ● “관성에 따라 아저씨들 얘기 들어주는 게…”
    ● “좌충우돌하는 성격 아니었다면 못 떴다”
    ● 상계동 도시노동자 가정의 정체성
    ● 사람의 선의(善意)는 믿지 않는다
    ● 경쟁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확신
    ● 리허설 없는 승부, 대선 게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6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국가는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홍중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6월 10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서 진행된 ‘신동아’ 인터뷰에서 “국가는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플랫폼”이라고 했다. [홍중식 기자]

정치인은 에어쇼의 비행기와 같은 존재다. 활주로에 있을 때 별반 특별할 게 없는 쇳덩어리는 구름 위로 날아오르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멋들어진 모양새로 태양을 향해 돌진하고, 맵시 있게 곡예비행을 하며 테크닉을 뽐낸다. 그러나 축제가 끝난 뒤에는 수직 하강이 숙명이다. 지표면에 닿으면 곡예의 추억은 활주로 옆 잡풀 속에 파묻힌다. 뒤로는 수십여 대 비행기가 ‘이번엔 내 차례요’ 하며 줄줄이 늘어서 있다. 대중은 필요에 의해 정치인을 띄우고, 쓸모가 다하면 냉혹히 폐기처분한다. 이것이 정치인의 운명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그 누구도 이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다. “이것은 정치보복”이라며 무수히 항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운명을 담담히 직시한 사람도 있다. 서거 직전 노무현은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성공과 영광의 기억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썼다.(‘성공과 좌절’ 중) 노무현의 동지였던 문재인은 노무현의 유훈을 알면서도 같은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이것이 문재인의 운명이다.

‘문재인 시대’의 황혼기에 1985년생 이준석이 비상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전당대회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흔한 반응은 “용기는 가상하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체급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행보에 불과하다는 냉소도 튀어나왔다. 그러나 6월 11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그는 최종 득표율 43.82%를 기록해 나경원(37.14%), 주호영(14.02%), 조경태(2.81%), 홍문표(2.22%) 후보를 따돌렸다. 여론조사 득표율 58.76%는 다른 네 후보의 득표율 합계(41.25%)보다 17.51%포인트 높았다. 선거는 당원 투표(70%)와 여론조사(30%)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심(民心)은 당심(黨心)과의 줄다리기에서 압도적 기세를 보였다. 안정과 경륜을 중시하는 당원 중에도 민심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에게 표를 던졌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주위의 국민의힘 중장년층 당원 중에도 당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준석을 찍었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급기야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원내 교섭단체 정당 대표가 탄생했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그가 도합 18선(나경원 4선, 주호영 5선, 조경태 5선, 홍문표 4선)의 거물들을 꺾었다. 이준석에게 지금은 ‘고공비행의 시간’이다.

나는 불간섭주의자

2011년 12월 27일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회의가 시작되자 태블릿PC를 꺼내 검색을 하고 있다. [동아DB]

2011년 12월 27일 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에서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회의가 시작되자 태블릿PC를 꺼내 검색을 하고 있다. [동아DB]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6월 10일. 초여름 햇빛이 아스팔트 도로의 표면을 자극했다. 오전 9시 48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당시 후보)에게서 “1층 로비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백팩을 멘채 홀로 동아일보 충정로사옥에 나타났다.

꾸밈없는 맨얼굴에서 피로가 묻어났으나 평온해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인간 이준석의 맨얼굴을 들여다볼 참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내친김에 미래까지 달려나갈 것이다. 그의 생애가 빚어낸 세계관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어떤 욕구와 상승 작용해 태풍으로 진화했는지 분석해 볼 작정이다. 야당 대표 이준석을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단면을 해부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오전 첫 일정은 수행비서 없이 주로 혼자 다닌다고 했다. 이날은 자택이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왔다.

“시내로 나오면 보통 4호선 타고 5호선이나 2호선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4호선 타는 어지간한 분들은 몇 년째 이준석을 봐서 별로 놀라지 않아요.(웃음)”

그의 너스레에 함께 웃었다. 검정 세단 뒷좌석에 앉아 서류철을 뒤적이는 임원의 모습이 아니다. 더위에도 부지런히 외근(外勤) 나온 과장의 모습이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지 만 10년이니, 기업이었다면 과장 직급에 있을 시기다. 서울시 공공 자전거 ‘따릉이’도 그가 애용하는 출·퇴근 수단이다. 권위의식이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당선 직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할 때도 백팩을 멘채 지하철 타고 갈 것이냐는 ‘질문성’ 게시물이 올라왔다. 흔한 ‘셀럽’의 자의식이 없다.

그의 선거 캠프에서 일한 공보 담당자는 이런 말을 전해줬다. 리더의 영향인지 참모도 솔직하다.

“(이 대표와) 같이 다니면 맨날 길거리에서 김밥 사 먹죠. 선거운동 스케줄이 끝나면 밤 10시가 넘으니 갈 때가 없잖아요. 그러면 편의점 찾아서 김밥 사고 나온 뒤 벤치에서 먹어요. 어두운 데서 둘이서 먹으니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요.(웃음). (이 대표는) 같이 다니면 특별한 사람은 아니에요. 보통의 30대 중 조금 똑똑하고,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이랄까. 새 인물은 아니잖아요. 변화에 대한 지금의 바람이 꼭 이준석이어야만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이 바람에 가장 부합했던 인물이 아닌가 싶어요.”

