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자면서 지나치게 쐬면 안면신경마비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Gettyimage]
얼굴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눈, 코, 입 등의 감각기관이 몰려 있는 머리의 앞면’이란 뜻 외에도 ‘어떤 사물의 진면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표상’ ‘주위에 잘 알려져서 얻은 평판이나 명예, 또는 체면’ 등이 있다. 어떤 신체 부위보다 사회적 부위인 얼굴의 신경과 근육을 갑작스럽게 마비시키는 안면신경마비는 질병의 경중을 떠나 환자의 사회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회복되지 않으면 어쩌지’란 공포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준다. 최근 유명한 팝 가수인 저스틴 비버를 비롯해 여러 방송인이 고통받았다고 호소한 안면신경마비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눈·코·입 근육 움직임 불가능
안면신경마비는 구안와사(口眼喎斜), 벨마비(Bell’s palsy)라고도 하는데 얼굴의 눈, 코, 입 등을 움직여주는 7번 뇌신경인 안면신경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거나 혈관의 문제로 혈액 공급이 잘 되지 않거나,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는 등의 원인으로 신경이 마비돼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발생하는 경과를 들어보면, 마비되기 2~3일 전부터 한쪽 귀 인근으로 스멀스멀거리는 느낌, 찌르는 듯한 통증, 땅김, 얼굴의 감각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한 번씩 들다가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얼굴근육이 마비됐다고 한다.안면신경이 마비되면 눈, 코, 입의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마비 정도에 따라 증상은 다르지만 가장 심한 완전 마비의 경우 환측 근육이 마비돼 한쪽으로 당겨져 올라가 있는 상태로 눈을 감지도 입을 닫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눈은 마르고 뻑뻑해지며, 이를 적시기 위해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고, 세수를 해도 눈으로 물이 들어가 괴롭고, 물을 마셔도 마비된 입 쪽으로 흐른다. 환자분들은 ‘왜 나한테 이런 병이 찾아왔나’ 고통을 호소한다.
이때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말초신경인 귀의 문제인지, 중추신경인 뇌의 문제인지 구별하는 것이다. 뇌의 문제로 얼굴이 마비된 경우에는 이마의 주름을 지을 수 있고, 말초신경의 문제인 경우에는 주름을 지을 수가 없다. 그리고 중추성의 경우 얼굴의 자율신경은 이상이 없기에 미각, 침 분비, 눈물 분비 기능에 이상이 없다. 만약 중추성이 의심될 경우 생명이 위험한 응급질환일 수 있기에 빨리 CT 또는 MRI로 뇌 상태를 확인해 봐야 한다.
안면신경마비는 환자가 병을 바로 알아챌 수 있기에 조기에 치료할 수 있다. 보통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를 발병 72시간 내 복용하는데 수술이 아닌 보존적 치료의 경우 발병 10일 정도까지는 마비 상태가 유지되다 이후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한다. 85% 정도는 정상적으로 회복된다. 하지만 마비가 심한 15% 정도의 환자는 발병 3개월 이전까지 회복되지 않으며,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찬바람 지속적으로 쐬면 생길 수 있어
한의학에서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를 구안와사(口眼喎斜), 중추성 안면신경마비를 중풍(中風)이라고 말한다. 구안와사가 발생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하는데 첫째, 우리 몸의 방어 능력을 일컫는 정기(正氣)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다. 스트레스 혹은 식이의 문제로 인해 몸이 허약해지며, 면역체계가 약해진 이들에게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쉬운 것이다. 실제로도 안면마비의 발생이 자가면역질환 환자 혹은 자간전증이 있는 임산부, 6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둘째, 풍한사(風寒邪)의 침입으로 인한 것으로, 우리 몸이 찬바람을 지속적으로 쐬게 된다면 체온이 떨어지고, 떨어진 체온을 끌어올리기 위해 신체에서는 에너지를 소모해 상대적으로 면역체계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추운 곳에서 자고 나면 입 돌아간다’고 한 말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찬바람이 부는 가을, 겨울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도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자면서 지나치게 쐬다가 마비가 생기는 경우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셋째, 허혈(虛血)과 부종(浮腫)이 원인일 수 있다. 마비가 발생한 부위의 안면부에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귀 쪽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해 조직의 허혈성 괴사가 생긴 것이다. 괴사로 인해 염증이 발생하면 주변의 체액을 끌어당겨 부종이 생기며 안면신경이 눌려 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
침 치료는 발병 후 일주일 내 시작하면 좋아
안면신경마비를 위한 한의학적 치료는 마비된 신경과 근육의 혈액순환 기능을 회복하며,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정상화해 외부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것에 중점을 둔다.침 치료가 가장 먼저 사용되는데 발병 후 4~7일 사이에 시작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 침 치료의 목표는 신경과 근육 기능의 정상화다. 안면신경의 운동신경섬유를 목표로 귀 뒤의 유양돌기 전방 0.5㎝에 있는 예풍혈과 운동신경이 분지되는 광대뼈 아래의 하관혈을 찌른다. 이를 통해 신경을 자극해 수용체를 활성화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유발해 회복시킨다. 근육의 경우 얼굴 표정을 움직여주는 전두근, 안륜근, 구륜근 등을 목표로 찔러 마비된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
안면신경마비는 첩약시범사업에도 포함된 질환인 만큼 한방치료 효과가 뚜렷한 질병이다. 초기에는 시령탕(柴苓湯)과 같은 처방을 사용해 안면부 염증과 부종을 함께 없애주고, 나중에는 면역능력을 회복해주는 당귀보혈탕과 같은 처방을 사용해 재발과 후유증을 최소화한다.
실제로 안면신경마비 환자를 한의원에서 보면 처음에는 얼굴이 마비된 탓에 오는 불편함, 주변 사람들을 만나기 부끄럽다고 하는 사회적 고통,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런 병이 찾아왔는지에 대한 슬픔으로 눈물 흘리는 분이 많다. 그렇지만 치료 부위가 얼굴이니 나아지는 과정 또한 뚜렷이 보이고, 환자분들의 치료 열의가 높다 보니 병의 중함에 비해 호전도가 굉장히 좋은 질환이다. 다만 방심하다가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렵고, 회복돼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에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근희
● 원광대 한의대 졸업
● 前 수서 갑산한의원 진료원장
● 現 경주 안강 갑산한의원 원장
● 경희대 한의대 대학원 안이비인후피부과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