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가성비 떨어지는 ‘제재’ 보다 실효성 높은 3가지 북핵 해법

[한반도 지오그래픽] 1 北 안보 우려 해소 2 北-中 사이 벌리기 3 北 지원

  • 이승원 국제문제칼럼니스트·‘바이든 플랜’ 저자

    입력2022-05-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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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3월 24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동아DB]

    북한이 3월 24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지도 아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단행했다고 3월 25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동아DB]

    # 장면 1.
    2006년 7월 5일 새벽,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미국 시각으로 이날은 독립기념일(7월 4일)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10월 9일, 북한은 최초의 핵실험을 단행한다. 중국은 북한으로 연결된 송유관을 사흘간 차단하며 원유 공급을 중단한다. 중국은 ‘시설 점검’을 이유로 들었다. 원유 공급은 며칠만 중단돼도 치명적이다. 이후 김정일과 후진타오의 만남이 재개되는 데까지 무려 4년이 걸렸다.


    # 장면 2.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중국은 첫 번째 핵실험 때처럼 이번에도 원유 공급 중단 등으로 분노를 드러냈을까? 아니다. 북한에 ‘때 아닌 선물’이 전달됐다.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원자바오 총리가 10월 평양을 방문한 것. 중국 총리가 북한을 찾은 건 18년 만이었고 그의 방북은 제2차 핵실험을 한 지 불과 5개월도 안 된 시점에 이뤄졌다.


    북한의 1차 핵실험과 2차 핵실험 이후 북·중 관계는 무척 대조적이다. 대체 양국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6년 중국을 분노하게 했던 북한 핵실험이 3년 뒤 2차 핵실험 때에는 중국을 안심시킨 것일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중국은 크게 분노했다. 하지만 억눌렀다. 파트너가 바뀐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김정일은 2011년 12월 사망했고 후진타오는 2013년 초까지 주석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두 핵실험 사이에 중국이 북한을 그토록 다르게 대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서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기, 소련 견제를 위해 유럽 중심의 대외정책을 유지하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중동 정책에 외교자원을 집중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8년은 ‘테러와의 전쟁’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요약된다. 초강대국 미국의 본토가 직접 공격받은 9·11 테러와 중국에 손을 내밀게 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국력 약화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그 시기에 중국이 G2로 급부상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유럽에서 중동으로, 중동에서 아시아로 초점을 옮긴 이유다.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이 부상했다. 현재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불리는 아시아태평양 전략은 당초 중국을 정치·군사적으로 견제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협력을 원하는 ‘이중 구조’였다. 트럼프 정부에서는 각 분야에서 ‘중국 때리기’가 총동원됐고, 바이든 정부 2년차인 2022년 현재, 대중국 전략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 견제 정책은 북한 비핵화에도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영향을 끼친다. 즉 미·중 대립이 심화될수록 북핵 문제는 더욱 풀기 어려운 모순 구조에 빠진다. 북한의 1, 2차 핵실험 때 중국이 상반된 반응을 보인 것은 바로 미국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전략, 구체적으로는 파이브아이즈(Five eys)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을 통해 미국이 중국의 숨통을 조일수록 애증 관계인 중국과 북한은 밀착할 수밖에 없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까지 본색을 드러냄으로서 ‘북·중·러 vs 한미일’이라는 고전적 대결 구도는 다시 뚜렷해지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던 과거 6자 회담에서 관찰됐던 ‘미일-한중-북·러’ 구도가 차라리 아쉬울 정도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대북제재는 실패했다?

    대북제재론자들은 “대화 속에서도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은밀히 개발해왔다. 기만전술에 또다시 속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협상론자들은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제재 위주의 정책은 전쟁 위기와 비용만 부추겼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같은 행위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상황은 늘 흥미롭다.