이준석의 세계관을 떠받치는 기둥은 불간섭이다. 자신은 ‘보수주의자’라기보다는 ‘불간섭주의자’라고 한다. 전체주의적 성향과는 상극이다.

“국가는 국민이 자유롭고, 또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플랫폼이죠. 국가가 국민을 위해 동작하는 데 중점을 둬야지, 우리가 국가를 위해 뭘 해야 하느냐고 자꾸 묻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죠.”

이른바 ‘애국보수’와 충돌이 잦았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그를 두고 “좌파첩자”라며 이죽거렸는데, 태극기부대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 있다. 지금은 그가 ‘애국진보’라고 규정한 더불어민주당과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정치인들에게 날을 세우고 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도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물어보니 “진 전 교수와 의사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진 전 교수가 자유주의자라는 이유에서다. 국민의힘 대표가 민경욱보다 진중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게 재밌다.

그는 “누군가 찍어 누르려 하면 두들겨 부수고 싶다”고 했다. 표현의 수위가 높지만, 억지로 둥글둥글하게 말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대목은 오프더 레코드(Off the Record)로 처리해 달라”는 말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준스톤, 슈퍼루키 등장”

그는 불간섭이 2030세대와 주파수가 통하는 코드라고 생각한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6월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1명에게 ‘정치 성향’을 물은 결과, 진보층은 26.7%, 보수층은 26.3%로 나타났다. 18~29세에서는 보수가 34.9%를 기록해 진보(21.3%)를 압도했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도 20대의 보수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의 보수층 비율은 30.8%였다.(해당 조사의 응답률은 5.2%,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보수도 굉장히 다양해요. 60대 이상의 전통적 보수는 애국보수에 가깝죠. 국가에 대한 고민이 많고, 국가가 잘되기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정도의 생각을 장착하고 정책을 판단하죠. 20~30대 젊은 보수는 그게 아니에요. 개인의 자유와 인권, 권리라는 걸 포기할 수 없는 세대거든요. 그래서 아마 거기(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 잡힌 젊은 보수와 60대 보수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살 겁니다.”

기자가 보기에 그는 또렷한 보수주의자다. 그는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했고 “사회제도나 문화의 변화는 기대하지 않던 부(否)효과를 낳게 돼 있다”고도 했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변혁이 질서 파괴와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에 잠정적 해결책과 점진적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이준석의 보수는 버크의 정통 보수주의와 맥이 통한다.

그런 그에게 중도는 이념이 아니다. 그는 사회현상이나 정치 현안의 경우 중간 지대는 없다고 본다. 대신 지지층의 폭을 넓히기 위한 ‘확장 전략’을 펴야 하는데, 그것이 이준석식 중도다. 가령 “20대의 언어로 20대의 문제를 20대의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는 ‘준스톤’으로 불린다. ‘스톤(stone)’, 즉 돌이라는 의미다. 한문으로 바꾸면 ‘돌 석(石)’이다. 재치와 친근감이 두루 묻어난다. 회원 수가 84만 명인 한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그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하자 “준스톤, 아무도 못 막는다. 슈퍼루키 등장”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2030 세대는, 이를테면 그를 게임의 캐릭터처럼 소비한다. ‘K를 생각한다’를 쓴 1994년생 임명묵 작가는 6월 6일 정치문화 플랫폼 하우스(How’s) 세미나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토론을 실시간으로 봤는데, 채팅창이 재미있더라. 인터넷 게임 방송과 비슷했다”면서 “청년들이 이입할 수 있는 ‘캐릭’으로 이준석을 소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깅할 때 양복 입은 것과 비슷”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은 젊은 보수의 비율이 상승한 이유로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논증과 논리 전개 방식, 화법을 포괄하는 개념이 그들의 언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대학 교재의 설명처럼 명쾌하나, 또 그만큼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준석답지 않은 심심한 답변이다.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가 첨언을 달았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는 ‘젊은 세대를 이해하라’는 말을 (20대가 쓰는) 단어에 대한 이해 정도로 생각했어요. 유행어 하나가 뜨면 정치권에서 유행어 학습해서 쓰면서 ‘우리도 젊어졌다’ 이러고 있는데, 그게 아니죠.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4·7 재·보궐선거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TV토론이었는데, 제가 그걸 집요하게 파고들었죠. AI(인공지능)니 4차 산업혁명이니, 삼투압이니 이런 단어 하나만 쓰면 자기가 마치 대단해 보이는 듯 착각 속에 빠져 있는 정치인들을 젊은 사람들은 조롱하고 있던 거예요. 편의점 가서 무인 편의점 (운영 제안을) 얘기하는 모습 자체를 경멸했던 거예요. 왜냐면 웃기거든요.”

