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어지럼증 ‘한 방’에 날릴 치료법은?

[이근희의 ‘젊은 한의학’] “병명에 집착 말고 원인과 악화 요인에 집중해야”

  • 이근희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장

    입력2022-01-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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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은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나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GettyImage]

    갑자기 세상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은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나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GettyImage]

    어느 순간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 생활하기 어려워지는 때가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현훈(眩暈)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어지럼증이다. 어지럼증은 주위 공간이 자기 생각이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이는 상태를 일컫는다. ‘공감각’에 문제가 생길 때 나타난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여러 가지다. 미각은 혀가 관장한다. 시각은 눈, 청각은 귀, 후각은 코, 촉각은 우리 몸 전체 피부를 통해 느낀다. 그렇다면 공감각은 어떻게 인지하는 것일까. 공감각을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시각이다. 우리는 눈을 통해 주변 세계와 사물을 인지한다. 새로 안경을 맞추면 그 도수에 적응할 때까지 어지럼증을 느낀다. 둘째, 귀의 전정기관이 있다. 전정기관은 전정과 반고리관으로 구성되며 몸의 평형을 담당한다. 갑자기 찬물이 귀에 들어가면 전정기관이 자극을 받아 순간적으로 어지럼증이 느껴진다. 셋째, 몸의 체성감각이 있다. 우리는 손발 등을 통해서도 세상을 인지한다. 길을 걸으면 자연스레 바닥이 울퉁불퉁한지 아니면 매끈한지를 느낄 수 있다. 시각기관인 눈을 감은 채로 폭신폭신한 방석 같은 곳에 올라가면 어지럼증이 생길 수 있다.

    시각, 전정기관, 체성감각은 종합적으로 작용해 우리가 모호한 공간 정보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게 도와준다. 보통 평탄한 지역에서는 체성감각 70%, 전정기관 20%, 시각 10% 정도가 작용한다.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이 비율이 전정기관 70%, 시각 20%, 체성감각 10%로 변한다. 이런 조화와 협력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말초성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뇌에 문제 생겼을 때 발생하는 중추성 어지럼증

    체내에서 정보를 분석하는 기관에 문제가 생겨도 어지러움을 느낄 수가 있다. 시각, 전정기관, 체성감각으로부터 받아들인 공간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곳은 우리 몸의 사령탑인 뇌다. 대뇌, 소뇌, 뇌간 등에 병변이 생기면 어지럼증을 느끼게 된다. 지나친 다이어트로 대뇌에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을 때, 계속된 야근으로 대뇌가 쉬지 못했을 때 우리는 어지러움을 느낄 수 있다. 술을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도 문제가 생긴다. 이때는 소뇌 기능이 떨어져 세상이 빙글빙글 돌게 된다. 이처럼 공간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져 발생하는 어지럼증을 ‘중추성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어지럼증은 흔히 경험하는 증상이라 일시적으로 생겼을 때는 보통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짧게는 수시간, 길게는 며칠 정도 이어지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이때 가장 먼저 신경을 써야 할 점은 어지럼증의 원인이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추성’인지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다. CT·MRI 등 영상장비로 뇌를 촬영해 그 원인이 ‘중추성’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 많은 어지럼증의 원인 중 어느 것이 나의 어지럼증을 유발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어지럼증의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은 말초 전정 장애다. 귀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이석증, 메니에르병, 전정신경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자율신경 항진으로 인해 정신과적 문제가 있을 때 어지러움이 생길 수 있다. 미주신경성 실신 및 빈혈 같은 혈관계 질환, 목이나 어깨 부분 근육의 과한 긴장도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한의원을 방문하는 어지럼증 환자 대부분은 여러 해 동안 해당 증상으로 고생해 온 분들이다. 그동안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각종 검사를 받았으나 발병 원인조차 몰라 속만 끓였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가는 병원마다 진단명이 다르다. 대체 왜 계속 어지러운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분도 있다.

    증상 다스린 뒤 근본 고치는 치료법

    “병명에 집착하지 말고 어지러움의 원인과 악화 요인에 집중하라.”

    만성 어지럼증 환자들에게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이석증이 만성적으로 재발해 찾아온 환자 사례를 보자. 이석증은 귀 내부 전정기관에서 평형을 유지하는 이석이 갑자기 제자리를 잃으면서 발생한다. 이 환자는 발병 초기 이석치환술로 쉽게 치료했지만 이석증이 만성적으로 재발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이후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찾아오는 어지러움을 피하기 위해 아예 목과 어깨를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긴장한 목과 어깨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갔고 신경도 예민해져 우울감이 엄습했다.

    이 환자의 어지러움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이석증일 수 있다. 하지만 이석치환술 후 당장 환자를 괴롭힌 증상은 경추성 어지럼증과 자율신경항진증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먼저 추나요법으로 딱딱하게 굳은 승모근, 흉쇄유돌근, 후두하근 등을 이완시키며 경추의 정렬을 맞춰드렸다. 자율신경항진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내관혈(內關穴), 공손혈(孔孫血)에 침도 놓았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만큼 나중에 생긴 표면적 증상을 먼저 다스린 뒤 근본 원인인 이석증 치료에 접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 것.

    내이(內耳) 달팽이관에 림프액이 지나치게 많아져 발생하는 메니에르병이 생기면 환자들은 어지럼증과 함께 귀에 물이 찬 느낌이 든다고 호소한다. 이때는 이뇨작용이 있는 택사(澤瀉)를 주약(主藥)으로 처방을 써 귓속에 고인 림프액이 소변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만약 물이 찬 느낌 대신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압력 조절이 안 돼 먹먹한 느낌이 든다면 비강 내 사혈(瀉血)을 통해 코와 귀를 잇는 유스타키오관의 압력을 낮춰주는 게 효과적이다.

    의료인으로 환자를 보다 보면 “나한테 어려운 환자는 남한테도 어렵고, 남한테 어려운 환자는 나한테도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된다. 어떤 병이든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원인이 뚜렷하게 보이는 급성 환자는 치료가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증상이 만성적으로 재발하며, 여러 원인이 혼재해 상태가 악화한 환자를 치료하기는 쉽지 않다. 어지럼증은 여러 감각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공감각이 흐트러져 발생하는 것이라 더욱 그러하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해결되지 않는 어지럼증으로 고생하시는 환자는 어느 날 갑자기 명의가 나타나 ‘한 방’에 고쳐줄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자기 증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의료인과 치료를 함께 해나간다는 자세로 한 걸음, 두 걸음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어지럼증치료법 #말초전정장애 #마니에르병 #이석증치료 #신동아


    이근희
    ● 원광대 한의대 졸업
    ● 前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
    ● 現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 원장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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