    만약 대북제재의 ‘최종 목적’이 ‘비핵화’였다면 제재 위주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과거 사례를 보자. 사실상 북·미 대화를 반대하고 제재를 주장했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 북한은 4번의 핵실험을 했다. 이 시기는 두 정부와 정확히 임기가 겹친 오바마 정부 8년이기도 하다. 2013년 3월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은 항구적 전략노선’임을 선언한 북한은 2016년 1월 자신들의 핵실험을 두고 “미국을 위수로 한 적대세력들의 날로 가증되는 핵위협과 공갈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철저히 수호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 사태 등 실질적 위기와 함께 남북 ‘핫라인’조차 부재한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느꼈던 공포감, 코리아 디스카운트 비용 등까지 감안한다면 10여 년간의 대북강경책은 실패한 것이다. 2016년 9월 5차 핵실험까지 진행되자 미국 보수 진영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러티(Defense Priority) 연구원 대니얼 데페트리스(Daniel DePetris)는 “동북아에 미군의 존재가 더 강할수록 북한은 더욱 호전적이 됐다는 점에서 대북정책은 총체적 실패”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각종 제재에도 불구하고 비핵화라는 목표는 왜 달성되지 못했을까.

    첫째, 중국·러시아 등 북한에 우호적인 국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수의 유엔 대북제재안에 찬성표를 던졌지만 비공식 지원을 이어갔고 제재 효과는 반감됐다. 3월 ICBM 발사 후 유엔에서 규탄 성명이 추진됐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반대했다. 장준 주(駐)유엔 중국대사는 “북한은 약속을 지킨 반면 미국은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데다가 한반도 주변에 전략적 핵무기를 배치해 북한 안보를 위협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둘째, 제재 조치는 북한의 핵 보유 의지를 오히려 강화시켰다. 안보 불안과 경제 고립이 심화될수록 ‘자위권’ 강화의 필요성, 특히 많은 비용이 드는 재래식 무기에 비해 ‘경제적’인 핵 개발 필요성을 더욱 증대시켰다.

    셋째, 핵 확산 가능성을 증가시킨 부작용도 낳았다. 미국은 극한 고립에 처한 북한이 핵 기술을 불량국가나 테러리스트들에게 넘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세계적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북핵을 최소한 ‘동결’이라도 시켰어야 한다”며 “그 정도 성과에도 이르지 못한 대북제재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넷째, 대북제재론의 허점이다. 장기간 고립된 체제는 외부 노출이 매우 제한적이다. 수십 년간 ‘붕괴해야 자연스러운’ 북한이 생존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이후 북한은 국가 전체를 봉쇄했고 이는 대북제재 이상의 부작용을 스스로 각오한 조치였다.

    한국 정부가 대화를 거부한 동안 남-북-미 관계는 한국 강경책 및 북한 도발→미국 정부, 한국 대북정책에 편승→한미 군사협력 강화→ 북한 도발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이런 대화 단절은 오바마 정부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매우 제한적인 선택지만 안겨줬고, 이는 미국을 비관여(disengagement)로 유도하는, 즉 북한 문제를 후순위로 밀어놓게 하는 중대한 부작용을 낳았다. 미국 정치전문지 ‘더힐’은 1월 14일자 기사에서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인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북한을 외교정책 우선순위에서 밀어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을 실었다. 바이든 정부는 오바마 정부 시즌2를 이어가는 셈이다.

    대화는 미완성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돼 있다. 제66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지도자는 평화를 지켜냈는지, 그러지 못했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특히 안보 문제는 비용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 기준이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은 말 그대로 ‘위기’였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병든 강아지’ ‘로켓맨’이라며 말 폭탄을 쏟아냈다. 동시에 한반도 주변에 항공모함 배치를 지시하기도 했다. 당시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예방전쟁’과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은 뇌리에 박힐 정도였다. 김정은도 직접 나서 ‘노망난 늙은이’ 등으로 맞대응했다. 실제 당시 한반도가 어느 정도의 전쟁 위기에 직면했는지는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 밴 잭슨이 펴낸 책 ‘On the Brink’에 자세히 기술돼 있다. 전쟁 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한 것은 2018~2019년 이어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다.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갔지만 최근 4년 동안 전쟁 위기는 ‘잠재워졌다’. 김정은 스스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도 2018년이다. 4년이 지난 현재 북한의 잇단 미사일 시험발사로 모라토리엄을 폄훼하는 주장도 있지만 헤커 박사의 지적처럼 ‘위험의 감소’도 무시할 수 없다. 제재 중심 시기에 발생한 생명과 비용, 재산상 손실과 협상 시기에 발생한 손실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크겠는가. 냉정한 비교가 필요하다. 보수 성향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조차 수십 년간 패턴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만큼은 핵개발 등을 자제했다고 밝히고 있다.