기자는 1986년생이다. 2월생이라 초등학교를 7살에 입학해서 그와 같은 시기에 초·중·고교를 다녔다. 그런데 20대의 감수성과 관심사를 잘 모른다. 으레 ‘2030’으로 퉁치지만,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사이에도 좁힐 수 없는 문화적 격차가 있다. K팝에 빗대자면 H.O.T 세대와 빅뱅 세대가 다르고, 이 둘과 BTS 세대는 또 다르다. H.O.T 세대인 그가 BTS 세대를 이해하는 방식이 나름대로 있을 것이다. 혹 온라인 커뮤니티에 열심히 접속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단다.

“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이것 좀 읽어달라’는 메시지가 넘쳐나요. 저랑 하태경 의원이 2~3년 전부터 젊은 사람들 이슈를 챙기기 시작하면서 저희는 인터넷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이슈가 될 만한 중요한 사안이면 자동으로 쏟아져요. 제가 커뮤니티 사이트를 다 모니터링할 수는 없거든요.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모아서 보내주는 게 고맙죠.”

‘준스톤’의 속살이 궁금해 일부러 사전 질문지도 안 보냈다. 학습된 맞춤형 답변만 듣기 위해 그를 만나자고 한 게 아니다. 그런데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이 없다. 단어를 고르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머릿속 데이터베이스(DB)에서 하나씩 답변을 꺼내놓는 듯한 인상마저 든다. 이런 재주는 타고나는 것 같은데, 본인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노력과 경쟁, 자기계발을 강조하는 사람이니 ‘타고났다’는 말은 자기부정이 될 테다.

위계질서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보수정당에서 그는 조자룡처럼 창을 휘둘렀다. 말끝은 날이 갈수록 뾰족해졌다. 10년간 여러 전장(戰場)을 거쳐 노련한 전사로 성장했다.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계급장 떼고 외치면 “싸가지 없다”는 소리를 듣게 마련이다. 더군다나 ‘50대·서울대·판검사·관료’가 주류인 조직에서 30대 유학파 공학도가 계급장을 뗐으니 오죽했을까 싶다.

“싸가지 없다”는 말에 쉽사리 창을 내려놓는다면 조자룡이 아니다. 창을 내려놓는 순간 자기 색깔이 사라지고 영혼마저 죽는다는 걸 몸으로 알기 때문이다.
“토론 나가면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답게 해라’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듣거든요. ‘젊은 사람이면 깍듯이 예의를 갖추라’ 이러는데, 저는 아직까지 그렇게 방송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면서 논리를 전개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건 조깅할 때 양복 입은 것과 비슷한 거죠. 예의바른 게 아니라 그러면 ‘또라이’ 취급당해요. 논쟁적이면서도 예의 바른 사람들이 있긴 있어요. 그런데 대중이 모르잖아요.”

이준석은 ‘청년’이라는 단어도 계급장이라고 본다. 청년이기 때문에 창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남보다 두꺼운 방패가 주어지는 것도 싫다. 청년은 정치 행보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단어라고 그는 생각한다.

“청년이 카르텔화하는 순간 끝나요. 소수자(정체성)에 더해 폐쇄적 집단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그래서 청년 내세워 정치하는 사람들 싫습니다. 제가 그랬을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지금까지 청년 특혜를 하나도 안 받았어요. (국회의원) 공천받을 때도 고향 험지 돌파했지, 언제 제가 좋은 데 달라고 했습니까. (청년) 비례 준다고 했을 때 받겠다고 했습니까. 결국 경쟁력이고, 계급장 떼고 붙는 자세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朴 대통령에게 감사하나 탄핵은 정당”

적정선에서 휴전하자는 생각이 애당초 이 사람에게는 없다. 상대가 누구건 집요하고 독하게 물고 늘어진다. 타고난 싸움꾼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단박에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모습과 묘하게 닮았다. 그는 논쟁을 피하는 순간 비겁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의 선거 캠프에서 일한 공보 담당자에게 물으니 평소에도 “비겁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고 한다. 일단 논쟁을 만들어낼 줄 안다. 이것은 고구마 같은 언어에 지친 대중에게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한 뒤부터 주변에서 전화와 문자가 엄청나게 많이 왔어요. ‘이제 네가 유리한 고지에 갔으니 살살 하고 깍듯이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요. 나경원 후보가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저한테 막말 프레임을 씌우려 했거든요? 거기서 ‘선배님 새겨듣겠습니다’라고 말하면 막말 프레임을 인정하는 꼴이 돼요. 꼭 싸워야 할 땐 싸워야 하는데 보수정당은 그게 비겁한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 정당이) 그런 식의 프레임, 이미지 씌우기를 하죠. 그 상황에서 정무 감각이라는 건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는 거지,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착한 척하는 게 아니에요. 관성에 따라 아저씨들 하는 얘기를 다 들어주는 게 정무 감각은 아니라는 거죠.”

그는 복기(復棋)하기보다 내지르고 보는 사람이다. 경쟁 후보들은 그의 성격을 ‘불안정’으로 규정하며 공략했으나, 그럴수록 그의 차별성만 부각됐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대중은 차기 지도자로 현직 대통령과 다른 사람을 원하게 된다”면서 “이 대표가 차분하고 얌전하고 용의주도했다면 절대로 뜰 수 없다. 좌충우돌하고 튀는 성격이기 때문에 빠르고 시원시원한 지도자를 원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했다”고 말했다.

그가 5월 20일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하며 내건 일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당대표가 되고 싶다”였다. 즉각적이고 솔직하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명분하에 속내를 감추는 게 미덕으로 평가받는 정치 문법과 다르다. 민감한 사안에는 한발 비켜난 채, 듣기에 거북하지 않고 말하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메시지만 내놓는 ‘선문답 정치’의 모습도 아니다.

그러니 그에게서는 남이 끌어주지 않고 자기 실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왔다는 자신감이 차고 넘친다. 그는 5월 21일 페이스북에 “내 발탁에 있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다. 그런데 탄핵은 정당하다”고 썼다. 6월 3일 ‘보수의 아성’ 대구에서 열린 국민의힘 대구·경북 합동연설회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저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통치 불능의 사태에 빠졌기 때문에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했다. 빚진 게 없고 손 벌린 게 없다고 생각하니 당당함을 숨길 이유도 없다.

진정성을 ‘표현하는 정치학’

“저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되기) 전부터 사회활동을 많이 했고요. 제가 만든 단체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교육봉사 단체였기 때문에 그 성과를 인정받아 비대위원에 간 겁니다. 그게 어떻게 특혜일 수가 있겠어요. 특혜이려면 제가 박근혜 대통령의 친척이라도 된다든지 해서 영입됐어야 하는 것이죠. 그걸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이 유승민 의원이 저를 추천했다고 그러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가 운영하는 교육봉사단체에 와서 직접 저를 픽업(pick-up)한 것이고, 그건 제 성과에 대한 인정입니다.”

이준석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호응받는 이유에 대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기성정치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진단했다. 직답을 피하고 슬쩍 찔러만 보는 ‘간 보기 정치’에 대한 대중의 반발인 셈이다. 이것은 안 교수가 보기에 진정성을 ‘표현하는’ 정치학이다. 안 교수는 진보 성향 정치학자로, 2012년 총선 때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인터넷소통위원장으로 일했다.

“기득권 정치의 전형적인 모습은 지나치게 계산하고 담합하고 말 바꾸는 거잖아요. 이와 달리 이준석은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툭툭 내뱉으니까 시민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거죠. 기존 정치 문법과 다른 겁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진보적인 사람들이 자꾸 오해하던데, 제가 이준석이 진정성이 있어서 멋있다고 한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가 계산을 안 하고 속사포로 마구 내뱉잖아요. 그게 사람들에게 사이다를 주는 거죠. 그런 뜻입니다.”

이준석과 비슷한 연배의 정치권 인사들이 보는 시각도 대동소이하다. 국민의힘 소속 백경훈(37) 청사진 공동대표는 “기성 정치인들은 모두 포용하고 통합하겠다는 식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두루뭉술한 화법을 쓰는데 이 대표는 직설화법을 쓰니 젊은 층의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노력이건 행운이건, 어쨌든 그는 없는 길을 만들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길을 개척하는 데는 토론이 요긴한 도구로 쓰였다. 그는 평소 ‘토론 배틀’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강호의 고수들과 일합(一合)을 겨루며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하버드대에서 글쓰기를 통해 논증하는 법을 체득했고, 이것이 토론의 자양분이 됐다고 했다. 정치권에 와서는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김부겸 국무총리 같은 거물들과 실전 대련(對鍊)했다. 출연한 방송 토론을 모니터링하면서 어떤 형태의 논객으로 진화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특히 노회찬식 토론법을 차용하는 데 애썼다. 같은 지역구(노원병)에서 활동한 점 말고는 두 사람 간 공통점이 없는데, 그에게는 노회찬에 대한 애정이 제법 깊어 보였다. 그는 진중권을 극도의 논리형 논객, 노회찬을 공감형 논객이라고 분류했다. 길게 말하지 않으면서 논지를 전개하려면 비유가 최적의 무기다. 노회찬은 비유로 당대 토론판을 평정했다. 그가 왜 노회찬을 전범(典範)으로 삼았는지는 이해할 만하나, 솔직히 말하면 아직은 진중권형에 가까워 보인다. 빈틈이 없지만 저잣거리의 구수함이 부족하다. 그가 노회찬의 장점까지 흡수하면 첫 손가락에 꼽힐 선동가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비유와 반례가 주된 토론 스킬”이라고 했다. 6월 2일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 “(이 대표의) 아버지와 (유승민 전 의원이) 친구인 특별한 친분이 있는 상황에서 공정한 대선 관리가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준석의 부친과 유 전 의원은 고교와 대학 동기다. 기자가 ‘아빠 찬스’ 프레임을 화제로 올리자 특유의 반례(counter example) 논법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민주당에 가도 엮일 분들이 있어요. 당장 김부겸 총리와 엮일 겁니다. 굳이 따지면 유시민(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 씨도 경북고 출신은 아니지만 대구 출신에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으니 아버지 1년 후배거든요. 엮으려면 무궁무진합니다.”