    北, 핵 사용 범위 확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동아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동아DB]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3개월이 지난 지난해 4월 30일 대북정책 검토가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grand bargain)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트럼프의 일괄타결 중간 어디쯤이란 얘기다. 며칠 뒤인 5월 2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ABC방송에 출연해 “전부냐, 전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조정되고, 실용적이며 신중한 접근법”이라고 부연했다. 비핵화를 목표로 ‘단계적 합의’를 추진하겠다는 설명으로, 비핵화 조치를 위한 일정 스텝이 확인되면 대북제재의 부분 해제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였다.

    미국은 대화에 나오라는 제안만 했을 뿐 북한이 ‘하노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협상장에 나올 만한 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 결국 김정은은 1월 19일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했던 신뢰 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할 것”이라며 이른바 모라토리엄 선언을 철회하고 ICBM 시험발사 재개를 강력히 시사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3월 1일 국정연설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무시했다. 미국은 화성-17 발사 때도 이상하리만치 로키(low-key)를 유지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관심을 끌려는 행동’으로 평가 절하했고, 설리번 보좌관 역시 “도발 패턴의 일환으로 본다”며 애써 무시했다. 다만 제7차 핵실험 가능성마저 높아지자 국무부는 5월 5일 “상임이사국 5개국을 포함한 유엔 안보리는 과거 일련의 결의안에 서명했다”며 “그것이 바로 이번 주 탄도미사일 발사, 최근의 ICBM 발사가 다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모욕인 이유”라고 비난했다. 북한을 겨냥했지만 내용상 결의안에 반대한 중국과 러시아를 향한 비난이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 26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 26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뉴시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인 4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월 26일 보도했다. [뉴시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인 4월 2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월 26일 보도했다. [뉴시스]

    대북정책 검토 1년이 지난 2022년 5월 11일 현재, 북한은 3월 16일, 24일 두 차례에 걸쳐 ICBM을 발사했고, 5월 7일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다. 북한이 올 들어 실시한 미사일 발사가 16차례에 이른다. 김정은은 “미 제국주의자와 장기적 대결을 철저히 준비할 것”이라고 예고한 상태다. 더 나아가 김정은은 4월 25일 ‘항일빨치산’ 창설 90주년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핵 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 어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무기가 ‘방어용’이라고 주장하던 북한이 ‘근본이익 침탈 시’로 사용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바이든이 들고 온 ‘명세서’

    바이든은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잡았다. 클린턴 대통령 이후 일본에 앞서 방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대통령의 일정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즉 미국이 ‘조금 더 긴 명세서’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트럼프 이상으로 대(對)중국 전략을 분야별로 촘촘히 만들어왔다. 쿼드에 이어 프랑스의 반발을 사면서까지 추진한 오커스 등이 대표적이다. 2월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에서 미 정부는 5대 전략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확대 △지역 연계 구축 △인도-태평양 번영 촉진 △안보 강화 △초국가 위협에 대응한 복원력 등을 제시했다. 이어 △경제체제 주도 △지역 억제력 강화 등 액션 플랜도 밝혔다. 중국을 겨냥해 인도-태평양 내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반도체, 공급망, 디지털 경제 등 경제안보부터 코로나, 인권까지 모든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젠 사키 대변인은 5월 5일 “(한미일) 정상들은 안보동맹 심화를 비롯해 경제 관계 강화, 코로나19 대응을 비롯한 공동의 도전 과제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수의 ICBM 발사를 비롯해 북한의 지속적인 역내 불안정 행위와 관련해 바이든은 한국과 일본의 안보에 대한 우리의 약속을 분명히 할 것”이라며 “확장 억지 약속은 강철 같다는 것을 포함해 안보 약속을 재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도 언급했다.