직설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도발적인

이준석은 당대의 수재가 모인 서울과학고를 조기 졸업했다. 잠시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다니다가 하버드대 입학 허가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애초 카이스트와 하버드대에 동시 지원을 했는데, 3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카이스트가 먼저 합격 통지를 보내와서 2~3주 정도 다녔다. 하버드대에서는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복수전공했다.

학창 시절부터 정치인의 싹이 보였다. 고교 2학년 때 학생회 부회장을 했다. 대부분 조기 졸업하는 과학고의 특성상, 2학년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학생회를 총괄했다. 하버드대에서는 한국인유학생회 회장을 맡았다. 5명 중에서 뽑혔다며 겸연쩍어했지만, 원하지 않는데 주변에서 채근해 어쩔 수 없이 나섰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조직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사람이다. 등 떠밀려 선봉에 선 적이 없다. 오랫동안 숙성돼 알을 깨고 나온 타고난 정치인이다.

귀국 후에는 과외 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과 소프트웨어 개발 벤처기업 ‘클라세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러다 26세 때인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에는 미디어를 통해 존재감을 한껏 키웠다.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은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방송에서 그의 모습은 ‘물 만난 고기’였다. 세 차례 총선에서 낙선한 게 인생에서 유일한 실패 경험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그의 삶에 대해 이런 식으로 짐작할 테다. ‘유복한 환경에서 온갖 사교육을 다 받으며 컸을 테고, 부모의 철저한 관리하에 ‘공부 기계’로 길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뻔한 시나리오로는 그에게 엿보이는 직설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도발적이기까지 한 언행을 해석할 도리가 없다. 야심가라는 점은 분명하나, 다선 의원을 목표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는 생각이 단단히 뿌리박혀 있다. 단단함의 근원이 궁금하다.

해답의 실마리는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부친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다.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한국에는 902만 명이 태어났다. 이들은 대학 졸업 뒤 곧장 직장에 들어가고, 서른이 되기 전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 누구나 4인 핵가족을 꾸렸다. 보통의 베이비부머는 이렇게 살았다. 정부는 분당·일산·평촌 등을 비롯해 수도권 일대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주택 보급을 늘렸다. 열심히 살면 20평대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는 시대였다. 상계동에도 1990년대 들어 상계주공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개발로 인해 인구가 급증했다. 이준석에게는 중산층 도시노동자의 자식이라는 정체성이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제가 상계동 출신인 이유는 간단해요. 아버지 취업하시고, 어머니는 교사 하시다가 결혼하셨어요. 당시 아버지 직장이 대우상사였고, 서울역 대우빌딩에서 근무하셨어요. 서울역에 지하철 4호선이 갓 개통했을 때거든요. 그러면 거기서 출·퇴근할 수 있는 데 중 가장 싼 데가 어디냐가 기준이죠. 당시에는 4호선 당고개역도 없었어요. 상계역이 4호선 종점이었거든요. 서울역 대우상사에 근무하게 된, 상경(上京)한 20대 젊은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은 당시 막 개발되던 상계 신도시 정도죠.”

“두루뭉술하게 소수자 위한다? 사기!”

2006년 7월 26일 하버드대 학생들이 서울 신당동 유락사회종합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이 당시 21세이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동아DB]

2006년 7월 26일 하버드대 학생들이 서울 신당동 유락사회종합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이 당시 21세이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동아DB]

이참에 그의 성장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 경제 자본이 아니라, 학력 자본을 통해 계층 상승을 이룬 셈이네요.

“할아버지도 저는 몇 급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세무서 말단 공무원으로 사셨어요. 아버지가 도시노동자로서 첫 삶을 시작한 상계동이라는 게 제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하죠. 그래서 제가 상계동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고 있는 겁니다.”

- 부모로부터 배운 가치는 무엇입니까. 근면을 말하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경제관념이라고도 하죠. 이 대표 부친은 증권계에서 일하셨으니 경제관념을 강조하셨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아니요. 가정교육이 경제로 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고…. 아버지와 큰아버지 두 분 다 금융 쪽에 계셔서 저는 오히려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어요.”

- 왜요?

“금융은 제가 그 당시에 봤을 때는 흥미롭지 않은 분야였죠. 저는 공학을 전공하겠다고 해서 과학고 가고 컴퓨터를 전공하게 됐죠.”

- 특이하네요. 집안에는 공학 쪽 배경의 분이 없는데요.

“지금도 집값 별로 오르지 않은 상계5동 한신아파트 3차에 살았거든요. 한신아파트 3차 앞에 있는 유일한 사교육 기관이 당시 갓 생겨나기 시작한 컴퓨터학원이었어요. 저는 상계동 살면서 태권도장 가고 컴퓨터학원만 다녔어요. 제 기억에 10살 때인가, 9살 때인가…. 프로그래밍 자격증이라는 게 있었어요. 프로그래밍 3급인지 4급인지를 땄어요. 그때 그냥 그런 데(컴퓨터) 흥미가 많이 생겼죠.”

회고담이 드라마틱하긴 한데, 뜯어보면 결국 성공 서사다. 서울 변두리에 터전을 꾸린 중산층 가정에서 하버드까지 내달렸다는 뜻으로 들린다. 많은 청년이 롤 모델로 삼을 인생이기는 하나 ‘2%’ 부족하다. 우리는 지금 사업가가 아닌 야당 대표 이준석을 만나고 있다. ‘현상’이라는 낱말이 붙는 정치인치고는 사람 냄새가 덜 난다. 신파조(新派調)는 진부하나, 정치인의 삶에 너무 눈물 자국이 없어도 곤란하다. 멋진 삶이지만 가슴에 확 와닿지 않는다. 이 사람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있을 법한데, 기자가 끌어내지 못하는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외나 차별 같은 문제에 민감해 본 적은 없느냐” 물었다. 그러니 “두루뭉술하게 소수자를 위하겠다거나,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유권자에게 사기 치는 것”이라고 답한다. ‘역시 건조한 사람이구나’ 싶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그가 생뚱맞게 ‘장애인 이동권’을 화제로 꺼냈다. 들어보니 물기가 어린 사연이 있다.

“문제 해결을 하려면 사람은 무언가에 꽂혀야 해요. 2003년부터 하버드를 다녔는데 한 해 위 선배 중 공승규 형님이 있어요. 이분이 휠체어를 타고 다녔는데, 그 휠체어를 제가 하버드 다니면서 3년 동안 끌었어요. 미국에는 당시에도 모든 버스에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리프트가 있고, 모든 건물에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어요. 1800년대에 지은 하버드 기숙사도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공사를 했죠. 형과 방학 때 한국에 와서 무한한 불편함을 느꼈어요. 기사도 꺼리고 승객도 바빠 죽겠는데, 장애인이 탑승하기 위해 버스를 세우고 리프트 내리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제가 가끔 인터뷰마다 뜬금없이 장애인 이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 규정을 강화하자든지 등의 주장을 하는데, 진짜 제가 꽂힌 거예요.”

“몇백 원 더 벌려고 신호 지키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6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택시 운전 경험도 그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듯하다. 그는 2019년 2~3월 서울 노원구 소재 한 운수업체에 택시기사로 취직해 정식으로 근무했다. 주 6일,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말이 쉽지, 자신감 넘치는 정치인이 도전하기에는 녹록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토론 본능’은 어떻게 참았을까 싶다. 듣고 있는 기자도 짧은 탄식이 나올 만큼 고약한 경험도 있다.

“새벽 2시에 어떤 분을 태웠어요. 식당에서 일하는 여성분이었는데, 일 끝나고 집에 돌아가시는 길이었어요. 노원역에서 창동역 쪽으로 가는데 신호등이 몇 개 있어요. 제가 신호등에 칼같이 서니까 뒤에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요즘 같은 세상에도 몇백 원 더 벌어보려고 신호 다 지키면서 가는 사람이 있네.’ 그때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두 가지였거든요. 첫째, 굉장한 모욕감을 느꼈죠. 둘째, 나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가야 하는 것인가…. 그게 택시 기사를 대하는 대한민국 대중의 수준이에요.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처럼 택시 기사 목 조르는 사람도 있겠죠. 이용구라는 사람도 법무부 차관 할 때는 그런 모습 보이겠어요? 택시 기사는 자기가 하대해도 되고, 속된 말로 조져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어요?”

기억은 사람의 세계관에 의해 편집되는 것이다. 그는 선배의 휠체어를 끌 때 느낀 버스 승객들의 불편한 시선을 기억한다. 택시 운전석에서 받은 모욕을 뇌리에 새겨 넣었다. ‘민중의 뜻에 따르겠다’거나 ‘국민이 옳다’ 같은 앞선 세대 정치인들의 자의식이 이 사람에게는 없다. 그는 사람의 선의(善意)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정치가는 선의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 행동의 8할 이상은 선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고 봐야죠. 어쩌면 가장 불행한 건 투표가 그 영역에 놓인다는 점일 수도 있어요.”

그와 대화하다 보면 이따금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모습이 비친다. 지역 행사장에 날마다 얼굴 비치는 정치인보다는 정책 입안과 예산 편성 등을 담당하는 실무 관료가 어울려 보인다. 그러잖아도 어릴 적 테크노크라트의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단다. 하버드대 입학 에세이에도 엔지니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썼다. 대중 정치인은 애당초 인생 설계도에 없었다고 한다.

그가 정치권에 안착하는 데 ‘하버드 졸업장’의 영향이 없었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는다. 한국에서 사회적 층위를 가르는 잣대는 교육이다. 교육은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집단 간의 각축장이다. 교육 성취는 개인적 노력의 결과다. 이와 동시에 성취를 이뤄낼 환경을 제공할 부모의 존재도 큰 변수다. 노력과 환경, 무엇의 비중이 높은지는 계량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날선 칼로 베어낸 듯 또렷한 단면이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다.