    인도-태평양 보고서와 백악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미국은 역내 확장 억지력 강화를 약속하는 동시에 한미일 군사 협력도 요구하고 있다. 워싱턴은 한국 정부에 대중국 압박 정책에 ‘적극적’ 참여 입장을 요구하고 오바마 때처럼 ‘한미일 군사동맹’ 수준의 협력을 재차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대러시아 전략으로까지 전선이 넓어지고 있어 그 내용은 더욱 복잡해졌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 방향은 과거 이명박 정부와 유사하다.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며 대북강경책과 함께 쿼드 가입, 사드 추가 배치 등 미국편에 확실히 서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제재 위주 대북정책은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했을뿐더러 안보비용만 키운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지소미아’보다 높은 수준의 한일 군사협력을 원하지만 일본에 대한 한국 내 여론은 여전히 좋지 않다. 새 정부가 쿼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미국 반응조차 미지근한데다 일본은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바이든의 ‘한반도 안정론’

    만약 쿼드에 한국이 공식 참여하면 사드 배치 때처럼 심각한 한·중 갈등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5월 2일 “쿼드는 쿼드로 남을 것”이라며 한국 가입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한편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해 국방부 마틴 마이너스 대변인은 5월 5일 “사드 관련 추가 계획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리처드 아미티지는 지난해 12월 한 포럼에서 “쿼드는 문화나 정치 기구가 아니라 반중 안보협의체임이 분명한데 한국 입장에서 보면 무리하게 가입할 이유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충고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가 중국에 ‘지나치리만큼 고분고분’하다는 표현까지 쓰며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수 과정의 내상이 치유되기도 전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실상 모든 외교자원을 유럽 쪽에 쏟고 있고 △무엇보다 백악관 및 미 의회 모두 북한보다 대중국 전략을 훨씬 중요시 여긴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 한국 정부가 과거 이명박 정부 때처럼 대북 강경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고, 이에 따라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다면 누구보다 난색을 표할 쪽은 미국이다. 일본은 북한 도발을 자위력 확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자원이 최대한 분산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3월 화성-17 발사 후 한국군의 연합훈련 요청을 미군 측에서 이례적으로 거부한 ‘사건’은 그래서 중요하다. 퇴임한 문 대통령을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적 결례 논란에도 굳이 만나는 이유도 주목해야 한다. ‘연평도 폭침’ 두 달 뒤인 2011년 1월 만난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당시 중국 주석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안정, 남북관계 개선 및 대화’를 촉구했고 곧바로 한국에 특사까지 보냈다. 그로부터 3개월 뒤인 2011년 4월 청와대를 찾아온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대화를 촉구했다.

    북핵 문제 풀 해법 3가지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연설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동아DB]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연설에서 북한과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말했다. [동아DB]

    북한은 대화가 부재할 때 도발했다. 지금 상황도 다르지 않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첫째,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다. 둘째, 중국-북한 사이 벌리기다. 셋째, 전폭적 경제 지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안보 우려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일이다. 핵심은 ‘안보 우려’에 대한 북·미 간 ‘인식의 비대칭성’이다. 북한은 병에 가까운 강박으로 한미가 북한을 침공할 것이라며 핵은 곧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 시각에서 북핵은 심각한 위협이나 생존 문제는 아니다. 물론 북한 ICBM 수준에 따라 심각성은 달라진다. 양쪽 모두 ‘안보 우려 해소’를 얘기하지만 서로 다른 얘기를 한다. 게다가 서로에 대한 신뢰는 진공(眞空)에 가까운 제로 상태다.