주목할 만한 연구는 있다. 사회복지학자 신명호는 고학력 중산층과 저학력 노동자층을 심층 인터뷰한 뒤 학업 성적과 양육 관행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렇게 나온 책 제목이 ‘왜 잘사는 집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다. 책에는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첫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유형이다. 타고난 경쟁심에 의해 승부 근성이 강한 성향이다. 둘째, 부모의 요구와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하는 유형이다. 셋째, 부모의 압박이 자녀의 의지와 태도를 전혀 바꾸지 못하고 외려 반발을 유발하는 경우다. 넷째, 공부와 거리가 먼 척박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일찍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상실한 경우다.

하버드 졸업장

신명호의 연구에서 저학력 노동자 및 저소득층 중 명문대에 들어간 사례는 일관되게 첫째 유형에 속했다. 부모라는 변수 없이 개인의 노력에 초점이 맞춰진 유형이다. 나머지 세 유형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기반에 의해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 대목에서 보수와 진보의 색이 갈린다. 이준석은 첫째 유형에 주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책 ‘공정한 경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학생에 불과한 아이들 700명이 등수를 두고 다투었어요. 좀 잔인한 측면도 있지만 저는 그 시절의 공부가 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고요.”

이탄희 민주당 의원이 6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반박 글을 올렸다. 요지(要旨)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 나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나에겐 수많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만큼 부모 잘 만나지 못한 친구들, 나만큼 건강하지 않았던 친구들, 나만큼 공부 잘하게 훈련받지 못한 친구들, 나만큼 자기 일에 집중할 수 없었던 친구들, 나만큼 시행착오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던 친구들, 나만큼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친구들, 위기를 딛고 다시 일어날 기회가 없었던 친구들, 나만큼 행운이 따르지 않았던 친구들이 내 주변에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6월 11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이 대표가) 능력주의의 신봉자이기 때문에 상당히 논쟁적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기존의 포용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 능력주의와 포용주의가 한바탕 논쟁을 겪어야 한다”고 했다. 능력주의의 개념이 어떠하며,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다.

이탄희의 글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낙연의 말은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또 모호하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조국 사태’의 직·간접적 당사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은 입시 과정에서 허위 인턴 확인서 발급,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저자 등재 등의 의혹으로 논란이 됐다.

즉 능력주의 담론의 확산은 문재인 정부 4년에 대한 반(反)작용이다. 정치는 옳고 그름 이전에 정서의 영역에 있다. 이준석은 “내년 지방자치단체선거부터 ‘공직후보자 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목에서 대중은 부작용 가능성을 따지기보다, 기득권 질서에 대한 도발이라는 데서 통쾌함을 맛본다. 나이와 영향력, ‘알짜’ 지역구를 연료 삼아 소영주(小領主)처럼 행세하는 기성 정당 질서에 비토권을 행사하는 셈이다. 민주당에 애정을 갖고 비판하는 안병진 교수도 이 대목을 꼬집었다.

“마이클 센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나 저의 생각이나 비슷해요. 능력주의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평등을 확산시킨다는 게 진보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이죠. 저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준석에 대해 비판적 입장은 갖고 있죠. 다만 그렇다면 기존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만으로 운영됐느냐 반문할 수 있죠. 오히려 능력주의보다는 더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행태가 있지 않았느냐는 겁니다. 그게 부족주의죠. 특히 ‘조국 사태’ 같은 게 ‘이준석 돌풍’을 불러온 거죠. 예컨대 트럼프 현상은 굉장히 안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기존 미국 리버럴 세력이 오히려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이니 시민들이 워싱턴을 한번 흔들어보자고 해서 나타난 일이잖아요. (‘이준석 돌풍’은) 그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죠.”

그러니 이준석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다. 경쟁이 가져올 폐해도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패자에 대해 어떤 접근법을 취해야 하느냐”고 물어도 “나누자는 논리를 만들기보다는 성장을 통해 기회를 늘려야 한다”는 답이 돌아온다. 또 “뒤처진 사람들을 경쟁의 출발선에 다시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경쟁에 대한 이 사람의 확신은 날것 그대로다.

“700명 줄 세웠을 때 불만 크게 없다”

이준석에게서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나온 것은 이 대목에서다. 1998년 10월 19일 이해찬 당시 교육부 장관은 “2002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특기·재능·특별활동 등으로 뽑는 무시험전형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점수 위주의 대입전형이 창의력을 떨어뜨리니 수능 비중을 낮추고 학교생활기록부, 논술고사 등 다른 자료를 반영해 특기와 적성을 함양하겠다는 취지였다. 시기상 이준석이 중학교를 다닐 때다.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게 될 당시 중3(1983년생)은 ‘이해찬 세대’로 불렸다. 1984·1985년생은 ‘이해찬 2세대’와 ‘이해찬 3세대’로 분류됐다. 이준석은 ‘이해찬 3세대’다.

“‘공부 안 해도 돼’라는 ‘이해찬주의’의 결과물이 뭡니까. 그때 공부 안 했던 사람들이 지금 성공했나요? 그건 무책임한 발언이죠,”

그는 진보 교육의 빈틈을 지적하면서 ‘대안 부재론’을 언급했다. 진단만 제시하니 국민에게 소구력이 없다는 얘기다. 인터뷰 당시에는 ‘대안이 없으니 차악을 택하자’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헤어지고 녹취를 정리하다 보니 ‘닥치고 경쟁이 최선’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후자라면 그는 순도 100%의 경쟁주의자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건 딱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의 룰(rule)이라는 이야기예요. 예를 들어 700명을 학교 성적으로 줄 세웠을 때 불만은 크게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경쟁주의에 대해 지적하는 분들이 과연 그러면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느냐. 단 한 명도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공정의 가치를 포기하고라도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없어요. 보통 대안으로 나오는 게 음서(蔭敍)로 귀결되는 정책이거나, 말 그대로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는 방법이죠.”

- 20대 사이에 ‘공정한 경쟁’ 담론이 내재하는데, 이 대표가 끌어낸 것이라고 보나요.

“저희 윗세대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연봉 얼마짜리 기업에 취업하느냐 이것에 대한 경쟁을 했어요. 지금은 (취업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거든요. 그러니 젊은 세대는 경쟁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자기 나름의 잣대도 세우고 있는 거예요. 모두 취업이 된 상태에서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도 배가 아프기야 하겠지만 내가 나빠지는 건 없거든요. 그런데 인천국제공항 사태 때부터 봤겠지만, 비정규직 공항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올라가면 내가 지원하려는 공채 인원이 줄어드는 건 자명한 거예요.”

- 상층 정규직의 양보 없이 청년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큰 걱정이에요. 문재인 정부가 파이를 키우는 데 전혀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눠 먹기에 의존해야 해요. 인구 감소로 경쟁이 줄어들 거라 얘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천만에요. AI(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를 겁니다. 경쟁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고, 경쟁의 잣대를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큰 사회적 갈등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 할당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공정한 경쟁에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까.

“장관도 30%를 (여성에게) 할당했는데 장관감이 안 되는 사람이 많이 들어갔고요. 국회의원은 몇십 년째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제를 하고 있어요. 비례대표 여성 의원이 다음에 지역구 진출하고 계속 정치하는 경우는 드물어요. 지속 가능하지 않은, 그냥 수치로 생색내기 위한 제도가 많다는 생각을 하죠.”

리허설 없는 대선 게임

당내에도 그의 ‘급진적 생각’에 이견(異見)이 있다. 국민의힘 소속 백경훈 청사진 공동대표의 말이다.

“국민의힘은 기성 정치인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는데, 이준석 대표 체제에서는 (나이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요.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이 대표가 가진 공정한 경쟁이나 능력주의, 할당제에 대한 생각 안에 논쟁거리가 많습니다. 정치적 스탠스로 보면 여타의 당대표 후보들과 큰 차이점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30대 야당 당수의 등장이 내년 3월 대선에 미칠 파장은 초미의 관심사다. ‘이준석 돌풍’을 통해 변화를 바라는 여론의 흐름이 확인된 만큼 이재명 경기지사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양강 구도로 짜인 대권 지형도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김병민 경희대 행정학과 객원교수(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는 “정당사(史)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의 이례적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기존 대선 구도가 다 무너질 수 있다”면서 “(이 대표처럼) 자기 언어와 자기 생각으로 대선판을 휘저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짧은 시간 안에 대권 구도의 틀이 바뀔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 국면에서 휘발성이 큰 정치 현안은 세 덩어리로 요약된다. ①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간 합당 ② 윤석열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③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복귀. 일단 이 대표가 6월 12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카페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 이튿날에는 그가 윤 전 총장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이 알려졌다.

문제는 ③이다. 그는 당대표가 되면 김 전 위원장을 대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김 전 위원장과 안 대표 사이의 관계는 껄끄럽다. 또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윤 전 총장과 거리를 두는 모습도 보였다. 따라서 그의 정치적 시험대는 김종인이라는 대선 국면의 ‘키맨’과 대권주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 현안에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그가 이 문제에는 신중히 접근하는 게 흥미롭다.

“그분(김 전 위원장)이 가진 메시지 능력이나 정책 능력은 어느 당이든 탐을 내고 싶어 할 테고요. (그래서) 박근혜·문재인 두 정권 창출에 역할을 했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제가 선대위원장 얘기했던 이유는요. 위촉할 수 있는 다른 자리가 없어요. (김 전 위원장이) 선대위원장을 하신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다만 선대위원장은 후보가 인선하는 겁니다. 제가 앞서나갈 수는 없고요.”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지면 임기와 상관없이 그는 대표직을 내려놔야 한다. 국민의힘이 집권하면 ‘여당 밀어주자’는 분위기를 등에 업고 내년 6월 지방선거도 승리로 이끌 개연성이 크다.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는 한판 승부다. 리허설이 없는 게임. 이것이 그가 감당해야 할 운명인지도 모른다.

#이준석 #국민의힘 #공정한 경쟁 #능력주의 #윤석열 #김종인 #신동아



신동아 2021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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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해부] “겸손하고 착한 척이 정무 감각은 아냐…경쟁 잣대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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