    5월 1일, 취임 후 처음 방한한 중국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우리는 비핵화에 찬성하지만 각국의 안보도 고려돼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미사일 도발)뿐만 아니라 근본 원인(북측 안보 우려)도 함께 다룰 것”이라며 “북·미 간 적대감의 근본 원인은 양자 간의 깊은 불신”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안보 우려 해소의 전제조건으로 ‘적대시 정책 철회’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지난해 9월 24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대북 적대시 정책, 불공평한 이중잣대’ 철회를 선결 조건으로 제시하며 당시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제안했던 종전선언을 “좋은 발상”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며칠 뒤 김정은 역시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장되고 타방에 대한 편견적인 시각과 불공정한 이중적인 태도, 적대시 관점과 정책들부터 먼저 철회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계속 밝히고 있는 불변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말하는 적대시 정책은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전개, 대북제재 등이다. 한미가 ‘정례적, 방어적’이라고 설명하는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은 “핵심 내용은 방어전 개념이 전혀 아니며 (…) 침략과 제도 전복을 노리는 계획에는 북의 수뇌부를 겨냥한 참수작전도 포함된다”고 반발해 왔다. 또한 미국-인도 핵 협정과 같은 평화로운 핵 개발, ‘인공위성’ 발사 용인 등 “북한에만 악의적인 이중잣대”를 버리고 자주권을 가진 한 국가로서 자신들을 인정하라고 주장한다.

    2022년 들어 북한의 안보 우려 해소는 더욱 어려워졌다. ‘핵을 포기’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눈앞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계기로 ‘안보=핵’이라는 공식은 더욱 공고해졌고 해법도 한층 난해해진 것이 사실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과 북한의 사이를 벌려야 한다. 김정은이 권력을 물려받은 후 집 밖을 나가 시진핑을 만나는 데 까지 무려 7년이 걸린 점, 그리고 2018년 남북, 북·미 회담 전 중국을 애태우는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중국을 싫어한다. 역대 미국 정부는 중국에 의존했고, 실제 조지 W 부시는 베이징에 부담을 안기기 위해 6자 회담 의장국을 맡겼다. 유엔 제재를 중국이 비공식적으로 북한을 도와줘 무력화하고 있다는 불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의 중국 의존이 아니라 북·중 간 사이를 멀어지게 해야 한다. 월터 러셀 미드 미국 바드대 교수의 제안은 그래서 다시 곱씹을 만하다. ‘월스트리트저널’ 고정 칼럼니스트인 그는 지난해 4월 ‘데탕트는 북한에 대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헛된 전략을 고안하는 대신 중국 영향권에서 북한의 이탈을 촉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을 심각히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언급하며 “중국이 더 강해질수록 베이징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평양의 욕구가 있다”면서 “스탈린이 몇 년 동안 (…) 히틀러와 조약을 맺은 것처럼 김씨 왕조는 쉽게 대외정책을 바꿀 수 있다. 트럼프에 던진 김정은의 추파는 미국과 다른 관계를 탐색하려는 평양의 진정한 관심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미드 교수의 주장은 김정은을 바로 옆에 두고 북측 주민들 앞에서 ‘비핵화’와 ‘평화’를 언급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2019년 9월 19일 능라도 연설을 연상시킨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전폭적으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오랜 고립과 각종 제재에 태풍, 코로나19 관련 봉쇄 등으로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최고존엄‘ 김정은조차 수차례 머리를 숙였다. 2017년 신년사에서 그는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자책 속에서 지난해를 보냈다”고 사과했고, 2020년 10월에는 “(장병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영광의 밤에 그들과 함께 있지 못한 것이 마음 아프다”며 연설 중간에 울먹이기까지 했다. 지난해 6월 전원회의 첫날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어려워지고) 있다”며 식량난을 인정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이용호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들의 요구는 “전면적인 제재 해제도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이 당시 영변 핵시설까지 포기하면서 ‘민수경제, 인민생활’ 부분이라도 제재를 풀어달라고 한 이유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언급한 방법론은 너무 익숙해서 새로울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부터 2022년 현재까지 약 30년간 논의된 이런 방법론들이 현실에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행에 옮겨진 적이 없다는 점이다. 북·미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실현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끝날 것 같지 않던 냉전도 결국은 막을 내렸고, 10년간 엄청난 희생이 따른 전쟁을 치렀는데도 미국과 베트남은 관계 정상화 27년째를 맞고 있다. 북한만 예외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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